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동맹
마르크스는 1845년 1월에 추방되어 브뤼셀로 옮겨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혁명적 단체인 민주주의협회와 독일 노동자협회에 가담하여 정치적 활동을 수행하면서, 1846년 2월 영국에 있던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 통신위원회」를 결성하였다. 한편 그 무렵 두 사람은 파리에 있던 블랑키주의자들의 1839년 봉기가 실패한 결과로 와해되어가던 의인동맹의 잔류자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들과 몇차례 논의가 있은 뒤 1847년 여름 엥겔스가 여기에 참여하고, 다른 단체들도 여기에 모임으로써 공산주의자동맹이 결성될 수 있었다. 이것이 최초의 국제적인 공산주의 조직이며, 15년 뒤에 창립되는 국제노동자협회의 선구이다. 공산주의자동맹은 주로 런던과 파리, 브뤼셀의 망명 노동자와 지식인으로 이루어졌다. 동맹은 1847년 11월 29일에서 12월 8일까지 런던에서 제6차대회를 열어 규약을 제정하고 강령의 작성을 결정하였다. 강령 초안을 작성하는 임무가 마르크스에게 부여되었다. 이리하여 1847년 12월과 1848년 1월 사이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초안 작성 작업에 들어갔으며, 1월말에는 초안이 완성되어 2월에 런던에서 발표되었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선언’으로 불리는 『공산당 선언 Manifesto der Kommunistischen Partei』이 바로 그것이다. 공산주의자동맹은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한 강령을 내걸고 대대적인 정치적 활동을 수행하였으나, 1848년에 폭발한 유럽의 혁명이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끝나게 됨으로써 정치적 반동기가 도래하여 결국 지도적인 혁명가들이 다수 체포되고 동맹도 해산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