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콜론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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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untang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2월 11일 (일) 18:25 판

제 2대 러시아 공산당 여성국 국장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Александра Коллонтай
남성에게 기댈 필요도, 남성들에게 예속될 필요도 없는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에 마음을 여십시오. 가정은 여성을 종속시킬 뿐 아니라 비생산화함으로써 집단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출생
출생
1872년 3월 31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사망
1952년 3월 9일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모스크바
국적
국적
러시아 제국 (1872~1917) → 러시아 공화국 (1917) → 소련 (1922~1952)
약력
약력
취리히 대학 경제학부 국민경제학 전공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Александра Михайловна Коллонтай, 결혼전 성은 도몬토비치(Домонтович))는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이자 소설가, 소련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클라라 체트킨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을 대표하는 이론가로 꼽힌다. 여성 억압 및 성애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혁명적인 이론을 제시하였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 여성국(제노텔)의 설립 등 소비에트 러시아 초기의 선진적 여성 정책을 수립하여 마르크스주의는 물론 후대의 페미니즘과 여성 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소련의 외교관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세계 최초의 여성 외교관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생애

사상

이하의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페미위키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문서[1]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저작자의 목록은 다음 링크[2]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날개달린 에로스

콜론타이는 부르주아적 연애 도덕과 프롤레타리아적 연애 도덕을 구분하며 날개달린 에로스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일찍이 가족의 해체와 여성의 성의 권리를 주장했던 그였기에 사생활에서도 그는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 노력하였다.

『새로운 도덕과 노동계급』(1918)에서 콜론타이는 에로스적인 동지애를 통해서 성의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소유'하는 관계가 아닌 평등한 동지애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성을 '소유하고자' 하는 일부일처제야말로 남성 중심 성 관념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부르주아적 도덕 안에서 불평등한 성적 관계를 기초로 이뤄지는 조건을 거래하는 결혼, 성매매 등을 '날개없는 에로스'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동지애적 사랑을 '날개달린 에로스'로 분류하였다. 콜론타이의 날개달린 에로스 개념은 배타적인 일부일처제를 배격하고 동지애 속에서 자유롭고 우연한 성적 결합이 가능하리라는 폴리아모리적 주장으로 나아간다.

콜론타이는 그러한 날개달린 에로스는 육아의 완전한 사회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여성이 불평등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데에 많은 경우 육아와 재생산 노동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육아를 사회가 책임지게 되면 여성의 종속이 끊길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일반이 공동체로서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를 육아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콜론타이는 당대의 관념에서는 무척 급진적으로 여성이 '순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함께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유로운 성애의 해방을 요구하였다.

여성의 성욕에 대한 당대 콜론타이의 급진적 사고는 소문건 『혼인관계 영역의 공산주의 도덕에 관한 테제』 속 "성욕은 배고픔이나 목마름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는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콜론타이의 급진적 주장은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물 한 잔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고 비판당한다.

성욕은 배고픔이나 목마름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이른바 ‘날개 달린 에로스’라고 스스로 명명한 바 있는 남녀의 성적 결합에 대한 대단히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은 레닌과 스탈린남성 공산주의자들에게 조롱당했으며 심지어는 정치적 공세거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 위기상황이었던 1922년 콜론타이는 함께 살고 있던 17세 연하의 애인 디벤코의 어린 애인으로 인해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여성의 해방과 경제적 자립

콜론타이는 여성해방의 조건으로 경제적 자립을 주장하였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억압적 상황에서 여성들이 떨쳐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콜론타이는 가족이 ‘보호’하는 소유물이 아닌,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소비에트 구성원으로서 여성이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과 동등한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콜론타이는 여성의 노동권 보장안을 인민위원회에서 통과시켰을 뿐 아니라,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18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1차 '러시아 여성 노동자·농민대회'에서 콜론타이는 여성이 경제력을 갖추고 가정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남성에게 기댈 필요도, 남성들에게 예속될 필요도 없는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에 마음을 여십시오. 가정은 여성을 종속시킬 뿐 아니라 비생산화함으로써 집단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노동자 국가는 남성과 여성, 두 평등한 노동자가 자유롭게 결합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국가는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고 아이를 돌볼 것입니다.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집단 활동은 아이들로 하여금 ‘내 것’ ‘네 것’보다 ‘모두의 것’을 깨쳐 사유재산 관념을 갖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콜론타이가 주장했던 ‘자립적인 여성’은 종국에는 전통적인 결혼에서 자유로운 여성상이었다. 남성의 부속물이나, 가정의 부속물이 아닌 소비에트 사회 노동력의 일부이자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민으로 취급되기 위해서는 일부일처제 결혼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콜론타이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근대적 관념이 여성 일반이 남성 일반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사회적 토대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남성의) 외도 및 실연이 경제적인 손실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 큰 절망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콜론타이에게 있어 질투는 동지애에 기반해서 극복해야 할 부르주아적 정서였다.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

�콜론타이는 기존의 부르주아 여성운동에도 비판적이었다.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요구하는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해 '위선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부르주아 여성들은 공동체의 복지보다 일부 여성만의 자아실현을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여성들은 날마다 기아의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으며, 그 문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남성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이 콜론타이의 주장이었다.

그는 여성운동이 계급투쟁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 운동보다는 노동 운동에 함께 참여하여 이를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참다운 해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은 조건에서 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남성의 부속물, 노예로 전락할 것이라고 봤다.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1908)는 부르주아 여성운동을 비판하기 위해서도 쓰여졌다. 여성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종속된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뒺비어야 하고, 부르주아 여성운동가들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운동에 뛰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부르주아 여성들이 노동계급 남성을 짓밟는 데에 가책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노동계급 남성들에 대한 연대를 표하기도 한다.

꾸준하게 주장해 온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은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적용되었다. 부르주아 여성운동이 주장하는 '부르주아적 도덕'은 경제적 이익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사랑이 존재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고리를 끊지 않으면 균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여성들은 '남성의 성욕 충족, 아이의 재생산, 가사 노동'이라는 삼중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