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편집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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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편집부] 1905년 말과 1906년 초에 그루지야에서 | |내용 = [편집부] 1905년 말과 1906년 초에 그루지야에서 크로포트킨의 추종자이며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인 체르케지쉬빌리와 그의 심복인 미하코 체레첼리(바톤), 샬바 고겔리야(Sh. G.) 등등이 지도하는 무정부주의자 집단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맹렬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집단은 치플리스에서 ≪호소≫, ≪노동자≫ 등등의 신문을 발간하였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속에서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하였으나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소부르주아 분자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을 반대하여 쓰탈린은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라는 총제목 하에 연속 논문을 발표하였다. 처음 네 편의 논문은 1906년 6-7월에 ≪신생활≫지에 발표되었다. 그 다음 논문들은 당국이 신문을 폐간한 관계로 발표되지 못하였다. 1906년 12월과 1907년 1월 1일에는 ≪신생활≫지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이 ≪신시대≫지에 약간 다른 형태로 게재되었다. 신문 편집부는 이 논문들에 다음과 같은 주해를 달았다; “얼마 전에 사무직 노조는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및 기타 이와 유사한 문제들에 대한 논문을 게재할 것을 우리한테 요청하였다(≪신시대≫, 제3호 참조). 몇 명의 다른 동지들도 역시 그러한 요청을 하여 왔다. 우리는 기꺼이 요청에 응하여 여기에 그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 자체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 논문들의 일부는 이미 그루지야 출판물에 한 번 발표된 일이 있었다(필자와는 관계없는 원인에 의하여 논문들은 종결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논문 전부를 게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 논문들을 알기 쉬운 말로 개작해 줄 것을 필자에게 요청하였는데 필자는 기꺼이 승낙하고 실행하였다.” 이리하여 ≪무정부주의냐,사회주의냐?≫란 연재물의 첫 네 편에는 두 가지가 있게 되었다. 이 연재물의 계속은 1907년 2월에 ≪우리의 생활≫지와 1907년 4월에 ≪시대≫지에 발표되었다. ≪신생활≫에 발표되었던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제논문은 ≪쓰딸린 저작집≫ 제1권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 ||
≪우리의 생활≫은 | ≪우리의 생활≫은 볼셰비키의 일간신문으로서 치플리스에서 1907년 2월 18일부터 합법적으로 발간되었다. 이 신문은 스탈린이 지도하였다. 전부 13호가 발간되었다. 1907년 3월 6일에 신문은 “극단적인 경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간되었다. | ||
≪시대≫는 ≪우리의 생활≫이 정간된 후 1907년 3월 11일부터 4월 15일까지 | ≪시대≫는 ≪우리의 생활≫이 정간된 후 1907년 3월 11일부터 4월 15일까지 치플리스에서 발행된 볼셰비키 일간신문이다. 신문의 지도자는 스탈린이었다. M.차카야, M.다비타쉬빌리도 편집에 참여하였다. 전부 31호가 발간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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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 [[분류: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
2023년 8월 8일 (화) 20:34 기준 최신판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 ||
◀ | 편집부 | ▶ |
[편집부] 1905년 말과 1906년 초에 그루지야에서 크로포트킨의 추종자이며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인 체르케지쉬빌리와 그의 심복인 미하코 체레첼리(바톤), 샬바 고겔리야(Sh. G.) 등등이 지도하는 무정부주의자 집단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맹렬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집단은 치플리스에서 ≪호소≫, ≪노동자≫ 등등의 신문을 발간하였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속에서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하였으나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소부르주아 분자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을 반대하여 쓰탈린은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라는 총제목 하에 연속 논문을 발표하였다. 처음 네 편의 논문은 1906년 6-7월에 ≪신생활≫지에 발표되었다. 그 다음 논문들은 당국이 신문을 폐간한 관계로 발표되지 못하였다. 1906년 12월과 1907년 1월 1일에는 ≪신생활≫지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이 ≪신시대≫지에 약간 다른 형태로 게재되었다. 신문 편집부는 이 논문들에 다음과 같은 주해를 달았다; “얼마 전에 사무직 노조는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및 기타 이와 유사한 문제들에 대한 논문을 게재할 것을 우리한테 요청하였다(≪신시대≫, 제3호 참조). 몇 명의 다른 동지들도 역시 그러한 요청을 하여 왔다. 우리는 기꺼이 요청에 응하여 여기에 그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 자체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 논문들의 일부는 이미 그루지야 출판물에 한 번 발표된 일이 있었다(필자와는 관계없는 원인에 의하여 논문들은 종결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논문 전부를 게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 논문들을 알기 쉬운 말로 개작해 줄 것을 필자에게 요청하였는데 필자는 기꺼이 승낙하고 실행하였다.” 이리하여 ≪무정부주의냐,사회주의냐?≫란 연재물의 첫 네 편에는 두 가지가 있게 되었다. 이 연재물의 계속은 1907년 2월에 ≪우리의 생활≫지와 1907년 4월에 ≪시대≫지에 발표되었다. ≪신생활≫에 발표되었던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제논문은 ≪쓰딸린 저작집≫ 제1권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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