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좌파가 아니다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19일 (목) 10:01 판
난 좌파가 아니다




신현수



비 내리는 날
낡은 유모차에 젖은 종이 박스 두어 장 싣고 가는
노파를 봐도
이제 더 이상 가슴 아프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네온 불 휘황한 신촌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
온몸을 고무로 감고
사람의 숲을 뚫고 천천히 헤엄쳐 가는
장애인을 봐도
이제 더 이상 가슴 저리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천일 가까이 한뎃잠을 자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봐도
이제 그 이유조차 궁금하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제초제를 마시고 죽은 농민을 봐도
몸에 불 질러 죽은 농민을 봐도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으므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난 좌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