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프롤레타리아 독재(1)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3일 (일) 01:26 판


레닌주의의 기초
III. 이론
1)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구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 주제에서 나는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구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b)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c)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국가 형태로서의 소비에트 권력


1)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구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는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주요 내용에 관한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것의 운동, 그것의 진로와 성과는 오직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통해서만 피와 살을 얻는다. 이는 첫째로 타도된 착취자들의 반항을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과물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성해내고 혁명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졌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없다 하더라도 부르주아지를 패퇴시킬 수 있고 그 권력을 타도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이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자신의 주요한 대들보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형태로 특별한 기관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할 수 없으며, 그 승리를 유지하고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로까지 밀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주요 지지자로 삼는다.


"모든 혁명의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의 문제이다."(레닌) 이것은 필요한 것은 권력을 장악하고 장악하는 것 뿐이라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권력 장악은 시작일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일국에서 타도된 부르주아지는 장기간, 이를 타도한 프롤레타리아보다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목표는 권력을 획득하여 강화하고 이를 정복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승리한 ‘직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직면하게 되는 적어도 세 가지 주요과제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a) 혁명으로 타도되어 재산을 몰수당한 지주와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그들의 일부에서 자본의 권력을 회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일소하는 것;

b) 프롤레타리아트 주위에 모든 근로인민을 결집하는 방법으로 건설을 조직하고, 이러한 사업을 계급의 폐지, 소멸에 대비하는 노선을 따라 실행하는 것;

c) 국외의 적에 대한 투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 혁명을 무장시키고 혁명군대를 조직하는 것.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고 완수하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전환은 전체 역사적 시대를 대표한다.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착취자들은 필연적으로 회복의 희망을 품고 있으며, 이 희망은 회복을 위한 시도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심각한 패배 이후 , 타도된 착취자들은 자신들의 타도를 예상하지도 못했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을 결코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열 배로 커진 에너지와 백 배로 커진 맹렬한 열정과 증오로 '낙원'을 회복하기 위한 전투에 몸을 던졌다. ' 그토록 달콤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온 가족을 대신하여 그들은 이제 '일반 군중'이 파멸과 빈곤(또는 '일반 노동자'...)을 선고받고 있는 것'을 박탈당했다. 자본가 착취자들의 대열은 광범위한 쁘띠부르주아 대중을 따르는데, 이들에 대해 수십 년에 걸친 모든 나라의 역사적 경험은 그들이 동요하고 머뭇거리며 어느날은 프롤레타리아트 뒤에서 행진하다가 다음 날은 혁명의 고난에 겁을 먹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패배하거나 반(半)패배하면 공황 상태에 빠지고, 초조해지고, 서두르고, 비웃고, 이 진영에서 다른 진영으로 도망간다.”(Vol. XXIII, p. 355을 보라)


부르주아지는 회복을 시도할 토대가 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는 자신을 타도한 프롤레타리아트보다 오랫동안 더 강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착취자들이 한 나라에서만 패배한다면 이것은 물론 전형적인 경우이다.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드문 예외이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피착취자들보다 더 강하다(같은 책, 354 페이지)


타도된 부르주아지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국제적인 자본의 힘에, 부르주아지의 국제적 연결이 갖는 힘과 그 지속성에.”(Vol. XXV, p. 173을 보라.)


둘째, “혁명 이후에도 오랫동안 착취자들은 필연적으로 많은 거대한 실제적 이점을 갖고 있는 바, 여전히 돈(화폐를 한꺼번에 모두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과 약간의−종종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동산을 갖고 있고, 여전히 다양한 연고관계, 조직과 관리의 기질, 관리의 모든 비법(관습, 방법, 수단 및 가능성)에 관한 지식, 고등교육, (부르주아처럼 생활하고 사고하는) 고급 전문인과의 밀접한 관계, 전쟁기술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경험(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등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Vol. XXIII, p. 354을 보라.)


셋째, “관습의 힘, 소생산이 갖는 힘에.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소생산은 여전히 세계에 매우, 매우 광범하게 퍼져있으며, 소생산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를 계속해서, 매일, 매시간, 자생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생시키기 때문에”…왜냐하면 “계급의 폐지는 지주와 자본가를 축출하는 것−우리가 비교적 쉽게 성취했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소상품생산자를 근절시키는 것을 뜻하며 그들은 축출될 수도 분쇄될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고, 그들은 오직 매우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이고 신중한 이런 이유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더 강력한 적, 자신이 타도됨으로써 열배로 저항을 증대시키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새로운 계급이 수행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무자비한 전쟁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구 사회의 세력과 전통에 대한 유혈이든 무혈이든, 격렬하든 평화적이든,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교육적이든 행정적이든−완강한 투쟁이다.”조직사업을 통해서만 개조되고 재교육될 수 있기(또한 되어야 하기)” 때문에.(XXV, pp.173와 189를 보라.)


그래서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더 강력한 적, 자신이 타도됨으로써 열 배로 저항을 증대시키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새로운 계급이 수행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무자비한 전쟁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구 사회의 세력과 전통에 대한 유혈이든 무혈이든, 격렬하든 평화적이든,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교육적이든 행정적이든−완강한 투쟁이다.(같은 책, pp. 173, 190)


거의 논증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과제들을 단시간에 실행하고 수년 내로 이 모든 것을 성취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독재, 즉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초혁명적’ 행동과 법률로 이루어지는 덧없는 시기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내전과 외환, 지속적인 조직사업과 경제 건설, 진보와 후퇴, 승리와 패배로 점철된 하나의 완전한 역사적 시기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에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경제적 문화적 선결조건들을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첫째, 자신을 교육하여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세력으로 단련되는 것, 둘째,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를 보장하는 노선을 따라 부르주아층을 재교육시키고 개조하는 것이 요구된다.


맑스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존 조건을 바꿀 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도 바꾸고 정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하려면 15년, 20년, 50년의 내전과 국제 갈등을 겪어야 한다.” (카를 맑스 및 프리드리히 엥겔스, Works, Vol. VIII, p. 506를 보라.)


맑스의 사상을 계속 발전시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는 수백만 명의 농민과 소농, 수십만 명의 직장인, 관료, 부르주아 지식인을 재교육하고, 그들 모두를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지도부에 복종시키고, 부르주아 습관과 전통은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초하여 수행되는 장기간의 투쟁에서" 기적으로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편견을 단번에 버리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자신을 재교육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성모 마리아의 명령에 따라, 슬로건, 결의안, 법령의 명령에 따라, 그러나 이는 대중 소부르주아 영향력에 대항하는 길고도 어려운 대중 투쟁의 과정에서만 가능하다.(Vol. XXV, pp. 247, 248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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