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프롤레타리아 독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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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3일 (일) 01:17 판 (새 문서: '''2)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앞서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단순히 정부인사의 변화, 내각의 변화 등이 아니며, 낡은 경제적, 정치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멘셰비키와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은 독재를 마치 불처럼 무서워하고 깜짝 놀라서 독재라는 개념을 ‘권력장악’이란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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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앞서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단순히 정부인사의 변화, 내각의 변화 등이 아니며, 낡은 경제적, 정치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멘셰비키와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은 독재를 마치 불처럼 무서워하고 깜짝 놀라서 독재라는 개념을 ‘권력장악’이란 개념으로 대체하고, 대개 이 ‘권력장악’을 ‘내각’으로 교체, 즉 샤이데만과 노스케, 맥도날드와 헨더슨 같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새 내각의 권력획득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리고 유사한 내각 교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실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실권 장악과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맥도널드와 샤이데만이 집권하는 동안 오래된 부르주아 질서는 유지될 수 있지만, 그들의 소위 정부는 부르주아에 봉사하는 장치, 제국주의의 궤양을 감추기 위한 허상, 억압되고 착취되는 대중의 혁명 운동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의 손에 있는 무기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자본이 허상의 도움 없이 대중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불편하고 무익하고 곤란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본은 허상과 같은 정부를 필요로 한다. 물론, 그러한 정부의 출현은 "저 쪽"(즉, 자본주의 진영에서) 모두가 "시프카 고개"[1]에 있지 않다는 징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정부는 필연적으로 변장한 자본의 정부로 남아있다. 맥도날드나 샤이데만의 정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장악과는 하늘과 땅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정부의 교체가 아니라 중앙과 지방 모두에 새로운 권력기관을 갖는 새로운 국가이다. 그것은 낡은 국가, 즉 부르주아지의 국가의 붕괴 위에 세워진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부르주아적 질서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질서의 파괴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를 타도한 이후 지주와 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정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무력행사를 바탕으로 한 혁명권력이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수중에 있는, 계급의 적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어떤 다른 계급의 독재와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국가는 부르주아지를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계급국가는 다수 피착취자에 대한 착취하는 소수의 독재였던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다수 피착취자의 독재라는 사실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법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힘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통치이며, 노동하고 착취당하는 대중의 동정과 지지를 누리는 통치이다.(레닌, 국가와 혁명)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번째 결론: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완전한’ 민주주의와,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까지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적이며(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비유산자를 위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부르주아지에 대해[2]) 독재적인 국가여야 한다." 보편적인 평등, ‘순수한’ 민주주의, ‘완전한’ 민주주의와 같은 것들에 대한 카우츠키 일파의 이야기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부르주아적 위장이다. ‘순수’ 민주주의 이론은 제국주의 강도들에 의해 길들여져 있고 부양되고 있는 노동계급 상층의 이론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궤양을 감추고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착취당한 대중에 대한 투쟁에서 도덕적 힘을 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취당한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자유"는 없으며, "자유"의 향유에 필수적인 전제, 인쇄 공장, 종이 공급물 등이 착취당한 사람들의 특권이라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취당한 대중들은 그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자본주의의 조건 하에서, 정부는 국민에 의해 설정되지 않고 로스차일드 가문과 스티네스 가문, 록펠러 가문과 모르간 가문에 의해 설정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민주주의이며, 피착취자 다수의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다수에게 반하며 착취하는 소수의 민주주의이다. 오직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만 피착취자를 위한 진정한 자유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국가통치에의 진정한 참여가 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소수에 대항하는 피착취 다수의 민주주의이다.


두 번째 결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사회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평화로운 발전의 결과로써 생성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부르주아 국가기구, 부르주아 군대, 부르주아 관료기구, 부르주아 경찰을 타도한 결과로써 생성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문 서문에서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운영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과제는 "...이전처럼 더 이상 관료-군사 기구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수는 것이다... 이것이 대륙의 모든 실제 인민 혁명의 예비조건"이라고 맑스는 1871년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3]


Marx's qualifying phrases about the continent gave the opportunists and Mensheviks of all countries a pretext for clamouring that Marx had thus conceded the possibility of the peaceful evolution of bourgeois democracy into a proletarian democracy, at least in certain countries outside the European continent (Britain, America). Marx did in fact concede that possibility, and he had good grounds for conceding it in regard to Britain and America in the seventies of the last century, when monopoly capitalism and imperialism did not yet exist, and when these countries, owing to the particular conditions of their development, had as much as yet no developed militarism and bureaucracy. That was the situation before the appearance of developed imperialism. But later, after a lapse of thirty or forty years, when the situation in these countries had radically changed, when imperialism had developed and had embraced all capitalist countries without exception, when militarism and bureaucracy had appeared in Britain and America also, when the particular conditions for peaceful development in Britain and America had disappeared-then the qualification in regard to these countries necessarily could no longer hold good.

"Today," said Lenin, "in 1917, in the epoch of the first great imperialist war, this qualification made by Marx is no longer valid. Both Britain and America, the biggest and the last representatives-in the whole world-of Anglo-Saxon 'liberty' in the sense that they had no militarism and bureaucracy, have completely sunk into all-European filthy, bloody morass of bureaucratic-military institutions which subordinate everything to themselves and trample everything underfoot. Today, in Britain and in America, too, 'the preliminary condition for every real people's revolution' is the smashing, the destruction of the 'ready-made state machinery' (perfected in those countries, between 1914 and 1917, up to the 'European' general imperialist standard)" (see Vol. XXI, p. 395).

In other words, the law of violent proletarian revolution, the law of smashing of the bourgeois state machine as a preliminary condition for such a revolution, is an inevitable law of the revolutionary movement in the imperialist countries of the world.

Of course, in the remote future, if the proletariat is victorious in the principal capitalist countries, and if the present capitalist encirclement is replaced by a socialist encirclement, a "peaceful" path of development is quite possible for certain capitalist countries, whose capitalists, in view of the "unfavourable" international situation, will consider it expedient "voluntarily" to make supposition concessions to the proletariat. But this supposition applies only to a remote and possible future. With regard to the immediate future, there is no ground whatsoever for this supposition.

Therefore, Lenin is right in saying:

"The proletarian revolution is impossible without the forcible destruction of the bourgeois state machine and the substitution for it of a new one" (see Vol. XXIII, P. 342)

  1. 1877년부터 1878년까지 치러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발칸 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지키는 유일한 요충지로서 러시아와 불가리아 연합군이 이 곳을 장악하자 오스만 제국군이 항복한 역사적 배경에 의한 비유 -- 역자의 주
  2. 강조추가. -- 필자의 주
  3. 카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카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Selected Works, Vol. I, p. 22, Vol. II, p. 420, Moscow 195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