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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5일 (화) 18:09 판
개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정치인.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
생애
유년 시절
1952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에서 박정희와 육영수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장충초등학교와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서강대학교의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였다. 프랑스의 그르노블대학으로 유학하였다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암살사건이 발발하자 귀국하였다. 그 뒤 10.26 사건이 발발하기 이전인 1979년까지 육영수가 담당했었던 영부인(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대행하였다.
10.26 사건 이후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에게 6억원이라는 거금을 받은 뒤[1]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正修獎學會) 이사장을 지냈다.
정계 진출 이후
1997년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자, 국민의힘의 전신[2]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회창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를 하며 정계(政界)에 입문하였다.
1998년 4월에 치러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15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달성군에서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8년 10월부터 한나라당 부총재를 맡았으며 2002년 2월 탈당한 뒤 5월에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여 당대표로 취임하였다.
2002년 11월에 한나라당과 합당하여 복당하였다.
2004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였다.
2011년 10월 홍준표 대표가 사퇴한 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2012년 7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고, 8월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12년 12월 10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시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1.55%(15,773,128표)를 득표해 문재인, 김소연, 김순자 후보 등을 꺾고 당선되었다.
박근혜정부 주요 사건
2013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글을 작성하게 한 의혹인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이 발발하였다.
2014년
4월 16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였다. 또한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정당 판결을 받아 해산되었다.
2015년
메르스 유행이 시작되었으며,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이라고 부르는 실질적 노동개악을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했고 세 차례의 민중총궐기가 시작되었다. 또한 2015년 12월 28일 일본의 아베 신조와 함께 위안부 협상을 체결했다.
2016년
테러방지법 관련 논란이 일어났으며, 구의역 비정규직 사망사고와 사드 배치 관련 논란도 발생하였다. 무엇보다도 JTBC 등의 최서원(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 증거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이 드러나면서 결국 2016년 12월 9일 19시 03분 부로 직무정지되었고, 그 이후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가 수립되었다.
2017년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파면된 뒤 결국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탄핵 / 구속 이후
1심에서는 징역 24년, 벌금 180억을 받았다.
종교
사이비 종교인 최태민에게 빠졌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