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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本質, Wesen)은 유한자(有限者)를 통한 자기부정으로 그 스스로를 실현하는 최종적인 것을 가리킨다. 본질은 보편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통일체이고, 복합 모순체로서, 존재, 현상과 형식의 대립물이다. | '''본질'''({{언어표기|한자|本質}}, {{언어표기|영어|Essence}}, {{언어표기|독일어|Wesen}})은 유한자(有限者)를 통한 자기부정으로 그 스스로를 실현하는 최종적인 것을 가리킨다. 본질은 보편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통일체이고, 복합 모순체로서, 존재, 현상과 형식의 대립물이다. | ||
G. W. F. 헤겔은 본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G. W. F. 헤겔은 본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2022년 4월 25일 (월) 08:17 판
본질(한자: 本質, 영어: Essence, 독일어: Wesen)은 유한자(有限者)를 통한 자기부정으로 그 스스로를 실현하는 최종적인 것을 가리킨다. 본질은 보편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통일체이고, 복합 모순체로서, 존재, 현상과 형식의 대립물이다.
G. W. F. 헤겔은 본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 "유(有), 곧 자기 자신의 부정에 의하여 제(諸) 자신을 매개하고, 또한 제 자신과 관계하는 직접성, 따라서 동시에 제 자신과의 관계로, 곧 역시 직접태로 자기를 지양하는 매개이기도 한 직접성이 바로 본질이다." | “ |
G. W. F. 헤겔, ≪철학 강요≫(1817), 제111절. |
변증법에서 본질은 각이한 규정들 사이의 매개 관계를 말한다. 매개 관계는 하나의 규정이 "자기 자신의 부정에 의하여" 자신이 내포한 규정을 다른 규정과 매개함을 뜻한다. 이것은 자기 지양이기도 한데, 이를 근거관계라고 한다. 본질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K. 마르크스에 의해 계승되었다.
형이상학에서 본질
전통적인 형이상학(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의)에 따르면, 본질은 그저 현상보다 우월한 것으로, 현상은 본질에 대하여 열등한 것으로 취급된다. 형이상학에서 본질은 모든 존재자들의 배후에서 초감성적으로 존재하는, 그리고 동시에 자기부정이라는 자기관계가 없이 불변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예를 들어, 형이상학자들은 '학문의 본질', '인간의 본질', '정치의 본질'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해, 그것 이면에 불변하여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본질자를 추상하는 데에서 그 사유를 그치며, 본질을 '운동하는 것' 으로 보지 않는다.
형이상학에서 본질은 현상을 산출하지만, 현상을 통한 복귀로서 본질은 전혀 고려되지 않으며, 현상 산출의 가능성을 오로지 무매개자로서 신(神)에서 찾는다. 여기서 신은 본질에게 무한한 힘을 공급하고, 본질은 그 힘에 따라 현상을 산출하고, 현상은 되돌아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헤겔 단계에서 본질
헤겔에게서 본질은 절대자, 절대이념의 제반 규정인데 그 규정은 절대자의 자기부정 운동과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본질은 절대자의 자기부정을 형식적으로 규정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은 처음에 순수존재의 대립물로, 정재(定在)적 규정을 산출하는 원리가 된다. 그런데 정재적 규정은 우리가 예컨데, "존재한다."라고 했을 때의 모든 규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앞에 놓인 꽃병이나 컴퓨터가 그것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단은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형식규정적으로는 비본질적이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정재적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 철학에서 본질은 처음에는 존재의 대립물로, 본질 논리학에서는 현상[1]과 형식[2]의 대립물로 상정된다. 존재의 대립물로서 본질은, 본질의 형성으로서 존재가 모순의 주요한 측면, 본질이 비주요한 측면으로 설정되고 나머지(현상과 형식)에서는 본질이 주요한 측면으로 취급된다.
존재에서 본질로의 이행
순수존재는 자신의 대립물을 통해 지양된 자기 자신으로 화하는데, 지양된 자기 자신으로서 순수존재가 본질이다.
존재에서 본질로 이행하고 각자가 각자의 규정을 얻는 것을 헤겔은 『논리의 학』 제2권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이 설명 방식은 레닌이 평한 대로 "신비주의적 허세"(철학 노트)로 점철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정립적 반성(die setzende Reflexion)을 통해 존재가 자신의 지양된 총체로서 본질을 만들어낸다.[3] 그 다음에는 존재는 자신의 규정을 본질로 전제하고, 본질은 자신의 규정을 존재로 전제하는 반성이 일어난다. 이것을 전제적 반성(die voraussetzende Reflexion)이라고 한다.[4]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다시 자기 각각의 규정으로 내재화하는데 이것을 규정적 반성(die bestimmende Reflexion)이라고 한다.[5]
이 과정에서 헤겔은 모든 정재의 자기부정과는 완전히 그 원리가 다른 자기부정을 존재와 본질에 적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된 전제적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전제적 부정은 '풍부화된 복귀'라는 변증법적 부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순수존재의 원환적 복귀'(완전체로서 신의 불변적 복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헤겔이 갖고 있는 객관적 관념론이라는 한계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6], 신이라는 절대자에 의한 창조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 ↑ 질적 규정으로서 본질은 그 대립물로 현상을 갖는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현상, 비만에 걸리는 현상 등의 근저에는 그러한 현상을 발생케한 본질이 있는데, 비만에 걸렸다는 현상이라는 질적 규정과, 비만을 걸리게 한 근거는 서로 다른 규정을 갖는다. 여기서 본질과 현상은 전자에 의한 후자의 산출이고, 동시에 전자에 의한 후자로의 필연적 이행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본질과 현상은 구분된다.
- ↑ 본질은 자기부정 운동으로서 모든 규정의 총체, 모든 규정의 운동적인 근거를 말한다는 점에서 '모든 규정에 대한 규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어떠한 형식적인 규정은 그것이 현상의 근거를 지칭함에도 불구하고 본질과 대립한다. 이러한 점에서 본질(규정)은 형식(규정)과도 대립한다.
- ↑ 게오르크 헤겔, 임석진 역 (1983), 대논리학, 제2권, 지학사, pp. 17-18, 22-23.
- ↑ 위와 같은 출처.
- ↑ 위와 같은 문헌, pp. 42-44.
- ↑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역 (1990), ≪철학대사전≫, 동녘, p. 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