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소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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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노동'''({{언어표기|독일어|entfremdete Arbeit}}, {{언어표기|영어|Alienated Work}}) 또는 '''소외노동'''(疏外勞動)은 | '''소외된 노동'''({{언어표기|독일어|entfremdete Arbeit}}, {{언어표기|영어|Alienated Work}}) 또는 '''소외노동'''(疏外勞動)은 화폐, 자본 등 사물에 가현되어 존재하는 노동을 말한다. | ||
== 개요 == | == 개요 == |
2022년 4월 20일 (수) 04:20 판
소외된 노동(독일어: entfremdete Arbeit, 영어: Alienated Work) 또는 소외노동(疏外勞動)은 화폐, 자본 등 사물에 가현되어 존재하는 노동을 말한다.
개요
인간에게 있어 소외(entfremdung)란, 인간의 활동이 전적으로 외적 규정에 의한 타성에 따라 규정되어 있을 때를 말한다. 소외된 인간은 자기 행동의 결과인 사물에 의해 지배를 받는데, 사실은 사물을 산출한 자기 행동도 사물에 의한 지배의 결과이다. 소외된 인간은 사물의 운동에 귀속되어 있기에 예속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나는 병리적 현상, 병적 심리, 각종 기행(奇行), 인간의 비속화, 흉악 범죄 등은 소외 양상 중 가장 극단에 치우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외는 공산제 사회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넘어가서야 비로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노동과 소외
노동은 자연과 인간의 매개로,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인간에게서의 영원한 자연필연성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욕구를 충족·증대하여 자기 발전을 꾀한다. 노동은 인간의 유(類)적 본성을 이룬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던 시기 인간의 노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매개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생산력이 극히 낮았던 관계로 계급사회로의 이행을 그 사회의 자기부정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즉, 원시공산제에서 노예제로의 이행, 또는 봉건제로의 이행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사적 소유의 발전은 자연과 인간 간 매개로서 노동을 소유에 가상된 존재로 만들었다. 사적 소유가 확립된 이후부터 노동은 자연에 관한 인간의 능동적 활동, 즉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대상적 활동이 아니라, 사적 소유에 의해 타성화된 인간 행위에 불과하게 되었다.
노동의 소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치법칙이 가장 발달·전면화된 사회이다. 추상적 인간 노동은 가치를, 가치는 그것을 드러내는 가치형태의 최종 발전 형태인 화폐를 생성한다. 화폐는 가치의 화신이다. 지불수단으로서 화폐의 발전은 노동의 본래적인 목적이었던 사용가치마저 화폐에 가현되게 한다. 종국에 화폐는 홀로 선 교환가치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자본의 대립물이면서도, 자본의 부단한 자기 증식에 의한 타성태에 불과하다.
≪자본≫ 제3권 제48장에서 K.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 즉 외적 타성태로 기능하는 노동이 자유의 왕국에서 비로소 자기 실현으로서의 노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그것의 조건으로 "노동시간의 절감"을 들고 있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노동시간은 생산 활동에서 사물에 의해 외화되어지는 활동으로서의 시간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이 갖는 자연필연성이라고 간주하였기에 자유의 왕국에서도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자유시간의 증대"를 말한다. 자유의 왕국에 도달했다면 이미 과학기술은 크게 발전했을 것이므로, 물리적 노동시간에 크게 감소하여, 자유시간이 상대적으로 증대하게 될 것인데,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에 대해선 각 논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자본≫ 제3권 제48장의 내용은 오늘날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참고 문헌
-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991), 제1권, 박종철출판사.
-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편 (1989), ≪철학대사전≫, 동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