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에티카》(라틴어: Ethica) 또는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라틴어: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네덜란드의 철학자인 바뤼흐 스피노자의 유작이다.
스피노자 사후인 1677년에 출간된 《에티카》는 실체·속성·양태에 대한 기하학적 논증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 윤리의 문제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체계를 지닌 저서이다.
개요
존재에 대한 근본적 물음 없이는 자그마한 사태를 다루는 것조차 불가하다. 스피노자는 오로지 존재의 근원적 존재 양식을 규명함을 통해서만 사회의 선악(善惡)과 인간 윤리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에티카》는 이 단순한 진리를 기하학적 증명 방법을 통해 최고존재인 실체에서 유한자로까지 나아가는 산출 원리를 정교하게 서술한다.
제1부: 신에 대하여
스피노자는 고대부터 존재하였던 실체 중심의 존재론 일반의 물음을 제1부에서 제기한다. 제1부에서 실체 개념은 그것의 상관자인 속성과 양태 개념을 중심으로 다룬다.
제1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자기 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같은 본성을 가진 다른 것에 의하여 한정될 수 있는 사물은 자신의 유(類) 안에서 유한하다. 마찬가지로 사유는 다른 사유에 의하여 한정된다. 이에 반하며 물체는 사유에 의하여 한정되지 않으며, 사유도 물체에 의하여 한정되지 않는다.
-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다. 즉 실체는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속성이란 지성이 실체에 관하여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이다.
- 양태는 실체의 변용으로,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며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다.
- 신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즉 모든 것이 각각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이다.
- 오직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1]하며, 자기 자신에 따라서만 행동하게끔 결정되는 것은 자유롭다고 한다. 반대로, 다른 것에 의하여 특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거나 강제되었다고 한다.
- 존재가 영원한 것에 대한 단순한 정의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한, 영원성을 통해서 존재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제1부의 공리는 다음과 같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신 안에 존재하건 아니면 다른 것 안에 존재한다.
- 다른 것에 의하여 파악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에 의하여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주어진 일정한 원인에서 필연적으로 결과가 생긴다. 이와 반대로 일정한 원인이 전혀 주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어떠한 결과도 생길 수 없다.
- 결과의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며 그것을 포함한다.
- 서로 아무런 공통된 것도 가지지 않은 것들은 서로 상대편에게 인식될 수 없으며, 또한 한 개념은 다른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 참다운 관념은 자신의 대상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의 본질에는 존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실체
스피노자에 의하면 실체(Substantia)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며 생각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체는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2] 따라서 실체란 자기 원인(Causa sui)[3]인데, 자기 원인은 자신의 행위에 타성적 근거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원인은 필연적으로 그 결과를 지니는데[4], 실체는 모든 것의 주어진 원인이지만, 어떠한 원인의 결과로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5] 그렇기에 실체는 모든 변용에 앞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존재하는 것은 자신 안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아닌 존재에 의거하여 존재하는 것”[6]인데 실체는 자신 안에서 온전히 존재하는 본질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실체 개념과 상통하는 지점이다.
신은 즉 실체이며, 신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이다. 실체는 모든 것이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7] 더 나아가, 실체는 오로지 하나이며 무한하다. 실체가 유한할 경우 실체는 어떠한 제한성을 지닌 유(類)로서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는 실체가 다른 힘에 의해 타성적으로 제어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앞선 〈정의 3〉에 위배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은 자연이며, 내재적 원인이지 초월적 원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즉 실체의 변용이며 그것의 필연적 원인인데, 변용의 고유한 존재 양식을 초월한 것이 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8] 신에 대한 이와 같은 스피노자의 견해는 중세기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컬어진 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스피노자의 신 또는 실체 개념은 필연적 법칙성을 자신의 전일적인 존재 양식으로 가지는 자연 총체이다. 스피노자는 이에 따라 《지성교정론》에서 어떠한 초월적 원인을 전제하는 기적이나 미신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앞선 이유로 하여, 실체는 모든 사물의 작용인이라고 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은 오로지 무한한 지성에 힘입어야지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된다.[9]
스피노자 철학에서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실체 개념은 모든 자연의 통일과 합법칙성에 관한 그의 유물론적 사고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실체는 모든 ‘개별적 사물’ 즉 환경적 세계의 모든 실재적 대상의 물질적 연관 및 상호작용과 나아가 자연의 여러 과정의 물질적 근원을 표현하는 것이다.[10]
속성
속성(Attributum)이란 지성이 실체에 관하여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이다.[11] 속성은 실체에 대하여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지성이 인식하는 것이다.[12] 다시 말해, 속성은 실체에 대한 지성의 파악 방식이며, 실체가 자신의 실재성 또는 그 유성(類性)[13]을 표현하는 모든 무한한 방식이다.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인 실체는 각각 영원하고 무한한 어떤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존재자이다.[12] 실체의 속성은 무한한 실체에 대한 무한한 표현 방식으로서, 영원한 것[14]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을 구성하는 속성으로 사유 속성과 연장 속성을 언급하는데, 두 속성은 실체를 표현하는 무한한 방식 중 하나이다. 각각 그 양태로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산출하는데, 이는 실체 변용의 일부이다.
양태
양태(Modus)란 실체의 변용(變容)으로,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다.[15] 모든 실체는 본성상 자신의 변용에 앞서기에, 모든 양태는 실체를 그 원인으로 지닌다. 따라서 양태는 실체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고, 또한 파악될 수조차 없다. 양태는 오로지 신성한 본성, 즉 실체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공리 1〉에 의하여 실체와 양태 이외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16]
예를 들어, 어떠한 특정 물체적 존재자, 즉 연장 속성의 특정한 양태는 실체의 변용이다. 이 특정한 변용으로서 실체는 한편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사유 속성에 속하는 정신적인 양태로서의 변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즉 앞에 놓인 물질적 존재인 ‘(물질적인 것으로서의)푸른 사과’는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적 양태로서 존재하는 동시에, 그것과 동일하게 대응되는 정신적 양태로서 ‘(정신적인 것으로서의)푸른 사과’ 역시 사유 속성에 존재한다.
양태는 신이 속성을 통해 그 양태적 변용을 실현하는 것으로, 양태는 신의 어떠한 속성에서 생기는 모든 것과 같이, 필연적으로, 그리고 무한하게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17] 이와 더불어, 실체와 속성에 관한 공리 및 제반 정리에 의하여, 양태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며 다른 것에 의하며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18]
유한자
모든 개물 또는 유한하고 일정한 존재를 소유하는 각각의 사물은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특정한 존재를 소유하는 다른 원인에 의하여 존재와 작용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도, 그리고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이 원인도 또한 마찬가지로 유한하며 특정한 존재를 소유하는 다른 원인에 의하여 존재와 작용으로 결정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도, 그리고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19]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속성의 절대적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은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유한하고 결정된 존재를 소유하는 것은 속성의 절대적 본성에서 산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19] 따라서 여기서 유한자(有限者), 즉 유한 양태는 속성의 절대적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산출된 것이 아니라, 속성의 그 변용으로서 양태가 어떠한 것에서 다른 것으로 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더 근원적인 것―신, 실체, 자연으로 표현되는 무한한 존재―의 활동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20]
정리하자면, 유한 양태는 실체의 신성한 본성의 실현으로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질적으로 다른 양태의 무한한 변화를 표현하는 의미인 한에서의 양태이다. 실체는 유한 양태를 필연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양태의 무한한 변화―즉 특정한 동일 속성 하에서 특정 양태의 생성과 소멸의 무한한 연쇄를 통한―를 통해 그 무한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지성과 의지
현실적 지성은 그것이 유한하든, 무한하든 의지, 욕망, 사랑 등과 같은, 생산된 자연에 포함되는 것이다.[21] 지성은 절대적 사유가 아닌 동시에, 사유의 한 양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성은 사유 속성의 한 양태이다. 지성은 절대적 사유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21]
참다운 관념은 그 관념된 것, 즉 사유의 대상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지성 안에 객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연 안에 주여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22]
의지 역시 사유 속성의 한 양태이다. 각각의 의지 작용은 다른 원인으로부터 규정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도, 작용으로 결정될 수도 없다.[23] 다시 말하여, 지성과 의지는 양태의 일반적 성격을 공유한다. 따라서 신은 의지의 자유도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23]
신의 본성에 대한 두 양태―지성과 의지―의 관계는 운동과 정지, 그리고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게끔 신으로부터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모든 자연물―연장 속성의 양태로서―의 신에 대한 관계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의지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일정하게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규정하는 원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23]
참고 문헌
- B. 스피노자, 강영계 역 (2007), 《에티카》, 서광사.
-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 이을호 편역 (1989), 《세계철학사》, 제2권, 중원문화.
각주
- ↑ 우연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실체의 규정 작용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스피노자는 우연의 객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연은 필연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 불과하다. (I:공리 33.)
- ↑ I:정의 3.
- ↑ I:정의 1.
- ↑ I:공리 3.
- ↑ 따라서 실체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자기 자신에 따라서만 행동하게끔 결정되는 것 곧 자유이다.(I:정의 7.)
- ↑ I:공리 1.
- ↑ I:정의 6.
- ↑ I:정리 18.
- ↑ I:정리 16.
- ↑ 《세계철학사》, 제2권, p. 102.
- ↑ I:정의 4.
- ↑ 12.0 12.1 I:정리 10.
- ↑ 스피노자 철학의 가장 큰 맹점으로 알려져 있다. 무한한 실체가 그 표현 방식으로서, 그 자체로 유한함을 존재 양식으로 지니는 유성(類性)인 속성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18세기를 거쳐 내내 일어났다. 이를 〈범신론 논쟁〉이라고 한다.
- ↑ I:정리 19.
- ↑ I:정의 5.
- ↑ I:정리 15.
- ↑ I:정리 22.
- ↑ I:정리 23.
- ↑ 19.0 19.1 I:정리 28.
- ↑ 신성한 본성의 필연성에서 무한한 것이 무한한 방식으로, 즉 무한한 지성에 의하여 파악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생기지 않으면 안 된다(I:정리 16.) 정리로부터 도출된다. 다시 말하여, 신성한 본성은 동시에 모든 것이 각각 자신의 유(類)에서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속성을 소유한다.
- ↑ 21.0 21.1 I:공리 31.
- ↑ I:공리 30.
- ↑ 23.0 23.1 23.2 I:공리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