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안왈라 바그 학살
개요
지역명을 따 암리차르 학살(영어: Amritsar massacre)로도 불리는 잘리안왈라 바그 학살(영어: Jallianwala Bagh massacre)은 1919년 4월 13일 영국군에 의해 발생한 학살 사건으로, 펀자브 주의 시크교 성지에서 발생하였다. 이 학살로 인해 최소 400명에서 최대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1,500명 이상의 인도인이 부상을 입었다.
배경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는 식민 지배국이던 영국에게 자치권을 대가로 참전을 요구받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모두 110만5000명의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특히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상당수를 차지했다. 실제로 인도 군대는 영국군의 전력 중 상당 부분을 담당했다.[1] 그러나 영국은 자치권이 아니라 인도방위법, 롤래트 법[2] 등의 탄압 강화만을 돌려주었다. 이에 인도인들의 반영감정이 고조되었고, 곳곳에서 반영시위가 벌어진다.
펀자브 주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유럽인이 살해당하고, 영국인 선교사가 피습당하기에 이르자 식민 당국 또한 더욱 과격해졌다. 사티아그라하 운동과 연관된 반영 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한편 4인 이상 모임을 금지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파괴된 전신망과 식민 당국의 정보 전파 노력 부족[3] 등으로 인해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고, 구금된 인도인을 석방하라는 시위가 시크교 종교 행사와 같이 본래 예정대로 열리게 된다.
1만 5천명 이상의 군중이 운집하자, 영국군은 "펀자브의 상황이 반란 직전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병력을 동원해 광장을 포위한 뒤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다. 모든 탄약이 소모되기까지 약 10분간 이어진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인해 어린 아이를 포함한 인도인 1천여명 가량이 숨졌고, 1천 5백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식민 당국은 한 술 더 떠, 통행 금지령까지 내려 부상자들이 치료받지 못하게 하였다.
각주
- ↑ https://m.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1407182049575
- ↑ 인도인들의 식민 지배 저항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것으로, 영장 없는 체포, 재판 없는 투옥을 합법화했다. 위키백과
- ↑ 총독부 인근에서 육성으로 포고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