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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위의 성격은 다음날 총학생회의 성명을 통해 밝혀졌다. 12월 16일 오후 1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부산 미국문화원 투쟁 보고 및 지지 대회’가 금정 회관 앞에서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이날 ‘우리는 왜 미국문화원을 찾아 왔는가’라는 유인물이 낭독되어 미국문화원 점거 시도의 전말을 밝혔다. 집회 후에는 교문 앞으로 몰려간 200여 명의 학생들로 투석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날 시위의 성격은 다음날 총학생회의 성명을 통해 밝혀졌다. 12월 16일 오후 1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부산 미국문화원 투쟁 보고 및 지지 대회’가 금정 회관 앞에서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이날 ‘우리는 왜 미국문화원을 찾아 왔는가’라는 유인물이 낭독되어 미국문화원 점거 시도의 전말을 밝혔다. 집회 후에는 교문 앞으로 몰려간 200여 명의 학생들로 투석 시위가 전개되었다.


미국문화원 타격 사건으로 가담자 13명 전원이 연행되었고, 총학생회 총무부장 허성무[행정 3] 등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동수[행정 4], 김용숙[철학 2년 제적]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나머지 최원석[사회과학대 학생회장], 한기석[회계 2], 송유천[물리 3], 이창림[전산통계 3 제적], 박상헌[정외 3], 백상하[조선공 2], 김책[기계설계공 2], 전병목[사학 2], 김종필[전기공] 등 11명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및 특수 공무 방해 혐의로 구속되었다.
미국문화원 타격 사건으로 가담자 13명 전원이 연행되었고, 총학생회 총무부장 허성무[행정 3] 등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동수[행정 4], 김용숙[철학 2년 제적]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나머지 최원석[사회과학대 학생회장], 한기석[회계 2], 송유천[물리 3], 이창림[전산통계 3 제적], 박상헌[정외 3], 백상하[조선공 2], 김책[기계설계공 2], 전병목[사학 2], 김종필[전기공] 등 11명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및 특수 공무 방해 혐의로 구속되었다.<ref>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5590</ref>
 
==각주==
[[분류:한국의 반미운동]]
[[분류:한국의 반미운동]]

2022년 5월 10일 (화) 14:0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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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2년 3월 18일, 부산에서는 문부식을 비롯한 일련의 대학생들이 오후 2시경 부산 미국문화원 건물에 불을 지르고 시내에 반미 성향의 유인물을 뿌렸다. 미국문화원에서의 화재는 1시간만에 진압되었으나 동아대학교 학생 1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이 사건은 커다란 파장을 낳아 학생들은 물론이고 이들을 도와준 혐의로 신부도 구속되어 정권 대 천주교의 대결로 치닫기까지 하였다.

제2차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2년 11월 20일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광주 미국 문화원에 대학생들이 방화를 저지른 반미운동이다.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1985년 5월 23일에는 함운경, 신정훈 등 서울지역의 5개 대학교 학생 73명이 서울 미국문화원 건물을 점거하여 나흘 동안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농성을 하는 동안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는 전단을 창문에 붙이는 등 미국의 5.18 책임을 규탄하였다. 이 사건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부산 미국문화원 투석 사건

1986년부터 부산대학교의 학생 운동 내부에서는 자주화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약칭 자민투] 계열의 흐름이 다수파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선도적 투쟁이 활발하였다. 이러한 이념 노선을 지향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미 인식에 대한 변화를 목적으로 한 학생 운동이 전개되었다.

1986년 12월 15일 오후 2시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 위원장 김봉섭 등 13명의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부산직할시 중구 대청동[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있는 미국문화원에 진입하였다. 이들은 미국문화원 부근에 흩어져 있다가 호루라기 소리를 신호로 화염병을 던지며 “광주 학살 진상 규명”, “미제(美帝) 축출”을 외치며 경비원을 밀치고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은 1층 로비에서 경찰과 격투를 벌인 끝에 전원 연행되었으며, 미국문화원 점거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날 시위의 성격은 다음날 총학생회의 성명을 통해 밝혀졌다. 12월 16일 오후 1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부산 미국문화원 투쟁 보고 및 지지 대회’가 금정 회관 앞에서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이날 ‘우리는 왜 미국문화원을 찾아 왔는가’라는 유인물이 낭독되어 미국문화원 점거 시도의 전말을 밝혔다. 집회 후에는 교문 앞으로 몰려간 200여 명의 학생들로 투석 시위가 전개되었다.

미국문화원 타격 사건으로 가담자 13명 전원이 연행되었고, 총학생회 총무부장 허성무[행정 3] 등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동수[행정 4], 김용숙[철학 2년 제적]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나머지 최원석[사회과학대 학생회장], 한기석[회계 2], 송유천[물리 3], 이창림[전산통계 3 제적], 박상헌[정외 3], 백상하[조선공 2], 김책[기계설계공 2], 전병목[사학 2], 김종필[전기공] 등 11명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및 특수 공무 방해 혐의로 구속되었다.[1]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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