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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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3월 29일 (화) 15:04 판 (새 문서: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칼 맑스, Karl Heinrich Marx, 1818년 5월 5일 ~ 1883년 3월 14일)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공산주의자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자본론(Das Kapital)을 집필했다. ==생애== 1818년 프로이센 라인란트트리어에서 변호사 아버지와 네덜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183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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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칼 맑스, Karl Heinrich Marx, 1818년 5월 5일 ~ 1883년 3월 14일)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공산주의자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자본론(Das Kapital)을 집필했다.

생애

1818년 프로이센 라인란트트리어에서 변호사 아버지와 네덜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1835년 10월 본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84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기자가 되어 1842년에 자유주의적이면서 급진노선을 표방하던 라인신문의 주필이 되었다. 이 신문은 정치적 입장 때문에 1년 뒤에 정부에 의해 폐간되었다.

1843년에 결혼한 후 독일을 떠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허용하는 파리로 갔다. 그는 파리에서 앞으로 평생 동료가 될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났다.

1844년에는 <파리수고>를 저술했다. 또한 엥겔스와 <신성가족>, <독일 이데올로기>를 공동집필하였다.

프로이센의 요청을 받은 프랑스 정부는 그를 추방하였다. 그래서 그는 브뤼셀로 갔다. 그는 브뤼셀에서 프루동(Proundhon)을 비판하는 <철학의 빈곤>(1847)을 집필했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출판하였다.

1848년 마르크스는 파리로 건너 갔다가 다시 프로이센의 쾰른으로 가서 신라인신문의 편집인이 되었다. 그의 신문은 탄압을 받았으며, 1849년 5월 런던으로 도피하여 죽을 때까지 여기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1867년에 <자본론> 1권이 출판된다.

죽기 전 10년 동안 건강 악화로 고통 받았으며 1883년 런던에서 64세로 사망한다.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