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관념론

좌파도서관
(관념론적 주관주의에서 넘어옴)

주관적 관념론(한자: 主觀的觀念論, 독일어: Subjektiver Idealismus)은 실재가 주관적 관념에 내재해 있으며, 경험이라는 사태 자체의 존재 또는 실재의 최종 근거가 인식주관에 있다고 주장하는 관념론적 세계관이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전화함에 따라, 부르주아의 진보성이 소멸하고 반동성이 증대하면서 주관적 관념론은 독점자본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되었다.

개요

주관적 관념론의 시초는 기원전 4세기 퀴레네 학파이나, 오늘날에서 일컬어지는 주관주의 체계를 확립한 철학자는 잉글랜드의 성공회 신학자인 G. 버클리이다. 그는 《인간 지식의 원리론》(1710)에서 경험은 인식주관의 산물이며, 실재는 이러한 경험의 합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버클리는 인식주관이 신의 능동적 의지의 산물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주관주의와 유신론을 배합하려고 시도하였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버클리의 사상을 유아론(唯我論)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주관적 관념론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나갔다.

D. 흄은 《오성에 관하여》를 통해 인식에 관한 최종 결론으로서 불가지론에 도달하였다. 그는 실재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의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알 수 없다는 판단마저 분명히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다. 흄는 오로지 표상, 즉 관념적 상의 내용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으며, 삼라만상이 결과적으로는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관주의를 전개하였다.

I. 칸트 역시 주관적 관념론자로, 인식주관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감성범주와 오성범주가 물자체에 의해 촉발[1]되면, 감성범주와 오성범주의 감성형식과 오성형식이 경험과 현상을 구상해내고, 그것이 표상으로 최종 가공되어 사상(事想)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견해를 초월적 감성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인식 이론에 대해 붙인 명칭이다.

J. G. 피히테는 자아(自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표상의 내용이라고 간주했는데, 비아는 자아가 만들어낸 것이며, 결국 표상은 자아가 만들어내고, 표상이 곧 실재라는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19세기 말 E. 마하, R. 아베나리우스는 물질도, 관념도 아닌 중간자적 요소의 조화와 배척을 통해 물질과 관념이 구성된다고 하였다. 이들은 요소를 인식주관이 선험적으로 지닌 것이라고 간주하였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기 A. 보그다노프는 대상을 이루는 범주가 인식주관에 의해 구상되고 실재화한다는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한 바 있다.

오늘날의 주관적 관념론으로는 분석철학 내 대다수 유파, 해석학 및 현상학, 신칸트주의, 실증주의 등이 있으며, 부르주아 철학 강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주관적 관념론 세계관은 내부적으로 세계 인식 문제에 관한 '강한' 불가지론적 견해와 '약한' 불가지론적 견해 간 대립을 이루고 있다. 전자는 신칸트주의적 전통에 서 있으며, 후자는 칸트적 전통에 서 있다.

G. W. F. 헤겔이 독일 관념론의 완성적 정립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칸트주의는 세계 인식에 관한 불가지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헤겔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일찌기 칸트 철학이 내세운 공교적인 학설, 즉 오성은 결코 경험을 넘어서서는 안 되거니와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엔 인식 능력이 다만 공염불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잉태할 수 없는 이론이성에 그치고 말리라고 한 그 학설이야말로 학문적인 면에서 사변적 사유의 거부를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2]
G. W. F. 헤겔, ≪논리의 학≫, 제1권.)

역사 및 현대 주관주의

플레하노프의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 제2장에서 제3장까지의 내용은 당시 주관적 관념론(프랑스 실증주의, 러시아 신칸트주의 등) 비판이 주된 것으로 된다.

레닌은 19세기 말 과학 발전의 성과를 총망라하여 주관적 관념론 타도에 집중하였다. 레닌은 A. F. 훔볼트, A. G. 헤르너 등의 지질학 연구 성과와, 지구 탄생에 관한 여러 이론을 섭렵하여 인식주관이 존재하기도 전에 사물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자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주관적 관념론의 영향력은 크게 팽창하였다.

오늘날 주관적 관념론자들은 모든 인식과 학문적 서술이 인식주관이라는 거름막을 거쳐 이루어졌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그 귀결로서 객관은 존재하지 않고, 의식과 독립적인 영역에서의 실재는 존재할 수 없으며, 증명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천체물리학 연구마저 '주관의 농간'에 의한 체계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실재의 실제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전개한다.

일부 주관적 관념론자는 유물론이라는 용어를 도용하여 '유물론자'를 자칭하기도 한다. (L. 알튀세르, R. 로티, S. 지젝, D. 데이빗슨, D. 차머스 등)

2000년대 이후 부르주아 강단에서 주관적 관념론은 과학적 실재론, 비판적 실재론의 강력한 도전을 받는 중인데, 특히 실험 체계의 성립과 실험의 객관성에 관한 주제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관련 사조

참고 문헌

  • G. 버클리, 문성화 역 (2010), 《인간 지식의 원리론》, 계명대학교출판부.
  • D. 흄, 이준호 역 (1994), 《오성에 관하여》, 서광사.
  • I. 칸트, 백종현 역 (2006), 《순수이성비판》, 제1권, 아카넷.
  • J. G. 피히테, 한자경 역 (1996), 《전체 지식론의 기초》, 서광사.
  • G. W. F. 헤겔, 임석진 역 (1983), ≪대논리학≫, 제1권, 지학사.
  • V. I. 레닌, 정광희 역 (1989),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아침.

각주

  1. 칸트는 현상이 물자체에 의해 촉발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최종적으로는 관념적 범주에서 찾았다. 칸트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전개했는데, 이는 물자체와 관념적 범주 간 일치성을 부정한 것이다. 물자체에 의한 촉발과 관념적 범주 간 관계에 대해서 칸트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2. G. W. F. 헤겔, 임석진 역 (1983), ≪대논리학≫, 제1권, 지학사, pp.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