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파시즘(이탈리아어: Fascismo, 영어: Fascism)은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피억압 계급·계층에 대한 독점자본의 노골화한 테러 독재 및 이에 근거한 정치 운동을 일컫는다.
파시즘은 독점자본의 가장 반동적인 분파인 금융독점자본을 필두로 한다. 이 반동적 사조는 제국주의와 그에 상응하는 국가주의·국수주의·군국주의, 그리고 반공주의를 핵심 요소로 한다.[1]
이에 관해 코민테른은 1935년 8월 20일에 공표한 결의인 〈파시즘에 반대하고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지향하는 투쟁에서 코민테른의 임무〉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의 경제공황 및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걸친 근로대중의 혁명화, 이러한 정세에서 지배적인 부르주아는 파시즘, 즉 금융자본의 가장 반동적이며 배외주의적이고 가장 제국주의적인 분자의 공공연한 테러 독재의 수립에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 [...] 금융자본은 그 파시스트 앞잡이들의 힘을 빌려 자본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 대중의 격분을 억누르는 데 힘쓰고 있고, 파시스트는 그들의 슬로건을 데마고기적으로 이들 소부르주아 대중의 분위기에 적응시키고 있다."[2] | “ |
≪파시즘에 반대하고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지향하는 투쟁에서 코민테른의 임무≫ (1935) |
파시즘 운동 양상은 각 나라의 특수성에 따라 일정한 상이성을 보이지만, 그것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노골화된 테러 행위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파시즘은 전 세계 극우 정치의 보편적인 속성이기도 하다.[1]
용어
'fascism'이라는 단어는 이탈리어어 파쇼(fascio)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fascio'는 '결속'을 뜻한다.[3]
개요
파시즘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갖는 일정 한계로부터 비롯된다. 자본주의하에서 생산력 발전이 일정 단계에 이르게 되면 생산관계는 생산력과 비조응하게 된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을 억제하는 요소가 되며,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모순에서 주요한 측면을 차지하게 된다.[4]
자본주의에서 생산관계가 모순의 주요한 측면을 차지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의한 사회 발전의 정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정체 현상은 주관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진보를 촉진하는 수많은 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 및 테러를 통해 나타난다.[4]
코민테른의 〈파시즘에 대한 결의〉은 파시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 "파시즘의 가장 강력한 뿌리는, 제국주의 전쟁과 그것에 의하여 강화되고 촉진된 자본주의경제의 붕괴가 사람들이 품고 있던 희망과 반대로 중소부르주아, 소농민 및 ‘인텔리겐챠’의 광범한 층에 종래의 생활조건, 특히 종래 생활의 안정을 파괴했다고 하는 사정에 있다.[5] [...] 부르주아는 즉각 파시즘을, 프롤레타리아의 진압과 영속적인 노예화를 목적으로 하는 그 투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용병으로서 고용하였다.[6]" | “ |
≪파시즘에 대한 결의≫ (1923) |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갖는 모순의 격화는 독점자본주의 및 그 이상의 단계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전제로 한다. 봉건적 생산양식이 세계적인 기본 모순으로 자리 잡는 세계사적 상황, 즉 자유 경쟁 자본주의의 상대적 진보성이 부각되는 하에서 파시즘은 나타날 수 없다. 따라서, 파시즘은 자본주의 기본모순 발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4]
구체적 양상
자본주의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곧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의미한다. 자본 가치의 절대적 증가는 불변자본 가치의 등비적 증대와 가변자본 가치의 등차적 증대를 불러오는데, 이는 자본주의하 경쟁에서 필연적으로 관철되는 운동 양상이다. 경쟁에서 패한 자본은 경쟁에서 승리한 자본에 종속되고, 승리한 자본은 독점자본의 대표적 유형인 콘체른으로 전화하게 된다.
독점자본의 자본 가치는 비대하기 때문에 시장가격 이윤율이 매우 낮은데, 이는 낮은 수준의 평균이윤율 형성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상품에 체현된 가치의 상대량이 매우 낮다는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즉, 가치량이 감소하면, 잉여가치율이 높더라도 잉여가치의 양은 그에 상응하여 극미해지고, 전반적으로 이윤율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독점자본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과잉생산과, 해외 제국주의를 통한 초과 착취와 수탈을 병행한다.
파시즘의 본질은 독점자본의 요구에 기초한 정치 활동 및 통치이다. 파시즘 통치의 구체적 양상은 대외적으로는 전쟁, 대내적으로는 온갖 악법을 통한 노동운동의 탄압 및 형식적 제도로서 민주주의 말살 등에 있다.
노동운동에 대한 노골적 탄압
파쇼 통치는 독점자본 중 가장 반동적인 분파인 금융독점자본의 통치이다. 파쇼 정권하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노골적 탄압은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현상으로 된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의 파쇼정권은 노동조합을 불법화하고, 기존의 노동조합을 모두 국가 주도의 어용노조에 통폐합하였다.[7] 한편, 반공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자를 탄압하였고, 노동자 조직화를 온갖 수를 동원하여 방해하였다.[8]
‘반(反)자본주의’ 수사를 통한 인민 기만
파시스트의 노동운동 파괴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중 파시스트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반(反)자본주의' 수사이다.
코민테른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 "여러 나라의 주어진 역사적 사정에 따라 파시즘이 각각의 점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그 본질은 가장 야만적인 폭력과 사이비 혁명적인 공문구―허구적인 선동으로 광범한 근로대중의 욕구와 기분에 호소하는 바의―의 결합인 것이다."[9] | “ |
≪파시즘에 대한 결의≫ (1923) |
파시즘은 본래 독점자본과 농촌의 반동적 부농에 의해 후원되는 운동이지만, 이들은 겉으로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그것의 부당함을 설파한다. 그것의 의도는 민주운동과 노동운동의 분열이다.[10]
파쇼 운동은 ‘반자본주의’ 수사 및 기존 정치적 현상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통해 전통적인 기득권이라 인식되는 부패한 자유주의 정치인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노동대중에게 심는다. 이렇게 하여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후진 부분을 포섭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노동운동을 파괴하는 것이다.[10]
정권을 잡은 파시스트 당파는 노동자계급 및 피억압 계급·계층에 대한 그 어느 정권보다도 폭압적인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데, 파쇼 운동에 부화뇌동한 룸펜마저 이에 관하여는 예외로 되지 않는다.
반지성주의
자본주의 위기의 상황에서 노동대중은 일반적으로 자본에 대한 적대감을 지닌다. 이러한 심리적 상황은 혁명적 정세를 조성한다.
독점자본은 노동대중의 분노를 사회 혁명을 촉진하는 방향이 아니라 되려 그것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분출시키기 위해 수많은 음모론과 비과학적인 낭설을 동원한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증오 선동, 국내에 체류하는 해외인에 대한 각종 음모론, 특히 자본주의의 위기 격화를 특정 민족이나 지역, 또는 정치 집단에 의한 것인 양 조장하는 것 등으로 구성된다.[11]
파시즘 정치 운동 및 그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사회에서 약자이거나 또는 구습적인 요인에 의해서 부당하게 차별받았던 대상을 분노 표출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선동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고의 마비가 필수적이었다. 노동대중의 과학적 사고 능력을 마비시키고, 그들이 과학적 사고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식 체계에 대한 과격한 반달리즘이 선행되어야 했다. 파시스트들은 ‘노동대중 사상의식의 불구화’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반지식인운동과 결합하였다. 역사적으로 파시즘 최대의 적은 선진 노동자계급 외에도 진보적 경향을 지니는 지식인 계층이었다. 무솔리니·프랑코·히틀러·괴벨스 등 역사상 존재했던 파시스트 선동가·지도자는 지식인에 대한 증오 감정을 선동한 바 있다.
반지성주의와 관련한 파시즘의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이 운동이 항상 그 사회의 종교 이데올로그 내에서 가장 반동적인 분파와 동맹을 맺는 경향을 지닌다는 점이다.
미제의 이른바, ‘대안우파’[12] 및 QAnon[13],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각국에서 준동하는 수많은 파시스트 세력이 온갖 유사과학을 동원하며, 기존 학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대해 무개념적으로 ‘용어 혼란’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유는 이와 관련된다.
사회 진보에 대한 반동
파시즘은 통치 방식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 진보에 대한 극단적 반작용(발전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정치 활동이기도 하다.
1917년 11월 볼셰비키 혁명은 전 세계 독점자본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들이 정치적으로 결속하게 되는 일대 계기이기도 하였다.[14] 이미 당대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파시즘 운동의 맹아가 일고 있었는데, 이른바, 보수혁명론(Konservative Revolution), 낭만주의 운동, 국민생디칼리즘 전선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 운동은 1918년 이후 고조되는 혁명기에 대한 반동으로서 파시즘 운동으로 전화하게 되었다.
파시즘은 독점자본 중 가장 반동적인 분파에 의한 테러 독재라는 점에서 반공을 기반으로 한다. 이와 동시에 파시즘은 기존의 사회 진보 성과를 모조리 부정하는 일반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그것이 독점자본의 노골적 폭력 독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파시스트들은 자본을 파산이라는 늪에서 건져낼 수 있는 모든 정책을 옹호하며, 그것에 방해가 되는 정책을 공격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 대한 인권 처우의 개선은 장애인에 대한 예산 집행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따라서, 파시스트들은 ‘장애인의 열등함’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장애인 인권 처우 개선 정책을 모두 무산시키며, 장애인 권리를 퇴보한다. 이는 히틀러 파쇼정권의 장애인 대량 학살 정책을 통해 노골적으로 실현된 바 있다. 여성, 빈민, 소수민족 역시 파시스트들의 공격 대상이다. 나치의 모성 운동은 그것을 실증해주는데, 이는 여성을 사회적 생산 활동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실업률을 외형적으로 감소하고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심화를 가리우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파쇼정권의 통치하에서 현상적으로 유일하게 의미를 갖는 것은 타국에 대한 침략 행위, 즉 자국의 팽창이다. 이러한 팽창은 제국주의 세계재분할을 통해 이권을 보려는 독점자본의 의도가 그 본질로 있다. 결과적으로 파쇼정권하에서 인권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조합주의 경제’
파시즘이 현실성으로 전화될 수 있는 조건은 독점자본주의 및 그 이상의 자본주의 단계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이다. 1920년대 이후 파시즘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일반적 통치 방식으로 그 입지를 공고화하였는데, 그 중 경제 관리 방식에서 전반적 위기를 상쇄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서 정부 주도 경제의 형성에 있다.[15] 그들은 이를 ‘조합주의 경제’(corporatist economy)라고 칭하는데, 이는 파시스트의 계급협조주의적 의도를 반영한 용어에 불과하며, 그저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관리를 위한 정부 주도 경제의 한 형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1933년 1월 이탈리아 경제 재건을 위한 국영 지주 회사로서 산업재건기구(IRI)의 성립은 그 대표적 예였다.[16] 무솔리니 파쇼정권은 1929년부터 공황에 빠진 자본의 장기 대부를 보증하고, 주요 은행들이 보유한 산업 채권을 인수하였다. IRI는 이 채권을 독점적으로 보유하였다. 파쇼정권은 IRI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였다. 1934년, IRI는 이탈리아 전체 주식의 48.5%를 소유하게 되었다.[16]
나치 독일 역시 ‘조합주의 경제’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를 개편하였다. F. 노이만에 따르면, 1933년 1월 30일 집권 직후 나치당은 재벌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는 카르텔 정책을 추진하였다. 최초의 카르텔 명령은 같은 해 7월 15일에 공포되었다. 이 조치는 나치 정부가 설정한 공정가격 이하의 가격으로 상품을 내놓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조치를 단행하여 법적 제재를 가하는, 일종의 ‘정화’ 정책으로 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오로지 중소 도매업, 소매업자에게만 적용되었다. 소매상의 숫자는 1938년 1년 동안 약 3만 1,800개에서 2만 7,590개로 감소하였다.[17]
제정된 법에 따라 강제적 카르텔화가 진행되었는데, 이렇게 하여 성립된 카르텔 협회의 의사 결정은 오로지 기업의 생산력 수준에 따라 할당되는 투표권에 맡겨졌다. 예를 들어, 북부 실레지아의 석탄 신디케이트에서는 10만 톤의 생산량에 한 표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이는 생산력이 높은 독점체의 의사 결정권을 강화하는 계기로 되었다.[18] 강제적으로 통합된 카르텔의 지도자는 독일 기업협회의 지도자와 겹쳤으며[19], 카르텔 운영은 카르텔 협회 지도자의 사적인 결정에 전적으로 의지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은 대기업에게 유리하였다.[20] 따라서 카르텔화는 중소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중소기업은 카르텔에 가입하기를 꺼려하였으나, 나치 정부의 강권을 통해 사실상 강제로 카르텔에 편입되었다.
더 나아가 카르텔 체제는 비능률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기업가들을 직접적으로도 배제하였다. 이는 1939년 2월 22일, "수공업 분야에서의 4개년 계획의 수행"이라는 목적을 갖고 제정된 법과, 같은 해 3월 16일, "소매업의 정화"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을 통해 가속화되었다. 비능률적인 기업, 소매업소는 지방당 간부, 지방 직업소개소, 노동 당국과의 협력 하에서 정리되었다. 1938년 5월 7일의 수공업자대회에서 경제장관 풍크는 1936년과 37년 사이에 60만 개의 일인 작업장 중 9만 4백 48개가 폐쇄되었고, 이 과정은 전혀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21] 이는 이른바, 경제의 ‘거대화 과정’의 한 양상이었으며, 특히 중소기업의 제거와 소수의 대기업화를 통한 이해의 단일화가 그것의 주요한 모습이었다.[18]
이 과정을 통해 독일 재벌은 그 영향력을 가일층 팽창하였다. 대표적으로 만네스탄(Mannesmann) 재벌은 전문적 기업에서 포괄적 기업으로 그 규모가 확장하였다. 오토 볼프(Otto Wolff) 재벌은 무역업에서 출발하여 합동철강 트러스트와 만스펠트(Mansfeld) 구리 콘체른의 주식 일부를 취득하였다. 그는 소액 지분형태를 자신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로 전환시켰다. 빈터샬(Winterschall)의 수산화칼륨 재벌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그것은 카르텔 체제가 초과이윤을 보장하고 그것이 수많은, 다른 분야로 투자되도록 함으로써 재벌의 성장을 가져왔다는 주장에 대해 설득력있는 증거를 제공한다. 나치 독일 시기 수많은 재벌은 강제적 카르텔화 및 아리안화 정책[22]에 의해 큰 수혜를 입었다.[23]
파시즘에 대한 부르주아적 관점
스스로를 파시스트라 규정한 정치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이 손실되었다. 오늘날 세계 정치에서 파시즘은 "야만의 정치", "야수의 정치"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이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파쇼적 본성을 감추지 않는 독점자본의 가장 반동적인 분파 역시 형식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연구는 부르주아 학계에서도 깊게 이루어졌다. 미국의 ‘전체주의 학파’는 그 중 대표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학파는 파시즘에 관한 수많은 소논문을 작성하여 '위로부터의 파시즘',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군중 독재로서의 파시즘' 등의 이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파시즘이 독점자본에 의해 후원·조장되며, 독점자본의 의중한 정치 운동 및 사조라는 것을 가리는 부르주아적 관점에 불과하다.
모든 파시즘은 현상적으로 그것이 반동적 군중에 의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운동에 들어가는 자금, 그리고 그러한 운동의 배후 조종자는 독점자본 또는 지주자본가이다. 파시즘의 이러한 본질적 성격은, 파쇼 운동이 최종적으로는 제국주의 팽창을, 그리고 소자본에 대한 대자본으로의 강제적 병합과 노동운동의 광범위한 탄압을 주문하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으며, 파쇼 체제의 최대 수혜자는 독점자본 또는 지주자본가라는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이론은 파쇼 운동이 독점자본의 의중과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군중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설파하여, 결과적으로는 파시즘의 후과를 독점자본이 아니라 '무지한 군중'에게 지우기 위한 부르주아의 반동적 낭설에 불과하다.
파시즘 연구가인 R. 팩스턴은 파시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으로서 ‘독점자본주의 위기론’을 스탈린주의에 기초한 단편적 해설이라고 비판하였는데, 그 역시 파시즘이 좌익에 대한 총공세라는 점에서는 인정하였다.
각주
- ↑ 1.0 1.1 우동수 편 (1987), ≪世界現代史≫, 청아출판사, pp. 119-120.
- ↑ 편집부 편역 (1989), 《코민테른과 자료선집》, 제3권, 동녘, p. 136.
- ↑ "fascism", ≪merriam-webster≫ 사전 참조.
- ↑ 4.0 4.1 4.2 우동수 편 (1987), p. 120.
- ↑ 편집부 편역 (1988), 《코민테른과 통일전선》, 백의, p. 91.
- ↑ 《코민테른과 통일전선》, p. 93.
- ↑ 독일의 노동전선, 이탈리아의 국민생디칼리즘 노동총연맹, 남한의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現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은 그 대표적 예이다.
- ↑ 우동수 편 (1987), pp. 114-115.
- ↑ 《코민테른과 통일전선》, p. 93.
- ↑ 10.0 10.1 우동수 편 (1987), pp. 111-113.
- ↑ 유대자본 음모론, 배후중상설, 반중(反中) 성향의 음모론, 국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와 특정 지역에 대한 비방 등이 이에 속한다.
- ↑ 2008년 화폐 공황 이후 미제 내 청년층에서 두드러진 정치적 경향으로, 반공주의와 인종주의, 반여성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파시즘 정치 운동 및 현상의 일종이다.
- ↑ 미제의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로 구성된 정치 집단으로 극단적인 반지성주의를 동원한 음모론과 인종주의, 반공주의를 내포한 파시즘 정치 운동 및 현상의 일종이다.
- ↑ 우동수 편 (1987), pp. 107-108.
- ↑ 우동수 편 (1987), pp. 144-145.
- ↑ 16.0 16.1 장문석 편 (2009), ≪피아트와 파시즘≫, 지식의풍경, pp. 174-175.
- ↑ F. 노이만, 서동만 편역 (1983), 파시즘의 경제 구조: 《파시즘연구》, 거름, pp. 178-179.
- ↑ 18.0 18.1 《파시즘연구》, p. 188.
- ↑ 《파시즘연구》, p. 185.
- ↑ 《파시즘연구》, p. 189.
- ↑ 《파시즘연구》, p. 195.
- ↑ 유대자본을 몰수하여 그것을 독일 민족자본에 분배한 정책이다.
- ↑ 《파시즘연구》, pp. 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