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프롤레타리아 독재(1):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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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는 수백만 명의 농민과 소농, 수십만 명의 직장인, 관료, 부르주아 지식인을 재교육하고, 그들 모두를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지도부에 복종시키고, 부르주아 습관과 전통은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초하여 수행되는 장기간의 투쟁에서" 기적으로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편견을 단번에 버리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자신을 재교육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성모 마리아의 명령에 따라, 슬로건, 결의안, 법령의 명령에 따라, 그러나 이는 대중 소부르주아 영향력에 대항하는 길고도 어려운 대중 투쟁의 과정에서만 가능하다.(Vol. XXV, pp. 247, 248을 보라.)}}
{{인용문|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는 수백만 명의 농민과 소농, 수십만 명의 직장인, 관료, 부르주아 지식인을 재교육하고, 그들 모두를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지도부에 복종시키고, 부르주아 습관과 전통은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초하여 수행되는 장기간의 투쟁에서" 기적으로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편견을 단번에 버리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자신을 재교육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성모 마리아의 명령에 따라, 슬로건, 결의안, 법령의 명령에 따라, 그러나 이는 대중 소부르주아 영향력에 대항하는 길고도 어려운 대중 투쟁의 과정에서만 가능하다.(Vol. XXV, pp. 247, 248을 보라.)}}
'''2)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앞서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단순히 정부인사의 변화, 내각의 변화 등이 아니며, 낡은 경제적, 정치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멘셰비키와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은 독재를 마치 불처럼 무서워하고 깜짝 놀라서 독재라는 개념을 ‘권력장악’이란 개념으로 대체하고, 대개 이 ‘권력장악’을 ‘내각’으로 교체, 즉 샤이데만과 노스케, 맥도날드와 헨더슨 같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새 내각의 권력획득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리고 유사한 내각 교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실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실권 장악과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맥도널드와 샤이데만이 집권하는 동안 오래된 부르주아 질서는 유지될 수 있지만, 그들의 소위 정부는 부르주아에 봉사하는 장치, 제국주의의 궤양을 감추기 위한 허상, 억압되고 착취되는 대중의 혁명 운동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의 손에 있는 무기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자본이 허상의 도움 없이 대중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불편하고 무익하고 곤란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본은 허상과 같은 정부를 필요로 한다. 물론, 그러한 정부의 출현은 "저 쪽"(즉, 자본주의 진영에서) 모두가 "시프카 고개"<ref>1877년부터 1878년까지 치러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발칸 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지키는 유일한 요충지로서 러시아와 불가리아 연합군이 이 곳을 장악하자 오스만 제국군이 항복한 역사적 배경에 의한 비유 -- '''역자의 주'''</ref>에 있지 않다는 징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정부는 필연적으로 변장한 자본의 정부로 남아있다. 맥도날드나 샤이데만의 정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장악과는 하늘과 땅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정부의 교체가 아니라 중앙과 지방 모두에 새로운 권력기관을 갖는 새로운 국가이다. 그것은 낡은 국가, 즉 부르주아지의 국가의 붕괴 위에 세워진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부르주아적 질서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질서의 파괴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를 타도한 이후 지주와 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정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무력행사를 바탕으로 한 혁명권력이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수중에 있는, 계급의 적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어떤 다른 계급의 독재와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국가는 부르주아지를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계급국가는 다수 피착취자에 대한 착취하는 소수의 독재였던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다수 피착취자의 독재라는 사실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법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힘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통치이며, 노동하고 착취당하는 대중의 동정과 지지를 누리는 통치이다.(레닌, ''국가와 혁명'')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번째 결론: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완전한’ 민주주의와,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까지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적이며(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비유산자를 위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부르주아지에 대해<ref>강조추가. -- '''필자의 주'''</ref>) 독재적인 국가여야 한다." 보편적인 평등, ‘순수한’ 민주주의, ‘완전한’ 민주주의와 같은 것들에 대한 카우츠키 일파의 이야기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부르주아적 위장이다. ‘순수’ 민주주의 이론은 제국주의 강도들에 의해 길들여져 있고 부양되고 있는 노동계급 상층의 이론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궤양을 감추고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착취당한 대중에 대한 투쟁에서 도덕적 힘을 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취당한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자유"는 없으며, "자유"의 향유에 필수적인 전제, 인쇄 공장, 종이 공급물 등이 착취당한 사람들의 특권이라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취당한 대중들은 그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자본주의의 조건 하에서, 정부는 국민에 의해 설정되지 않고 로스차일드 가문과 스티네스 가문, 록펠러 가문과 모르간 가문에 의해 설정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민주주의이며, 피착취자 다수의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다수에게 반하며 착취하는 소수의 민주주의이다. 오직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만 피착취자를 위한 진정한 자유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국가통치에의 진정한 참여가 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소수에 대항하는 피착취 다수의 민주주의이다.
두 번째 결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사회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평화로운 발전의 결과로써 생성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부르주아 국가기구, 부르주아 군대, 부르주아 관료기구, 부르주아 경찰을 타도한 결과로써 생성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문 서문에서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운영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과제는 "...이전처럼 더 이상 관료-군사 기구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수는 것이다... 이것이 대륙의 모든 실제 인민 혁명의 예비조건"이라고 맑스는 1871년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ref>카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카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Selected Works, Vol. I, p. 22, Vol. II, p. 420, Moscow 1951) 참조.</ref>

2024년 6월 23일 (일) 00:22 판

이 주제에서 나는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구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b)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c)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국가 형태로서의 소비에트 권력


1)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구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는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주요 내용에 관한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것의 운동, 그것의 진로와 성과는 오직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통해서만 피와 살을 얻는다. 이는 첫째로 타도된 착취자들의 반항을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과물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성해내고 혁명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졌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없다 하더라도 부르주아지를 패퇴시킬 수 있고 그 권력을 타도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이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자신의 주요한 대들보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형태로 특별한 기관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할 수 없으며, 그 승리를 유지하고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로까지 밀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주요 지지자로 삼는다.


"모든 혁명의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의 문제이다."(레닌) 이것은 필요한 것은 권력을 장악하고 장악하는 것 뿐이라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권력 장악은 시작일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일국에서 타도된 부르주아지는 장기간, 이를 타도한 프롤레타리아보다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목표는 권력을 획득하여 강화하고 이를 정복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승리한 ‘직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직면하게 되는 적어도 세 가지 주요과제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a) 혁명으로 타도되어 재산을 몰수당한 지주와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그들의 일부에서 자본의 권력을 회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일소하는 것;

b) 프롤레타리아트 주위에 모든 근로인민을 결집하는 방법으로 건설을 조직하고, 이러한 사업을 계급의 폐지, 소멸에 대비하는 노선을 따라 실행하는 것;

c) 국외의 적에 대한 투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 혁명을 무장시키고 혁명군대를 조직하는 것.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고 완수하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전환은 전체 역사적 시대를 대표한다.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착취자들은 필연적으로 회복의 희망을 품고 있으며, 이 희망은 회복을 위한 시도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심각한 패배 이후 , 타도된 착취자들은 자신들의 타도를 예상하지도 못했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을 결코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열 배로 커진 에너지와 백 배로 커진 맹렬한 열정과 증오로 '낙원'을 회복하기 위한 전투에 몸을 던졌다. ' 그토록 달콤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온 가족을 대신하여 그들은 이제 '일반 군중'이 파멸과 빈곤(또는 '일반 노동자'...)을 선고받고 있는 것'을 박탈당했다. 자본가 착취자들의 대열은 광범위한 쁘띠부르주아 대중을 따르는데, 이들에 대해 수십 년에 걸친 모든 나라의 역사적 경험은 그들이 동요하고 머뭇거리며 어느날은 프롤레타리아트 뒤에서 행진하다가 다음 날은 혁명의 고난에 겁을 먹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패배하거나 반(半)패배하면 공황 상태에 빠지고, 초조해지고, 서두르고, 비웃고, 이 진영에서 다른 진영으로 도망간다.”(Vol. XXIII, p. 355을 보라)


부르주아지는 회복을 시도할 토대가 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는 자신을 타도한 프롤레타리아트보다 오랫동안 더 강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착취자들이 한 나라에서만 패배한다면 이것은 물론 전형적인 경우이다.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드문 예외이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피착취자들보다 더 강하다.(ibid), 354 페이지)


타도된 부르주아지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국제적인 자본의 힘에, 부르주아지의 국제적 연결이 갖는 힘과 그 지속성에.”(Vol. XXV, p. 173을 보라.)


둘째, “혁명 이후에도 오랫동안 착취자들은 필연적으로 많은 거대한 실제적 이점을 갖고 있는 바, 여전히 돈(화폐를 한꺼번에 모두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과 약간의−종종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동산을 갖고 있고, 여전히 다양한 연고관계, 조직과 관리의 기질, 관리의 모든 비법(관습, 방법, 수단 및 가능성)에 관한 지식, 고등교육, (부르주아처럼 생활하고 사고하는) 고급 전문인과의 밀접한 관계, 전쟁기술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경험(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등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Vol. XXIII, p. 354을 보라.)


셋째, “관습의 힘, 소생산이 갖는 힘에.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소생산은 여전히 세계에 매우, 매우 광범하게 퍼져있으며, 소생산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를 계속해서, 매일, 매시간, 자생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생시키기 때문에”…왜냐하면 “계급의 폐지는 지주와 자본가를 축출하는 것−우리가 비교적 쉽게 성취했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소상품생산자를 근절시키는 것을 뜻하며 그들은 축출될 수도 분쇄될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고, 그들은 오직 매우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이고 신중한 이런 이유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더 강력한 적, 자신이 타도됨으로써 열배로 저항을 증대시키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새로운 계급이 수행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무자비한 전쟁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구 사회의 세력과 전통에 대한 유혈이든 무혈이든, 격렬하든 평화적이든,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교육적이든 행정적이든−완강한 투쟁이다.”조직사업을 통해서만 개조되고 재교육될 수 있기(또한 되어야 하기)” 때문에.(XXV, pp.173와 189를 보라.)


그래서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더 강력한 적, 자신이 타도됨으로써 열 배로 저항을 증대시키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새로운 계급이 수행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무자비한 전쟁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구 사회의 세력과 전통에 대한 유혈이든 무혈이든, 격렬하든 평화적이든,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교육적이든 행정적이든−완강한 투쟁이다.(ibid., pp. 173, 190)


거의 논증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과제들을 단시간에 실행하고 수년 내로 이 모든 것을 성취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독재, 즉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초혁명적’ 행동과 법률로 이루어지는 덧없는 시기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내전과 외환, 지속적인 조직사업과 경제 건설, 진보와 후퇴, 승리와 패배로 점철된 하나의 완전한 역사적 시기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에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경제적 문화적 선결조건들을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첫째, 자신을 교육하여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세력으로 단련되는 것, 둘째,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를 보장하는 노선을 따라 부르주아층을 재교육시키고 개조하는 것이 요구된다.


맑스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존 조건을 바꿀 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도 바꾸고 정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하려면 15년, 20년, 50년의 내전과 국제 갈등을 겪어야 한다.” (카를 맑스 및 프리드리히 엥겔스, Works, Vol. VIII, p. 506를 보라.)


맑스의 사상을 계속 발전시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는 수백만 명의 농민과 소농, 수십만 명의 직장인, 관료, 부르주아 지식인을 재교육하고, 그들 모두를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지도부에 복종시키고, 부르주아 습관과 전통은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초하여 수행되는 장기간의 투쟁에서" 기적으로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편견을 단번에 버리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자신을 재교육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성모 마리아의 명령에 따라, 슬로건, 결의안, 법령의 명령에 따라, 그러나 이는 대중 소부르주아 영향력에 대항하는 길고도 어려운 대중 투쟁의 과정에서만 가능하다.(Vol. XXV, pp. 247, 248을 보라.)


2)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앞서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단순히 정부인사의 변화, 내각의 변화 등이 아니며, 낡은 경제적, 정치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멘셰비키와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은 독재를 마치 불처럼 무서워하고 깜짝 놀라서 독재라는 개념을 ‘권력장악’이란 개념으로 대체하고, 대개 이 ‘권력장악’을 ‘내각’으로 교체, 즉 샤이데만과 노스케, 맥도날드와 헨더슨 같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새 내각의 권력획득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리고 유사한 내각 교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실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실권 장악과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맥도널드와 샤이데만이 집권하는 동안 오래된 부르주아 질서는 유지될 수 있지만, 그들의 소위 정부는 부르주아에 봉사하는 장치, 제국주의의 궤양을 감추기 위한 허상, 억압되고 착취되는 대중의 혁명 운동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의 손에 있는 무기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자본이 허상의 도움 없이 대중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불편하고 무익하고 곤란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본은 허상과 같은 정부를 필요로 한다. 물론, 그러한 정부의 출현은 "저 쪽"(즉, 자본주의 진영에서) 모두가 "시프카 고개"[1]에 있지 않다는 징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정부는 필연적으로 변장한 자본의 정부로 남아있다. 맥도날드나 샤이데만의 정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장악과는 하늘과 땅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정부의 교체가 아니라 중앙과 지방 모두에 새로운 권력기관을 갖는 새로운 국가이다. 그것은 낡은 국가, 즉 부르주아지의 국가의 붕괴 위에 세워진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부르주아적 질서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질서의 파괴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를 타도한 이후 지주와 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정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무력행사를 바탕으로 한 혁명권력이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수중에 있는, 계급의 적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어떤 다른 계급의 독재와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국가는 부르주아지를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계급국가는 다수 피착취자에 대한 착취하는 소수의 독재였던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다수 피착취자의 독재라는 사실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법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힘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통치이며, 노동하고 착취당하는 대중의 동정과 지지를 누리는 통치이다.(레닌, 국가와 혁명)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번째 결론: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완전한’ 민주주의와,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까지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적이며(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비유산자를 위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부르주아지에 대해[2]) 독재적인 국가여야 한다." 보편적인 평등, ‘순수한’ 민주주의, ‘완전한’ 민주주의와 같은 것들에 대한 카우츠키 일파의 이야기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부르주아적 위장이다. ‘순수’ 민주주의 이론은 제국주의 강도들에 의해 길들여져 있고 부양되고 있는 노동계급 상층의 이론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궤양을 감추고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착취당한 대중에 대한 투쟁에서 도덕적 힘을 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취당한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자유"는 없으며, "자유"의 향유에 필수적인 전제, 인쇄 공장, 종이 공급물 등이 착취당한 사람들의 특권이라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취당한 대중들은 그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자본주의의 조건 하에서, 정부는 국민에 의해 설정되지 않고 로스차일드 가문과 스티네스 가문, 록펠러 가문과 모르간 가문에 의해 설정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민주주의이며, 피착취자 다수의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다수에게 반하며 착취하는 소수의 민주주의이다. 오직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만 피착취자를 위한 진정한 자유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국가통치에의 진정한 참여가 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소수에 대항하는 피착취 다수의 민주주의이다.


두 번째 결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사회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평화로운 발전의 결과로써 생성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부르주아 국가기구, 부르주아 군대, 부르주아 관료기구, 부르주아 경찰을 타도한 결과로써 생성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문 서문에서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운영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과제는 "...이전처럼 더 이상 관료-군사 기구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수는 것이다... 이것이 대륙의 모든 실제 인민 혁명의 예비조건"이라고 맑스는 1871년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3]

  1. 1877년부터 1878년까지 치러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발칸 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지키는 유일한 요충지로서 러시아와 불가리아 연합군이 이 곳을 장악하자 오스만 제국군이 항복한 역사적 배경에 의한 비유 -- 역자의 주
  2. 강조추가. -- 필자의 주
  3. 카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카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Selected Works, Vol. I, p. 22, Vol. II, p. 420, Moscow 195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