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

좌파도서관
노동자연대
Workers' Solidarity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창립일
창립일
1989년
기관지
기관지

역사
역사


개요

대한민국마르크스주의 단체.

흔히 트로츠키주의 운동 단체로 알려져 있지만 본인들은 전혀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는다. 트로츠키는 여러 혁명가들 중 한 사람일 뿐이며 그의 입장에는 맞는 점도 있고 틀린 점도 있다는 입장이다. 트로츠키주의 운동단체에 더 가까운 쪽은 본인들이 그렇게 정체화하는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 투쟁위원회(노건투)나 아예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따르는 볼셰비키 그룹이다. 혁명정당 이론과 국가론 등에서 레닌의 사상을 따른다는 점에서 레닌주의로는 분류할 수 있으나, 본인들 스스로는 전혀 트로츠키주의로 정체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몇몇 쟁점에 대해서는 트로츠키의 입장을 반대한다. 굳이 무슨 주의냐고 따진다면 '클리프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전, 반자본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있다. 국제 사회주의 조직인 국제사회주의자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 IST)에 소속되어 있다.

집회장에서 신문 파는 것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신문 파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많은 인원을 투입해 열성적으로 진행한다. 웬만한 큰 집회에선 신문 판매대를 차리고 심지어 신문이나 책자를 들고 다니면서 판다. 광고가 없다면서 2000원에 판다. 노조 조끼를 입고 신문 파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문 파는 활동가들은 그냥 평범한 캐주얼 차림이다.

기관지로 '노동자 연대'와 '마르크스 21'을 발간하고 있고, 2001년부터 매년 여름 국내 최대의 진보포럼을 개최해오고 있다. 물론 이것은 본인들의 주장이고, 실제로는 국내외의 다양한 학술, 운동단체들이 참여하는 맑스코뮤날레가 규모도 크고 위상도 더 높다. 맑시즘은 노동자연대만의 행사일 뿐, 다른 좌파 및 맑스주의 단체들은 공식적으로 자기네 깃발을 내걸고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국내의 다른 단체가 아닌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활동가들을 초빙해 토론회를 열기도 하고, 각계의 노동운동 인사나 저명한 운동권 인사들을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초청해 강연을 연다.

상징

IST 특유의 주먹 쥔 왼손 로고를 사용한다. 깃발은 약간 밝은 빨간색 바탕에, 왼쪽에는 노란색으로 주먹 로고를 그려놓고 오른쪽에는 노란색 글씨로 크게 '노동자연대', 아래쪽에는 흰 글씨로 자기네 사이트 주소를 써 놓은 깃발을 사용한다. 학생그룹 깃발도 따로 있는데, 조금 작은 크기의 빨간색 바탕에 주먹 로고는 가운데 그려놓고 아래쪽에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이라고 크게, 자기네 사이트 주소를 작게 써 놓은 깃발을 사용한다.

역사

본부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으로, 1950년에 토니 클리프에 의해 창립되어, 1962년에 당 조직을 갖추었고, 1977년부터 현재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제4인터내셔널에 속한 기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소련 사회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면서 결별하여 제 4인터내셔널을 탈퇴한 사회주의자들이 창당한 당이 바로 SWP이며, 이후 SWP의 사상에 동의하는 국제 조직인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ST)으로 확대되었다.

창립자 최일붕은 원래 기독교 사회 운동가로서 1980년대 후반에 군포 구시가지의 공단 지역에서 공장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노동운동을 조직했으며, 이후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IST의 미국 지사인 ISO를 통해 이쪽의 사상을 접하면서 유물론적 사회주의자로 전향하였다. 그리고 귀국 후에 IST의 한국 지부를 설립하기 위하여 1990년에 스탈린주의를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 학습 모임을 조직하였다.

이렇게 소규모 학습 서클로 시작한 이 모임은, 90년대 초반 소련이 쇠퇴하면서 PD 계열 운동이 퇴조에 접어들었을 때 남한국제사회주의자들(International Socialist in South Korea, ISSK)라는 이름으로 대학가에 느슨한 연대를 형성했다. 이 사람들은 현실로는 큰 영향력이 없는 이념에 기초한 운동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들이나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 대학가나 집회 현장에서 팸플릿을 만들어 파는 정도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2년과 1994년 두 차례 안전기획부에 의해 조직원 수십여 명이 체포돼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적이 있다. 이후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1999년 비공개·비합법 노선을 청산하고 공개된 대중노선으로 전환하였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한동안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승인받지도 않고 "민주노동당학생그룹"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공식으로는 민주노동당학생위원회 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대학생이 아닌 활동가들까지 학생 그룹이란 간판을 달고 활동하였다.

학생 그룹 시절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잡지 <다함께>를 대학가나 시위 현장에서 판매하다가, 이것이 유명해지자 2000년 초반부터 조직명을 '다함께'로 변경하였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전쟁에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조직의 세를 키워 나아가기 시작한다.

국제주의를 추구하는 노선으로 민족주의가 노동자계급 혁명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현실 정치에선 민족주의 성향인 NL 그룹과 함께해 왔다.

특히 민주노동당에서 NL과 PD 등과 모두 함께 활동하던 시절, 당직자가 민주노동당원 300명의 신상 정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넘긴 일심회 사건으로 민주노동당이 종북 세력의 이미지를 덮어쓰고 종북주의 청산을 둘러싼 논쟁이 대두했을 때도 다함께는 NL을 일관되게 지지하였다. 당시 다함께는 "‘일심회’ 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실험을 한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 우익들은 이때를 틈타 사회의 급진화 분위기를 차단하려 했고 노무현은 ‘일심회’를 속죄양 삼았다"[1]며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을 방어했다. 당시 NL의 종북 노선을 비판하던 좌파들은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 등등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산하의 NL 지역 조직들에 빗대서 '런던연합'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결국 종북주의 청산을 담은 당혁신안이 당대회에서 부결되자 노회찬과 심상정을 위시한 강성 PD계열 좌파들이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창당하는데 다함께는 진보신당을 두고 배신자들이라면서 격렬히 비난하고[2] 자신들은 온건 PD계열과 NL계열만 남은 민주노동당에 잔류하였다. 이후 통합진보당까지 함께 따라갔으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이석기김재연 제명이 무산되자 2012년 7월 29일 공식으로 성명하고 집단으로 탈당하면서 마침내 NL 세력과 손을 끊었다.

2012년부터는 '노동자연대다함께'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3년 노동자 중심 진보당 건설을 내세운 노동정치연대에 합류했으나 이후 다시 빠지면서 정의당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기사를 보면 정의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공식화하고 있다.

2014년 3월 조직명을 '노동자연대'로 바꾸면서 기관지명도 '레프트 21'에서 '노동자 연대'로 바뀌었다. 조직 개편 이후 대중노선을 표방하던 다함께 시절과는 다르게 조직이 더욱 좌경화했고 노동계급 중심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노선과 성향

PD 계열과의 차이

국내 운동권에서 IS계열도 노동자계급을 중시 하는 것이 PD랑 비슷해 보이니깐 PD로 함께 분류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발생학적으로 전혀 다른 정파이다.

PD계열은 소련 시절에 공식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어, 90년대초까지는 소련의 노선을 따랐다.

IS계열은 소련에서 스탈린을 비판하다 추방된 트로츠키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탈린을 대차게 깠다. 트로츠키주의에도 계파가 여럿이 있는데, 그중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출발한 국제사회주의자경향에서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다. 지금도 노동자연대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이론과 노선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IST 계열의 단체들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미국, 타이, 터키, 이집트, 한국 등 30여개 나라에 존재한다. 그중에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가장 규모가 크며, 이론적으로 IST계열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 한국의 노동자 연대는 IST계열의 단체들 중에서는 작지 않은 단체이다.

국가자본주의론

본부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주장을 수용해서 구 소련을 국가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3] 특히나 스탈린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하다. 북조선과 쿠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이미 국가자본주의마저 포기하고 시장자본주의를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반북 성향만 놓고 보면 운동권 가운데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투쟁 위원회(노건투)와 더불어 가장 심하다. 김일성 일가를 남한의 이재용, 정몽구나 다를 바 없는 자본가들로서 노동계급을 착취해 핵무기과 미사일을 만들고 인민대중은 굶어죽거나 말거나 이윤 축적에 혈안이 된 존재들이므로 노동자 혁명을 통해 타도해야 할 적으로 간주를 하며, 만일 북조선에서 김돼지 일가에 맞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투쟁을 벌이면 남한 노동자들도 지지하고 가능한 방법을 총 동원하여 연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볼셰비키 그룹 등도 비슷한 입장이긴 하지만, 여기는 북조선이 경제의 국유화라는 혁명 1단계가 클리어된 상황이므로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제국주의 열강들이 침탈하고 무너뜨리려 할 때는 그 국가 자체만큼은 방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탈북자에 대해서는 난민과 마찬가지이므로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하고 모든 탈북자가 다 극우적 성향은 아니므로 탈북자들을 진보진영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탈북자를 난민의 특수한 형태로 보고 있다.

여성해방론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을 추구한다. 원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지만, '페미니즘'이 곧 '래디컬 페미니즘' 혹은 거기에서 파생된 노선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질되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여성해방론'이라 지칭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대해 정신의학 전문가나 범죄 심리학 전문가들의 입장을 따라 '조현병으로 인하여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품게 된 범인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지른 묻지마 범죄'라고 주장하며,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에 만연한 미소지니 때문에 일어난 여성혐오 범죄'는 해석은 극구 부인한다.

최근 유아인을 둘러싼 여성혐오 시비 논란에 있어서는 '메갈에 비판적이라고 전부 일베로 몰 수 없다', '노동계급 남성과 여성이 여성차별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차별에 맞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사실상 유아인을 옹호하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또 한서희와 하리수 간의 트랜스젠더 논란에 관련해서는 기존의 성차별적 성관념을 극복하지 못하는 '근본적 페미니즘의 한계'이자 여성해방이 아닌 '엘리트 페미니즘'이라고 한서희를 비판하면서 넷상에서의 전투적/급진 페미니즘의 경향과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메갈리아, 워마드와 그 비호세력으로 대표되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의 세계관이나 남성혐오적이고 여성우월주의적인 주장들은 동의하지 않고, 온갖 광기어린 증오와 조롱의 언어를 갖다 내뱉으면서 그걸 정당화하는 행태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성 억압에 맞선 페미니즘 운동의 한 분파이므로 '정중하게 대하고 그들의 입장도 존중하면서 여성해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때로는 손을 잡기도 하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쪽의 입장이다. 때문에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당시에는 논란에 휩싸인 성우를 비호하는 입장을 취했으며 메갈리아를 두고 '여성 억압에 맞선 페미니즘 운동의 한 갈래'라 규정하면서 '메갈리아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비판적 지지'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위례벌 초등학교 페미니즘 북클럽 사건에 대해서도 역시 물의를 일으킨 메갈 교사를 갖다 철저하게 옹위하는 입장을 취했다.[4]

성소수자 해방론

역시 마르크스주의 성소수자 해방론을 추구한다. 성소수자 억압의 원인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히려 체계적인 성소수자 억압과 혐오는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야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전에 있었던 성소수자 억압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수한 시대와 지역에만 산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성소수자 억압과 혐오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6년 퀴어문화축제 때 후술할 사건으로 부스 대관을 취소당하자 개별 회원들 차원에서 축제에 참가하였고, 2017년에도 같은 이유로 부스 대관에서 탈락하자 이번에는 부스는 없지만 깃발을 들고 회원들을 조직하여 비공식적으로 축제에 참가한 바 있다.

조직 현황

학생그룹

대학교에서 매우 활발하게 리젠되며, 조직망은 적지 않은 대학으로 걸쳐 있다. 대학에서는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활성화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소수 정파인것에는 변함없다. 적지 않은 대학에 분포돼 있다지만 실제로 제대로 운영되는 대학은 몇 안 된다. 학내 정치적 파워는 2010년대 초반까지 NL에게 많이 밀렸다.

일반적으로 학생그룹 활동가들은 20대 후반, 극단적으로는 30대까지 학교에 남아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학교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졸업을 하면 본진의 신문기자로 들어가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면 현장 노동운동은 병행하지 않고 본진 활동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사회과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 과정을 밟고서 자문위원 비슷하게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때문에 노조 현장 조합원들 중에는 이쪽 계열의 '학출'은 별로 없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공무원 노조 내부에 이쪽 계열의 학출을 심어놓기 위하여 공무원 시험 볼 것을 장려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대학교 본관 교수 감금 사건과 출교 사건의 주축이 된 집단이기도 하다. 이때 고려대학교 내에서의 기존 운동권과도 심하게 대립하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출교 사건의 원인이 된 본관 교수 감금 사건 때에는 NLPDR, 전국학생행진 계열의 학생들이 일찍 발을 뺐고, 끝까지 남아서 교수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집단이 다함께였기 때문이다.

집회 참여력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한남동 대사관 앞의 2011 이집트 혁명 지지 시위나 2011 홍익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농성에는 열심히 참여하기도 했다.

2011년 11월 25일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반 FTA 집회에서도 2008년 촛불집회 당시와 같은 선동을 한다는 제보가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해당 단체가 나눠준 유인물에서 다함께 마크를 찢어내고 쓰는 사람들도 있다고한다.

201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NL의 몰락과 함께 학생 운동권에서는 나름대로 정치적 파워를 확보하였다. 연세대, 고려대, 한국외대, 건국대, 인하대, 이화여대 등에서 상당한 학내 정치적 파워를 발휘하는 조직으로 등장하였으며 국민대, 성공회대에도 학내 모임이 있다. 서울대 등 다른 대학에도 학내 모임은 없지만 한두 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우호적인 신좌파 계열이 운동판의 헤게모니를 잠식해 들어가는 분위기가 관측되고 있으므로, 학생 운동판 전체적으로는 이쪽이 그렇게까지 막강한 헤게모니를 발휘하고 있다 하기는 어렵다. 노동자 연대의 여성해방론은 래디컬 페미니즘과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별 운영방식

학교별 조직은 각 학교마다 조금씩 방식이 다르다. 건국대처럼 중앙동아리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고, 이화여대처럼 '노동자연대 XX대모임'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 학교별 떡밥에 대한 대응은 이 조직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동아리나 소모임의 형태로 '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라는 조직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여기는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이 아니라도 폭 넓게 가입하여 이쪽의 사상과 이론을 학습하는 외곽 조직이다. 그리고 각 학교별 조직은 학생그룹과 본진을 모두 포괄하는 '지회' 산하에 들어가 있다. 노동자연대의 '지회'에 대해서는 아래 문단에서 다시 서술한다.

2018년 4월 학생그룹의 활동 현황은 다음과 같다.

  •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 노동자연대 한국외대모임
  • 건국대학교 중앙동아리 노동자연대
  • 노동자연대 이화여대모임
  • 노동자연대 연세대모임
  •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인하대모임

한 학교에 회원이 1명밖에 없는 경우에는 지회에 바로 소속된다.

지회가 있다가도 해체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활동하던 회원이 졸업하여 본진으로 넘어간 반면 그 뒤를 이을 후배 회원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이다.

본진

본진은 상근 활동가들과 현장 노동자들로 구성되는데, 사실 노동자 운동 현장에서는 세력이 강한 단체가 아니다. 현장 노동자들 가운데 민주노총 혹은 한국노총 산하 노조에 소속된 경우도 물론 있지만, 미조직 노동자이면서 본진 활동만 하는 경우도 있다. 기아자동차와 같이 현장에서 나름 말빨이 있는 사업장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현장 기반을 강조하는 사회변혁노동자당,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 투쟁 위원회(노건투),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 전선(노동전선) 단위에 비해 세력이 약하다. 그런 관계로 현장 내에 기반을 확보하고 있거나 현장과 밀접하게 연관된 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술한 집회 참여력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학생운동권이나 페미니즘 운동계에서의 대우와는 대조적이었다.

상근 활동가들은 전체 조직의 운영을 담당하는 운영위원과 신문 기사를 쓰고 신문을 발행하는 기자로 나눌 수 있다. 이쪽은 신문 발행과 판매를 정말 중요시하기 때문에 신문 쪽 활동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사실 집회장에서 이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활동이 바로 신문 판매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1명만 집회 군중들 틈에서 자기네들의 빨간 깃발을 들고 앉아 있고 나머지는 전부 다 신문 팔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집회가 시작하기 전에 봉고차에 싣고 온 가판을 펼쳐서 신문과 소책자들을 펼쳐 놓고서 집회 참가자들을 상대로 판매하고, 집회가 마무리될 때쯤 가판을 접고서 봉고차에 싣고는 미리 준비해 둔 피켓을 각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고서 행진 대열에 합류한다. 집회의 판이 커지거나 비가 내리면 여기에 신문사 로고를 크게 박아 놓은 천막이 추가된다.

운동판 내에서의 영향력이 사회주의 계열 중에서는 강한 편이어서,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에는 여러 사회주의 단위들 가운데 퇴진행동 내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다른 사회주의 단위들은 퇴진행동 지도부에 직접적으로 합류하지는 않았던 반면, 여기는 여러 운영위원과 활동가들이 퇴진행동에 합류하여 집회장에서 사회를 보고, 방송차에 올라 행진을 이끄는 등 굉장히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운동판 내에서의 영향력은 사회주의 계열끼리 비교하면 그다지 강한 편이라 할 수는 없지만, 박근혜 퇴진 운동을 통해서 단연 사회주의 계열 중 대중들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는 이쪽이 무슨 대단한 이론이나 막강한 조직력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이쪽 자체가 대중 추수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그런 방향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실제 운동판에서의 실제 영향력보다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 존재감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특정 의제에 대응하기 위한 '팀'도 있다. 2018년 현재는 '조직노동자팀'과 '성소수자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회

노동자연대의 활동과 운영은 '지회'를 단위로 이루어진다. 지회는 본진과 학생그룹 구성원들로 구성되며, 매주 지회모임을 통해 활동을 평가하고 방향을 연구한다. 항상은 아니지만 지회에서 연사를 초청하거나, 지회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이 연사가 되어 특정 주제를 놓고 학습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 때는 다른 지회 구성원은 물론, 노동자연대 회원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모든 사람들에게 지회모임을 개방한다. 학습뿐만 아니라 활동토론까지도 개방한다.

2018년 4월 현재 노동자연대 지회는 다음과 같이 조직되어 있다.

  • 서울 중부지회
  • 서울 북부지회
  • 서울 서부 1지회
  • 서울 서부 2지회
  • 서울 서부 3지회
  • 서울 동부 1지회
  • 서울 동부 2지회
  • 서울 남부지회
  • 인천지회
  • 경기지회
  • 강원충북지회
  • 울산지회
  • 부산지회

노동자 연대 웹진 사이트 하단에는 수시로 지회별 공개모임 공지가 뜬다. 학습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을 들자면 철저한 주제별 학습이라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주의 원전은 전혀 학습하지 않는다. 그나마 중요하게 여기는 원전이 하나 있다면 블라디미르 레닌의 <국가와 혁명>인데, 이것조차도 개인적으로 읽기를 권장할 뿐 조직적으로 학습하지는 않는다.

외곽조직

다른 운동권 단위들처럼 외곽 조직을 두고 있다. 학생그룹의 외곽 조직은 각 캠퍼스별 '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학습 모임들이고, 본진은 원래 외곽조직이 없었으나 2017년 말에 '젠더와 계급 연구회'라는 외곽조직을 만들어 여성 및 성소수자 관련 의제운동 관련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논란 및 사건사고

2002년 민주노동당 강남지구당 사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다함께 회원들이 2002년 봄 일순간에 서울 강남구로 대규모 위장전입하여 순식간에 강남 지구당을 장악하고 기존 지역간부들과 기간당원들을 내쫓은 사건이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당대표는 물론 국회의원 후보, 지역구 지구당 위원장과 부위원장까지 모두 당원 직접선거로 선출하였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특정 세력이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해서 특정 지구당을 장악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빈번했다.

원래 서울 강남/서초 지역에는 민주노동당 창당때부터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을 중심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고학력자 전문직과 자영업자 위주의 당원들이 뭉쳐서 활동해왔다.

그런데 동네에 살지도 않고, 지역활동에 전혀 참여도 안 하던 다함께 회원들이 갑자기 주민등록을 옮긴 다음에 몰려와서는 숫자로 강남갑지구당 위원장 이하 모든 간부 자리를 독점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지역활동에는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기존 지역 당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한 다음에 강남갑지구당 깃발을 들고 다함께 활동만 열심히 하였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지시도 무시하고 오로지 다함께의 투쟁지침만 따라다녔다. 즉 간판은 민주노동당 서울 강남갑지구당인데 실상은 다함께 서울본부인것이다.

기존 당원들은 이런 사태에 격분해서 중앙당에 거칠게 항의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비판도 했지만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시 다함께의 한 간부는 반발하는 강남갑 일반 당원에게 이런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쪽수가 민주주의인데, 왜 당신들은 우리를 반대하는가?

운동권 내부 상황을 잘 모르는 몇몇 신입당원들은 강남갑지구당 깃발을 따라다니다가, 이게 민주노동당 활동이 아니고 자신들이 다함께의 세 과시에만 활용되고 있다는걸 깨닫고 나가버렸다.

이들은 다음해인 2003년에는 서초갑 지구당도 똑같은 방식으로 장악하였으며, 나중에는 종로지구당도 접수하였다. 특히 종로지구당은 민주노동당이 해산하는 순간까지 온갖 다함께 행사에 이름만 걸어두는 조직이었다.

서울 강남지역은 진보정당이 국회의원은 커녕 구의원조차 당선자를 낼 가능성이 없는 지역었으며 또한 용산미군기지나 청와대처럼 투쟁의 목표물이 될만한 것도 없다. 따라서 여타 운동정파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지역 특성상 기존 당원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따라서 자기들 회원 정도면 충분히 머리숫자로 밀어 붙일 수 있고, 당지도부나 다른 정파들도 별 신경안쓰리라 계산한 것이다.

진보정당을 자신들의 투쟁도구로만 활용하는 이런 다함께의 종파주의, 분파주의 행태는 여타 운동정파와 일반당원들의 많은 반발을 사게 된다.

2008년 촛불집회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의 자발적인 집회와 시위가 일어나자,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사분란한 지도가 필수적이라는 자신들의 트로츠키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자기들 멋대로 시위대를 끌고 다니는 행태를 보였다. 당시 멋대로 메가폰 들고서 시위 군중 선두에 서서 소리지르는 터에 시위 참여 경험이 없는 순진한 시민이 많이 뒤따라갔다가 경찰에게 다수 연행되는 사태가 있었다. 게다가 다함께가 사람들을 이끌고 경찰이 기다리는 쪽으로 몰고가서는 자기들은 도망가버리는 듯한 모습이 상당히 많이 포착되면서, 온갖 억측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집회 초기 거리행진이 끝나고 동대문시장 두타에 사람들이 모이자 다함께 회원 한명이 거기에 남은 사람들에게 연행을 당하자는 식으로 선동을 하다가 촛불예비군 초창기 인원들에게 제지당한 사례도 있으며, 촛불예비군으로 참여했던 인원들 수십명을 진압경찰들이 모여있는곳으로 이끌고 가서 경찰에 연행당할 뻔한 경우도 있다.

이때문에 인터넷과 집회 현장에서는 좌파운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이들이 경찰과 결탁했다는 유언비어부터, 폭력투쟁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 일부러 경찰과의 충돌을 유발한다는 일부 운동권 출신들의 추측도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 소위 개혁진보매체에서도 심도있는 취재 대신에 얕은 이해도에 기반한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더더욱 사람들을 혼란스럽게했다.

이로 인해 기존에는 좌파진영 내에서만 이름이 알려져있던 다함께는 이 촛불집회를 통해서 대중들에게도 안좋은 쪽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서울시립대 교지편집원회 성폭력 피해자 2차 가해 사건

2011년 서울시립대 교지편집위원회 '대학문화' MT에서 대학문화 편집장과 편집위원이 여성 편집위원에게 포르노을 틀어주며 성희롱을 가해 문제가 된 사건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편집위원과 피해자가 운동단체 다함께의 회원이었던지라, 운동사회 내부에서 논란이 되었다.

다함께 회원들은 이 사건의 은폐 등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였다. 이후로도 계속 반박성명을 가장한 2차 가해를 가하였고 노동자연대는 이후 여성단체, 타 운동단체로부터 강하게 비판받았고, 민주노총과의 연대 중단이 되기도했다.[5]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