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이론(3): 두 판 사이의 차이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Karl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9번째 줄: 9번째 줄:
|절 이름 =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절 이름 =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이전 장 = 레닌주의의 기초/이론(2)
|이전 장 = 레닌주의의 기초/이론(2)
|다음 장 = 레닌주의의 기초/프롤레타리아 독재
|다음 장 = 레닌주의의 기초/프롤레타리아 독재(1)
|내용 =왜 레닌은 ‘영구혁명’ 사상을 상대로 싸웠는가?  
|내용 =그런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레닌은 “영구(연속)혁명” 사상과 싸웠는가?




왜냐하면, 레닌은 농민의 혁명적 역량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혁명적 에너지는 차리즘을 완전히 청산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화하는 데 최대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영구혁명’의 신봉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이 지닌 중대한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고, 농민이 가진 혁명적 에너지의 힘을 과소평가했으며 농민을 지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힘과 능력을 과소평가함으로써, 농민을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을 프롤레타리아트 주위에 결집시켜내는 작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레닌은 농민의 혁명적 능력을 “최고로 발휘시키고” 농민의 혁명적 에너지를 남김없이 사용하여 짜르를 완전히 청산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갈 것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영구혁명” 지지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농민의 강한 혁명적 에너지를 과소평가했으며 농민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의 힘과 능력도 과소평가하였다. 그래서 농민을 프롤레타리아 주위에 결속시켜 부르주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업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레닌은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권력의 이전으로 최종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에 영구혁명의 신봉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수립에 즉시 착수하기를 갈망했으며, 그렇게함에 있어서 그들이 농노제의 유제와 같은 ‘사소한 세부사항’에 눈을 감고 있으며 러시아 농민층과 같은 중요한 세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데 그러한 정책은 농민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지체시킬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넘겨받음으로써 혁명이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영구혁명"의 지지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직접 장악하는 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농노제의 잔재와 같은 “자질구레한 것”에 눈을 감게 하고 러시아 농민과 같은 중요한 세력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한 정책이 프롤레타리아트 편으로 농민을 끌어들이는 것을 방해할 뿐이라는 점 때문에 레닌은 이들과 싸운 것이다.




결국, 레닌이 연속성의 문제로 영구혁명의 신봉자들과 싸웠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레닌 스스로 연속혁명의 관점을 견지했지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거대한 예비군인 농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레닌이 “영구혁명"의 지지자들과 싸운 지점은 연속성의 문제가 아니다. 레닌 자신이 연속 혁명의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싸운 이유는 “영구혁명" 지지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최대 예비군인 농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였기 때문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속혁명이라는 사상은 새로운 사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이 주장은 1840년대 말 맑스가 그의 유명한 공산주의 동맹에 대한 연설(1850)에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우리의 "영구혁명"연속혁명이라는 개념을 취한 것은 바로 이 문서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은 맑스로부터 그것을 취함으로써 그것을 어느 정도 변형시켰고, 그것을 바꾸면서 그것을 "망쳐 놓았고" 실제 사용에 부적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실수를 바로잡고, 연속혁명에 대한 맑스의 사상을 순수한 형태로 취하여 이를 그의 혁명 이론의 초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련한 레닌의 손이 필요했다.
“영구혁명" 사상을 새로운 사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사상은 맑스가 1840년대 말에 <공산주의자 동맹>에 보낸 유명한 “호소문”(1850)에서 처음으로 제출한 것이다.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은 문서로부터 연속 혁명의 사상을 취한 것이다.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이 이 사상을 맑스로부터 가져오면서 좀 고쳤는데 고친 결과 “못쓰게 만들어” 실제로 적용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오류를 시정하고 맑스의 연속 혁명의 사상을 순수한 형태로 섭취하여 혁명 이론의 초석으로 만드는 데는 레닌의 능숙한 솜씨가 필요하였다.




다음은 맑스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승리를 촉구하는 수많은 혁명적 민주주의 요구를 열거한 후 연속혁명에 관한 연설에서 말한 내용이다.
맑스는 “호소문”에서 일련의 혁명적-민주주의적 요구를 열거하고 공산주의자들은 이것들을 응당 쟁취해야 한다고 호소한 후 연속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용문|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지는 위의 요구들을 실현함으로써 되도록 빨리 혁명을 끝내려고 한다. 반면에 우리의 관심과 임무는 끊임없이 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 크든 작든 모든 유산계급이 지배적 지위에서 배제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쟁취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의 연합이 한 나라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배적 국가들에서 충분히 발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경쟁이 없어지고 적어도 결정적 생산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될 때까지 계속 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ref>≪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 제2권, p. 119.</ref>}}


{{인용문|민주적 쁘띠부르주아 계급은 가능한 한 빨리 혁명을 종결시키고 기껏해야 위의 요구를 달성하기를 원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혁명을 항구적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자 임무이다. 유산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그들의 지배적 위치에서 쫓겨났고, 한 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지배적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연합이 프롤레타리아트들 사이의 경쟁이 일어날 정도로 발전해 왔다. 이들 국가 중 상당수는 중단되었으며, 적어도 결정적인 생산력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집중되었다.<ref>카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자 동맹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첫 번째 연설''(카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Selected Works, Vol. I, Moscow 1951, p. 102 참조).</ref>}}


다시 말하면:


다시 말해서:


ㄱ) 맑스는 1850년대 독일에서 혁명을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직접 수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의 러시아 “영구혁명론자”들의 계획과 상반되는 것이다.


a) 맑스는 우리 러시아 ‘영구혁명론자들’의 계획과는 반대로 1840년대 독일혁명이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즉각적인 수립에 착수할 것을 결코 제안하지 않았다.  
) 맑스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혁명이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은 부르주아 분파들을 권력의 지위에서 하나씩 하나씩 쓰러뜨림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차례차례로 모든 나라에 혁명의 불길을 일으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레닌이 제국주의 조건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따라 지도하고 실행한 우리 혁명의 모든 과정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b) 맑스는 오직,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부분을 권력의 결정으로부터 하나씩 서서히 쓰러뜨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을 획득한 후 모든 나라에서 혁명의 불을 지르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국가권력의 확립으로 완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레닌이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에서 혁명이론을 추구하면서 혁명과정에서 가르치고 수행했던 모든 것은 이 명제와 완전히 일치해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러시아 “영구혁명론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사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구혁명"에 대한 맑스의 사상을 (한층 나쁘게) 변경시켜 실천에 적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러시아 ‘영구혁명론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의 농민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개념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영구혁명에 관한 맑스의 사상을 (한층 나쁘게) 변경시켰고 이를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데 부적합하게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의 이론을 “독특”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조소하고는 “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10년 동안 내내 이 고상한 이론을 거들떠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는 그들을 꾸짖었다(레닌은 이 논문을 “영구혁명론자들”의 이론이 러시아에서 나타난 지 10년 후인 1915년에 집필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18권, p. 317을 보라.)




이런 이유로 레닌은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의 이론을 ‘독창적’이고 ‘훌륭한’ 것이라 부르면서, ‘왜 십년 내내 세상이 이 훌륭한 이론을 못본 체하고 지나쳤는지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그들을 비난하며 이론을 비웃었다.(레닌의 글은 러시아에서 "영구혁명론" 이론이 출현한지 10년 후인 1915년에 작성되었다. Vol. XVIII, p. 317을 보라.)
레닌은 영구혁명론을 반半멘셰비키 이론이라고 여겼다. 이론은 “볼셰비키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결연한 혁명투쟁에의 호소와 정치권력의 탈취사상을 취하고 멘셰비키로부터 농민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ref> V. I. Lenin, “ON THE TWO LINES IN THE REVOLUTION”,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1, p. 419.</ref>고 하였다. (레닌의 논문 “혁명의 두 노선에 대하여” ― 위와 같은 곳을 보라.)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이 이론을 반半멘셰비키 이론으로 간주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단호한 혁명적 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권력 장악을 요구하는 볼셰비키로부터, 그리고 멘셰비키로부터 '부인'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농민의 역할"(레닌의 기사 "혁명의 두 노선"을 보라).
이상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즉각적” 이행을 목적으로 한 부르주아 혁명의 활용에 관한 레닌의 사상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가고 부르주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즉각적인" 이행을 위해 활용한다는 레닌의 사상에 관한 입장이다.
다음으로, 이전에는 한 나라에서의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는 부르주아지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나라 전부 또는 적어도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연합하여 행동해야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이제 이러한 견해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조건 하에서는 다양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발전이 불균등하고 산발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 제국주의 내부의 파국적인 모순들이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발전한다는 것,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한다는 것. ― 이 모든 사실로 인해 개별적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승리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이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부르주아지의 전복은 절대적인 필수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건들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전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선진 국가, 또는 최소한 대다수 선진국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행동이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서 일국에서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제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사실에 부합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승리의 가능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조건하에서 각각의 자본주의국가들이 지닌 발전의 불균등성과 발작성, 필연적으로 전쟁을 초래하는 제국주의 내부의 종말적 모순의 격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의 성장−이 모든 것이 개개 국가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타도는 어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조건이 존재할 때만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으며, 이것이 결여되어 있는 곳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장악이라는 문제는 있을 수조차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레닌은 소책자 ≪좌익 소아병≫에서 이 조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용문|모든 혁명, 특히 20세기의 3차에 걸친 러시아 혁명에 의해 실증된 혁명의 기본 법칙은 다음과 같다. 즉 혁명을 위해서는 단지 피착취 피억압 대중이 이전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착취자들도 이전대로 살아갈 수 없고 지배할 수 없는 것이 필요하다. ‘하층계급’이 이전 것을 원치 않을 때, ‘상층계급’이 이전대로 계속해 나갈 수 없을 때 ― 오직 그때에만 혁명은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혁명은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 국가적 위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22) 그러므로 혁명을 위해서는 첫째, 노동자의 다수(또는 적어도 계급의식이 있고 사상을 가진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노동자의 대다수)가 혁명의 필요성을 완전히 깨닫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둘째, 지배계급이 정치의 위기에 봉착해야 한다. 이 위기는 가장 후진적인 대중들까지도 정치로 이끌며 … 정부를 약화시키고 혁명가들이 정부를 신속하게 전복할 수 있게 한다. (≪레닌 저작집≫ 제25권, p. 222를 보라.)<ref>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 94.</ref>}}


다음은 레닌이 자신의 팜플렛 "좌익" 공산주의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지 권력을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 아직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권력을 튼튼히 하고 농민을 이끌고 나가야 비로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종국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 한 나라의 힘만으로 사회주의를 종국적으로 확립하고 무력간섭과 구제도의 복구에 대항하여 나라를 완전히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몇 나라에서 혁명이 승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혁명을 발전시키며 지지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중대한 과업이다. 승리한 나라의 혁명은 자족적인 단위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촉진시키는 지원 세력이며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인용문|모든 혁명, 특히 20세기 세 번의 러시아 혁명에서 확증된 혁명의 기본 법칙은 다음과 같다. 피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대중이 삶의 불가능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혁명에 충분하지 않다. 낡은 방식과 요구가 바뀌고, 착취자들이 낡은 방식으로 살고 통치할 수 없는 것이 혁명에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혁명이 승리할 수 있다. 이 진리는 다시 말해서 혁명은 (피착취자와 착취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국적 위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첫째, 노동자의 대다수(또는 적어도 계급의식, 사상,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노동자의 대다수)가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지배계급은 가장 후진적인 대중조차 정치에 끌어들이는 정부 위기를 겪고 있어야 하며... 정부를 약화시키고 혁명가들이 정부를 급속히 전복시킬 수 있게 만든다(Vol. XXV, p, 222을 보라.)}}


레닌은 이런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승리한 혁명의 과업은 “모든 나라의 혁명을 발전시키며 지원하고 고무하기 위하여 한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ref>V. I.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03.</ref>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85를 보라.)


그러나 일국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은 결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농민을 지도한 후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또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달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즉, 단 한 나라의 힘으로 마침내 사회주의를 통합하고 개입과 결과적으로 복원에 반대하는 국가를 완전히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이것을 위해서는 적어도 여러 국가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들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필수적 과제이다. 그러므로 일국에서 승리를 거둔 혁명은 스스로를 자급자족하는 실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앞당기는 지원세력이나, 수단으로 간주해야한다.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특징이다.
레닌은 승리하는 혁명의 임무는 "모든 나라의 혁명을 발전시키고 지원하며 각성시키기 위해 한 나라에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사상을 간결하게 표현했다.(Vol. XXIII, p. 385을 보라.)
 
 
이는 일반적으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특징이다.
<hr>
<hr>
{{문단 내 각주}}}}
{{문단 내 각주}}}}

2024년 6월 23일 (일) 22:49 기준 최신판


레닌주의의 기초
III. 이론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그런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레닌은 “영구(연속)혁명” 사상과 싸웠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레닌은 농민의 혁명적 능력을 “최고로 발휘시키고” 농민의 혁명적 에너지를 남김없이 사용하여 짜르를 완전히 청산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갈 것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영구혁명” 지지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농민의 강한 혁명적 에너지를 과소평가했으며 농민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의 힘과 능력도 과소평가하였다. 그래서 농민을 프롤레타리아 주위에 결속시켜 부르주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업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넘겨받음으로써 혁명이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영구혁명"의 지지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직접 장악하는 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농노제의 잔재와 같은 “자질구레한 것”에 눈을 감게 하고 러시아 농민과 같은 중요한 세력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한 정책이 프롤레타리아트 편으로 농민을 끌어들이는 것을 방해할 뿐이라는 점 때문에 레닌은 이들과 싸운 것이다.


결국, 레닌이 “영구혁명"의 지지자들과 싸운 지점은 연속성의 문제가 아니다. 레닌 자신이 연속 혁명의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싸운 이유는 “영구혁명" 지지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최대 예비군인 농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였기 때문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구혁명" 사상을 새로운 사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사상은 맑스가 1840년대 말에 <공산주의자 동맹>에 보낸 유명한 “호소문”(1850)에서 처음으로 제출한 것이다.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은 이 문서로부터 연속 혁명의 사상을 취한 것이다.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이 이 사상을 맑스로부터 가져오면서 좀 고쳤는데 고친 결과 “못쓰게 만들어” 실제로 적용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오류를 시정하고 맑스의 연속 혁명의 사상을 순수한 형태로 섭취하여 혁명 이론의 초석으로 만드는 데는 레닌의 능숙한 솜씨가 필요하였다.


맑스는 “호소문”에서 일련의 혁명적-민주주의적 요구를 열거하고 공산주의자들은 이것들을 응당 쟁취해야 한다고 호소한 후 연속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지는 위의 요구들을 실현함으로써 되도록 빨리 혁명을 끝내려고 한다. 반면에 우리의 관심과 임무는 끊임없이 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 크든 작든 모든 유산계급이 지배적 지위에서 배제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쟁취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의 연합이 한 나라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배적 국가들에서 충분히 발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경쟁이 없어지고 적어도 결정적 생산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될 때까지 계속 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1]


다시 말하면:


ㄱ) 맑스는 1850년대 독일에서 혁명을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직접 수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의 러시아 “영구혁명론자”들의 계획과 상반되는 것이다.

ㄴ) 맑스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혁명이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은 부르주아 분파들을 권력의 지위에서 하나씩 하나씩 쓰러뜨림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차례차례로 모든 나라에 혁명의 불길을 일으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레닌이 제국주의 조건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따라 지도하고 실행한 우리 혁명의 모든 과정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러시아 “영구혁명론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사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구혁명"에 대한 맑스의 사상을 (한층 나쁘게) 변경시켜 실천에 적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우리의 “영구혁명론자들”의 이론을 “독특”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조소하고는 “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10년 동안 내내 이 고상한 이론을 거들떠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는 그들을 꾸짖었다(레닌은 이 논문을 “영구혁명론자들”의 이론이 러시아에서 나타난 지 10년 후인 1915년에 집필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18권, p. 317을 보라.)


레닌은 영구혁명론을 반半멘셰비키 이론이라고 여겼다. 이 이론은 “볼셰비키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결연한 혁명투쟁에의 호소와 정치권력의 탈취사상을 취하고 멘셰비키로부터 농민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2]고 하였다. (레닌의 논문 “혁명의 두 노선에 대하여” ― 위와 같은 곳을 보라.)


이상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즉각적” 이행을 목적으로 한 부르주아 혁명의 활용에 관한 레닌의 사상이다.


다음으로, 이전에는 한 나라에서의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는 부르주아지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나라 전부 또는 적어도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연합하여 행동해야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이제 이러한 견해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조건 하에서는 다양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발전이 불균등하고 산발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 제국주의 내부의 파국적인 모순들이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발전한다는 것,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한다는 것. ― 이 모든 사실로 인해 개별적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승리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이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부르주아지의 전복은 절대적인 필수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건들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레닌은 소책자 ≪좌익 소아병≫에서 이 조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혁명, 특히 20세기의 3차에 걸친 러시아 혁명에 의해 실증된 혁명의 기본 법칙은 다음과 같다. 즉 혁명을 위해서는 단지 피착취 피억압 대중이 이전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착취자들도 이전대로 살아갈 수 없고 지배할 수 없는 것이 필요하다. ‘하층계급’이 이전 것을 원치 않을 때, ‘상층계급’이 이전대로 계속해 나갈 수 없을 때 ― 오직 그때에만 혁명은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혁명은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 국가적 위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22) 그러므로 혁명을 위해서는 첫째, 노동자의 다수(또는 적어도 계급의식이 있고 사상을 가진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노동자의 대다수)가 혁명의 필요성을 완전히 깨닫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둘째, 지배계급이 정치의 위기에 봉착해야 한다. 이 위기는 가장 후진적인 대중들까지도 정치로 이끌며 … 정부를 약화시키고 혁명가들이 정부를 신속하게 전복할 수 있게 한다. (≪레닌 저작집≫ 제25권, p. 222를 보라.)[3]


그러나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지 권력을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 아직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권력을 튼튼히 하고 농민을 이끌고 나가야 비로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종국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 한 나라의 힘만으로 사회주의를 종국적으로 확립하고 무력간섭과 구제도의 복구에 대항하여 나라를 완전히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몇 나라에서 혁명이 승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혁명을 발전시키며 지지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중대한 과업이다. 승리한 나라의 혁명은 자족적인 단위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촉진시키는 지원 세력이며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레닌은 이런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승리한 혁명의 과업은 “모든 나라의 혁명을 발전시키며 지원하고 고무하기 위하여 한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4]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85를 보라.)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특징이다.


  1. ≪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 제2권, p. 119.
  2. V. I. Lenin, “ON THE TWO LINES IN THE REVOLUTION”,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1, p. 419.
  3.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 94.
  4.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0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