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당(1)
좌파도서관
8. 당
혁명 이전 시기, 다소간 평화로운 발전의 시기에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노동운동에서 지배적 세력이었고, 의회투쟁 형태가 투쟁의 기본형태로 인정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당이 이후에 공공연한 혁명투쟁이라는 조건하에서 가지게 되는 중대하고 결정적인 의의를 갖지 못하고 가질 수도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면서 카우츠키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은 평화의 도구이지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전쟁 시기, 프롤레타리아계급이 혁명적으로 행동한 시기에 아무런 중대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무기력했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투쟁에 맞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적 정당이 아니며,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이끌지도 못하며, 단지 의회선거와 의회투쟁에 적합한 선거조직일 뿐임을 뜻한다.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한 정치조직이 당이 아니라 의회 의원단이었다는 사실도 바로 이것에 기인한다. 알다시피 이 시기에 당은 사실상 의회 의원단의 부속물이었고 심부름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당의 지도하에서는 혁명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준비시키는 문제는 제기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기가 닥쳐오면서 문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새로운 시기는 계급 간에 공공연히 충돌하는 시기이며,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으로 행동하는 시기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이며,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기 위한 역량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 프롤레타리아트는 새로운 임무에 직면했다. 새로운 혁명적 노선에 입각하여 당의 모든 작업을 재조직하는 임무, 노동자들을 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적 투쟁의 정신으로 교육시키는 임무, 예비군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임무, 이웃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하는 임무, 식민지 및 종속국의 해방운동과 튼튼한 연계를 맺는 임무 등등이다. 이러한 새로운 임무들이 의회주의라는 평화스러운 조건하에서 성장한 낡은 사회민주당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절망적인 자포자기와 필연적인 패배에 내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들을 짊어지고도 낡은 당의 지도하에 남아 있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완전히 무장해제 될 것이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상태를 참고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당, 전투적인 당, 혁명적인 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선두에 설 만큼 용감하고, 혁명적 상황의 복잡한 조건 가운데서 진로를 찾아낼 만큼 충분히 숙련되어 있으며, 목적에 이르는 길에 놓인 모든 암초를 피해 갈만큼 유연한 당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당이 없다면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전취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새로운 당은 레닌주의 당이다.
이 새로운 당의 구체적 특성은 무엇인가?
1) 당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이다.
당은 무엇보다 먼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여야 한다. 당은 노동계급의 우수한 분자들, 그들의 경험, 그들의 혁명성, 프롤레타리아트 대의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헌신성을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당이 진정으로 선진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혁명이론과 혁명법칙 및 운동법칙에 관한 지식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이것이 없다면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고 갈 수 없다. 만약 당이 노동계급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에 그 자신을 제한한다면, 만약 자연발생적인 운동의 뒤꽁무니를 따라 간다면, 만약 자연발생적인 운동이 지니는 정치적 무관심과 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만약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인 이해를 초월할 수 없다면, 만약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당은 진정한 당이 아니다. 당은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야 하며, 노동계급보다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며, 자연발생성의 뒤꽁무니를 따를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고 가야 한다. “추수주의”를 설교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지 수중에 있는 도구라고 선언하는 부르주아 정책의 전달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부대라는 관점을 취하며,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당만이, 오직 이러한 당만이 노동계급을 노동조합주의의 좁은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당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도자이다.
앞에서 노동계급 투쟁의 어려움, 투쟁의 복잡한 조건들, 전략과 전술, 예비군과 기동작전 그리고 공격과 후퇴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 조건들은 적어도 전쟁의 조건들 못지않게 복잡하다. 누가 이러한 조건들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으며, 누가 수백만 프롤레타리아트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가? 어떠한 군대든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노련한 참모부가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불구대천의 적에게 유린되지 않으려면 그러한 참모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디에 이러한 참모부가 있는가? 그러한 참모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당이다. 혁명적 당이 없는 노동계급은 참모부 없는 군대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참모부다.
그러나 당은 단지 선진부대일 수만은 없다. 동시에 계급부대, 계급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자기 존재가 계급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야 한다. 선진부대와 노동계급의 나머지 부분과의 차이, 당원과 비당원과의 차이는 계급이 소멸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차이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열이 다른 계급으로 보충되는 한, 전체 노동계급이 선진부대의 수준이 되지 않는 한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차이가 넓어지고, 비당원 대중들로부터 고립되어 분리된다면, 당은 하나의 당이기를 멈출 것이다. 만약 비당원 대중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만약 당과 비당원 대중들 간에 연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약 대중들이 당의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만약 대중들 사이에서 도덕적 정치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당은 계급을 지도할 수 없다.
최근에 당은 노동자중 20만 명을 새로운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지 스스로 입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머지 모든 비당원 대중에 의해 당에 파견되었다는 점이다. 즉 비당원 대중이 신입당원 입당에 적극적 역할을 했으며, 이들의 동의 없이는 신입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비당원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대중들이 우리 당을 자기 당, 자기에게 가깝고 친근한 당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당의 확대와 강화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자기의 운명을 당에 맡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당을 비당원들과 연결하는 이러한 무형의 정신적 줄이 없다면 당은 그 계급의 결정적인 힘이 될 수 없다.
당은 노동계급의 분리할 수 없는 한 부분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계급의 당이다. 따라서 거의 전 계급(전쟁기나 내전기에는 완전히 전체계급)이 우리 당의 지도하에 행동해야 하며, 우리당에 가능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한시라도 전체계급 대부분 혹은 계급 전체가 그 계급의 선진부대 즉 사회민주주의당의 의식성과 적극성의 수준으로 고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닐로프주의12)이며 ‘추수주의’이다. 지각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라면 자본주의 하에서 심지어 (보다 초보적이며 의식수준이 낮은 계층에게 가장 알맞은)노동조합조직도 전체계급 대부분 혹은 계급 전체를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선진부대와 그들을 따라가는 전체 대중과의 차이를 망각하여 광범위한 계층을 이러한 선진적인 수준으로 고양시켜야 할 선진부대의 임무를 망각한다면 이것은 단지 자신을 기만하고, 우리 임무가 지니는 중대함에 눈을 감고, 이러한 임무를 협소화하는 것을 뜻한다.”(제6권, p. 205-206을 보라)13)
2) 당은 노동계급의 조직된 부대이다
당은 단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만은 아니다. 당이 진정으로 계급투쟁을 지도하길 원한다면 동시에 그 계급의 조직된 부대이어야 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당의 임무는 방대하고 대단히 다양하다. 당은 국내외의 전진이 극히 어려운 조건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지도해야 한다. 정세가 공격을 요구할 때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공세로 이끌어야 한다. 정세가 퇴각을 요구할 때는 강력한 적의 타격으로부터 벗어나게 프롤레타리아트를 인솔해야 한다. 수백만의 조직되지 않은 비당원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규율성과 체계성, 조직성과 인내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당 그 자체가 규율과 조직의 구현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된 부대인 경우에만, 당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광범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대한 당의 참된 지도를 말할 수 없다.
당은 노동계급의 조직된 부대이다.
조직된 전체로서의 당에 대한 사상은 우리 당의 규약 제 1 조에 있는 레닌의 유명한 정식화에서 구현되어 있다. 거기서는 당을 조직들의 총화로 보고 있고 당원은 당 조직들 중의 어느 하나에 속한 일원으로 보고 있다. 1903년에 일찍이 이 정식화에 반대했던 멘쉐비끼는 이 정식화를 자유입당 “제도”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입당 제도는 이래저래 당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당 조직 중의 어느 하나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하기를 원하지 않는 “교수”나 “학생” 및 모든 “지지자”나 “파업참가자”에게도 당원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이런 기묘한 “제도”가 우리 당내에 자리 잡게 되었더라면, 당은 필연적으로 교수들과 학생들로 넘쳐나고, 하나의 느슨하고 무정형의 혼란된 “형태”로 타락했을 것이다. “동조자들”의 바다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며, 당과 계급 사이의 경계선이 지워졌을 것이다. 미조직 대중들을 선진부대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당의 임무는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논증할 필요도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르또프 동지의 견해를 보면 당의 경계가 전혀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모든 파업 참가자’가 ‘스스로를 당원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슨함으로부터 어떠한 이로움이 생기는가? ‘명칭’이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 해악은 계급과 당을 혼동하는 조직 해체의 사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제6권, p. 211을 보라)14)
그러나 당은 단순히 당 조직들의 총합만은 아니다. 당은 동시에 조직들의 통일적 체계이다. 조직들이 정식(正式)으로 결합된 통일적 전체이다. 상하(上下)지도 기관을 가지고 있고, 소수가 다수에 복종하며, 모든 당원들에게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실천적 결정을 하는 조직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당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통일적으로 조직된 전체일수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전에는 우리 당은 정식으로 조직된 전체가 아니라 고립된 써클들의 단순한 총합에 불과했으며 따라서 이들 써클 사이에 사상적 영향력 이외에는 어떤 관계도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망각해 버렸다. 지금 우리는 하나의 조직된 당이 되었고 이는 권력의 수립을 의미하며 사상적 힘의 권력적 권위로의 전환, 당의 상급 기관에 대한 하급 기관의 복종을 의미한다.”(제6권, p. 291을 보라)15)
다수가 소수에 복종하고 중앙이 당 활동을 지도한다는 원칙은 동요분자들로부터의 공격, 즉 “관료주의”니 “형식주의”니 하는 등등의 비난을 종종 일으킨다. 그러나 증명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원칙들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전체로서의 당이 계획적인 사업을 할 수도 없으며, 노동계급투쟁을 지도할 수도 없다. 조직문제에 있어서 레닌주의는 이러한 원칙들을 확고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원칙에 반대하는 것을 조롱거리로 일축하며 “러시아적 허무주의”, “귀족적 무정부주의”라고 하였다.
레닌은 ≪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 이러한 동요분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귀족적 무정부주의는 특히 러시아 허무주의자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들은 당 조직을 괴물 같은 ‘공장’으로 생각하고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종,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농노제’로 생각하고 … 중앙기관 지도하의 분업은 사람을 ‘톱니바퀴와 나사’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반대하여 희비극적 절규를 일으키며 … 당의 조직 규약에 대해서 말하면서 경멸하듯 얼굴을 찡그리고 규약 따위는 전혀 없어도 괜찮다는 모멸적인 … 비평을 내뱉는다.”
“관료주의에 대한 이 유명한 아우성은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에 대한 불만을 가리는 휘장에 불과하며, … 무화과 나뭇잎에 불과하다. 너는 관료주의자이다. 왜냐하면 너는 대회에서 나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의지에 반하여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형식주의자이다. 왜냐하면 너는 나의 동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형식적인 결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너는 대단히 기계적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왜냐하면 너는 당 대회에서 ‘기계적’ 다수파에 의거하고 있으며 보선에 의하여 충원되고자 하는 나의 희망을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이다. 너는 전제군주이다. 왜냐하면 너는 오래 된 동료들16)에게 권력을 양도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제6권, p.310 및 p. 287을 보라)17)
3)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당은 노동계급의 조직된 부대이다. 그러나 당이 노동계급의 유일한 조직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또한 많은 다른 조직들을 가지고 있다. 그 조직들이 없이는 자본에 반대하여 성과적인 투쟁을 할 수 없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장조직, 의회 의원단, 비당원 여성협회, 출판 기관, 문화 교육 단체, 청년동맹, 혁명적 군사조직(공공연한 혁명적 활동시기의), 국가적 조직 형태로서 대표자 쏘비에뜨(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았을 경우) 등이다. 이러한 조직들 중의 대부분이 당 밖에 있는 조직이며, 그 중의 일부만이 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당의 파생조직을 구성한다. 이러한 모든 조직들은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노동계급에게 절대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조직들이 없다면 당은 계급투쟁의 여러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를 강화할 수 없으며, 부르주아 제도를 사회주의 제도로 바꾸는 사명을 띤 역량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단련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조직들을 어떻게 통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가? 이 많은 조직들을 지도하는데 있어 혼란을 낳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무엇인가? 이들 각각의 조직들이 각자의 고유한 특정분야에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서로 지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조직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활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 조직은 하나의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어 보자. 이 모든 조직들의 행동 노선, 일반적 방침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필요한 경험을 지니고 있기에 총 노선을 작성할 수 있으며, 충분한 권위를 가지고 있기에 조직들이 그 노선을 수행하게 하여 지도에서 통일성을 획득하고 혼란을 없앨 수 있는 중심조직이 있는가?
그 조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이다.
당은 이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 밖에 있는 조직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또 일상적으로 그 조직들을 지도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가장 우수한 분자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노동계급의 가장 우수한 분자들이 결집한 당은 계급내의 모든 형태의 조직을 지도할 줄 아는 노동계급의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최고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노동계급의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최고의 학교로서의 당은 그 경험과 권위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대한 지도를 집중하며, 노동계급의 모든 당 밖에 있는 조직을 당과 계급을 연결하는 보조기관이나 매개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물론 이 말은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의 당 밖의 조직들이 형식적으로 당의 지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러한 조직들에 소속되어 있으며 확실하게 그 조직들에 영향을 미치는 당원들이 당 밖의 조직을 설득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에 근접하고 자발적으로 당의 지도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레닌이 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단결의 최고형태”이며, 그 정치적 지도력을 다른 모든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조직에 확장시켜야만 한다고 말한 이유이다.(제25권, p. 194을 보라)18)
당 밖에 있는 조직들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주장하는 기회주의 이론은 무소속 의회 의원이나 당을 떠난 출판계 활동가들, 식견이 협소한 노동조합 지도자나 속물이 되어버린 협동조합 간부를 양산하는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론은 레닌주의 이론 및 실천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
4)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도구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그 계급의 조직들 가운데 주요한 지도핵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표나 자족적인 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단결의 최고형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을 경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위한 도구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미 달성되었을 경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고 확대하기 위한 도구이다. 만약 제국주의의 제 조건, 전쟁의 불가피성, 공황의 실재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역량을 한 곳에 집중하며 혁명운동의 모든 실오라기를 한 곳에 모이게 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당은 그렇게 중요한 의미로 부상될 수 없었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다른 모든 조직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확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성공적인 권력 장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참모부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조직을 자신의 주위로 불러 모으고 투쟁이 전진하는 동안 전체 운동에 대한 지도를 집중할 수 있는 당이 없었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혁명적 독재를 수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독재를 유지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독재를 강화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누구나 확실히 알다시피 만일 우리 당에 가장 엄격하고 진정 강철 같은 규율이 없었더라면, 또 노동계급 전체 대중이, 즉 후진계층을 지도하거나 자신들과 나란히 가도록 할 수 있는 사려 깊고 정직하고 헌신적이며 유력한 모든 사람들이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볼쉐비끼가 2년 반은커녕 단 2개월 반도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제25권, p. 173을 보라)19)
그런데 독재를 “유지”하고 “확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규율과 조직성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중들 사이에 소부르주아 분자들의 자생력과 소부르주아 습성의 좀먹는 영향을 막는 방패와 방파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소부르주아 층을 재교육시키고 개조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적 활동을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이 계급을 폐지시키고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는 조건을 준비할 수 있는 역량으로 스스로를 교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결되고 규율 있는 강력한 당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을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낡은 사회의 힘과 전통에 맞선 집요한 투쟁으로서, 유혈 투쟁과 무혈 투쟁, 폭력 투쟁과 평화 투쟁, 군사 투쟁과 경제 투쟁, 교육 투쟁과 행정 투쟁이다. 수백, 수천 만 명이 갖고 있는 습성의 힘은 가장 무서운 힘이다. 투쟁 속에서 단련된 철의 당 없이, 일정 계급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의 신뢰를 누리는 당 없이, 대중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그것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당 없이, 그와 같은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는 없다.”(제25권, p. 190을 보라)20)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를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당이 필요하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도구이다.
그런데 여기서 계급이 사라지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없어지면 당도 없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5) 당은 분파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의지의 통일체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쟁취와 유지는 단결되고 철의 규율을 지닌 강력한 당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당내에서 철의 규율은 의지의 통일이 없이는, 모든 당원들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인 행동의 통일이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다. 물론 이로 인해 당내 의견대립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철의 규율은 비판주의와 당내 의견대립을 없애지 않고 전제로 한다. 규율이 “맹목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반대로 철의 규율에 대한 복종은 의식성과 자발성을 배제하지 않고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오직 자각적인 규율만이 철의 규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대립이 좁혀지고 난 후에는, 비판이 남김없이 행해지고 하나의 결정이 내려지고 난 후에는 모든 당원들의 의지와 행동의 통일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이것이 없이는 당의 통일이나 당내 철의 규율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첨예한 내전의 현 시기에 있어서 공산당은 가장 철저한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군사적 규율에 가까운 철의 규율이 당을 지배해야만, 당 중앙이 당원들의 전면적 신임을 받으며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 엄격하고 권위 있는 기관이 되어야만 당의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다.”(제25권, p. 282-283을 보라)21)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이전 투쟁시기 당내 규율에 대한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한 후의 당내 규율도 역시 동일하지만 더욱 강조된다고 할 수 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구든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철의 규율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킨다면(특히 프롤레타리아독재기 동안) 사실상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여 부르주아지를 돕는 자이다”(제25권, p. 190을 보라)22)
그런데 여기서 분파의 존재는 당의 통일이나 당의 강철 같은 규율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분파가 존재하면 여러 개의 중앙이 있게 된다. 여러 개의 중앙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내에 하나의 공통된 중앙이 없으며 의지의 통일이 깨어지고, 규율이 약화되어 해이해지고, 독재가 약화되어 붕괴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반대하여 투쟁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이끌려고 하지 않는 제2 인터내셔널의 당들은 분파의 자유라는 자유주의를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의 규율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쟁취하며 공고히 하는 임무에 기초하여 활동하는 국제 공산당의 정당들은 “자유주의”나 분파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
당은 의지의 통일체이다. 어떠한 파벌활동도 어떠한 당내 권력 분산도 배격한다.
레닌은 “당내 통일과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의지의 통일이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승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분파적 활동의 …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이런 레닌의 경고는 우리 당 제10차 대회의 특별결의문 “당의 통일에 관하여”23)에 구체화되어 있다.
그래서 레닌은 “모든 분파를 완전히 소멸시킬 것”, “이러저러한 강령에 기초하여 형성된 모든 그룹은 예외 없이 즉각 해산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시 “당에서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으로 추방한다.”고 하였다.(결정서 “당의 통일에 관하여”를 보라)
6) 당은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숙청함으로써 강력해진다
당내 분파주의의 근원은 기회주의적 분자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계급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프롤레타리아트화한 농민과 소부르주아지 및 지식인 출신들이 끊임없이 유입된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 상층, 주로 부르주아지가 식민지로부터 뽑아낸 초과이윤에 의해 사육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은 타락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노동자층 혹은 ‘노동귀족들’은 생활방식에서나, 수입의 규모에서나, 전체적 사고방식에서나, 완전히 속물적이고 부르주아화 되었다. 이들이 제2 인터내셔널의 주요 버팀목이며 오늘날 부르주아지의 사회적(군사적이 아닌) 버팀목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노동계급 운동에서 부르주아지의 진정한 앞잡이이며 자본가계급의 노동담당 보좌관이며 개량주의와 배외주의의 실질적인 전파자이기 때문이다.”(제19권, p. 77을 보라)24)
이 모든 소부르주아그룹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당내에 기어들어와 동요하는 기회주의 풍조와 풍기문란하고 반신반의한 기질을 끌어 들인다. 이들이 바로 파벌활동과 분열의 주요 근원이며 조직을 파괴하며 내부로부터 당을 와해시키는 원천이다. 이러한 “동맹군”을 후방에 두고서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은 전후방으로부터 협공당하는 처지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자들과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이들을 당에서 추방하는 것은 제국주의와 성과적으로 투쟁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당내 사상투쟁으로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쳐부순다”는 이론, 일개의 당 범위 안에서 이들을 “극복한다”는 이론은 근거가 불충분하고 위험하다. 이 이론은 당을 활동불능과 만성병에 빠지게 하며, 당을 기회주의의 먹이로 만들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당이 없이 남아 있게 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와 투쟁에서 자신의 주요한 무기를 잃게 할 위험이 있다. 만약 우리 당에 마르또프와 단, 뽀트레쏘프와 악쎌로드와 같은 이들이 남아있었다면, 정도(正道)를 가지도, 권력을 장악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조직하지도, 또 내전에서 승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당은 내적 통일과 비할 데 없는 단결을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기회주의 쓰레기를 제때에 청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내의 청산주의자들과 멘쉐비끼를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당은 기회주의자, 개량주의자, 사회 제국주의자, 사회 배외주의자, 사회 애국주의자, 사회 평화주의자를 일소함으로써 발전하고 강고하게 된다.
당은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당에서 추방함으로써 강고하게 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대열 내부에 개량주의자들, 멘쉐비끼들이 있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승리를 지킬 수 없다. 이는 원칙적으로 자명하며 러시아와 헝가리의 경험에 의해 확증되었다. … 러시아에서 만일 멘쉐비끼와 개량주의자들 그리고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우리 당내에 남아 있었다면 소비에트권력은 거의 틀림없이 전복되었을 어려운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 …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탈리아에서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결정적인 전투가 임박해 있다. 이러한 때에 당으로부터 멘쉐비끼들, 개량주의자들, 뚜라띠주의자들25)을 제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비록 뛰어난 공산주의자라도 동요하기 쉽고 개량주의자들과의 ‘통합’에 대해 동요하는 경향이 보인다면 축출하거나 모든 책임적 지위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것 이심지어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혁명전야에 그리고 혁명의 승리를 위한 가장 치열한 투쟁의 시기에는 당 내부의 극히 사소한 동요도 모든 것을 파멸시키며, 혁명을 사산시키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서 권력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권력은 아직 공고하지 못하며 그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때에 동요하는 지도자가 물러나는 것은 당과 노동계급운동 그리고 혁명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이다.”(제25권, p. 462-464을 보라)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