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노동과 자본/4월 6일 기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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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새로운 원자재와 새로운 노동 도구와 새로운 생활 수단을 생산하려고 사용되는 원자재와 노동 도구와 각종 생활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구성 부분은 노동의 창조물이고, 노동의 산물이며, 축적된 노동이다. 축적된 노동, 즉 새로운 생산에 도구로 쓰이는 노동이 곧 자본이다.
====상품의 가격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의 경쟁에 의해, 공급에 대한 수요의 관계, 수요에 대한 공급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경쟁은 세 측면을 갖는다.




경제학자들은 위와 같이 말하고 있다.
똑같은 상품을 서로 다른 판매자들이 공급한다. 똑같은 품질의 상품을 가장 싸게 파는 사람이 나머지 판매자들을 누르고 최대의 판로를 확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판매자들은 판로, 즉 시장을 찾아서 앞다투어 투쟁한다. 그들은 모두 팔기를 바라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팔기를 바라며, 될 수만 있다면 나머지 판매자들을 밀어내고 혼자서 팔기를 바란다. 따라서 제각기 다른 사람보다 싸게 판다. 그래서 판매자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은 공급하는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흑인 노예란 무엇인가? 흑인종에 속하는 한 인간이다. 위의 설명은 이런 식의 설명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구매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일어나며, 이것은 다시 공급되는 상품의 가격을 올린다.




흑인은 흑인이다. 어떤 관계를 맺을 때에만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 면방적기는 면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다. 어떤 관계 속에서만 그것은 자본이 된다. 이 관계에서 떼어 냈을 때 그것은 자본이 아니다. 이는 마치 금이 그 자체로는 화폐가 아니며, 설탕이 설탕 가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끝으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경쟁이 일어난다. 전자는 될 수 있는대로 싸게 사려고 하고, 후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비싸게 팔려고 한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경쟁의 결과는 앞에서 제시된 경쟁의 두 측면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즉 경쟁이 구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 아니면 판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산업은 두 진영의 군대를 싸움터에 끌어들여 서로 싸우게 하며, 그들 각자는 또 자기 군대의 대열 안에서도 전투를 치른다. 자기 대열 안에서 난투극을 가장 적게 벌이는 군대가 상대를 누르고 승리한다.




생산 속에서 인간은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서로서로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서로 교환함으로써만 생산을 하게 된다. 생산하려고 인간은 어떤 관계와 관련을 맺으며, 또 그들은 이러한 사회 관계와 관련 속에서만 자연에 대해 작용을 가하고 생산을 하게 된다.
시장에 100꾸러미의 면화가 나와 있는데, 살 사람은 1000꾸러미를 바란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수요가 공급의 10배나 된다. 따라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치열할 것이며, 그들은 각각 한 꾸러미라도, 될 수만 있다면 100꾸러미 모두를 혼자서 차지하려 할 것이다. 이 예는 멋대로 꾸며 낸 것이 아니다. 상업의 역사를 보면 면화가 흉작일 때 서로 동맹을 맺은 몇몇 자본가들이 100꾸러미가 아니라 지구상의 면화 재고량 모두를 다 사들이려고 한 시기가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어떤 한 구매자가 면화 꾸러미를 비교적 더 비싼 값에 사들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려고 할 것이다. 적군의 대열 속에서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100꾸러미가 모두 팔릴 것을 확신한 판매자들은 상대편에서 앞다투어 가격을 올리고 있는 순간에 내분을 일으켜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이다. 따라서 판매자 진영 안에는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다. 그들은 냉철하게 팔짱을 끼고 마치 한 사람처럼 단결하여 구매자들과 대립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야겠다는 사람들조차 그 이상은 더 못 내겠다는 명확한 한도를 제시하지 않는 한, 그들의 요구에는 한도가 없을 것이다.




생산자들 서로간에 맺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 즉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활동을 교환하고 생산이라는 공동 행위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조건은 생산 수단의 성격에 따라서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총포라는 새로운 전쟁 도구가 발명되면서 군대의 내부 조직 전체가 반드시 바뀔 수밖에 없었고, 각 개인을 군대의 일원으로 만들고 군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 바뀌었으며, 다양한 병과(兵科)들 사이의 관계도 바뀌었다.
따라서 어떤 한 상품의 공급이 이 상품에 대한 수요보다 적을 때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미약하거나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줄어드는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은 심해진다. 그 결과 상품 가격은 많든 적든 뚜렷하게 올라간다.




개인들로 하여금 생산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 관계, 즉 사회적 생산 관계는 따라서 물질적 생산 수단과 생산력의 변화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며 변모한다. 총체로서의 생산 관계는 사람들이 사회라고 부르는 사회 관계를 형성하며,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역사적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사회를 형성한다. 고대 사회, 봉건 사회, 부르주아 사회는 그러한 생산 관계의 총체이며, 각 생산 관계는 동시에 인류 역사 발전의 특수한 한 단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정반대의 경우가 더 자주 일어난다. 공급이 수요를 훨씬 더 넘어서는 경우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필사적인 경쟁, 구매자의 부족, 상품을 헐값으로 팔아 치우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본도 사회적인 생산 관계다. 그것은 부르주아적인 생산 관계, 즉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 관계다. 자본을 이루는 생활 수단·노동 도구·원자재 등 모든 것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즉 어떤 사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축적된 것이 아닌가? 그것들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어떤 사회 관계 속에서 새로운 생산에 쓰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바로 이 사회적 성격이 새로운 생산을 위해 쓰이는 생산물들을 자본으로 바꾸지 않는가?
그러면 가격의 오름과 내림이란 무엇을 뜻하며, 높은 가격과 낮은 가격은 무엇을 뜻하는가? 모래알도 현미경으로 보면 커 보이고 탑도 산과 비교하면 낮은 것이다. 그리고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써 결정된다면, 수요와 공급의 관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자본은 생활 수단·노동 도구·원자재로만, 즉 물질적 생산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환 가치로도 이루어진다.
길 가는 부르주아 가운데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 보자. 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또 하나의 알렉산더 대왕처럼 이 형이상학적 매듭을 구구단으로 끊어 버릴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내가 파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100 마르크가 들었고 내가 이 상품을 팔아서 110 마르크를 받는다면, ---물론 1년이 지난 뒤에---그것은 얼마 안 되는 공정하고 적절한 이득이다. 만일 내가 교환을 통해서 120, 130 마르크를 받는다면, 그것은 높은 이득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200 마르크씩이나 받는다면, 그것은 엄청나고도 굉장한 이득이다. 그러면 부르주아에게 이윤의 척도 노릇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상품의 생산비다. 그가 이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손해를 본 셈이다. 또 자기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이득을 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상품의 교환 가치가 영(零)---생산비---보다 낮은가 높은가 하는 정도에 따라 이득의 오르내림을 계산한다.




그것을 이루는 모든 생산물은 상품이다. 따라서 자본은 일정한 양의 물질적 생산물일 뿐만 아니라, 일정한 양의 상품, 교환 가치, 즉 사회적 크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수요와 공급 사이의 변동 관계가 때로는 가격을 올리고 때로는 내리며, 때로는 낮은 가격, 때로는 높은 가격을 형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았다. 만일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어떤 다른 상품의 가격이 반드시 그만큼 떨어진다. 왜냐하면 상품의 가격이란 그것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을 화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단 한 자의 가격이 5마르크에서 6마르크로 올랐다면 은의 가격은 비단에 비해 떨어진 것이며, 또 그와 마찬가지로 예전 가격에 묶여 있는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격도 비단에 비해 떨어질 것이다. 이제 똑같은 양의 비단을 얻으려면 교환할 때 더 많은 양의 다른 상품을 주어야 한다. 한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많은 양의 자본이 번창하는 산업 부문에 몰릴 것이며, 자본이 이처럼 더 유리한 산업 영역으로 몰려드는 사태는 그 부문에서 얻는 이득이 보통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아니 오히려 그 생산물의 가격이 과잉 생산 때문에 생산비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양털 대신에 면화를, 밀 대신에 쌀을, 철도 대신에 기선을 갖다 놓는다고 하더라도, 면화·쌀·기선---자본의 육체---예전에 그것의 육체 노릇을 했던 양털·밀·철도와 똑같은 교환 가치, 즉 똑같은 가격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그 자본은 여전히 그대로다. 자본은 조금도 바뀌지 않으면서도 자본의 육체는 끊임없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 상품의 가격이 그 생산비 밑으로 떨어지면, 자본은 이 상품을 생산하는 데서 손을 뗄 것이다. 한 산업 부문이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아서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빼면, 자본의 이 같은 도피는 그 상품의 생산, 즉 공급을 줄일 것이며, 이것은 그 공급이 수요와 맞아떨어질 때까지, 따라서 가격이 다시 생산비 수준으로 오를 때까지, 아니 오히려 공급이 수요보다 더 적어질 때까지, 즉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보다 더 오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 상품의 시가(時價)는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자본이 일정한 양의 상품, 즉 교환 가치라 하더라도, 일정한 양의 상품, 즉 교환 가치가 다 자본은 아니다.
우리는 자본이 한 산업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거나 흘러 들어오는 것을 본다. 높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입을 낳고, 낮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출을 낳는다.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는 모두 하나의 교환 가치다. 개별적인 교환 가치는 모두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다. 예를 들어 1000마르크짜리 집은 1000마르크의 교환 가치다. 1페니히짜리 종이 한 장은 100/100페니히라는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다. 다른 생산물과 교환할 수 있는 생산물은 상품이다. 생산물이 교환되는 정해진 비율이 그것의 교환 가치를 이루며, 또 이를 화폐로 표현하면 그 가격이다. 이 생산물의 양은 그것의 본분, 즉 상품이 되거나 교환 가치를 나타내거나 어떤 가격을 갖거나 하는 본분을 결코 바꿀 없다. 크든 작든간에 나무는 여전히 나무인 것이다. 철을 다른 생산물들과 교환할 때 근(斤)으로 하든 관(貫)으로 하든, 그것 때문에 철의 성격, 즉 교환 가치인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바뀌겠는가? 양에 따라서 철은 더 많거나 더 적은 가치를 지닌 상품, 더 높거나 더 낮은 가격의 상품이 될 뿐이다.
우리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경우,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도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 줄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서 너무 멀어지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일정한 양의 상품,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가 자본이 되는가?====
우리가 방금 본 바와 같이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한 상품의 가격을 늘 다시 생산비로 되돌려 보낸다. 상품의 실제 가격은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다. 그러나 오르내림은 서로 상쇄되므로, 얼마 동안 산업에서 나타난 썰물과 밀물을 합산해 보면 상품은 그 생산비에 따라 교환되며, 따라서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이 자립적인 사회적 힘으로서, 즉 사회의 일부분이 갖는 힘으로서, 직접적인 산 노동력과의 교환을 통해 보존되고 늘어나는 것에 의해서다. 노동 능력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계곱의 존재가 자본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직접적인 산 노동을 축적된 과거의 대상화한 노동이 지배함으로써 비로소 축적된 노동이 자본으로 바뀐다.
이처럼 생산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경제학자들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된다.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평균 가격이 생산비와 같다고 말하며, 이것은 법칙이라는 것이다. 가격의 오름은 내림으로 또 내림은 오름으로 서로 상쇄되는 이 무정부적인 운동을 그들은 우연으로 여긴다.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똑같은 권리로 가격의 변동을 법칙으로 여기고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을 우연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동, 즉 자세히 살펴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황폐화를 수반하며 마치 지진처럼 부르주아 사회를 기초에서부터 뒤흔드는 이 변동 과정 속에서만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무질서 운동 전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질서다. 이 같은 산업의 무정부 상태의 과정 속에서, 즉 이 같은 순환 운동 속에서 경쟁은 말하자면 한 극단을 다른 극단으로써 상쇄한다.




자본의 본질은 축적된 노동이 새로운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서 산 노동에 봉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본질은 산 노동이 축적된 노동의 교환 가치를 유지하고 늘리는 수단으로서 축적된 노동에 봉사하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은 그 상품의 가격이 생산비 이상으로 오르는 시기가 그것이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에 의해 상쇄되는 방식으로, 또는 그 반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은 공산품 하나하나마다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 부문 전체에만 해당한다. 따라서 이것은 개별 산업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가 계급 전체에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 사이에서 교환이 이루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한 가격 결정과 똑같다. 왜냐하면 생산비는 첫째, 원자재와 도구의 마모분으로, 즉 그 생산에 얼마만큼의 노동일이 들었고 따라서 얼마만큼의 노동 시간을 나타내는 공산품으로 이루어지며, 둘째, 바로 시간이 그 척도가 되는 직접적 노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과 교환하여 생활 수단을 얻는다. 그러나 자본가는 자신의 생활 수단과 교환하여 노동, 노동자의 생산 활동, 창조적인 힘을 얻는데, 이 힘을 통해 노동자는 자신이 소비하는 것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축적된 노동에 그것이 원래 갖고 있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본가로부터 당장 쓸 생활 수단의 일부를 받는다. 그는 이 생활 수단을 어디에 쓰는가? 직접적인 소비에 쓴다. 그러나 내가 생활 수단을 써 버리자마자, 나는 그것을 잃어버리며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된다. 이 수단이 나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시간을 이용해 내가 새로운 생활 수단을 생산하지 않는 한, 소비하는 동안에 써서 없애 버리는 가치 대신에 새로운 가치를 나의 노동으로 창조하지 않는 한에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바로 이 귀중한 재생산의 힘을 자신이 받은 생활 수단과 교환하여 자본가에게 넘겨준다. 따라서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이 힘을 잃어버린 셈이다.
상품의 가격을 일반적으로 규제하는 바로 그 일반 법칙이 당연히 임금, 즉 노동의 가격도 규제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차지(借地) 농업가가 자신의 날품팔이 노동자에게 일당으로 은화 5그로쉔을 준다고 하자. 은화 5그로쉔을 받고 이 노동자는 차지 농업가의 밭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여 결국 그에게 10그로쉔만큼의 수입을 확보해 준다. 차지 농업가는 자신이 날품팔이 노동자에게 건네주어야 하는 가치만을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2배로 늘리게 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날품팔이 노동자에게 준 은화 5그로쉔을 실속 있게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소비한 셈이다. 이 은화 5그로쉔을 가지고 그는, 2배의 가치를 갖는 농산물을 생산하여 5그로쉔을 10그로쉔으로 만드는 날품팔이 노동자의 바로 그 노동과 힘을 샀던 것이다. 반면에 날품팔이 노동자는 그가 바로 차지 농업가에게 그 작용의 결과를 넘겨주어 버린 자신의 노동력 대신에 은화 5그로쉔을 얻는다. 그는 이 돈을 생활 수단과 교환하며, 얼마 안 있어 그것을 다 써 버린다. 따라서 이 5그로쉔은 이중으로 소비된 셈이다. 그 자본을 위해서는 재생산에 쓰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비생산적으로 쓰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한번 쓰면--역자)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생활 수단과 교환되었고, 노동자는 차지 농업가와 똑같은 교환을 되풀이함으로써만 그 가치를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은 임금 노동을 전제로 하며 임금 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한다. 둘은 서로서로 제약하며, 서로를 산출해 낸다.
노동의 임금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라, 즉 노동력의 구매자인 자본가와 노동력의 판매자인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어떠냐에 따라 때로는 오르고 때로는 내릴 것이다. 임금의 변동은 대체로 상품 가격의 변동에 상응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동 속에서 노동의 가격은 생산비에 의해,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면방직 공장의 노동자가 면직물만을 생산하는가? 아니다. 그는 자본을 생산한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지휘하고 이를 매개로 다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쓰이는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력의 생산비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유지시키고 또 그를 노동자로 길러 내는 필요한 비용이다.




자본은 노동력과 교환됨으로써만, 즉 임금 노동을 가동함으로써만 늘어날 수 있다. 임금 노동자의 노동력은 자본을 늘림으로써만, 즉 자신을 노예로 삼고 있는 힘을 강화함으로써만 자본과 교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을 늘리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즉 노동자 계급을 늘리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을 길러 내는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 노동의 가격, 즉 임금도 낮아진다. 숙련 기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단지 노동자의 육체적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산업 부문에서는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생산비가 거의 생명과 노동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상품에만 국한된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의 가격은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격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자본가들의 이해 관계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는 똑같다고 부르주아들과 그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사실 그렇다! 노동자는 자본이 고용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된다. 자본은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되며, 착취하려면 그것을 사야만 한다. 생산을 위해 쓰이는 자본인 생산 자본이 급속히 늘어날수록, 따라서 산업이 번창할수록,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가 부유해질수록, 사업이 잘되면 잘될수록 자본가에게는 더욱더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며, 노동자는 더욱더 비싼 값에 팔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공장주는 자기 생산비와 이에 따른 생산물 가격을 계산할 때, 노동 도구의 소모분을 계산에 넣는다. 예를 들어 그가 어떤 기계를 사는 데 1000마르크를 들였고 또 이 기계는 10년 동안 쓰고 나면 닳아 없어진다면, 그는 10년 뒤에 이 기계를 새 것으로 바꾸려고 해마다 100마르크를 상품 가격에 포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 속에는 노동자 종족이 번식하고 또 닳아 없어진 노동자들을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할 수 있기 위한 비용, 즉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이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기계의 마모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마모 또한 계산에 포함된다.




따라서 노동자의 상태를 그럭저럭 살 만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조건은 생산 자본이 될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는 노동자의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으로 귀착한다. 이러한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의 가격이 임금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되는 임금을 최저 임금이라고 한다.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이 최저 임금은 개별적인 개인이 아니라 유(類) 전체에 대해서 타당한 것이다. 노동자 개개인,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생존하고 대를 이어 갈 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전체의 임금은 변동 속에서도 이 최저치에 일치하게 된다.




그러나 생산 자본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산 노동에 대한 축적된 노동의 힘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지배가 성장하는 것이다. 만일 임금 노동이 자신을 지배하는 다른 사람의 부(富)이자 자신의 적대 세력인 자본을 생산한다면, 임금 노동이 다시 자본의 일부가 된다는 조건, 즉 자본을 가속화하는 성장 운동 속에 다시 투입하는 지렛대가 된다는 조건에서 일거리, 즉 생활 수단이 자본으로부터 다시 흘러 나오게 된다.
임금과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규제하는 가장 일반적인 법칙을 알아 보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주제를 좀더 자세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


 
[[분류:임금 노동과 자본]]
자본의 이해 관계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가 똑같다는 말은 자본과 임금 노동이 한 관계의 두 측면이라는 뜻일 뿐이다. 한 쪽이 다른 쪽을 제약하는 것은 마치 고리 대음업자와 방탕한 인간이 서로서로 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임금 노동자가 임금 노동자인 한, 그의 운명은 자본에 달려 있다. 이것이 그토록 칭송받고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의 공통성이다.
}}

2022년 4월 11일 (월) 15:11 기준 최신판

임금 노동과 자본
4월 6일 기사

2

상품의 가격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의 경쟁에 의해, 공급에 대한 수요의 관계, 수요에 대한 공급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경쟁은 세 측면을 갖는다.


똑같은 상품을 서로 다른 판매자들이 공급한다. 똑같은 품질의 상품을 가장 싸게 파는 사람이 나머지 판매자들을 누르고 최대의 판로를 확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판매자들은 판로, 즉 시장을 찾아서 앞다투어 투쟁한다. 그들은 모두 팔기를 바라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팔기를 바라며, 될 수만 있다면 나머지 판매자들을 밀어내고 혼자서 팔기를 바란다. 따라서 제각기 다른 사람보다 싸게 판다. 그래서 판매자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은 공급하는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구매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일어나며, 이것은 다시 공급되는 상품의 가격을 올린다.


끝으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경쟁이 일어난다. 전자는 될 수 있는대로 싸게 사려고 하고, 후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비싸게 팔려고 한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경쟁의 결과는 앞에서 제시된 경쟁의 두 측면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즉 경쟁이 구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 아니면 판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산업은 두 진영의 군대를 싸움터에 끌어들여 서로 싸우게 하며, 그들 각자는 또 자기 군대의 대열 안에서도 전투를 치른다. 자기 대열 안에서 난투극을 가장 적게 벌이는 군대가 상대를 누르고 승리한다.


시장에 100꾸러미의 면화가 나와 있는데, 살 사람은 1000꾸러미를 바란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수요가 공급의 10배나 된다. 따라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치열할 것이며, 그들은 각각 한 꾸러미라도, 될 수만 있다면 100꾸러미 모두를 혼자서 차지하려 할 것이다. 이 예는 멋대로 꾸며 낸 것이 아니다. 상업의 역사를 보면 면화가 흉작일 때 서로 동맹을 맺은 몇몇 자본가들이 100꾸러미가 아니라 지구상의 면화 재고량 모두를 다 사들이려고 한 시기가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어떤 한 구매자가 면화 꾸러미를 비교적 더 비싼 값에 사들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려고 할 것이다. 적군의 대열 속에서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100꾸러미가 모두 팔릴 것을 확신한 판매자들은 상대편에서 앞다투어 가격을 올리고 있는 순간에 내분을 일으켜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이다. 따라서 판매자 진영 안에는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다. 그들은 냉철하게 팔짱을 끼고 마치 한 사람처럼 단결하여 구매자들과 대립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야겠다는 사람들조차 그 이상은 더 못 내겠다는 명확한 한도를 제시하지 않는 한, 그들의 요구에는 한도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한 상품의 공급이 이 상품에 대한 수요보다 적을 때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미약하거나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줄어드는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은 심해진다. 그 결과 상품 가격은 많든 적든 뚜렷하게 올라간다.


잘 알려진 대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정반대의 경우가 더 자주 일어난다. 공급이 수요를 훨씬 더 넘어서는 경우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필사적인 경쟁, 구매자의 부족, 상품을 헐값으로 팔아 치우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가격의 오름과 내림이란 무엇을 뜻하며, 높은 가격과 낮은 가격은 무엇을 뜻하는가? 모래알도 현미경으로 보면 커 보이고 탑도 산과 비교하면 낮은 것이다. 그리고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써 결정된다면, 수요와 공급의 관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길 가는 부르주아 가운데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 보자. 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또 하나의 알렉산더 대왕처럼 이 형이상학적 매듭을 구구단으로 끊어 버릴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내가 파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100 마르크가 들었고 내가 이 상품을 팔아서 110 마르크를 받는다면, ---물론 1년이 지난 뒤에---그것은 얼마 안 되는 공정하고 적절한 이득이다. 만일 내가 교환을 통해서 120, 130 마르크를 받는다면, 그것은 높은 이득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200 마르크씩이나 받는다면, 그것은 엄청나고도 굉장한 이득이다. 그러면 부르주아에게 이윤의 척도 노릇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상품의 생산비다. 그가 이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손해를 본 셈이다. 또 자기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이득을 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상품의 교환 가치가 영(零)---생산비---보다 낮은가 높은가 하는 정도에 따라 이득의 오르내림을 계산한다.


우리는 이미 수요와 공급 사이의 변동 관계가 때로는 가격을 올리고 때로는 내리며, 때로는 낮은 가격, 때로는 높은 가격을 형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았다. 만일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어떤 다른 상품의 가격이 반드시 그만큼 떨어진다. 왜냐하면 상품의 가격이란 그것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을 화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단 한 자의 가격이 5마르크에서 6마르크로 올랐다면 은의 가격은 비단에 비해 떨어진 것이며, 또 그와 마찬가지로 예전 가격에 묶여 있는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격도 비단에 비해 떨어질 것이다. 이제 똑같은 양의 비단을 얻으려면 교환할 때 더 많은 양의 다른 상품을 주어야 한다. 한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많은 양의 자본이 번창하는 산업 부문에 몰릴 것이며, 자본이 이처럼 더 유리한 산업 영역으로 몰려드는 사태는 그 부문에서 얻는 이득이 보통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아니 오히려 그 생산물의 가격이 과잉 생산 때문에 생산비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반대로 한 상품의 가격이 그 생산비 밑으로 떨어지면, 자본은 이 상품을 생산하는 데서 손을 뗄 것이다. 한 산업 부문이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아서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빼면, 자본의 이 같은 도피는 그 상품의 생산, 즉 공급을 줄일 것이며, 이것은 그 공급이 수요와 맞아떨어질 때까지, 따라서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 수준으로 오를 때까지, 아니 오히려 공급이 수요보다 더 적어질 때까지, 즉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보다 더 오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 상품의 시가(時價)는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이 한 산업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거나 흘러 들어오는 것을 본다. 높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입을 낳고, 낮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출을 낳는다.


우리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경우,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도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서 너무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방금 본 바와 같이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한 상품의 가격을 늘 다시 생산비로 되돌려 보낸다. 상품의 실제 가격은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다. 그러나 오르내림은 서로 상쇄되므로, 얼마 동안 산업에서 나타난 썰물과 밀물을 합산해 보면 상품은 그 생산비에 따라 교환되며, 따라서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


이처럼 생산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경제학자들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된다.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평균 가격이 생산비와 같다고 말하며, 이것은 법칙이라는 것이다. 가격의 오름은 내림으로 또 내림은 오름으로 서로 상쇄되는 이 무정부적인 운동을 그들은 우연으로 여긴다.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똑같은 권리로 가격의 변동을 법칙으로 여기고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을 우연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동, 즉 자세히 살펴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황폐화를 수반하며 마치 지진처럼 부르주아 사회를 기초에서부터 뒤흔드는 이 변동 과정 속에서만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무질서 운동 전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질서다. 이 같은 산업의 무정부 상태의 과정 속에서, 즉 이 같은 순환 운동 속에서 경쟁은 말하자면 한 극단을 다른 극단으로써 상쇄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은 그 상품의 가격이 생산비 이상으로 오르는 시기가 그것이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에 의해 상쇄되는 방식으로, 또는 그 반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은 공산품 하나하나마다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 부문 전체에만 해당한다. 따라서 이것은 개별 산업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가 계급 전체에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한 가격 결정과 똑같다. 왜냐하면 생산비는 첫째, 원자재와 도구의 마모분으로, 즉 그 생산에 얼마만큼의 노동일이 들었고 따라서 얼마만큼의 노동 시간을 나타내는 공산품으로 이루어지며, 둘째, 바로 시간이 그 척도가 되는 직접적 노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상품의 가격을 일반적으로 규제하는 바로 그 일반 법칙이 당연히 임금, 즉 노동의 가격도 규제한다.


노동의 임금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라, 즉 노동력의 구매자인 자본가와 노동력의 판매자인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어떠냐에 따라 때로는 오르고 때로는 내릴 것이다. 임금의 변동은 대체로 상품 가격의 변동에 상응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동 속에서 노동의 가격은 생산비에 의해,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면 노동력의 생산비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유지시키고 또 그를 노동자로 길러 내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을 길러 내는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 노동의 가격, 즉 임금도 낮아진다. 숙련 기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단지 노동자의 육체적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산업 부문에서는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생산비가 거의 생명과 노동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상품에만 국한된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의 가격은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격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공장주는 자기 생산비와 이에 따른 생산물 가격을 계산할 때, 노동 도구의 소모분을 계산에 넣는다. 예를 들어 그가 어떤 기계를 사는 데 1000마르크를 들였고 또 이 기계는 10년 동안 쓰고 나면 닳아 없어진다면, 그는 10년 뒤에 이 기계를 새 것으로 바꾸려고 해마다 100마르크를 상품 가격에 포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 속에는 노동자 종족이 번식하고 또 닳아 없어진 노동자들을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할 수 있기 위한 비용, 즉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이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기계의 마모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마모 또한 계산에 포함된다.


따라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는 노동자의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으로 귀착한다. 이러한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의 가격이 임금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되는 임금을 최저 임금이라고 한다.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이 최저 임금은 개별적인 개인이 아니라 유(類) 전체에 대해서 타당한 것이다. 노동자 개개인,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생존하고 대를 이어 갈 수 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전체의 임금은 변동 속에서도 이 최저치에 일치하게 된다.


임금과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규제하는 가장 일반적인 법칙을 알아 보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주제를 좀더 자세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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