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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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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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에서 이데아는 역시 개별자에 대한 보편자와는 같은 것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개별자라는 범주 내에서 이데아론이 구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아름다움, 좋음, 올바름, 크기, 경건함 등의 이데아를 언급하는데, 대표적으로 크기에 대해 말할 때, 누군가는 어떠한 것이 크지 않은 것으로,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것이 큰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언급하며, 경험은 이데아를 인식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ref>''파이돈'', 74d9-75b1.</ref>
≪파이돈≫에서 이데아는 역시 개별자에 대한 보편자와는 같은 것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개별자라는 범주 내에서 이데아론이 구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아름다움, 좋음, 올바름, 크기, 경건함 등의 이데아를 언급하는데, 대표적으로 크기에 대해 말할 때, 누군가는 어떠한 것이 크지 않은 것으로,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것이 큰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언급하며, 경험은 이데아를 인식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ref>''파이돈'', 74d9-75b1.</ref>


그리고 이를 통해 이데아는 모두에게 관여되어 있는 영혼에 내재해 있는 것이며, 인간이 이데아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육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영혼의 조각이 인간에게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영혼에 대한 문제는 ≪티마이오스≫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한편, 수학적 지식이 갖는 확실성과 이데아도 ≪파이돈≫에서는 구분된다. 가령, 평면기하학에서 정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은, 확실한 지식인 것 같지만, 어떠한 세 각의 합이 180도라는 결론을 내림에 있어서 전제되는 것은 감각적으로 구성된 '선분', '각'이기 때문에 이데아는 아니며, 따라서 수학적 지식 역시 완전한 지식이 아님을 강조한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논함에서, 그것이 어떠한 감각적으로 연상되는 것과는 조금도 혼재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수학적 지식은 이데아가 아닌, 그것과 현상자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자로 규정된다.<ref>''파이돈'', 74c1.</ref>
 
플라톤은 이데아는 모두에게 관여되어 있는 영혼에 내재해 있는 것이며, 인간이 이데아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육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영혼의 조각이 인간에게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영혼에 대한 문제는 ≪티마이오스≫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 각주 ==
== 각주 ==

2022년 4월 14일 (목) 18:46 판

이데아(그리스어: ιδέα) 또는 에이도스(그리스어: εἶδος)는 형태, 형식을 의미하는 말로, 개별 사물의 근저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불변자를 의미한다. 한자어로 원상(原像)[1], 형식(形式)[2], 이념(理念)[3] 등으로 번역되는데, 각 학자의 용법에 따라 다르게 칭해진다.

개요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대화편≫을 통해 전한다. 이데아론의 맹아로 여겨지는 대화편인 ≪라케스≫에서 소크라테스는 '개별 사물 모두에 내재해 있으면서 그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추론하고 이것을 이데아라고 칭한다.[4]

이데아는 단순히 특수자에 대한 보편자 또는 종에 대한 유라고 취급될 수는 없다. 가령, A의 이데아로서 A', B의 이데아로서 B'가 있다고 할 때, B'는 B의 이데아지만, B의 보편자로 환원할 수는 없다. 가령, 참새, 독수리, 닭을 조류라고 묶을 때, 후자를 전자에 대한 이데아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5] 이데아는 단순 보편으로 묶어지는 개념이 아니라, 개별 사물 그 자체에 내재해 있는, 그것의 본질자이며, 시종일관 동일성을 갖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파이돈≫

≪파이돈≫에서 이데아는 역시 개별자에 대한 보편자와는 같은 것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개별자라는 범주 내에서 이데아론이 구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아름다움, 좋음, 올바름, 크기, 경건함 등의 이데아를 언급하는데, 대표적으로 크기에 대해 말할 때, 누군가는 어떠한 것이 크지 않은 것으로,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것이 큰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언급하며, 경험은 이데아를 인식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6]

한편, 수학적 지식이 갖는 확실성과 이데아도 ≪파이돈≫에서는 구분된다. 가령, 평면기하학에서 정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은, 확실한 지식인 것 같지만, 어떠한 세 각의 합이 180도라는 결론을 내림에 있어서 전제되는 것은 감각적으로 구성된 '선분', '각'이기 때문에 이데아는 아니며, 따라서 수학적 지식 역시 완전한 지식이 아님을 강조한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논함에서, 그것이 어떠한 감각적으로 연상되는 것과는 조금도 혼재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수학적 지식은 이데아가 아닌, 그것과 현상자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자로 규정된다.[7]

플라톤은 이데아는 모두에게 관여되어 있는 영혼에 내재해 있는 것이며, 인간이 이데아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육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영혼의 조각이 인간에게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영혼에 대한 문제는 ≪티마이오스≫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각주

  1. 현상학 계통에서 이데아는 에드문드 후설의 영향에 따라 원상으로 번역된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당대 '형식'이라는 일반적 뜻을 지닌 에이도스라고 칭하였다. 이데아에 대한 이러한 용법은 서양철학에서 이마누엘 칸트로까지 올라가게 된다.
  3. 헤겔은 칸트적 의미에서의 형식과 이데아로서의 개념, 즉 객관적 개념인 이념을 구분하였다. 헤겔에게서 이데아는 후자에 속하며, 전자는 절대이념의 특정한 외화 단계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으로 된다.
  4. 라케스, 191e10.
  5. 라케스에서 플라톤은 개별자에 대한 보편자를 이데아와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라케스, 192b10-193b10.)
  6. 파이돈, 74d9-75b1.
  7. 파이돈, 74c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