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이론(2):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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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사태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되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은 우리가 올바로 추론했음을 실증하였다. 처음에는 농민 ‘전체’와 함께 군주제를 반대하고 지주 및 중세 체제에 반대하였다. (그런 만큼 혁명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그 다음에는 빈농과 함께, 반半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리고 모든 피착취자들과 함께 농촌의 부자, 쿨락, 그리고 고리대금업자를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반대하였다. 이리하여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빈농과의 연합 정도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두 혁명을 갈라놓거나 두 혁명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는 맑스주의를 완전히 왜곡하고 속류화시키며 자유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91을 보라.)<ref>V. I.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1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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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일) 22:43 기준 최신판


레닌주의의 기초
III. 이론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레닌의 이론은 세 개의 기본 명제에서 출발한다.


첫째 명제: 금융자본이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지배적 지위를 갖는다. 주식과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금융자본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수출이 제국주의의 기초 중의 하나이다. 금융자본이 지배한 결과는 금융과두제의 무제한적 권력을 낳았다. ― 이러한 것들은 독점자본주의의 심각한 기생성을 보여주며 자본주의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압박을 백배나 더 가중시킨다. 노동계급의 자본주의적 토대에 대한 분노를 격화시키며 대중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의 길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끈다(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첫 번째 명제가 나온다: 자본주의 나라 내부에서 혁명적 위기가 날로 첨예화되고 “종주국” 국내 전선(戰線)인 프롤레타리아 전선에서 폭발적 분위기가 높아진다.


둘째 명제: 식민지 및 종속국에 대한 자본수출이 격증한다. “세력 범위”와 식민지 영토가 확장되어 전 지구를 포괄한다. 자본주의는 극소수 “선진”국과 세계 대다수 식민지 인민으로 대립되며 선진국이 식민지를 금융적으로 종속시키고 식민지적 억압을 하는 세계적 체제로 전환한다. ― 이러한 것들은 한편으로는 분리된 민족경제와 민족영토를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연쇄 고리로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인구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한 진영은 극소수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로 광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다른 진영은 대다수 식민지 및 종속국으로 제국주의적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두 번째 명제가 나온다: 식민지 국가에서 혁명적 위기가 첨예화되고 국제전선인 식민지 전선에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높아진다.


셋째 명제: “세력 범위”와 식민지를 몇몇 국가가 독점한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불균등하게 발전한 결과로 이미 영토를 차지한 국가들과 자기 “몫”을 요구하는 국가들 간에 세계를 재분할하려는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세력 균형은 깨어지고 “균형”을 회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난다. ― 이러한 것들은 셋째 전선인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전선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 해방 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세 번째 명제가 나온다.: 제국주의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제국주의 세계 전선에 대항하는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동방의 식민지 혁명은 필연코 통일된 세계혁명 전선으로 연합한다.


레닌은 이 모든 결론을 한마디로 총괄하였다.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이다.[1] (≪레닌 저작집≫ 제19권, p. 71을 보라.)[2]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혁명의 성격, 그 규모, 그 깊이에 대한 취급 태도도 달라지며 혁명 일반의 설계도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 조건을 대개 개별 국가의 경제 상태를 보고 분석하였다. 이제 이런 접근 방법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모든 또는 대다수의 나라들의 경제 상태를 보고, 세계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개별 국가나 개별 민족경제는 자급자족의 단위를 벗어나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낡은 “문명적”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한 줌의 “선진국"이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금융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식민지배로 억압하는 세계체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개별 국가들, 보다 정확히는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 없는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관점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인 세계 제국주의 경제체제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를 말해야 한다. 이 체제 내에서 어떤 국가가 산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혁명 과정에서 극복하지 못할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체제가 하나의 전체라면, 바로 정확히 이 체제 전체가 이미 혁명을 위해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개별적 일국 자본에 대립하는 고립되고 자족적인 현상으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견해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말해야 한다. 개별적 일국 자본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이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나라의 혁명운동도 공동전선으로 이에 대항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순전히 해당 국가의 내적 발전의 결과로 보았다. 이제 이런 관점은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로 세계 제국주의 체제에서 모순이 발전한 결과로,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이 어떤 국가에서 끊어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


어디서 혁명이 시작될 것인가? 어디서, 어느 나라에서 제일 먼저 자본의 전선이 돌파될 것인가?


산업이 더욱 발전된 곳,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곳, 문화 수준이 더 높은 곳, 보다 민주적인 곳에서 일어난다고 이전에는 보통 대답하였다.


아니다. 레닌의 혁명 이론은 이에 반대한다. 혁명이 반드시 산업이 더 발전된 곳이든가 하는 등등의 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사슬이 가장 약한 고리에서 자본 전선은 돌파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혁명을 시작하여 자본 전선을 돌파한 나라가 자본주의 안에 남아 있는 발전된 나라에 비해 자본주의적 의미에서는 발전이 덜 된 나라일 수도 있다.


1917년에 제국주의 세계전선의 사슬은 다른 나라에서보다도 러시아에서 더 약하였다. 사슬이 끊어지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곳은 러시아였다. 왜 그런가?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인민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혁명적 노동계급이 선두에 섰고 노동계급은 지주에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광범한 농민과 같은 중요한 동맹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짜리즘과 같은 추악한 제국주의의 대리인과 대적하고 있었는데 짜리즘은 도덕적 위신을 완전히 잃었고 당연히 모든 주민은 짜리즘을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예컨대 프랑스나 독일, 영국이나 미국보다 발전이 덜 되었지만 사슬은 더 약하였다.


가까운 장래에 사슬은 어디서 끊어질 것인가? 역시 사슬이 가장 약한 곳이다. 예컨대 인도에서 사슬이 끊어질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인도에는 젊고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노동계급이 있고 노동계급은 민족해방운동과 같은 동맹군 ― 의심할 바 없이 강력하고 중요한 동맹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충분히 끊어질 수 있다. 왜 그런가? 예컨대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인들이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은 발전 수준에서 큰 차이나 난다. 그래서 그 흔적이 독일 혁명의 진행과 결말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주의를 향한 진전이 극에 달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은 내부에서 사회주의의 균등한 ‘성숙’ 과정을 밟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전쟁에서 먼저 패배한 나라에 대한 착취와 동방 전역에 대한 착취가 결합하는 과정을 경유하여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다른 한편 동방은 바로 이 제1차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확실히 혁명운동에 들어섰다. 결국 전 세계가 혁명운동의 광범위한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들어 갔다. (≪레닌 저작집≫ 제27권, pp. 415-416을 보라.)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은 보통 연결고리가 보다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자본주의가 보다 더 발전하고 노동자가 어느 정도의 비율이 되고 농민은 어느 정도의 비율인 등등의 곳에서만 제국주의의 사슬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국가 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는 인구 비율을 따지는 통계적 계산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특별한 중요성을 이미 상실했다.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혁명을 흑사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교조적 공론가들만이 그것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제2 인터내셔널의 영웅들의 주장에 의하면(지금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심연 또는 만리장성이 놓여 있다. 이 심연은 상당한 기간 동안 양 혁명을 분리시킨다. 이 기간 동안 정권을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계급은 힘을 축적하면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결정적 투쟁”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 기간을 보통 수십 년 이상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라는 조건하에서는 아무런 과학적 의미도 없다. 단지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수단에 지니지 않으며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겠다. 제국주의 시대는 충돌과 전쟁을 배태胚胎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로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죽어 가는” 자본주의(레닌)로 변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는 때이다. 제국주의 스스로 짜리즘과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일체의 반동세력들과 연합하였다. 그 때문에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동방의 민족 해방 운동을 포함한 모든 혁명적 세력이 반드시 단결하여야 하는 시대이다. 제국주의와의 혁명적 투쟁 없이는 봉건적 농노제적 잔재도 제거할 수 없게 된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다소 발전된 나라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접근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한다. 이는 증명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의 역사가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히 보여주었다. 레닌이 이미 1차 러시아 혁명 전야인 1905년에 소책자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서, 러시아 혁명의 발전이 지니는 단일한 전체상으로 묘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주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 대중과 동맹하여 전제권력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 중의 반半프롤레타리아 세력 대중과 동맹을 맺어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그런데 신이쓰끄라파는 혁명의 규모에 관한 모든 주장과 결의안에서 이런 임무를 아주 협소하게 제기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8권, p. 96을 보라.)[3]


레닌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인 부르주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시킬 데 대한 사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 후기 저작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어떤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비로소 이 견해에 도달했고 그 이전에는 마치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것이며 따라서 정권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기관의 수중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간주한 것처럼 믿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우리 공산주의적 출판물에까지 침투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이고 사실과도 전혀 맞지 않다.


레닌은 3차 당대회(1905)에서 행한 유명한 연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화”가 아니라 “전쟁의 조직화”라고 규정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7권, p. 264를 보라.)[4]


다음으로 레닌의 유명한 논문 “임시정부에 관하여”를 언급하겠다. 여기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이 앞으로 전개될 전망에 대한 윤곽을 그리면서 당 앞에 임무를 제기하였다. “러시아 혁명은 몇 개월간의 운동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운동이며, 단지 집권세력으로부터 사소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완전한 타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또 이 전망을 더 확대시켜 유럽 혁명과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때에는 … 그때야 말로 혁명의 불길이 유럽을 휩쓸 것이다. 이번엔 부르주아 반동 속에서 신음하는 유럽 노동자들의 차례가 되어 궐기하고 우리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 다음에 유럽의 혁명적 파고(波高)가 다시금 러시아로 밀려들 것이다. 몇 년간의 혁명기는 수십 년간의 혁명적 시대로 변할 것이다. (같은 책, p. 191을 보라.)[5]


또, 1915년 11월에 출판된 레닌의 유명한 논문을 인용하자.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화제를 위해, 토지몰수를 위해 … 군사-봉건적 ‘제국주의’(즉 짜리즘)로부터 부르주아적 러시아를 해방시키는 데 ‘비프롤레타리아 인민대중’을 참가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웅적으로 싸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짜리즘으로부터, 지주의 토지권력으로부터 부르주아 러시아의 해방을 즉시18) 이용할 것이다. 이것은 부농이 농업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18권, p. 318을 보라.)


마지막으로, 레닌의 소책자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겠다. 거기서 레닌은 위에서 말한 러시아 혁명의 규모에 대한 ≪두 가지 전술≫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사태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되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은 우리가 올바로 추론했음을 실증하였다. 처음에는 농민 ‘전체’와 함께 군주제를 반대하고 지주 및 중세 체제에 반대하였다. (그런 만큼 혁명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그 다음에는 빈농과 함께, 반半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리고 모든 피착취자들과 함께 농촌의 부자, 쿨락, 그리고 고리대금업자를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반대하였다. 이리하여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빈농과의 연합 정도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두 혁명을 갈라놓거나 두 혁명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는 맑스주의를 완전히 왜곡하고 속류화시키며 자유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91을 보라.)[6]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다.


  1. 강조추가 -- 필자의 주
  2. V. I. 레닌, ≪제국주의론≫, 남상일 역, 백산서당, p. 29.
  3. ≪레닌 저작집≫ 제3권 2분책, 전진, p. 233.
  4. ≪레닌 저작집≫ 제3권 1분책, p. 381.
  5. 같은 책, p. 296.
  6.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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