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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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출생
출생
1818년 5월 5일

프로이센 왕국 니더라인 트리어 브뤼켄 골목 664번지
사망
사망
1883년 3월 14일

영국 런던
국적
국적
프로이센 왕국 → 무국적
약력
약력
본 대학 법학부 입학
베를린 대학 법학부 학사
예나 대학교 철학 박사
라인신문 편집장
《독불연지》의 공편자
공산주의자동맹 회원
독일노동자동호회 설립자
《신라인신문》 주필
《뉴욕 데일리 트리뷴》 유럽 특파원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 평의원

개요

독일의 철학자이자 공산주의자.

생애

1818년 프로이센 라인란트트리어에서 변호사 아버지와 네덜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1835년 10월 본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841년에 예나대학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기자가 되어 1842년에 자유주의적이면서 급진노선을 표방하던 라인신문의 주필이 되었다. 이 신문은 정치적 입장 때문에 1년 뒤에 정부에 의해 폐간되었다.

1843년에 결혼한 후 독일을 떠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허용하는 파리로 갔다. 그는 파리에서 앞으로 평생 동료가 될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났다.

1844년에는 <파리수고>를 저술했다. 또한 엥겔스와 <신성가족>, <독일 이데올로기>를 공동집필하였다.

프로이센의 요청을 받은 프랑스 정부는 그를 추방하였다. 그래서 그는 브뤼셀로 갔다. 그는 브뤼셀에서 프루동(Proundhon)을 비판하는 <철학의 빈곤>(1847)을 집필했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출판하였다.

1848년 마르크스는 파리로 건너 갔다가 다시 프로이센의 쾰른으로 가서 신라인신문의 편집인이 되었다. 그의 신문은 탄압을 받았으며, 1849년 5월 런던으로 도피하여 죽을 때까지 여기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1867년에 <자본론> 1권이 출판된다.

죽기 전 10년 동안 건강 악화로 고통 받았으며 1883년 런던에서 64세로 사망한다.

영향

저서

마르크스의 저작을 집대성한 사이트 마르크스 전집/유고집 관련 지식백과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