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관념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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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칸트 역시 주관적 관념론자로, 이미 인식주관에 주어져 있는 감성범주와 오성범주가 물자체에 의해 촉발<ref>칸트는 현상이 물자체에 의해 촉발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최종적으로는 관념적 범주에서 찾았다. 칸트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전개헀는데, 이는 물자체와 관념적 범주 간 일치성을 부정한 것이다. 물자체에 의한 촉발과 관념적 범주 간 관계에 대해서 칸트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ref>되면, 감성범주와 오성범주의 감성형식과 오성형식이 경험과 현상을 구상해내고, 그것이 표상으로 최종 가공되어 사상(事想)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견해를 초월적 감성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인식 이론에 대해 붙인 명칭이다. | I. 칸트 역시 주관적 관념론자로, 이미 인식주관에 주어져 있는 감성범주와 오성범주가 물자체에 의해 촉발<ref>칸트는 현상이 물자체에 의해 촉발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최종적으로는 관념적 범주에서 찾았다. 칸트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전개헀는데, 이는 물자체와 관념적 범주 간 일치성을 부정한 것이다. 물자체에 의한 촉발과 관념적 범주 간 관계에 대해서 칸트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ref>되면, 감성범주와 오성범주의 감성형식과 오성형식이 경험과 현상을 구상해내고, 그것이 표상으로 최종 가공되어 사상(事想)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견해를 초월적 감성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인식 이론에 대해 붙인 명칭이다. | ||
J. G. 피히테는 | J. G. 피히테는 자아(自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표상의 내용이라고 간주했는데, 비아는 자아가 만들어낸 것이며, 결국 표상은 자아가 만들어내고, 표상이 곧 실재라는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 ||
19세기 말 E. 마하, R. 아베나리우스는 물질도, 관념도 아닌 중간자적 요소의 조화와 배척을 통해 물질과 관념이 구성된다고 하였는데, 요소는 인식주관이 선험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기 A. 보그다노프는 대상을 이루는 범주가 인식주관에 의해 구상되고 실재화한다는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한 바 있다. | 19세기 말 E. 마하, R. 아베나리우스는 물질도, 관념도 아닌 중간자적 요소의 조화와 배척을 통해 물질과 관념이 구성된다고 하였는데, 요소는 인식주관이 선험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기 A. 보그다노프는 대상을 이루는 범주가 인식주관에 의해 구상되고 실재화한다는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한 바 있다. |
2022년 4월 22일 (금) 02:34 판
주관적 관념론(한자: 主觀的觀念論, 독일어: Subjektiver Idealismus)은 실재가 주관적 관념에 내재해 있으며, 실재 또는 경험 그 자체의 존재에 관한 최종적인 근거가 인식주관에 있다고 주장하는 관념론적 세계관이다.
개요
잉글랜드의 성공회 신학자인 G. 버클리는 《인간 지식의 원리론》(1710)에서 경험은 인식주관의 산물이며, 실재는 이러한 경험의 합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버클리는 인식주관이 신의 능동적 의지의 산물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주관주의와 유신론을 배합하려고 시도하였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버클리의 사상을 유아론(唯我論)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정신병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관이다"라고 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나갔다.
I. 칸트 역시 주관적 관념론자로, 이미 인식주관에 주어져 있는 감성범주와 오성범주가 물자체에 의해 촉발[1]되면, 감성범주와 오성범주의 감성형식과 오성형식이 경험과 현상을 구상해내고, 그것이 표상으로 최종 가공되어 사상(事想)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견해를 초월적 감성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인식 이론에 대해 붙인 명칭이다.
J. G. 피히테는 자아(自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표상의 내용이라고 간주했는데, 비아는 자아가 만들어낸 것이며, 결국 표상은 자아가 만들어내고, 표상이 곧 실재라는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19세기 말 E. 마하, R. 아베나리우스는 물질도, 관념도 아닌 중간자적 요소의 조화와 배척을 통해 물질과 관념이 구성된다고 하였는데, 요소는 인식주관이 선험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기 A. 보그다노프는 대상을 이루는 범주가 인식주관에 의해 구상되고 실재화한다는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한 바 있다.
오늘날의 주관적 관념론으로는 분석철학 내 대다수 유파, 해석학 및 현상학, 신칸트주의, 실증주의 등이 있으며, 부르주아 철학 강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주관적 관념론 세계관은 내부적으로 세계 인식 문제에 관한 '강한' 불가지론적 견해와 '약한' 불가지론적 견해 간 대립을 이루고 있다. 전자는 신칸트주의적 전통에 서 있으며, 후자는 칸트적 전통에 서 있다.
G. W. F. 헤겔이 독일 관념론의 완성적 정립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칸트주의는 세계 인식에 관한 불가지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헤겔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 | "일찌기 칸트 철학이 내세운 공교적인 학설, 즉 오성은 결코 경험을 넘어서서는 안 되거니와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엔 인식 능력이 다만 공염불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잉태할 수 없는 이론이성에 그치고 말리라고 한 그 학설이야말로 학문적인 면에서 사변적 사유의 거부를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2] | “ |
G. W. F. 헤겔, ≪논리의 학≫, 제1권.) |
현대 주관주의
레닌은 19세기 말 과학 발전의 성과를 총망라하여 주관적 관념론 타도에 집중하였다. 레닌은 A. F. 훔볼트, A. G. 헤르너 등의 지질학 연구 성과와, 지구 탄생에 관한 여러 이론을 섭렵하여 인식주관이 존재하기도 전에 사물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자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주관적 관념론자들은 모든 인식과 학문적 서술이 인식주관이라는 필터를 거쳐를 이루어졌기에, 객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의식과 독립적인 영역에서의 실재는 존재할 수 없으며, 증명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천체물리학 연구마저 '주관의 농간'에 의한 체계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실재의 실제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전개한다.
참고 문헌
- G. 버클리, 문성화 역 (2010), 《인간 지식의 원리론》, 계명대학교출판부.
- I. 칸트, 백종현 역 (2006), 《순수이성비판》, 제1권, 아카넷.
- J. G. 피히테, 한자경 역 (1996), 《전체 지식론의 기초》, 서광사.
- G. W. F. 헤겔, 임석진 역 (1983), ≪대논리학≫, 제1권, 지학사.
- V. I. 레닌, 정광희 역 (1989),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