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네그리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3월 26일 (토) 14:24 판
안토니오 네그리
Antonio Negri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이 공산주의에 대한 적극적 암시인 한 그것은 공산주의의 역동성이 지닌 필수 요소다.
출생
출생
1933년 8월 1일

이탈리아 왕국 파도바
국적
국적
이탈리아
약력
약력
파도바 대학 졸업
파도바 대학 법철학 교수
노동자의 힘 창립 멤버
노동자의 자율 창립 멤버


개요

이탈리아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자 철학지. 노동자주의(오페라이스모),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창시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생애

이탈리아 파도바의 좌파 노동자 집안에서 1933년 8월 1일에 태어났다. 불과 2살 때 아버지를 파시스트들에게 잃었고, 성장한 후에는 파도바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를 지내면서 사회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상황은 혼란스러웠다. 전후 50~60년대를 거쳐 북부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북부의 급진적 노동자 정치세력이 성장하는 시점에서, 정부는 반공주의를 내걸고 사회 탄압이 극심했다. 이 와중에 기존 좌파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당은 63년 보수당인 기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우경화의 기미를 보였고, 이에 노동자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한편 이탈리아 공산당소련에 비판적이어서 스탈린에 비판적인 유로코뮤니스트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역시 40년대에 기민당과 결탁한 전력이 있었으며, 노동자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노동자들의 정치파업을 막았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는 투쟁 지속, 붉은 여단 등의 비의회 좌파 운동이 활발해졌고, 마침 기민당과의 비타협 노선을 밝힌 공산당까지 합쳐 대략 35%의 지지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의회좌파 운동은 노선투쟁이 심각하여 서로 암살 테러를 벌이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네그리는 50년대 중반부터 교수를 병행하면서 노동조합 조직가로써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비의회 좌파 운동에서 사상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네그리는 공장 안 명령 체계처럼 일사불란함을 유지하고 싶어하던 노동조합들에게 반대하고 노동자들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노동자주의(오페라이스모)라고 한다. 이를 노동조합 외부로 확장시킨 것이 자율주의 운동이다. 그러다가 붉은 여단이 알도 모로 수상 납치살해 사건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탄압을 받게 되자 네그리는 1979년, 알도 모로 수상 살해의 주모자로 체포되었다. 네그리는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었는데, 오히려 네그리는 이 때 붉은 여단의 무장투쟁을 비판하는 문서에 서명했다가 최우선 암살 대상으로 찍힌 상태였으며 자율주의 운동의 특별한 스탠스 때문에 기존 좌파 정당으로부터도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던 상태였다. 이 때 활약한 것이 이탈리아 언론으로, 이탈리아 언론을 장악한 사람은 베를루스코니라서 특정 정파의 유력한 사상가 중 한명일 뿐인 네그리를 좌파의 마왕(까띠보 마에스트로 - 검은 지휘자)쯤 되는 위치인 양 선동하였다. 베를루스코니는 후술할 네그리의 망명 해제 과정에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악연을 유지했다.

네그리는 수감 생활 중 1983년 의원 면책 특권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당선되어 면책 특권으로 잠시 풀려나지만, 면책 특권 박탈을 위한 소송이 시작되고 두 달 후 기어이 하원에서 면책특권을 박탈당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네그리는 체포될 때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철학자들이 구명운동을 전개할 정도로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망명 생활 중 파리 제 8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고 자신의 철학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997년 아직도 수배와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자율주의 운동가들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망명생활을 끝내고 이탈리아로 돌아왔지만, 다시 수감되었다. 네그리가 재수감될때 전세계적인 구명운동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이후 1999년부터는 가택 연금으로 전환되었고, 2003년이 되어서야 연금에서 풀려났다. 이후 활발한 저술, 강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사상

네그리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네그리와 교류하였던 질 들뢰즈, 데리다, 푸코, 가타리 등 소위 68세대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네그리의 작업은 이들의 철학적 유산을 종합하여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점점 가시적인 동질성이 약해지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혁명의 주체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이 작업의 결과물이 제국(empire)과 다중(multiple)에 관한 저작들이다.

제국은 현 시대의 상태를 규정한 것으로써, 체제의 외부를 만들지 않고 모든 것을 끊임없이 포섭하여 체제 내적으로 만드는 세계 질서를 의미한다. 체 게바라 티셔츠가 미국에서 잘 팔리는 현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체제에 외부가 없다면 어떻게 변화가 추동되는가 하는 물음에서 도출한 것이 다중이라는 개념이다. 다중은 단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수성의 총체이다. 대중들은 비록 과거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처럼 비교적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는 않지만, 현대의 복잡하고 다양해 보이는 사회문제들은 리좀(Rhizome)적으로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이들은 단일한 세력으로 묶일 수가 있다. 과거의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어떤 전형을 설정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변화를 이끈다면, 네그리의 다중은 현대에 분화된 노동계급들을 총체로써 긍정하고 이들의 자율성이 사회변혁을 이끌어 낸다고 본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규모 마을공동체 운동이나 좌파적인 사회적 협동조합 계획들이 네그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