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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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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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석기 | |||
|다른 이름 = 李石基, Lee Suk-k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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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 | |||
|출생일 = 1962년 2월 2일 | |||
|출생지 = 전라남도 목포시 | |||
|국적 = 대한민국 | |||
|약력 = 사회동향연구소 대표<br>[[CN커뮤니케이션즈]] 대표<br>제19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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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
[[대한민국]]의 前 국회의원,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복역한 [[양심수]]이다. | [[대한민국]]의 前 국회의원,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복역한 [[양심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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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3일, 가석방되었다.<ref>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569.html</ref> | 2021년 12월 23일, 가석방되었다.<ref>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569.html</ref> | ||
==사상== | == 사상 == | ||
2020년 [[한겨레]]와의 세 차례의 인터뷰에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1980~90년대 자주가 반미를 의미했던 건 그만큼 우리가 미국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이제 와서 자주를 반미로 이해하는 건 지나치게 협소한 사고방식이고, 자주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모든 주변국으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2020년 [[한겨레]]와의 세 차례의 인터뷰에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1980~90년대 자주가 반미를 의미했던 건 그만큼 우리가 미국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이제 와서 자주를 반미로 이해하는 건 지나치게 협소한 사고방식이고, 자주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모든 주변국으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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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필요하다면 북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진보주의자에게 비판에서 자유로운 ‘성역’은 없다고 밝히기도했다.<ref>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968163.html</ref> | 마지막으로, 필요하다면 북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진보주의자에게 비판에서 자유로운 ‘성역’은 없다고 밝히기도했다.<ref>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968163.html</ref> | ||
== | == 논란 및 사건사고 == | ||
== 선거 이력 == | |||
== 소속 정당 == | |||
== 둘러보기 == | |||
* [[이정희]] | * [[이정희]] | ||
* [[김재연]] | * [[김재연]] | ||
* [[경기동부연합]] | |||
* [[CN커뮤니케이션즈]] | |||
==각주== | == 각주 == | ||
[[분류:대한민국의 진보 정치인]] [[분류:양심수]] | [[분류:대한민국의 진보 정치인]] [[분류:양심수]] |
2022년 10월 29일 (토) 20:59 판
李石基, Lee Suk-ki | |||
[[파일:|3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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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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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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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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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前 국회의원,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복역한 양심수이다.
생애
생애 초기
제19대 국회의원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가석방
2021년 12월 23일, 가석방되었다.[1]
사상
2020년 한겨레와의 세 차례의 인터뷰에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1980~90년대 자주가 반미를 의미했던 건 그만큼 우리가 미국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이제 와서 자주를 반미로 이해하는 건 지나치게 협소한 사고방식이고, 자주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모든 주변국으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북이 핵무기의 국제정치학이라는 논리에 따라 미국의 핵위협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독자적 핵개발이라 생각했고, 실제 경제봉쇄를 무릅쓰고 핵무기를 개발했으나, 세계 모든 나라의 핵 개발과 보유는 바람직하지 않고, 북도 예외는 아니라고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필요하다면 북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진보주의자에게 비판에서 자유로운 ‘성역’은 없다고 밝히기도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