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좌파도서관

유물론(한자: 唯物論, 영어: Materialism)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이라고 간주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개요

유물론에서 세계의 근원은 물질이며, 정신은 물질의 작용, 그 산물이라고 간주된다.

철학의 근본문제에서 모든 존재자에 선차하는 것을 물질로 보느냐, 의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근원적인 세계관이 나누어진다. 모든 유물론적 세계관은 관념론적 세계관의 근본적인 대립 경향이다.[1]

일반적으로 유물론은 어떠한 한 사회적 토대의 측면에서 볼 때, 사회적 진보와 과학적 진보의 담당자 역할을 하는 사회 계급 및 계층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론적 내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유물론은 당대의 모든 개별 과학의 수준을 반영한다. 유물론은 항상 세계 즉 자연, 사회, 인간을 초자연적(비물질적) 존재나 원인의 도움을 빌지 않고 설명하려고 시도하며, 따라서 뚜렷하게 반(反)사변적이고 무신론적이다.[2]

역사적으로 유물론적 사고는 철학 일반과 함께 등장하였다. 즉, 유물론적 사고는 모든 존재자를 초자연적인 원인으로부터 환상적으로 도출해 내는 신학적, 종교적 세계 해명에 반대하여, 세계를 그 자체로부터 파악하고 세계를 그의 고유한 근본적 요소(Urelemente)로부터 이끌어 내려는 시도로서 등장하였던 것이다. 유물론적 세계관은 고대 인도, 중국, 소아시아, 이집트 등 다양한 지역에서 나름대로의 철학적 기반을 갖추고 생겨났으며, 대개 상승하는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상의 세계관으로 되었다.

18세기 중엽 물리학과 생물학의 전면적인 발달에 의해 유물론적 세계관은 크게 발전하였다. 19세기에 들면 신학적 세계관은 유물론적 세계관의 가장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된다. 1854년 독일 괴텡겐에서 열린 자연과학자 집회는 그리스도교가 유물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학문에 그 어떠한 의미 있는 비판을 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기존 유물론의 기계론적 한계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하여 유물 변증법을 창안하였다. 유물 변증법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 진보적인 계급·계층의 철학적 입장으로 되고 있다.

대립되는 세계관

유물론적 세계관에 대립되는 세계관은 관념론적 세계관이다.

유물론은 유심론(唯心論)과 대립되는 사조로도 여겨진다. K. 마르크스와 F. 엥엘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유물론이 유심론과 대응된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유심론의 어원인 ‘mental’은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관념 또는 섭리로서의 정신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작용을 의미한다. 즉, 유물론이 유심론과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인간 행동의 규범 및 자연·사회·인간 전반에 대한 견해의 통일적 체계로서 세계관이 아니라, 인식 이론 영역 체계에서 합당한 것이다.[3]

종류

유물론은 논리적인 개념인 동시에 역사적인 개념으로, 사회 진보에 상응하여 발전해 온 세계관이다. 따라서 각 시대에서 등장한 유물론 사상은 그 내용이 서로에 대해 상이하며, 그 전체적 내용에서 현대의 과학 수준에 조응하지 못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오늘날의 유물 변증법은 근대에 들어 형성된 것이다.

자연발생적 유물론

고대 시기 유물론은 자연발생적이었으며, 당시의 생산력과 과학 발전 수준에 조응하여 탄생하였기에 오늘날의 과학적 성과와 일치하지 않는 수많은 견해가 포함되어 있다. 자연발생적 유물론에서 어떠한 경향은 변증법적이었으며, 어떠한 경향은 형이상학적이었다. 서구 철학에서 일반적으로 처음 언급되는 밀레토스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모두 자연발생적 유물론자였다.

최초의 자연발생적 유물론은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역사가이자 사상사가인 플루타르코스가 언급한 것처럼,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주장한 "만물의 근원은 물(水)이다"라는 사상은 이집트에서 등장한 것이다.[4]

고대 인도는 기원전 8세기에 이미 자연발생적 유물론이 등장하였는데, 엠페도클레스를 포함한 여러 그리스 사상가들이 전개한 네 가지 원소설(元素說)의 기원으로 추정된다. 고대 갠지스 강 유역에서 노예제 사회로 존립한 수많은 도시국가 사이에서 융성한 브라만교와의 사상 투쟁에서 발전한 유물론은 이미 《베다》에서 그 맹아를 드러내고 있다.[5]

형이상학적 유물론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물질을 모순적 대립항 사이의 무한한 운동으로 간주하지 않는 모든 유물론 경향을 일컫는다.

자연발생적 유물론자인 아낙시만드로스의 물질 개념은 무한자(apeiron)였다. 그의 사상 체계에서 무한자는 부단히 존재자를 산출하는 것으로 되었으나, 그는 무한자의 내포는 한정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것을 무한한 운동을 통해 정립하지 않고, 어둠으로 흩어진 존재자의 힘을 다시 흡수하여 다시 존재자를 산출하는 형이상학적 동자(動者)로 간주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6]가 전개한 질료형상설에서 질료 개념은 형이상학적 유물론의 물질 개념과 맞닿아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물질 개념은 기원후 5세기 그리스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에 의해 대규모 사상사적 반동이 전개되기 전까지,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유럽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

형이상학적 물질 개념을 받아들인 유물론적 경향은 노예제 사멸기부터 변증법적 개념을 부분적으로 혼재한 상태로 존재하였다. 대표적으로, 헬레니즘 시기 스토아학파의 섭리 또는 세계 이치(logos) 개념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부단히 운동하며 모든 존재자(양태라고 일컬어지는)를 생성하고 소멸하는 원리이자 물질적 존재로 이해되고 있다.

아랍의 사상가인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설을 계승·발전[1]하여 그것의 유물론적 성격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아베로에스가 전개한 물질 개념은 운동하지 않는 정태적 개념, 즉 형이상학적 개념이었다.

G. 브루노 등 근세기 초에 활동한 사상가들이 전개한 물질 개념은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 개념을 계승한 것으로, 형이상학적 내용이었다. B. 텔레시오에 이르러서 물질은 대립된 항 사이의 투쟁으로 여겨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스콜라적인 기술에 머물고 있었다. 두 사상가에 영향을 받은 B. 스피노자 역시 형이상학적 유물론자로 간주되지만, 그의 철학은 자기부정을 통한 무한한 운동이라는 변증법적 사상이 맹아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모든 운동은 자기존재에 대한 부정의 결과"라고 하였다.

물질 개념에서 형이상학적 견해를 전개하는 것 외에도, 인간 실천,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유(類)적 본질에 관해 추상적 보편성에 의존하는 유물론 역시 형이상학적 유물론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L. 포이어바흐에 대한 비판은 이와 관련된 내용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 헤겔 철학에 대한 변혁에서 갖는 의의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형이상학적 유물론도 결과적으로는 관념론적 세계관이 갖는 인간 소외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인용자] 본질은 ‘’(類)로서만, 내적이고 침묵하는, 많은 개체들을 오직 자연적으로 묶고 있는 일반성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7]
K.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1845)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 갖는 문제점을 총괄하여, 마르크스는 그것이 세계에 대한 관조에 귀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임을, 그리고 그가 분석하고 있는 추상적 개체가 하나의 특정한 사회 형태에 속함을 알지 못 한다. [...] 관조하는 유물론은, 즉 감성을 실천적 활동으로서 개념 파악하지 않는 유물론이 도달하는 정점은 각각의 개체들 및 시민 사회의 관조이다."[8]
K.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1845)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 형이상학적 유물론을 비판하였는데, 그 내용은 마르크스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형이상학 비판은 마르크스주의가 물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을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적 유물론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대표적 경향은 기계적 유물론이었다. 기계적 유물론은 형이상학적 유물론과 당대 과학 발전의 성과가 통일된 것으로, 우연을 인정하지 않고 필연만을 인정하는 모든 유물론적 세계관을 총칭한다.

그러나, 기계적 유물론은 이미 고대에 그 맹아를 보였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필연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자연발생적이었으나, 동시에 기계론적인 성격이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의 사상을 계승한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 등은 '원자 이탈'(clinamen)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우연을 인정하였다.

기계적 유물론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오로지 필연만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능동적 활동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기계론은 빈곤과 불행이 특정한 한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환경의 산물이라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일정 역사에서 진보적 사상으로 되었다. 그러나, G. 플레하노프가 지적한 것처럼, 기계적 유물론은 사회 진보를 위한 투쟁, 심지어 그러한 투쟁의 근거가 되는 사상마저 필연에 의한 부속물로 취급하는 결점을 지니고 있다. 기계적 유물론은 종국에는 숙명론적 세계관에 빠지게 되고, 인간 자유를 부정하게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기계적 유물론을 비판함에 있어서, 어떠한 도덕적 당위나 "자유는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기초하지 않았다. 두 사상가는 객관적 운동 그 자체 또는 그 전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 역시 필연과 우연의 통일을 통해서만 다양한 정재(定在)적 규정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엥겔스는 《반뒤링론》과 《자연변증법》에서 물질의 운동은 필연만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그 총체적 과정, 연관에서 우연을 항상 남겨놓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물질적 운동의 성질이 인간의 의식 활동과 실천 전반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그는 자유라고 하였다.

변증법적 유물론

📃 이 문단의 본문은 변증법적 유물론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물 변증법을 제시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수준 높고 철저하며 포괄적인 형태의 철학적 유물론을 만들어냈다. 레닌과 스탈린은 유물 변증법을 제국주의 시대의 보편적 과학으로 정초·발전하였다.

유물론에 대한 잘못된 견해

유물론에 대한 오해는 반동적 부르주아 및 종교적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유포한 낭설 및 무지에 의해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첫 번째로,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유물론과 배금주의(拜金主義)를 혼동하는 것이다.

배금주의는 모든 것이 돈에 의해 이루어지며, 바로 그렇기에 돈을 숭배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극단적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도 돈을 위해서라면 정당하다는 사상 조류이다. 유물론은 배금주의와 관련이 없으며, 사회를 변혁하려는 인간의 실천을 무시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등장하였던 수많은 유물론자들은 빈곤·인간 관계의 물신화·전쟁 등과 같은 사회 부조리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관심을 쏟았다.

두 번째 잘못된 견해는, 유물론이 생명체의 의식, 정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오늘날의 유물론이 의식을 광범위하게 인정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견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 유물론, 다시 말해, 당대 기계적 유물론의 대부분 경향은 인간 의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물질의 연장이라고 파악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에 한정해서 이 견해는 부분적으로는 옳은 것이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잘못된 견해는, 유물론이 인간을 기계 부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도덕·윤리를 부정하며,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생활 양식을 추구한다는 견해이다.

유물론에 대한 이러한 악선전은 18세기 초부터 유물론이 태동했을 때 그리스도교 교권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것으로, 그 어떠한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비록 인간 의식이라는, 물질과 다른 규정을 갖는 존재를 부정하였지만, 물질세계, 즉 자연의 운동섭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고매한 성품과 합치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기계적 유물론자들 외에도 대다수 유물론자가 생각했던 것인데, 당대의 일반적인 유물론에서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는, 누군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구성된 것, 종교 경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운동 원리, 그 이치에 따라 생활하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즉, 자연의 이치는 필연적으로 선(善)이라는 것이며, 사회 원리를 그 자연의 원리에 맞추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추상화된 '자연의 원리'에 대해 비판하였지만, 인간의 생활 양식에서 도덕과 윤리를 경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는 생산력에 의존하며, 생산력이 높을수록 그에 조응하여 발전한다고 하였다. 20세기 사회주의권의 철학계에서도 도덕과 윤리를 논하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도덕과 윤리는 그것이 과거와 비교해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내용을 갖춘 경우, 그것은 오로지 그것이 생산력과 조응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도덕과 윤리를 부정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생산력과 함께 발전하며, 인간의 생활 양식에서 사라질 수 없는 것임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세계관

참고 문헌

  •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 이을호 편역 (1988), ≪세계철학사≫, 제1권, 중원문화.
  •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편 (1989), ≪철학대사전≫, 동녘.
  •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991), 제1권, 박종철출판사.
  • M. Bernal, 오흥식 역 (2006), ≪블랙 아테나≫, 제1권, 소나무.

각주

  1. 1.0 1.1 《철학대사전》, p. 961.
  2. 《철학대사전》, p. 962.
  3. 유심론은 관념론과 친화성을 갖고 있지만, 인식 이론 영역에서 유물론과 유심론 등이 혼재된 견해를 갖춘 관념론 철학자(잠바티스타 비코, 헤겔, 프리드리히 셸링, 프랜시스 허버트 브래들리, 토마스 힐 그린 등)는 적지 않다.
  4. 《세계철학사》, 제1권, p. 54.
  5. 위와 같은 문헌, p. 56.
  6.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관념론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세계관이 혼재되어 있다.
  7. 《저작 선집》, 제1권, pp. 186-188.
  8. 위와 같은 문헌, p.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