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
실재(한자: 實在, 독일어: Realität, 영어: Reality)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및 사태를 총칭한다.
개요
"어떠한 것이 실재한다"라는 말은 "어떠한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또는 "어떠한 사태가 사실로서 주어졌다"는 말과 같다.
철학사적으로 실재는 가장 논란이 많은 개념 중 하나이며, 각 철학 유파마다 다른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객관적 관념론에서 유일한 실재는 정신으로 간주된다. 정신 속에서 찾은 참된 존재가 실재이고, 그것 외의 모든 것은 존재자로 규정된다. 주관적 관념론에서 실재는 이미 인간의 관념 형식에 내재되어 있는 것, 본유하는 것 등으로 취급된다.
고대 그리스의 객관적 관념론자인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참된 실재라고 주장하였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는 세계 이치(logos)를 자연법칙 그 자체라고 보았으며, 인간 심리 현상도 세계 이치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고 간주하였다. 당대 스토아학파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은 구분되지 않았지만, 상이한 규정이라는 인식은 불완전하게나마 존재했다. 스토아학파 철학가들은 인간 인식을 자연존재의 특수한 운동 양상으로 간주하고, 모든 것은 실재의 양상이라고 함으로써 유물론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토아학파는 한편으로 우연을 인정치 않고 필연만을 인정하였기에 고대 노예제에서 지배계급의 반동적 숙명론으로 되었다.
R. 데카르트는 ≪철학의 원리≫에서 이원론적 실재관을 보여준다. 그는 객관적 실재는 둘이 있으며, 하나는 물질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정신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물질의 속성은 연장이며, 정신의 속성은 사유이다. 즉, 연장실체는 물질이고, 사유실체는 정신이라고 하였고, 이 둘은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물질세계는 필연성의 세계이며, 정신세계는 자유의 세계라고 하였다. 말년에 그는 ≪정념에 관하여≫에서 물질과 정신 간 연관성을 말하였으며, 종국적으로는 이원론적 관점을 폐기하였다.
B.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물질과 정신을 포괄하는 실체 개념인 신(deus)을 상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신은 즉 자연이다"라고 주장하며, 신은 자연법칙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제반 자연법칙이 그 스스로 자기원인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능산적이지만, 동시에 자연 개물은, 그것에 작용하는 외적 규정에 의해 필연적으로 동한다는 성격이 항상 있다는 점에서 소산적인 성격을 둘 다 갖췄다고 보았다. 스피노자는 인간 의식 밖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였고, 의식도 자연법칙의 부단한 운동 산물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유물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미 자연법칙의 시원이 자기부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변증법적 사고를 내비친 바 있다.
주관적 관념론자들은 감각적 경험이 가능한 이유를 관념 속의 실재에서 찾는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관념의 형식을 갖는 감성범주와 오성범주를 실재라고 간주하였고, 이 실재가 표상을 구성한 것을 감각경험이라고 취급하였다.
실재에 관한 G. W. F. 헤겔의 학설은 객관적 관념론에 기초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유물론적인데, 헤겔은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고, 객관적 실재를 절대자의 원환적 복귀 운동의 총체적 과정에 대한 일면적 규정과 다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헤겔은 객관적 실재가 주관의 외부에 있다는 규정이 객관적 사태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었지만, 결국 이것이 하나로 통일되는 지점, 즉 복귀된 절대정신이 있으며, 그 절대정신으로부터 실재라는 규정도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객관적 관념론으로 귀착한다.
M. 하이데거, H. 베르그송 등 실존 철학자들은 실재를 인간의 내적 주관적 의지의 담합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이 교의에 따르면, 실재는 인간의 주관에 따라 움직이며, 극단적으로는 인간 의식이 곧 실재를 만들어내는 '실재 창조자'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극단적 유아론은 오늘날까지 부르주아 강단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E. 마하의 요소설은 물질도 아니고 의식도 아닌 실재로서 '요소(要素)'를 주장한다. 마하는 이 요소의 복합체가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의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요소는 인간감관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V. I. 레닌은 요소설을 조잡한 주관적 관념론으로 간주하고,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에서 마하의 요소설을 철저히 비판하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실재는 인간 의식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 및 그것이 존재 양식으로서의 모든 사태를 말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자인 귄터 크뢰버(Gunter Krober)는 여기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사물이 실제로는 사태로 규정된 모든 제 양상을 포함한다고 간주한다:
“ | "'단적으로 존재하는', '사실로 주어진'이라는 뜻으로,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관념적인 것도 실재적이며, 객관적인것뿐 아니라 주관적인 것도 실재적이다. 실재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변하는 서로 다른 철학적 경향을 구분하는 데 충분하지 못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또는 인식론적 실재론은 유물론적일 수도 있고 관념론적일 수도 있다."[1] | “ |
귄터 크뢰버, ≪철학대사전≫, 「실재적」 |
그는 "'실재적이라는 말은 '객관적'이라는 말이나 '물질적'이라는 말과 구별되어야 한다."[2]라고 하여, 실재와 비실재가 객관과 주관과는 다른 범주임을 언급하였다.
참고 문헌
-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편 (1989), ≪철학대사전≫, 동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