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가격 그리고 이윤/자본과 노동의 투쟁과 그 결과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5일 (목) 20: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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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가격 그리고 이윤
14. 자본과 노동의 투쟁과 그 결과

1. 이제까지 나는, 임금 인하에 대한 노동자측의 주기적 저항과 임금 인상을 이루려는 그들의 주기적 시도는 임금 제도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으며, 또 그 저항과 시도는 노동이 상품이 되고 있다는, 그리하여 가격의 일반적 운동을 규정하는 법칙에 종속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강요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더 나아가 나는, 전반적 임금 인상은 전반적 이윤율 하락을 낳기는 하지만 상품의 평균 가격이나 그 가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결국 이제는 이 끊임없는 자본과 노동의 투쟁에서 노동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반화해 대답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상품과 같이 노동의 경우에도 시장 가격은 결국 가치와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는 시장 가격이 어떻게 오르내리든간에, 또 그가 어떻게 행동하든간에 평균적으로 자기 노동의 가치만을 받게 된다. 이 노동의 가치는 노동력의 가치로 귀착하며, 또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활 필수품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생활 필수품의 가치는 다시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노동력의 가치 또는 노동의 가치를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구분하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노동력의 가치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순전히 육체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또는 사회적인 것이다. 노동력 가치의 궁극적 한계는 육체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은 자신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적 존재를 존속시키기 위해 생활과 번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활 필수품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없어서는 안 될 생활 필수품의 가치는 노동 가치의 궁극적 한계가 된다. 다른 한편, 노동일의 길이 또한 매우 신축적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노동자의 육체적 힘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매일 소모되는 노동자의 생명력이 어떤 한도를 넘으면 그것은 나날이 새롭게 지출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말했듯이 이 한계에는 매우 신축성이 있다. 허약하고 명이 짧은 세대라도 재빨리 새로운 세대로 교체될 수 있다면 일련의 강하고 명이 긴 세대에 못지않게 노동 시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순전히 육체적인 요소 이외에도 노동의 가치는 각 나라의 전통적인 생활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 생활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놓여 있고 또 양육되는 사회 조건들로부터 생겨나는 어떤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국인의 생활 수준이 아일랜드 인의 생활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독일 농민의 생활 수준이 리보니아 농민의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역사적 전통과 사회 관습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여러분은 손튼 씨의 저서 『과잉 인구』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영국 각 농업 지역의 평균 임금은 이 지역들이 농노제 상태에서 벗어날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유리했는가에 따라 오늘날에도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노동의 가치에 포함되는 이러한 역사적 또는 사회적 요소는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완전히 없어져 육체적 한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고약한 세금쟁이로 놀고 먹던 늙은 조지 로즈의 말을 빌리면 프랑스 이단들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신성한 종교의 안전을 지켜 내려고 일으켰다는 저 반자코뱅 전쟁 시기에, 우리가 이전의 어느 회의 석상에서 매우 우호적으로 다루었던 정직한 영국 농부들은 농업 노동자의 임금을 겨우 육체적인 최소 한계 이하로까지 깎아 내렸지만, 노동자 종족의 육체적인 존속에 필요한 그 나머지 액수를 구민법으로 보충해 주었다. 이것이 곧 임금 노동자를 노예로, 또 셰익스피어의 자랑스런 자영 농민을 빈민으로 만드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여러 나라의 표준 임금이나 노동의 가치를 서로 비교해 보면, 그리고 한 나라의 서로 다른 역사적 시기에 따라 그것을 비교해 보면, 여러분은 설사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가 그대로라고 가정하더라도 노동의 가치 자체는 불변의 크기가 아니라 가변적 크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 비교를 통해 시장 이윤율뿐만 아니라 평균 이윤율도 변동한다는 것이 입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윤에 관해서 본다면 그 최소 한계를 설정하는 법칙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이윤이 떨어지는 최종 한계가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 한계를 정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임금의 최소 한계를 정할 수는 있어도 최대 한계는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노동일의 한계가 주어져 있다면 이윤은 임금이 육체적 최저한의 수준일 때 최대가 되며, 임금이 주어져 있다면 이윤은 노동자의 체력이 닿는 한도까지 노동일을 늘릴 때 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윤의 최대 한계는 임금의 육체적 최소 한계와 노동일의 육체적 최대 한계에 의해 제한된다. 이 최대 이윤율의 두 가지 한계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변동 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윤율의 실제 수준은 오직 자본과 노동의 끊임없는 투쟁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자본가는 끊임없이 임금을 노동자의 육체적 최소 한도까지 낮추려 하는 반면, 노동자는 끊임없이 반대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결국 투쟁하는 두 쪽의 힘의 문제로 귀착한다.


2. 다른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영국에서의 노동일의 제한을 보더라도, 이 제한은 법률의 개입 없이는 결코 설정되지 않았다. 외부로부터 노동자가 가하는 끊임없는 압력이 없었다면 이 개입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결과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사적인 협약으로는 달성 될 수 없었다. 바로 이러한 전반적인 정치 활동의 필요성이야말로 순수한 경제적 행동에서는 자본측이 한층 강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노동 가치의 한계에 관해서 보면, 그것이 실제로 정해지는 것은 언제나 수요와 공급에 좌우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이란 노동에 대한 자본측의 수요와 노동자측의 노동 공급을 뜻한다. 식민지 나라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 미국의 임금 수준이 비교적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자본이 아무리 애써도, 임금 노동자가 끊임없이 독립 자영농이 됨으로써 노동 시장이 언제나 텅 비게 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절대 다수의 미국인에게 임금 노동자의 위치란 얼마 안 있어 반드시 떠나게 될 하나의 견습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의 이러한 사태를 바로잡으려고 모국인 영국 정부는 당분간 이른바 현대 식민지론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임금 노동자가 자영농으로 급속히 바뀌는 것을 막으려고 인위적으로 식민지 토지에 높은 가격을 매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제 자본이 모든 생산과정을 지배하고 있는 옛 문명 국가들을 보기로 하자. 예컨대 1849년부터 1859년까지 영국의 농업 임금 인상을 보자. 임금 인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우리 친구 웨스턴 씨라면 농부들에게 밀의 가치를 오릴라고 충고했겠지만, 그들은 밀의 가치는커녕 밀의 시장 가격조차 올릴 수 없었다. 도리어 그들은 시장 가격이 낮아지는 것을 참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11년 동안 그들은 온갖 종류의 기계를 들이고, 더 과학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경지의 일부를 목장으로 바꾸고, 농장의 규모와 함께 생산의 규모를 늘렸으며, 또 이러한 과정이나 그 밖의 과정을 통해 노동 생산력을 향상시켜 노동에 대한 소유를 줄임으로써 농업 인구를 또다시 상대적으로 남아 돌게 만들었다. 이것이 곧 오래 전부터 정착된 나라들에서 임금 인상에 대해 자본이 빠르든 늦든간에 반작용하는 일반적 방식이다. 리카도가 올바르게 지적한 바와 같이, 기계는 노동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흔히 노동의 가격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을 때에만 들일 수 잇다. 그러나 기계 사용은 노동 생산력을 높이는 많은 방법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통상의 노동을 상대적으로 남아돌게 만드는 바로 그 발전이 다른 한편으로는 숙련 노동을 단순화하며, 그럼으로써 그 가격을 떨어뜨린다.


같은 법칙은 다른 형태로도 통용된다. 노동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자본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률에도 불구하고 더욱 가속적으로 축적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스미스가 당시 현대 산업이 아직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추론했던 바와 같이, 자본 축적이 가속함으로써 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노동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균형추가 기울 수밖에 없게 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오늘날의 많은 저술가들은, 영국의 자본이 지난 20년 동안 영국의 인구보다 훨씬 빨리 늘어났는데도 임금은 그렇게 오르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축적이 진전되면서 동시에 자본 구성에서 차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총자본 가운데 고정 자본, 즉 기계·원료와 그 밖의 모든 형태의 생산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은 임금, 즉 노동을 사는 데 쓰이는 자본 부분에 비해 더 누진적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법칙은 바튼, 리카도, 시스몽디, 리챠드 존스 교수, 램지 교수, 셰르불리에 및 그 밖의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진술되어 왔다.


만약 자본의 이 두 요소의 비율이 원래 1:1이었다면 산업이 발전하는 경우에는 5:1이 된다든가 할 것이다. 만약 600의 총자본 가운데서 300이 도구·원료 등에 지출되고 300이 임금에 지출된다면, 300명 대신에 600명의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내려면 총자본을 배로 늘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총자본 600 가운데 500이 기계·자재 등에 지출되고 오직 100만이 임금에 지출된다면, 300명 대신에 600명의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내려면 이 자본이 600에서 3600으로 늘어나야 한다. 따라서 산업 발전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가 자본 축적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늘어나나 자본이 늘어나는 것에 비하면 끊임없이 줄어드는 비율로 늘어난다.


이상의 몇 가지 암시로도 현대 산업의 발전 자체가 저울추를 점점 노동자에게는 불리하고 자본가에게는 유리하게 기울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점,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경향은 평균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떨어뜨린다는 점, 다시 말해 노동의 가치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최소 한계까지 떨어뜨린다는 점을 보여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현제도에서 사태의 경향이 이러하다고 해서, 이것은 노동자 계급이 자본의 침략을 반대하는 저항을 포기해야 하며 자신들의 처우를 일시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가끔씩 주어지는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만약 노동자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 수 없는 파탄자의 무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의 투쟁은 임금 제도 전체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점, 임금을 인상하기 위한 노동자의 노력은 100 가운데 99가 주어진 노동 가치를 유지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노동의 가격을 두고 자본가와 싸워야 할 필요성은 자신들을 상품으로 팔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조건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본과 일상적으로 충돌하는 데서 비겁하게 물러난다면, 노동자들은 틀림없이 더 커다란 운동을 일으킬 자격을 스스로 빼앗기게 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임금 제도와 관련된 전반적인 예속 상태는 아예 젖혀 놓더라도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일상적 투쟁의 궁극적 효과를 과대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결과와 싸우는 것이지 그 결과의 원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 하향 운동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지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 완화제를 쓰는 것이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그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침없는 자본의 침략이나 시장의 변화로부터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 피할 수 없는 유격전에만 전적으로 매달려서는 안 된다. 현체제는 노동자에게 온갖 곤궁을 강요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경제적으로 개조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공정한 노동에 대해 공정한 임금을!'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그들은 '임금 제도 철폐!'라는 혁명적 구호를 자신들의 기치에 써넣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매우 장황하고도 혹시 지루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주제를 올바르게 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이 해설을 마치고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임금률의 전반적 상승은 전반적인 이윤율 하락을 낳을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상품의 가격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경향은 평균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춘다.

셋째, 노동 조합은 자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 중심지로서 훌륭히 활동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노동 조합은 자기 힘을 분별없이 사용한다면 실패한다. 또 일반적으로, 노동 조합은 현제도가 빚어 낸 결과를 반대하는 유격전에만 자신을 국한하고, 이와 동시에 현제도를 변혁하려 하지 않는다면, 또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 계급의 종국적 해방을 위한, 즉 임금 제도를 궁극적으로 철폐하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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