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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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1909년 발표한 글이다. |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1909년 발표한 글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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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 20세기 초라는 시대 상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1세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따르는 여성들, 혹은 중산층 유산 계급 | ''(들어가기 전, 20세기 초라는 시대 상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1세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따르는 여성들, 혹은 중산층 유산 계급 여성운동가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본문에서 종종 등장하는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문장에는 이런 맥락이 있음을 일러둔다.)''<br> | ||
''(Alix Holt의 영역본을 한국어로 중역함)'' | ''(Alix Holt의 영역본을 한국어로 중역함)'' | ||
2024년 2월 9일 (금) 22:15 판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1909년 발표한 글이다.
내용
(들어가기 전, 20세기 초라는 시대 상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1세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따르는 여성들, 혹은 중산층 유산 계급 여성운동가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본문에서 종종 등장하는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문장에는 이런 맥락이 있음을 일러둔다.)
(Alix Holt의 영역본을 한국어로 중역함)
유산(有産, bourgeois) 계급 학자들이 한 성(性)이 다른 성보다 우월한가에 대한 논의나, 남성과 여성의 뇌를 저울질하고 정신 구조를 비교하는 일을 하든 말든, 사적 유물론을 따르는 이들은 각 성의 자연적 특성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각각의 사람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진정 가장 완전하고 자유로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모든 자연적 성향을 발달시키고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할 뿐이다. 사적 유물론을 따르는 이들은 우리 시대의 일반적 사회 문제에서 동떨어져 있는 특수한 여성의 존재를 거부한다. 여성의 복종에는 특정한 경제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자연적 특성은 이 문제에서 부차적인 요소였다. 이러한 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 과거 어느 시점에 여성이 복종하게끔 만든 그 힘이 진화할 때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사회적 위치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여성은 새로운 사회적, 생산적 틀을 따라 조직된 세계 하에서만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등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적 체계의 틀 안에서 여성의 삶을 부분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노동자들의 의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현대적 생산관계의 완전한 재구조화가 있을 때만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산자(無産者, proletarian)들에게 시급한 이익을 제공할 개혁을 하지 못하는가? 오히려 노동계급이 얻는 이득은 각각이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왕국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을 상징한다. 여성이 쟁취한 각각의 권리는 그들을 완전한 해방이라는 분명한 목표에 가까이 데려간다.
사회민주주의는 처음으로 그들의 계획에 여성의 권리와 남성의 권리의 동등함에 대한 요구를 포함시켰다. 연설과 인쇄물에서 당은 언제 어디서나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제한을 철회할 것을 요구해왔다. 다른 당이나 정부가 여성이 원하는 개혁을 하게끔 한 것은 오직 당의 영향 뿐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당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여성을 방어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성의 평등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이 경우에, 우리의 “평등권 운동가”들을 강력하고 능숙한 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나? 평등권 운동가들이 “급진적”이었을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이 여전히 자신이 속한 유산 계급에 충실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 자유는 특정한 시기에는 러시아 유산자의 권력과 성장에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고, 그것이 없다면, 후기(後期)에는 모든 경제적 복지가 모래 위에 지어진 것이나 다름 없게 될 것이다.여성에게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는 삶에서 가지치고 나오는 필수적인 것이다.
“직업에 대한 접근”이라는 구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나라의 정부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이 여성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중산층 유산자(有産者) 여성들은 선거권을 얻고자 열렬히 열망하고 있고, 또 그렇기에 그들은 현대 관료제에 적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에 있어 우리의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의 외국에 있는 자매들처럼 행동한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배움이 열어젖힌 지평은 그들에게 여전히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을 현존하는 계급사회의 틀에서 바라보며, 이 사회의 기초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특권을 위해 싸우며, 이미 존재하는 특권에 도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유산 계급 여성 운동의 실패를 대표하는 이들에게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각은 그들의 계급적 위치를 필연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