레닌주의의 기초/전략과 전술(1)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5일 (화) 23:04 판

이 주제에서는 여섯 가지 문제를 다루겠다.

ㄱ)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을 지도하는 과학으로서의 전략과 전술

ㄴ) 혁명의 단계와 전략

ㄷ) 운동의 고조 및 퇴조와 전술

ㄹ) 전략적 지도

ㅁ) 전술적 지도

ㅂ) 개량주의와 혁명주의

1)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을 지도하는 과학으로서의 전략과 전술

제2 인터내셔널이 지배하던 시기는 비교적 평화로운 국면이라는 정세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군대를 만들어내고 단련시키는 시기였다. 의회주의가 계급투쟁의 형태를 주로 지배하던 시기였다. 대규모 계급투쟁의 문제, 혁명적 충돌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문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할 방법 문제는 일정에 올라있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 군대를 만들고 단련시키는 것은 합법적 국면의 수단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당시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야당의 지위에 있었고 야당의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된 조건에 따라 의회주의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에 대한 이런 식의 생각으로는 어떤 완전한 전략도 정교한 전술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증명이 필요치 않다. 전술과 전략에 관한 단편적이고 자질구레한 착상은 있었으나 전술과 전략은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의 치명적 죄행은 당시에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을 쓴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의회주의적 투쟁형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사실상 유일한 투쟁형태로 간주한데 있다. 또한 공개적 혁명투쟁의 시기가 닥쳐오고 의회주의 이외의 투쟁형태 문제가 이미 절박한 문제로 다가왔을 때에도 제2 인터내셔널의 당들이 이러한 새로운 임무에 등을 돌리고 책임지기를 거부한데 있다.
다음 시기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정면에 나서 행동하는 시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 부르주아 타도 문제가 당면 실천문제로 된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대한 완전한 전략과 세밀한 전술이 수립될 수 있었다. 이 때에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에 대한 문제(즉 전략)가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되고, 투쟁과 조직의 모든 형태들一의회 형태와 의회 밖에서의 형태(즉 전술)一이 완전히 명확하게 나타났다.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파묻어 버린 맑스와 의 전술과 전략에 관한 영명(英明)한 사상을 레닌이 밝혀낸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레닌은 맑스와 의 개별적인 전술적 명제를 복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레닌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고 새로운 사상과 명제들을 보충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을 지도하는 규칙과 지도원칙의 체계로 결합하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두 가지 전술≫, ≪제국주의론≫, ≪국가와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변절자 카우츠키≫, ≪좌익 소아병≫과 같은 소책자는 의심할 바 없이 맑스주의의 총 보물고와 맑스주의의 혁명적 병기고를 풍부히 하는 가장 귀중한 기여이다. 레닌주의의 전략전술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투쟁을 지도하는 과학이다.

2) 혁명의 단계와 전략

전략이란 혁명의 주어진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 타격 방향을 규정하는 것이며, 혁명 역량(주된 예비군과 부차적 예비군)을 배치하기 위한 적절한 계획을 작성하는 것이며, 혁명의 주어진 단계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 혁명은 이미 두 단계를 거쳐 왔고 10월 혁명 이후에 셋째 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따라서 전략도 변했다.

첫째 단계. 1903년에서 1917년 2월까지.

목표: 짜리즘 타도와 중세기 잔재의 완전한 일소.
혁명의 주력: 프롤레타리아트.
가장 긴밀한 예비군: 농민.
주요 타격방향: 군주주의적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이들을 고립시키는 것. 이들은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면서 짜리즘과 타협하여 혁명을 소멸시키려 한다.
역량배치 계획: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동맹.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전제정부의 반항을 폭력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레닌, 제8권, p. 96을 보라)1)

둘째 단계. 1917년 3월에서 1917년 10월까지.

목표: 러시아에서 제국주의 타도와 제국주의전쟁에서의 철수.
혁명의 주력: 프롤레타리아트.
가장 긴밀한 예비군: 빈농, 가능한 예비군으로 인접군의 프롤레타리아트.
유리한 요인: 오래 지속된 전쟁과 제국주의 위기.
주요 타격방향: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멘쉐비끼, 사회혁명당). 이들을 고립시키는 것. 이들은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면서 제국주의와 타협하여 혁명을 소멸시키려 한다.
역량배치 계획: 노동자계급과 빈농의 동맹.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민중 반(半)프롤레타리아트분자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폭력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같은 곳을 보라)
셋째 단계. 1917년 이후.
목표: 일국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강화와 모든 나라에서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거점으로 이용하는 것. 혁명은 일국의 범위를 벗어나 세계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혁명의 주력: 일국의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모든 나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운동.
주요 예비군: 발전된 국가의 반프롤레타리아트와 소농대중, 식민지 및 종속국의 해방운동.
주요 타격방향: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의 고립화, 제2 인터내셔널 정당들의 고립화. 제2 인터내셔널은 제국주의와 타협하는 정책의 주요 거점이다.
역량배치 계획: 프롤레타리아혁명과 식민지 및 종속국 해방운동과의 동맹.
전략은 혁명의 주력과 예비군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전략은 혁명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 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주어진 단계 동안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3)운동의 고조 및 퇴조와 전술

전술은 운동의 고조나 퇴조, 혁명의 고양이나 쇠퇴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프롤레타리아트 행동을 규정하는 방침이며, 이 방침을 수행하기 위해 투쟁과 조직의 낡은 형태를 새로운 형태로 바꾸고 낡은 구호를 새로운 구호로 바꾸며 또 그 형태들을 결합하는 투쟁이다. 전략의 목적은 이를테면 짜리즘이나 부르주아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이 목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것이다. 반면에 전술은 이보다 덜 중요한 목적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전술의 목적은 전쟁 전체의 승리가 아니라 특정 교전이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혁명의 고양기 또는 쇠퇴기의 구체적 정세에 맞는 운동과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술은 전략의 일부분이며 전략에 종속되며 전략에 복무한다.

전술은 고조와 퇴조에 따라 달라진다. 전략적 계획은 혁명의 첫 단계(1903년-1917년 2월)동안 변하지 않았으나 전술은 여러 번 달라졌다. 1903년-1905년 시기에 당은 공격전술을 구사했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혁명의 물결이 차오르고 있었고 운동은 고양되었기에 전술은 이러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쟁형태도 고조된 혁명의 요구에 맞는 혁명적 형태였다. 지역 정치 파업, 정치 시위, 정치 총파업, 두마 보이콧, 봉기, 혁명적 전투구호 一 이러한 것이 이 시기 연속된 투쟁형태였다. 당시 조직형태도 투쟁형태에 따라 달라졌다. 공장위원회, 농민 혁명위원회, 파업위원회, 노동자대표 쏘비에뜨, 어느 정도 공개적인 노동자 당 一 이러한 것이 이 시기 조직형태였다.
1907년부터 1913년 시기에 당은 부득이 퇴각전술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혁명운동은 쇠퇴하고 혁명은 퇴조기를 맞이하여 전술은 이 사실을 고려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맞게 투쟁형태도 조직형태도 달라졌다. 두마 보이콧은 두마 참여로, 두마 밖에서의 공개적 혁명 활동은 두마내의 활동과 사업으로, 정치적 총파업은 부분적 경제적 파업이나 활동의 일시적 중지로 대체되었다. 이 시기에 당은 당연히 지하로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혁명적 대중조직은 문화조직, 교육조직, 협동조합, 보험조직 기타 합법적인 조직으로 바뀌었다.
혁명의 둘째 단계와 셋째 단계도 같다. 전략은 변하지 않은 채 전술은 여러 번 달라졌다.
전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형태와 조직형태 그리고 그 형태들의 교체와 결합을 다룬다. 전술은 혁명의 특정한 단계동안 혁명의 고조와 퇴조, 상승과 하락에 따라 여러 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