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레닌주의의 역사적 근원: 두 판 사이의 차이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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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의 모순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산업 국가에서 독점적인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 은행과 금융과두제를 지닌 전지전능의 권력이다. 이 전지전능한 권력에 대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지닌 일상적 방식−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의회정당과 의회투쟁−으로는 아주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자본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밑바닥으로 영락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무기를 채택할 것인가−이것이 제국주의가 거대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앞에 제기한 양자택일이다. 제국주의는 노동계급을 혁명으로 이끌어간다.
제1의 모순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산업 국가에서 독점적인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 은행과 금융과두제를 지닌 전지전능의 권력이다. 이 전지전능한 권력에 대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지닌 일상적 방식−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의회정당과 의회투쟁−으로는 아주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자본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밑바닥으로 영락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무기를 채택할 것인가−이것이 제국주의가 거대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앞에 제기한 양자택일이다. 제국주의는 노동계급이 혁명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제2의 모순은 원료산지와 타국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금융세력들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의 수출이며, 원료산지의 독점적 소유를 위한 광적인 투쟁이자 이미 분할된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투쟁이며, 장악한 것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구금융세력들과 열강에 대항하여 ‘태양이 뜨는 대지’를 노리는 신세력들과 열강에 의해 더욱 광폭하게 수행되는 투쟁이다. 자본가들의 여러 다양한 세력들 사이의 이러한 광폭한 투쟁은 제국주의 전쟁, 즉 타국의 영토를 강탈하기 위한 전쟁을 불가피한 요소로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제국주의 상호간을 약화시키고 자본주의의 위치를 전반적으로 약화시키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래를 가속화시키는 동시에 이 혁명이 실천적 필연성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제2의 모순은 원료산지와 타국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금융세력들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의 수출이며, 원료산지의 독점적 소유를 위한 광적인 투쟁이자 이미 분할된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투쟁이며, 장악한 것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구금융세력들과 열강에 대항하여 ‘태양이 뜨는 대지’를 노리는 신세력들과 열강에 의해 더욱 광폭하게 수행되는 투쟁이다. 자본가들의 여러 다양한 세력들 사이의 이러한 광폭한 투쟁은 제국주의 전쟁, 즉 타국의 영토를 강탈하기 위한 전쟁을 불가피한 요소로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주의자들은 서로를 약화시킨다.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진지가 약화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촉진되고 필연적인 실천적 문제가 된다.




제3의 모순은 한줌의 지배 ‘문명’ 민족과 수억에 달하는 세계의 식민지 및 종속국 인민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방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에 살고 있는 수억의 인민에 대한 가장 파렴치한 착취이자 가장 비인간적인 압제이다. 이러한 착취와 입제의 목적은 초과이윤을 수탈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를 착취하면서 제국주의는 그곳에 철도와 공장, 제재소, 그리고 공업과 상업 중심지들을 건설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출현, 토착 인텔리겐치아의 등장, 민족의식의 각성, 해방운동의 성장-이러한 것들은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모든 식민지와 종속국에서 혁명운동의 성장은 예외 없이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식민지와 종속국들을 제국주의의 예비군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예비군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므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제3의 모순은 한줌의 지배 ‘문명’ 민족과 수억에 달하는 세계의 식민지 및 종속국 인민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방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에 살고 있는 수억의 인민에 대한 가장 파렴치한 착취이자 가장 비인간적인 압제이다. 이러한 착취와 입제의 목적은 초과이윤을 수탈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를 착취하면서 제국주의는 그곳에 철도와 공장, 제재소, 그리고 공업과 상업 중심지들을 건설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출현, 토착 인텔리겐치아의 등장, 민족의식의 각성, 해방운동의 성장-이러한 것들은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모든 식민지와 종속국에서 혁명운동의 성장은 예외 없이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노동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식민지 및 종속국을 제국주의의 예비군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예비군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진지를 뿌리째 헐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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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발발했던 제국주의전쟁의 의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전쟁이 모든 모순을 한 덩어리로 모아 그것을 저울 위에 내던졌으며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투를 가속화하고 촉진시켰다는 사실에 있다.  
10년 전에 발발했던 제국주의 전쟁의 의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전쟁이 모든 모순을 한 덩어리로 모아 그것을 저울 위에 내던졌으며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투를 가속화하고 촉진시켰다는 사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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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나라 가운데 왜 러시아가 레닌주의의 모국이 되었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탄생지가 되었는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모두 옳지만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도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던 러시아가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무엇보다 주로 러시아에서, 러시아를 위해 활동한 레닌이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무슨 까닭에 다름 아닌 러시아가 레닌주의의 모국이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발원지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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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정 러시아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형태로 가해지던 모든 종류의 억압(자본주의적⋅식민지적⋅군국주의적)의 본고장이었다. 러시아에서 자본이 가진 전지전능한 권력은 차르주의의 전제와 결합되었고, 러시아 민족주의의 공격성은 비러시아계 인민에 대한 사형집행자로서 차르주의의 역할과 결합되었고, 또 취약한 지역들(터키⋅페르시아⋅중국)에 대한 착취는 차리즘에 의한 이들 지역의 강탈이나 정복전쟁과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레닌이 차리즘을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였다고 말한 것은 정당했다. 차르주의은 제국주의의 가장 사악한 특징의 집약이었으며 그것을 고도로 끌어올렸다.
먼저, 제정 러시아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온갖 종류의 억압 즉 자본주의적, 식민지적 및 군사적 억압의 발원지였다. 러시아에서 자본이 가진 전지전능한 권력은 차르주의의 전제와 결합되었고, 러시아 민족주의의 공격성은 비러시아계 인민에 대한 사형집행자로서 차르주의의 역할과 결합되었고, 또 취약한 지역들(터키⋅페르시아⋅중국)에 대한 착취는 차르주의에 의한 이들 지역의 강탈이나 정복전쟁과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레닌이 차르주의를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였다고 말한 것은 옳은 말이었다. 차르주의는 제국주의의 가장 사악한 특징의 집약이었으며 그것을 고도로 끌어올렸다.




나아가, 차르 러시아는, 연료와 야금산업과 같은 러시아 민족경제의 기본분야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런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참여를 허용했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수백만의 군인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도 서구 제국주의의 중요한 예비군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자본가들의 엄청난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제국주의전선에서 피를 흘렸던 1,400만의 러시아군대를 기억해 보라.
나아가, 제정 러시아는, 연료와 야금산업과 같은 러시아 민족경제의 기본분야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런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참여를 허용했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수백만의 군인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도 서구 제국주의의 중요한 예비군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자본가들의 엄청난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제국주의전선에서 피를 흘렸던 1,400만의 러시아군대를 기억해 보라.




더 나아가, 차르주의는 유럽 동부에서 제국주의의 파수견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파리와 런던⋅베를린과 브뤼셀에서 제공된 차관에 대한 이자를 수억의 주민들에게서 갈취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의 대리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차르주의는 터키⋅페르시아⋅중국 등을 분할할 때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충실한 동맹자였다.
더 나아가, 차르주의는 유럽 동부에서 제국주의의 파수견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파리와 런던⋅베를린과 브뤼셀에서 제공된 차관에 대한 이자를 수억의 주민들에게서 갈취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의 대리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차르주의는 터키⋅페르시아⋅중국 등을 분할할 때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충실한 동맹자였다.  알다시피, 차르주의는 협상국<ref>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중심의 동맹국의 반대 진영인 프랑스, 영국, 러시아<:ref> 제국주의자들과 동맹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중요 참전국이었다.




이것이 바로 차르주의와 서구 제국주의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라는 단일한 타래로 합쳐진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차르주의와 서구 제국주의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라는 하나의 실타래로 얽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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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방금 말한 것으로부터, 차르주의를 공격하고자 했던 누구라도 반드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손을 치켜들었고, 차리즘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그 누구라도 동시에 제국주의에 반항하여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차르주의를 타도하는 데 전념했던 누구든지 간에 만약 그가 진정으로 차르주의를 패퇴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일소하려고 했다면, 제국주의 역시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르주의에 대한 혁명은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에 가까웠으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차르주의를 공격하려는 자는 누구나 불가피하게 제국주의를 공격하게 되고, 차르에 대항하려는 자는 누구나 제국주의에 대항하게 된다. 차르주의에 전복하려는 자가 참으로 차르주의를 단지 패퇴시킬 뿐만 아니라 여지없이 소탕하려고 생각했다면 제국주의도 역시 전복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차르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해야만 했다.




한편으로, 러시아에서 거대한 인민혁명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도되었으며, 그들은 러시아의 혁명적 농민층과 같은 중요한 동맹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혁명이 중도에 멈춰질 수 없었다는 것, 그것이 성공했을 때 더욱 더 나아가야 했으며 제국주의에 대항해 반기를 들어야 했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는가?
러시아에서 일어난 위대한 인민혁명은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가 지도하였으며,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러시아의 혁명적 농민과 같은 소중한 동맹자가 있었다. 혁명은 중도에 멈추지 않았다. 혁명은 승리하여 마침내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봉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앞으로 더욱 전진하였다. 이것을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요컨대 이들 모순이 특히 역겨워 견디기 어려운 특징으로 인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러시아였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또 러시아가 서구 금융자본을 동방의 식민지들과 연결시켜주는 서구 제국주의의 매우 중요한 후원자였기 때문일 뿐 아니라, 러시아가 제국주의의 모순을 혁명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세력이 실재했던 유일한 국가였다는 이유에서도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모순의 집합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모순들이 집중된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국주의 모순의 중심 고리가 된 것은 모순들이 러시아에서 특히 추악하고 참을 수 없는 것이어서 쉽게 폭로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러시아가 서구 금융자본을 동방의 식민지와 연결시켜 주는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였기 때문만도 아니다. 러시아가 제국주의 모순의 중심 고리가 된 것은 러시아가 제국주의 모순을 혁명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재적 세력이 존재했던 유일한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러시아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시초부터 그것은 국제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 그러므로 그것은 세계 제국주의의 바로 기초를 흔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도출된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되었으며 그 발전의 첫날부터 국제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세계 제국주의의 지반 자체를 뒤흔들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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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러시아는 레닌주의의 모국이 되었으며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지도자 레닌은 그것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가 레닌주의의 발원지가 되고 러시아 공산주의자의 지도자인 레닌이 레닌주의의 창시자가 된 이유이다.




지난 세기의 40년대 독일, 맑스, 엥겔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레닌의 경우에도 대략 동일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독일은 20세기 초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혁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공산주의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러시아와 레닌에게 “일어난 일”은 1840년대에 독일과 맑스, 엥겔스에게 일어난 일과 같다. 당시 독일은 20세기 초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혁명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맑스는 당시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인용문|공산주의자들은 주로 독일에 관심을 돌린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영국보다 훨씬 더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유럽 문명의 더 발전된 조건 하에서 수행될 부르주아 혁명의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17세기, 18세기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바로 뒤따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서막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ref> 카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Selected Works, Vol. I, 제1권, 모스크바 1951, 61쪽).</ref>}}
{{인용문|공산주의자들이 독일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독일이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17세기 영국이나 18세기의 프랑스보다 더 발전된 유럽문명의 조건하에서, 그리고 더욱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수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직접적인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f> 맑스, “공산당 선언”,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pp. 432-433. 여기에는 역자가 일부 수정한 번역을 실었다.</ref>}}




20세기 초의 러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러시아는 부르주아 혁명 직전이었다. 그녀는 유럽의 상황이 더 발전된 시기에, 그리고 1840년대 독일(영국과 프랑스는 물론이고)보다 더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 혁명을 완수해야 했다. 더욱이 모든 증거는 이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조이자 발효물이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혁명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던 1902년 초에 레닌이 자신의 팜플렛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예언적인 말을 쓴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
20세기 초의 러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러시아는 부르주아 혁명 직전이었다. 그녀는 유럽의 상황이 더 발전된 시기에, 그리고 1840년대 독일(영국과 프랑스는 물론이고)보다 더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 혁명을 완수해야 했다. 더욱이 모든 증거는 이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조이자 발효물이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혁명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던 1902년 초에 레닌이 자신의 팜플렛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예지적인 말을 쓴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




{{인용문|역사는 이제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모든 당면 과제 중 가장 혁명적인 당면 과제로 우리<ref>즉, 러시아 맑스주의자 -- '''필자의 주'''</ref>에게 직면했다." ,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반동의 가장 강력한 보루가 파괴되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국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Vol. IV, p. 382 참조) .}}
{{인용문|역사는 지금 우리 앞에<ref>즉 러시아 맑스주의자 앞에: 스탈린</ref> 긴급한 임무를 제기하였다. 그것은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모든 긴급한 임무보다도 가장 혁명적인 임무이다.이 업무의 실현, 즉 유럽의 반동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시아적 반동의 가장 강력한 방파제를 파괴하는 일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인 전위로 만들 것이다.<ref>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저작선≫, 거름, p. 14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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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듯이 러시아 혁명의 과정은 레닌의 예측이 입증된 것 이상이다.
알다시피 러시아 혁명의 과정은 레닌의 예지적 발언을 확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결국 그러한 혁명을 성취하고 그러한 프롤레타리아트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발상지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결국 그러한 혁명을 성취하고 그러한 프롤레타리아트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발원지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 레닌이 이 이론과 전술의 창시자이자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동시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 레닌이 이 이론과 전술의 창시자이자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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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내 각주}}
{{문단 내 각주}}

2024년 6월 23일 (일) 03:33 판

레닌주의의 기초
I. 레닌주의의 역사적 근원

레닌주의의 제국주의의 제조건 아래서, 즉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점에 다다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당면한 실천적 문제로 되었을 때, 노동계급이 혁명을 준비하던 구시대가 새로운 시대, 즉 자본주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의 시대에 접어들었던 때에 성장하고 구체화되었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라 불렀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 최후의 한계로까지, 혁명이 시작되는 극한까지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제1의 모순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산업 국가에서 독점적인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 은행과 금융과두제를 지닌 전지전능의 권력이다. 이 전지전능한 권력에 대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지닌 일상적 방식−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의회정당과 의회투쟁−으로는 아주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자본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밑바닥으로 영락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무기를 채택할 것인가−이것이 제국주의가 거대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앞에 제기한 양자택일이다. 제국주의는 노동계급이 혁명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제2의 모순은 원료산지와 타국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금융세력들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의 수출이며, 원료산지의 독점적 소유를 위한 광적인 투쟁이자 이미 분할된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투쟁이며, 장악한 것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구금융세력들과 열강에 대항하여 ‘태양이 뜨는 대지’를 노리는 신세력들과 열강에 의해 더욱 광폭하게 수행되는 투쟁이다. 자본가들의 여러 다양한 세력들 사이의 이러한 광폭한 투쟁은 제국주의 전쟁, 즉 타국의 영토를 강탈하기 위한 전쟁을 불가피한 요소로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주의자들은 서로를 약화시킨다.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진지가 약화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촉진되고 필연적인 실천적 문제가 된다.


제3의 모순은 한줌의 지배 ‘문명’ 민족과 수억에 달하는 세계의 식민지 및 종속국 인민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방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에 살고 있는 수억의 인민에 대한 가장 파렴치한 착취이자 가장 비인간적인 압제이다. 이러한 착취와 입제의 목적은 초과이윤을 수탈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를 착취하면서 제국주의는 그곳에 철도와 공장, 제재소, 그리고 공업과 상업 중심지들을 건설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출현, 토착 인텔리겐치아의 등장, 민족의식의 각성, 해방운동의 성장-이러한 것들은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모든 식민지와 종속국에서 혁명운동의 성장은 예외 없이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노동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식민지 및 종속국을 제국주의의 예비군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예비군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진지를 뿌리째 헐어 버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것이 낡고 "번영하는" 자본주의를 죽어가는 자본주의로 전환시킨 제국주의의 주요 모순이다.


10년 전에 발발했던 제국주의 전쟁의 의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전쟁이 모든 모순을 한 덩어리로 모아 그것을 저울 위에 내던졌으며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투를 가속화하고 촉진시켰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서, 제국주의는 혁명이 실천적 필연성을 갖게 하는데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요새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위해 호조건을 창출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었다.


이것이 레닌주의를 탄생시켰던 국제적 상황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모두 옳지만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도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던 러시아가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무엇보다 주로 러시아에서, 러시아를 위해 활동한 레닌이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무슨 까닭에 다름 아닌 러시아가 레닌주의의 모국이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발원지가 되었는가?


왜냐하면 러시아는 제국주의가 갖는 이 모든 모순들의 집합점이었으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혁명을 잉태했고, 따라서 러시아만이 이러한 모순을 혁명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제정 러시아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온갖 종류의 억압 즉 자본주의적, 식민지적 및 군사적 억압의 발원지였다. 러시아에서 자본이 가진 전지전능한 권력은 차르주의의 전제와 결합되었고, 러시아 민족주의의 공격성은 비러시아계 인민에 대한 사형집행자로서 차르주의의 역할과 결합되었고, 또 취약한 지역들(터키⋅페르시아⋅중국)에 대한 착취는 차르주의에 의한 이들 지역의 강탈이나 정복전쟁과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레닌이 차르주의를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였다고 말한 것은 옳은 말이었다. 차르주의는 제국주의의 가장 사악한 특징의 집약이었으며 그것을 고도로 끌어올렸다.


나아가, 제정 러시아는, 연료와 야금산업과 같은 러시아 민족경제의 기본분야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런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참여를 허용했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수백만의 군인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도 서구 제국주의의 중요한 예비군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자본가들의 엄청난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제국주의전선에서 피를 흘렸던 1,400만의 러시아군대를 기억해 보라.


더 나아가, 차르주의는 유럽 동부에서 제국주의의 파수견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파리와 런던⋅베를린과 브뤼셀에서 제공된 차관에 대한 이자를 수억의 주민들에게서 갈취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의 대리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차르주의는 터키⋅페르시아⋅중국 등을 분할할 때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충실한 동맹자였다. 알다시피, 차르주의는 협상국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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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의 러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러시아는 부르주아 혁명 직전이었다. 그녀는 유럽의 상황이 더 발전된 시기에, 그리고 1840년대 독일(영국과 프랑스는 물론이고)보다 더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 혁명을 완수해야 했다. 더욱이 모든 증거는 이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조이자 발효물이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혁명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던 1902년 초에 레닌이 자신의 팜플렛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예지적인 말을 쓴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


역사는 지금 우리 앞에[1] 긴급한 임무를 제기하였다. 그것은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모든 긴급한 임무보다도 가장 혁명적인 임무이다.이 업무의 실현, 즉 유럽의 반동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시아적 반동의 가장 강력한 방파제를 파괴하는 일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인 전위로 만들 것이다.[2]


즉 혁명운동의 중심이 러시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알다시피 러시아 혁명의 과정은 레닌의 예지적 발언을 확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결국 그러한 혁명을 성취하고 그러한 프롤레타리아트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발원지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동시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 레닌이 이 이론과 전술의 창시자이자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1. 즉 러시아 맑스주의자 앞에: 스탈린
  2.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저작선≫, 거름,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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