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시 모음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18일 (수) 14:18 판

나의 삶

나의 삶




체 게바라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 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동참

동참




체 게바라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행운은
무조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 카스트로가
자신의 혁명 대열에 합류하자고 했다.
그는
무장투쟁으로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동참하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행운이 따라올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에서 나는
방랑하는 기사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전사의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 속을 누벼야 하리라.

여행

여행




체 게바라



여행에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하나는
떠나는 순간이고
또 하나는
도착하는 순간이다.
만일

도착할 때를
계획한 시간과 일치시키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라.

선택

선택




체 게바라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 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에게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에게




체 게바라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 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

행복한 혁명가

행복한 혁명가




체 게바라



쿠바를 떠날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핀셋

핀셋




체 게바라



혁명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혁명은
핀셋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핀셋을 요구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해산의 고통은
더 이상 잃을 것밖에 없는 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안겨다준다.

역사는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다.
폭력은
착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피착취자들 역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단지
적절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마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데도
싸움을 하는 자는 범죄자다.
그런 자는
피해서는 안 될 싸움에는
꼭 피한다.

참된 삶

참된 삶




체 게바라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