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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가치'''({{언어표기|한자|使用價值}}, {{언어표기|독일어|Gebrauchswert}}, {{언어표기|영어|Use value}})는 사물이나 생산물에 내재하는, 특정한 효용을 이끌어내는 성질이다.
'''사용가치'''({{언어표기|한자|使用價值}}, {{언어표기|독일어|Gebrauchswert}}, {{언어표기|영어|Use value}})는 자연물이나 생산물에 내재하는, 특정한 효용을 이끌어내는 성질이다.


== 개요 ==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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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
== 연구 ==
사용가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상품 고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제로, 많은 혼란과 오해를 양산해내고 있다. 일부 교재에 따르면, 사용가치는 효용과 같은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그 반대의 예도 존재한다. 한편, 사용가치의 대립물은 가치이기도 하며, 교환가치이기도 한데, 이는 본질과 형식의 영역에서, 사용가치가 갖는 이중적 성격을 드러낸다.
사용가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상품 고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제로, 많은 혼란과 오해를 양산해내고 있다. 일부 교재에 따르면, 사용가치는 효용과 같은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그 반대의 예도 존재한다.
 
사용가치의 대립물은 가치이기도 하며, 교환가치이기도 한데, 이는 본질과 형식의 영역에서, 사용가치가 갖는 이중적 성격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는 가치에 의해 가상되어 존재하며, 가치법칙이 전면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다양한 연구 주제를 시사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는 가치에 의해 가상되어 존재하며, 가치법칙이 전면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다양한 연구 주제를 시사하게 된다.


자본가의 생산 동기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잉여가치인데,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그것을 실현할 경우, 자본가에게는 심리적 효용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잉여가치 증식을 위한 활동 역시 사용가치를 갖는다는 성격이 동시에 생겨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부기노동, 상업노동에 대한 취급을 볼 때, 이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잉여가치를 유통과정에서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자본가에게는 그것의 작용이 곧 사용가치의 소비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연물의 사용가치, 생산물의 사용가치, 상품의 사용가치, 노동력 사용가치, 형태적 사용가치(화폐 자체의 사용가치) 등을 구분한다.
자본가의 생산 동기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잉여가치인데, 자본가 잉여가치를 노동자로부터 착취해내고 그것을 실현할 경우, 자본가에게는 심리적 효용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잉여가치 증식을 위한 활동 역시 사용가치를 갖는다는 성격이 동시에 생겨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부기노동, 상업노동에 대한 취급을 볼 때, 이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잉여가치를 유통과정에서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자본가에게는 그것의 작용이 곧 사용가치의 소비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연물의 사용가치, 생산물의 사용가치, 상품의 사용가치, 노동력 사용가치, 형태적 사용가치(화폐 자체의 사용가치) 등을 구분한다.


한편으로, 마르크스가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을 본래적 의미에서, 다른 방향으로는 자본가적 의미에서 구분한 것과 사용가치의 문제 역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르크스는 『요강』과 『자본』, 그리고 잉여가치에 대한 그의 『수고』들에서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은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이 아니며, 역시 자본가적 의미에서도 생산노동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이 상품에 그 어떠한 사용가치나 가치를 배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가적 의미에서 비생산노동이라는 것은 이견이 존재하기 어려우나,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이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이 아니라는 것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마르크스가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을 본래적 의미에서, 다른 방향으로는 자본가적 의미에서 구분한 것과 사용가치의 문제 역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르크스는 『요강』과 『자본』, 그리고 잉여가치에 대한 그의 『수고』들에서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은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이 아니며, 역시 자본가적 의미에서도 생산노동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이 상품에 그 어떠한 사용가치나 가치를 배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가적 의미에서 비생산노동이라는 것은 이견이 존재하기 어려우나,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이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이 아니라는 것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어떠한 자연물이나 생산물은 그것의 소비자로 될 자가 존재하는 한, 즉 그것을 요구하는 주관이 전제될 경우, 해당 자연물이나 생산물은 항상 사용가치를 갖는다. 이것은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에 대해 갖는 마르크스가 보여준 견해의 전부인데, 부기노동이나 상업노동 역시 그것의 소비자로 될 자(자본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본래적 의미의 생산노동이라고 했을 때, 그것의 의미를 재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어떠한 자연물이나 생산물은 그것의 소비자로 될 자가 존재하는 한, 즉 그것을 요구하는 주관이 전제될 경우, 해당 자연물이나 생산물은 항상 사용가치를 갖는다. 이것은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에 대해 갖는 마르크스가 보여준 견해의 전부인데, 부기노동이나 상업노동 역시 그것의 소비자로 될 자(자본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본래적 의미의 생산노동이라고 했을 때, 그것의 의미를 재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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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교재와 경제학 저서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사용가치를 효용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효용과 사용가치는 질적으로 상이한 규정을 갖는다.
적지 않은 교재와 경제학 저서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사용가치를 효용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효용과 사용가치는 질적으로 상이한 규정을 갖는다.


효용은 주관적인 것이며, 사용가치의 소비 결과로 생성되는 심리적 효과이다. 따라서, 효용은 인간의 의식적 작용 속에서만 머물며, 객관적 실재로 될 수 없다. 효용은 측정될 수 없다. 반면, 사용가치는 자연물이나 생산물에 내재한 객관적 성질이다. 사용가치는 인간의 의식적 작용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외부에서 실재하는 사물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질이다.
효용은 주관적인 것이며, 사용가치의 소비 결과로 생성되는 심리적 효과이다. 따라서, 효용은 인간의 의식적 작용(인간 외 생명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속에서만 머물며, 객관적 실재로 될 수 없다. 효용은 측정될 수 없다. 반면, 사용가치는 자연물이나 생산물에 내재한 객관적 성질이다. 사용가치는 인간의 의식적 작용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외부에서 실재하는 사물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질이다.
=== 사용가치는 오로지 생산물의 질(質)에만 해당하는가? ===
 
=== 사용가치는 생산물의 질(質)에만 해당하는가? ===
사용가치는 질(質)과 양(量)이라는 규정을 동시에 갖는다. 사용가치는 각 자연물이나 생산물의 자연적 특성에 따라 상이한 질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공산제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사용가치의 법칙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양적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가령, 한정적인 양의 밭채소들이 갖는 사용가치와, 풍족한 밭채소 및 육류의 사용가치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용가치의 양적 차이는 자명한 것이다.
사용가치는 질(質)과 양(量)이라는 규정을 동시에 갖는다. 사용가치는 각 자연물이나 생산물의 자연적 특성에 따라 상이한 질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공산제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사용가치의 법칙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양적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가령, 한정적인 양의 밭채소들이 갖는 사용가치와, 풍족한 밭채소 및 육류의 사용가치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용가치의 양적 차이는 자명한 것이다.


공산제 사회가 생산력의 증대, 즉 사용가치의 증대가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숱하게 주장한 바로, 사용가치가 질적일 뿐만이 아니라 양적이기도 한 개념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와 상충되지 않는 것이다.
공산제 사회가 생산력의 증대, 즉 사용가치의 증대가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숱하게 주장한 바로, 사용가치가 질적일 뿐만이 아니라 양적이기도 한 개념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와 상충되지 않는 것이다.
== 참고 문헌 ==
* K. 마르크스, ≪자본 I≫, 제1부, 백의.
* K. 마르크스, 편집부 역 (1989), ≪잉여가치학설사≫, 제1권, 아침.
* 김윤환 편역 (1986), ≪정치경제학≫, 제1권, 인간사.


[[분류: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분류:마르크스주의 경제학]]

2022년 4월 18일 (월) 22:00 기준 최신판

사용가치(한자: 使用價值, 독일어: Gebrauchswert, 영어: Use value)는 자연물이나 생산물에 내재하는, 특정한 효용을 이끌어내는 성질이다.

개요

사용가치는 그것의 내재가 물체적 사물에 국한되지 않으며, 비물체적 사물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가령, 교육자의 훈육이나 가르침으로서의 사용가치, TV에서 생중계되는 스포츠 선수의 경기 활동으로서의 사용가치는 물체적 실체로서 사물이 아니지만, 분명히 사용가치를 갖는다.

사용가치는 구체적 유용 노동을 통해 창출된다. 어떠한 생산물이 교환되기 위해선 그것이 사용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교환가치는 사용가치를 필요조건으로 갖는다.

연구

사용가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상품 고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제로, 많은 혼란과 오해를 양산해내고 있다. 일부 교재에 따르면, 사용가치는 효용과 같은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그 반대의 예도 존재한다.

사용가치의 대립물은 가치이기도 하며, 교환가치이기도 한데, 이는 본질과 형식의 영역에서, 사용가치가 갖는 이중적 성격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는 가치에 의해 가상되어 존재하며, 가치법칙이 전면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다양한 연구 주제를 시사하게 된다.

자본가의 생산 동기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잉여가치인데, 자본가 잉여가치를 노동자로부터 착취해내고 그것을 실현할 경우, 자본가에게는 심리적 효용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잉여가치 증식을 위한 활동 역시 사용가치를 갖는다는 성격이 동시에 생겨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부기노동, 상업노동에 대한 취급을 볼 때, 이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잉여가치를 유통과정에서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자본가에게는 그것의 작용이 곧 사용가치의 소비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연물의 사용가치, 생산물의 사용가치, 상품의 사용가치, 노동력 사용가치, 형태적 사용가치(화폐 자체의 사용가치) 등을 구분한다.

마르크스가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을 본래적 의미에서, 다른 방향으로는 자본가적 의미에서 구분한 것과 사용가치의 문제 역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르크스는 『요강』과 『자본』, 그리고 잉여가치에 대한 그의 『수고』들에서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은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이 아니며, 역시 자본가적 의미에서도 생산노동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이 상품에 그 어떠한 사용가치나 가치를 배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가적 의미에서 비생산노동이라는 것은 이견이 존재하기 어려우나, 부기노동과 상업노동이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이 아니라는 것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어떠한 자연물이나 생산물은 그것의 소비자로 될 자가 존재하는 한, 즉 그것을 요구하는 주관이 전제될 경우, 해당 자연물이나 생산물은 항상 사용가치를 갖는다. 이것은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에 대해 갖는 마르크스가 보여준 견해의 전부인데, 부기노동이나 상업노동 역시 그것의 소비자로 될 자(자본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본래적 의미에서 생산노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본래적 의미의 생산노동이라고 했을 때, 그것의 의미를 재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한 사용가치 연구는 국내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용가치에 대한 오해

사용가치에 대해선 마르크스조차 깊게 언급한 바 없고, 후속 연구도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이에 대한 오해가 상당하다.

사용가치는 효용인가?

적지 않은 교재와 경제학 저서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사용가치를 효용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효용과 사용가치는 질적으로 상이한 규정을 갖는다.

효용은 주관적인 것이며, 사용가치의 소비 결과로 생성되는 심리적 효과이다. 따라서, 효용은 인간의 의식적 작용(인간 외 생명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속에서만 머물며, 객관적 실재로 될 수 없다. 효용은 측정될 수 없다. 반면, 사용가치는 자연물이나 생산물에 내재한 객관적 성질이다. 사용가치는 인간의 의식적 작용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외부에서 실재하는 사물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질이다.

사용가치는 생산물의 질(質)에만 해당하는가?

사용가치는 질(質)과 양(量)이라는 규정을 동시에 갖는다. 사용가치는 각 자연물이나 생산물의 자연적 특성에 따라 상이한 질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공산제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사용가치의 법칙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양적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가령, 한정적인 양의 밭채소들이 갖는 사용가치와, 풍족한 밭채소 및 육류의 사용가치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용가치의 양적 차이는 자명한 것이다.

공산제 사회가 생산력의 증대, 즉 사용가치의 증대가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숱하게 주장한 바로, 사용가치가 질적일 뿐만이 아니라 양적이기도 한 개념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와 상충되지 않는 것이다.

참고 문헌

  • K. 마르크스, ≪자본 I≫, 제1부, 백의.
  • K. 마르크스, 편집부 역 (1989), ≪잉여가치학설사≫, 제1권, 아침.
  • 김윤환 편역 (1986), ≪정치경제학≫, 제1권, 인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