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이론(2):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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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레닌주의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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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이름 = III.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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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이름 =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절 이름 =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
|이전 장 = 레닌주의의 기초/이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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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내용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레닌의 이론은 세 가지 기본명제로부터 생겨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레닌의 이론은 세 개의 기본 명제에서 출발한다.




첫번째 테제: 발달한 자본주의국가에서의 금융자본의 지배, 금융자본의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로서 주식과 사채의 발행, 제국주의의 토대 가운데 하나인 원료산지로의 자본 수출, 금융자본의 지배의 결과인 금융과두제의 전지전능한 권력−이 모든 것은 독점자본주의의 엄청난 기생성을 폭로해주며 자본주의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멍에를 백배나 더 무겁게 만들며, 자본주의의 토대에 대한 노동계급의 분노를 격화시키며 나아가 대중들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인도하고 있다.(레닌, ''제국주의''<ref> V.I. 레닌,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작품집, 제4판 러시아판, 22권, 173-290쪽 참조) </ref>를 보라.)
첫째 명제: 금융자본이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지배적 지위를 갖는다. 주식과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금융자본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수출이 제국주의의 기초 중의 하나이다. 금융자본이 지배한 결과는 금융과두제의 무제한적 권력을 낳았다. ― 이러한 것들은 독점자본주의의 심각한 기생성을 보여주며 자본주의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압박을 백배나 더 가중시킨다. 노동계급의 자본주의적 토대에 대한 분노를 격화시키며 대중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의 길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끈다(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보라).




이 사실로부터 첫 번째 결론이 나온다: 자본주의국가 내부에서는 혁명적 위기의 격화 그리고 ‘(식민지) 본국’에서는 국내의 프롤레타리아전선에서 폭발 요소의 성장.
여기서 첫 번째 명제가 나온다: 자본주의 나라 내부에서 혁명적 위기가 날로 첨예화되고 “종주국” 국내 전선(戰線)인 프롤레타리아 전선에서 폭발적 분위기가 높아진다.




두 번째 테제: 식민지와 종속국에 대한 자본수출의 증가, 그들이 전 지구를 장악하기까지 ‘세력권’과 식민지 소유의 팽창, 한줌의 ‘선진’ 국가에 의한 세계인구의 광범한 다수의 금융적 예속과 식민지적 억압이라는 세계체제로 자본주의의 전이−이 모든 것은 한편으로는 분리된 민족경제와 민족영토를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사슬 내의 고리로 변환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지구의 전주민을 개의 진영−광대한 식민지와 종속국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한줌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식민지와 종속국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다수−으로 분열시켰다.(''제국주의''를 보라.)
둘째 명제: 식민지 및 종속국에 대한 자본수출이 격증한다. “세력 범위”와 식민지 영토가 확장되어 전 지구를 포괄한다. 자본주의는 극소수 “선진”국과 세계 대다수 식민지 인민으로 대립되며 선진국이 식민지를 금융적으로 종속시키고 식민지적 억압을 하는 세계적 체제로 전환한다. ― 이러한 것들은 한편으로는 분리된 민족경제와 민족영토를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연쇄 고리로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인구를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한 진영은 극소수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로 광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다른 진영은 대다수 식민지 및 종속국으로 제국주의적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이 사실로부터 두 번째 결론이 나온다. 식민지국가에서 혁명적 위기의 격화와 국외의 식민지전선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란적 요소의 증대.
여기서 두 번째 명제가 나온다: 식민지 국가에서 혁명적 위기가 첨예화되고 국제전선인 식민지 전선에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높아진다.




세 번째 테제: ‘세력권’과 식민지의 독점적 소유, 이미 영토를 강탈한 국가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국가 사이에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광적인 투쟁을 야기시키는 자본주의국가의 불균등 발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제국주의전쟁−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내부 전선인 제3의 전선에서 투쟁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해방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를 보라.)
셋째 명제: “세력 범위”와 식민지를 몇몇 국가가 독점한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불균등하게 발전한 결과로 이미 영토를 차지한 국가들과 자기 “몫”을 요구하는 국가들 간에 세계를 재분할하려는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세력 균형은 깨어지고 “균형”을 회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난다. ― 이러한 것들은 셋째 전선인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전선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 해방 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이 사실로부터 세 번째 결론이 나온다. 제국주의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제국주의 세계전선에 대항하는 통일된 세계혁명전선에서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동방의 식민지혁명 사이의 결합은 필연적이다.
여기서 세 번째 명제가 나온다.: 제국주의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제국주의 세계 전선에 대항하는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동방의 식민지 혁명은 필연코 통일된 세계혁명 전선으로 연합한다.




레닌은 이 모든 결론을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는 하나의 일반적인 결론으로 통합한다.<ref>강조추가 -- '''필자의 주'''</ref>(Vol. XIX, p. 71를 보라.)
레닌은 이 모든 결론을 한마디로 총괄하였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 혁명의 성격, 범위, 깊이, 일반적으로 혁명의 계획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그에 따라 달라진다.
{{인용문|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이다.<ref>강조추가 -- '''필자의 주'''</ref> (≪레닌 저작집≫ 제19권, p. 71을 보라.)<ref>V. I. 레닌, ≪제국주의론≫, 남상일 역, 백산서당, p. 29.</ref>}}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조건에 대한 분석이 대개 개별 국가의 경제상태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었다. 이제 이러한 접근은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하다. 이제 문제는 모든, 혹은 대다수 국가가 갖는 경제상태라는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상태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혁명의 성격, 그 규모, 그 깊이에 대한 취급 태도도 달라지며 혁명 일반의 설계도도 달라진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서 세계 제국주의경제의 전체계 속에서 혁명의 객관적 조건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만약 하나의 전체 체제라면,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의 전체 체제가 이미 혁명을 위해 성숙되어 있기 때문에, 체제 내부에 산업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몇몇 국가의 존재가 혁명에 대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 조건을 대개 개별 국가의 경제 상태를 보고 분석하였다. 이제 이런 접근 방법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모든 또는 대다수의 나라들의 경제 상태를 보고, 세계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개별 국가나 개별 민족경제는 자급자족의 단위를 벗어나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낡은 “문명적”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한 줌의 “선진국"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금융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식민지배로 억압하는 세계체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의 고립적인 일국전선은 제국주의의 세계전선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사슬 내의 고리로 되었으며,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의 공동전선은 이것에 대항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개별 국가들, 보다 정확히는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 없는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관점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인 세계 제국주의 경제체제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를 말해야 한다. 이 체제 내에서 어떤 국가가 산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혁명 과정에서 극복하지 못할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체제가 하나의 전체라면, 바로 정확히 이 체제 전체가 이미 혁명을 위해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오직 해당 국가의 내적 발전의 결과로만 여겨졌다. 이제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하다. 이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일차적으로 제국주의 세계체제 내부에 있는 제모순의 발전의 결과로, 이런저런 국가에서 세계 제국주의전선의 사슬이 파괴되는 것의 결과로 여겨져야 한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개별적 일국 자본에 대립하는 고립되고 자족적인 현상으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견해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말해야 한다. 개별적 일국 자본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이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나라의 혁명운동도 공동전선으로 이에 대항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어디에서 시작될 것인가?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순전히 해당 국가의 내적 발전의 결과로 보았다. 이제 이런 관점은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로 세계 제국주의 체제에서 모순이 발전한 결과로,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이 어떤 국가에서 끊어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




산업이 더 발달한 곳, 프롤레타리아가 다수를 차지하는 곳, 문화가 더 발전한 곳, 민주주의가 더 발달한 곳, 이것이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주어졌던 대답이었다.
어디서 혁명이 시작될 것인가? 어디서, 어느 나라에서 제일 먼저 자본의 전선이 돌파될 것인가?




레닌주의 혁명이론은 반드시 산업이 더욱 발달되어 있는 곳들만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의 가장 약한 곳에서 돌파될 것이다. 그리고 혁명을 시작하여 자본의 전선을 돌파할 나라는 다른, 더욱 발전되어 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의 체제 내에 남아 있는 나라들보다 자본주의적으로 덜 발전된 나라가 될 지도 모른다.
산업이 더욱 발전된 곳,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곳, 문화 수준이 더 높은 곳, 보다 민주적인 곳에서 일어난다고 이전에는 보통 대답하였다.




1917년 제국주의 세계 전선의 사슬은 러시아에서 다른 나라보다 약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사슬이 끊어지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출구가 마련되었다. 왜?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대중 혁명이 전개되고 있었고 그 선두에는 지주들에 의해 억압되고 착취당하는 방대한 농민 대중과 같은 중요한 동맹을 가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행진했기 때문이다. 그곳의 혁명은 모든 도덕적 명성이 부족하고 전체 인구가 당연히 미워하는 차르주의와 같은 끔찍한 제국주의의 대표자들에 의해 반대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러시아가 이를테면 프랑스나 독일, 영국과 미국보다 자본주의적으로 발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슬은 러시아에서 한층 약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아니다. 레닌의 혁명 이론은 이에 반대한다. 혁명이 반드시 산업이 더 발전된 곳이든가 하는 등등의 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사슬이 가장 약한 고리에서 자본 전선은 돌파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혁명을 시작하여 자본 전선을 돌파한 나라가 자본주의 안에 남아 있는 발전된 나라에 비해 자본주의적 의미에서는 발전이 된 나라일 수도 있다.




가까운 미래에 사슬은 어디에서 파괴될 것인가? 역시 가장 약한 곳에서. 사실이 이를테면 인도에서 끊어질지 모른다는 점이 배제될 수는 없다. 왜? 그 나라에는 젊고 전투적이며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있고,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강력하고 중요한 동맹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서 혁명은 도덕적 신용이 없고 인도의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대중에게 당연히 미움을 받는 외국 제국주의와 같은 잘 알려진 적과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1917년에 제국주의 세계전선의 사슬은 다른 나라에서보다도 러시아에서 더 약하였다. 사슬이 끊어지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곳은 러시아였다. 왜 그런가?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인민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혁명적 노동계급이 선두에 섰고 노동계급은 지주에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광범한 농민과 같은 중요한 동맹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짜리즘과 같은 추악한 제국주의의 대리인과 대적하고 있었는데 짜리즘은 도덕적 위신을 완전히 잃었고 당연히 모든 주민은 짜리즘을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예컨대 프랑스나 독일, 영국이나 미국보다 발전이 덜 되었지만 사슬은 더 약하였다.




사슬이 독일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왜?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이 역시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 사이의 엄청난 발전 수준 차이는 독일에서 혁명의 진전과 결과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가까운 장래에 사슬은 어디서 끊어질 것인가? 역시 사슬이 가장 약한 곳이다. 예컨대 인도에서 사슬이 끊어질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인도에는 젊고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노동계급이 있고 노동계급은 민족해방운동과 같은 동맹군 ― 의심할 바 없이 강력하고 중요한 동맹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에서도 충분히 끊어질 수 있다. 왜 그런가? 예컨대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인들이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은 발전 수준에서 큰 차이나 난다. 그래서 그 흔적이 독일 혁명의 진행과 결말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인용문|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발전을 완성할 것이다 ... 그 안에서 사회주의가 '성숙'함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의한 일부 국가의 착취, 제국주의 전쟁에서 정복될 국가 중 첫 번째 국가의 착취와 동양 전체에 대한 착취가 결합됨으로써 사회주의를 완성할 것이다. 반면에 첫 번째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동양은 확실히 혁명 운동에 들어갔고, 세계 혁명 운동의 일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 들어갔다.(제25권, 415~16쪽을 보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용문|서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주의를 향한 진전이 극에 달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은 내부에서 사회주의의 균등한 ‘성숙’ 과정을 밟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전쟁에서 먼저 패배한 나라에 대한 착취와 동방 전역에 대한 착취가 결합하는 과정을 경유하여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다른 한편 동방은 바로 이 제1차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확실히 혁명운동에 들어섰다. 결국 전 세계가 혁명운동의 광범위한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들어 갔다. (≪레닌 저작집≫ 제27권, pp. 415-416을 보라.)}}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전선이라는 사슬은 일반적으로 고리가 더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좌우간 반드시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된 곳, 이런저런 비율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이런저런 비율의 농민이 존재하는 곳들에서만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은 보통 연결고리가 보다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자본주의가 보다 더 발전하고 노동자가 어느 정도의 비율이 되고 농민은 어느 정도의 비율인 등등의 곳에서만 제국주의의 사슬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해당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인구의 비율에 관한 통계학적 평가는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이 혁명을 전염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인터내셔널 교조주의자들이 그토록 중요시하고 싶어했던 그 예외적 중요성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국가 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는 인구 비율을 따지는 통계적 계산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특별한 중요성을 이미 상실했다.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혁명을 흑사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교조적 공론가들만이 그것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을 뿐이다.




계속하자면, 제2인터내셔널의 주역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얼마간 오랜 걸리는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 상호 분리된 금이나 만리장성이 존재하며, 그동안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에 대한 ‘결정적 투쟁’을 위해 힘을 축적하고 대비한다고 주장했고 또한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 간격은 대개 짧아도 수십년은 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는 과학적 의미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으며, 단지 부르주아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위장하려는 수단이라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다음으로 제2 인터내셔널의 영웅들의 주장에 의하면(지금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심연 또는 만리장성이 놓여 있다. 이 심연은 상당한 기간 동안 양 혁명을 분리시킨다. 이 기간 동안 정권을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계급은 힘을 축적하면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결정적 투쟁”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 기간을 보통 수십 년 이상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라는 조건하에서는 아무런 과학적 의미도 없다. 단지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수단에 지니지 않으며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겠다. 제국주의 시대는 충돌과 전쟁을 배태胚胎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로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죽어 가는” 자본주의(레닌)로 변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는 때이다. 제국주의 스스로 짜리즘과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일체의 반동세력들과 연합하였다. 그 때문에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동방의 민족 해방 운동을 포함한 모든 혁명적 세력이 반드시 단결하여야 하는 시대이다. 제국주의와의 혁명적 투쟁 없이는 봉건적 농노제적 잔재도 제거할 수 없게 된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다소 발전된 나라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접근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한다. 이는 증명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의 역사가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히 보여주었다. 레닌이 이미 1차 러시아 혁명 전야인 1905년에 소책자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서, 러시아 혁명의 발전이 지니는 단일한 전체상으로 묘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민주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 대중과 동맹하여 전제권력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 중의 반半프롤레타리아 세력 대중과 동맹을 맺어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그런데 신이쓰끄라파는 혁명의 규모에 관한 모든 주장과 결의안에서 이런 임무를 아주 협소하게 제기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8권, p. 96을 보라.)<ref> ≪레닌 저작집≫ 제3권 2분책, 전진, p. 233.</ref>}}


충돌과 전쟁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사멸하는’ 자본주의로 되고(레닌)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는 조건 아래서, 제국주의 자신이 차르주의와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모든 반동세력들과 예외 없이 동맹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부터 동방의 민족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세력의 연합이 절박한 것으로 되고 있는 시기, 봉건⋅농노제적 유제의 제거가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시기 − 이런 조건 아래서 다소 발달된 나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전자는 후자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레닌이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 전날, 그의 팸플릿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 러시아 혁명을 휩쓸고 간 하나의 통합된 그림으로 묘사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레닌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인 부르주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시킬 데 대한 사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 후기 저작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 정권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농민대중과 동맹하여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쁘띠부르주아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인구의 반프롤레타리아적 요소의 대중과 동맹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며, 새로운 이스크라주의자들은 혁명의 전면적 실시에 대한 모든 주장과 결의에서 매우 협소하게 제시하고 있다.(레닌, 8권, 96쪽을 보라)}}
어떤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비로소 이 견해에 도달했고 그 이전에는 마치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것이며 따라서 정권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기관의 수중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간주한 것처럼 믿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우리 공산주의적 출판물에까지 침투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이고 사실과도 전혀 맞지 않다.




레닌주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로서 부르주아지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두드러지는 레닌의 다른 후기 저작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레닌은 3차 당대회(1905)에서 행한 유명한 연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화”가 아니라 “전쟁의 조직화”라고 규정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7권, p. 264를 보라.)<ref>≪레닌 저작집≫ 제3권 1분책, p. 381.</ref>




일부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이 생각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러시아의 혁명이 부르주아적 틀 안에 머물 것이며, 결과적으로 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관의 손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부르주아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심지어 우리 공산주의 언론에도 침투했다고한다. 나는 주장이 완전히 틀렸고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고싶다.
다음으로 레닌의 유명한 논문 “임시정부에 관하여”를 언급하겠다. 여기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이 앞으로 전개될 전망에 대한 윤곽을 그리면서 당 앞에 임무를 제기하였다. “러시아 혁명은 몇 개월간의 운동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운동이며, 단지 집권세력으로부터 사소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완전한 타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또 전망을 더 확대시켜 유럽 혁명과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이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이 아니라 "전쟁의 조직"으로 정의한 레닌의 잘 알려진 당 제3차 대회(1905년) 연설을 언급할 수 있다.(제7권, 264쪽을 보라).
{{인용문|만약 우리가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때에는 … 그때야 말로 혁명의 불길이 유럽을 휩쓸 것이다. 이번엔 부르주아 반동 속에서 신음하는 유럽 노동자들의 차례가 되어 궐기하고 우리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 다음에 유럽의 혁명적 파고(波高)가 다시금 러시아로 밀려들 것이다. 몇 년간의 혁명기는 수십 년간의 혁명적 시대로 변할 것이다. (같은 책, p. 191을 보라.)<ref> 같은 책, p. 296.</ref>}}




더 나아가, 나는 레닌의 잘 알려진 글 "임시정부에 대하여"(1905)<ref>스탈린은 1905년 레닌이 작성한 다음 구절을 참조했다: "사회민주주의와 임시 혁명 정부"에서 구절을 인용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및 "임시혁명 정부에 관하여"(레닌, ''Works, 4th Russ. ed., Vol. 8'', pp. 247-63, 264-74, 427-47 참조).</ref>에서 전개되는 러시아 혁명의 전망을 설명하면서 "러시아 혁명이 몇 달의 운동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운동이 되도록, 열강의 약간의 양보가 아니라 그 열강의 완전한 전복으로 이어지도록 보장하는" 임무를 당에 부여하고, 이러한 전망을 더 확대하여 유럽의 혁명과 연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 1915년 11월에 출판된 레닌의 유명한 논문을 인용하자.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인용문|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성공한다면 ... 혁명적 불길은 유럽 전역으로 퍼질 것이고, 부르주아 반동 아래서 시들해진 유럽 노동자는 자신의 차례에 일어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의 혁명적 물결은 다시 러시아로 휩쓸고 들어와 몇 년의 혁명시대를 몇십년의 혁명 시대로 전환시킬 것이다 .... "(같은 책, 191쪽).}}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화제를 위해, 토지몰수를 위해 … 군사-봉건적 ‘제국주의’(즉 짜리즘)로부터 부르주아적 러시아를 해방시키는 ‘비프롤레타리아 인민대중’을 참가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웅적으로 싸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짜리즘으로부터, 지주의 토지권력으로부터 부르주아 러시아의 해방을 즉시18) 이용할 것이다. 이것은 부농이 농업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18권, p. 318을 보라.)}}




나는 1915 년 11 월에 출판 된 레닌의 잘 알려진 기사를 더 언급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레닌의 소책자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겠다. 거기서 레닌은 위에서 말한 러시아 혁명의 규모에 대한 ≪두 가지 전술≫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인용문|사태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되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은 우리가 올바로 추론했음을 실증하였다. 처음에는 농민 ‘전체’와 함께 군주제를 반대하고 지주 및 중세 체제에 반대하였다. (그런 만큼 혁명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그 다음에는 빈농과 함께, 반半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리고 모든 피착취자들과 함께 농촌의 부자, 쿨락, 그리고 고리대금업자를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반대하였다. 이리하여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빈농과의 연합 정도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두 혁명을 갈라놓거나 두 혁명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는 맑스주의를 완전히 왜곡하고 속류화시키며 자유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91을 보라.)<ref>V. I.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13.</ref>}}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토지를 몰수하기 위한 공화국을 위해, ... 부르주아 러시아를 군사 봉건적 '제국주의'(스타리즘)에서 해방시키는 데 '비프롤레타리아 인민 대중'이 참여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고 있으며, 싸울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즉시<ref>강조추가 -- '''필자의 주'''</ref> 부르주아 러시아가 차르주의, 지주의 농업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이용하여 농촌 노동자에 대항하는 부농의 투쟁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제15권, 318쪽을 보라.)}}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레닌의 팸플릿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잘 알려진 구절을 언급할 수 있는데, 러시아 혁명의 휩쓸기에 관한 두 가지 전술에서 위에서 인용한 구절을 언급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인용문|우리가 말한대로 일이 일어났다. 혁명이 취한 과정은 우리 추론의 정확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첫째, 군주제, 지주, 중세 체제에 반대하는 농민 '전체'와 함께 (그리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부르주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남아 있다.) 그런 다음 가난한 농민, 반半프롤레타리아, 모든 착취당한 사람들과 함께, 농촌 부자, 쿨라크, 수익자를 포함한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된다.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가난한 농민과의 단결 정도 이외의 다른 것으로 그들을 분리하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저속화하며 자유주의로 대체하려는 괴물을 의미한다.(제23권, 391면 참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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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일) 22:43 기준 최신판


레닌주의의 기초
III. 이론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레닌의 이론은 세 개의 기본 명제에서 출발한다.


첫째 명제: 금융자본이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지배적 지위를 갖는다. 주식과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금융자본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수출이 제국주의의 기초 중의 하나이다. 금융자본이 지배한 결과는 금융과두제의 무제한적 권력을 낳았다. ― 이러한 것들은 독점자본주의의 심각한 기생성을 보여주며 자본주의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압박을 백배나 더 가중시킨다. 노동계급의 자본주의적 토대에 대한 분노를 격화시키며 대중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의 길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끈다(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첫 번째 명제가 나온다: 자본주의 나라 내부에서 혁명적 위기가 날로 첨예화되고 “종주국” 국내 전선(戰線)인 프롤레타리아 전선에서 폭발적 분위기가 높아진다.


둘째 명제: 식민지 및 종속국에 대한 자본수출이 격증한다. “세력 범위”와 식민지 영토가 확장되어 전 지구를 포괄한다. 자본주의는 극소수 “선진”국과 세계 대다수 식민지 인민으로 대립되며 선진국이 식민지를 금융적으로 종속시키고 식민지적 억압을 하는 세계적 체제로 전환한다. ― 이러한 것들은 한편으로는 분리된 민족경제와 민족영토를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연쇄 고리로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인구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한 진영은 극소수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로 광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다른 진영은 대다수 식민지 및 종속국으로 제국주의적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두 번째 명제가 나온다: 식민지 국가에서 혁명적 위기가 첨예화되고 국제전선인 식민지 전선에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높아진다.


셋째 명제: “세력 범위”와 식민지를 몇몇 국가가 독점한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불균등하게 발전한 결과로 이미 영토를 차지한 국가들과 자기 “몫”을 요구하는 국가들 간에 세계를 재분할하려는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세력 균형은 깨어지고 “균형”을 회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난다. ― 이러한 것들은 셋째 전선인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전선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 해방 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세 번째 명제가 나온다.: 제국주의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제국주의 세계 전선에 대항하는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동방의 식민지 혁명은 필연코 통일된 세계혁명 전선으로 연합한다.


레닌은 이 모든 결론을 한마디로 총괄하였다.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이다.[1] (≪레닌 저작집≫ 제19권, p. 71을 보라.)[2]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혁명의 성격, 그 규모, 그 깊이에 대한 취급 태도도 달라지며 혁명 일반의 설계도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 조건을 대개 개별 국가의 경제 상태를 보고 분석하였다. 이제 이런 접근 방법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모든 또는 대다수의 나라들의 경제 상태를 보고, 세계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개별 국가나 개별 민족경제는 자급자족의 단위를 벗어나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낡은 “문명적”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한 줌의 “선진국"이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금융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식민지배로 억압하는 세계체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개별 국가들, 보다 정확히는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 없는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관점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인 세계 제국주의 경제체제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를 말해야 한다. 이 체제 내에서 어떤 국가가 산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혁명 과정에서 극복하지 못할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체제가 하나의 전체라면, 바로 정확히 이 체제 전체가 이미 혁명을 위해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개별적 일국 자본에 대립하는 고립되고 자족적인 현상으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견해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말해야 한다. 개별적 일국 자본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이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나라의 혁명운동도 공동전선으로 이에 대항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순전히 해당 국가의 내적 발전의 결과로 보았다. 이제 이런 관점은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로 세계 제국주의 체제에서 모순이 발전한 결과로,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이 어떤 국가에서 끊어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


어디서 혁명이 시작될 것인가? 어디서, 어느 나라에서 제일 먼저 자본의 전선이 돌파될 것인가?


산업이 더욱 발전된 곳,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곳, 문화 수준이 더 높은 곳, 보다 민주적인 곳에서 일어난다고 이전에는 보통 대답하였다.


아니다. 레닌의 혁명 이론은 이에 반대한다. 혁명이 반드시 산업이 더 발전된 곳이든가 하는 등등의 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사슬이 가장 약한 고리에서 자본 전선은 돌파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혁명을 시작하여 자본 전선을 돌파한 나라가 자본주의 안에 남아 있는 발전된 나라에 비해 자본주의적 의미에서는 발전이 덜 된 나라일 수도 있다.


1917년에 제국주의 세계전선의 사슬은 다른 나라에서보다도 러시아에서 더 약하였다. 사슬이 끊어지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곳은 러시아였다. 왜 그런가?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인민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혁명적 노동계급이 선두에 섰고 노동계급은 지주에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광범한 농민과 같은 중요한 동맹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짜리즘과 같은 추악한 제국주의의 대리인과 대적하고 있었는데 짜리즘은 도덕적 위신을 완전히 잃었고 당연히 모든 주민은 짜리즘을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예컨대 프랑스나 독일, 영국이나 미국보다 발전이 덜 되었지만 사슬은 더 약하였다.


가까운 장래에 사슬은 어디서 끊어질 것인가? 역시 사슬이 가장 약한 곳이다. 예컨대 인도에서 사슬이 끊어질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인도에는 젊고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노동계급이 있고 노동계급은 민족해방운동과 같은 동맹군 ― 의심할 바 없이 강력하고 중요한 동맹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충분히 끊어질 수 있다. 왜 그런가? 예컨대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인들이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은 발전 수준에서 큰 차이나 난다. 그래서 그 흔적이 독일 혁명의 진행과 결말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주의를 향한 진전이 극에 달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은 내부에서 사회주의의 균등한 ‘성숙’ 과정을 밟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전쟁에서 먼저 패배한 나라에 대한 착취와 동방 전역에 대한 착취가 결합하는 과정을 경유하여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다른 한편 동방은 바로 이 제1차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확실히 혁명운동에 들어섰다. 결국 전 세계가 혁명운동의 광범위한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들어 갔다. (≪레닌 저작집≫ 제27권, pp. 415-416을 보라.)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은 보통 연결고리가 보다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자본주의가 보다 더 발전하고 노동자가 어느 정도의 비율이 되고 농민은 어느 정도의 비율인 등등의 곳에서만 제국주의의 사슬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국가 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는 인구 비율을 따지는 통계적 계산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특별한 중요성을 이미 상실했다.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혁명을 흑사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교조적 공론가들만이 그것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제2 인터내셔널의 영웅들의 주장에 의하면(지금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심연 또는 만리장성이 놓여 있다. 이 심연은 상당한 기간 동안 양 혁명을 분리시킨다. 이 기간 동안 정권을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계급은 힘을 축적하면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결정적 투쟁”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 기간을 보통 수십 년 이상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라는 조건하에서는 아무런 과학적 의미도 없다. 단지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수단에 지니지 않으며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겠다. 제국주의 시대는 충돌과 전쟁을 배태胚胎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로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죽어 가는” 자본주의(레닌)로 변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는 때이다. 제국주의 스스로 짜리즘과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일체의 반동세력들과 연합하였다. 그 때문에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동방의 민족 해방 운동을 포함한 모든 혁명적 세력이 반드시 단결하여야 하는 시대이다. 제국주의와의 혁명적 투쟁 없이는 봉건적 농노제적 잔재도 제거할 수 없게 된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다소 발전된 나라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접근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한다. 이는 증명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의 역사가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히 보여주었다. 레닌이 이미 1차 러시아 혁명 전야인 1905년에 소책자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서, 러시아 혁명의 발전이 지니는 단일한 전체상으로 묘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주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 대중과 동맹하여 전제권력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 중의 반半프롤레타리아 세력 대중과 동맹을 맺어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그런데 신이쓰끄라파는 혁명의 규모에 관한 모든 주장과 결의안에서 이런 임무를 아주 협소하게 제기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8권, p. 96을 보라.)[3]


레닌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인 부르주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시킬 데 대한 사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 후기 저작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어떤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비로소 이 견해에 도달했고 그 이전에는 마치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것이며 따라서 정권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기관의 수중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간주한 것처럼 믿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우리 공산주의적 출판물에까지 침투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이고 사실과도 전혀 맞지 않다.


레닌은 3차 당대회(1905)에서 행한 유명한 연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화”가 아니라 “전쟁의 조직화”라고 규정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7권, p. 264를 보라.)[4]


다음으로 레닌의 유명한 논문 “임시정부에 관하여”를 언급하겠다. 여기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이 앞으로 전개될 전망에 대한 윤곽을 그리면서 당 앞에 임무를 제기하였다. “러시아 혁명은 몇 개월간의 운동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운동이며, 단지 집권세력으로부터 사소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완전한 타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또 이 전망을 더 확대시켜 유럽 혁명과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때에는 … 그때야 말로 혁명의 불길이 유럽을 휩쓸 것이다. 이번엔 부르주아 반동 속에서 신음하는 유럽 노동자들의 차례가 되어 궐기하고 우리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 다음에 유럽의 혁명적 파고(波高)가 다시금 러시아로 밀려들 것이다. 몇 년간의 혁명기는 수십 년간의 혁명적 시대로 변할 것이다. (같은 책, p. 191을 보라.)[5]


또, 1915년 11월에 출판된 레닌의 유명한 논문을 인용하자.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화제를 위해, 토지몰수를 위해 … 군사-봉건적 ‘제국주의’(즉 짜리즘)로부터 부르주아적 러시아를 해방시키는 데 ‘비프롤레타리아 인민대중’을 참가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웅적으로 싸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짜리즘으로부터, 지주의 토지권력으로부터 부르주아 러시아의 해방을 즉시18) 이용할 것이다. 이것은 부농이 농업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18권, p. 318을 보라.)


마지막으로, 레닌의 소책자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겠다. 거기서 레닌은 위에서 말한 러시아 혁명의 규모에 대한 ≪두 가지 전술≫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사태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되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은 우리가 올바로 추론했음을 실증하였다. 처음에는 농민 ‘전체’와 함께 군주제를 반대하고 지주 및 중세 체제에 반대하였다. (그런 만큼 혁명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그 다음에는 빈농과 함께, 반半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리고 모든 피착취자들과 함께 농촌의 부자, 쿨락, 그리고 고리대금업자를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반대하였다. 이리하여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빈농과의 연합 정도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두 혁명을 갈라놓거나 두 혁명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는 맑스주의를 완전히 왜곡하고 속류화시키며 자유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91을 보라.)[6]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다.


  1. 강조추가 -- 필자의 주
  2. V. I. 레닌, ≪제국주의론≫, 남상일 역, 백산서당, p. 29.
  3. ≪레닌 저작집≫ 제3권 2분책, 전진, p. 233.
  4. ≪레닌 저작집≫ 제3권 1분책, p. 381.
  5. 같은 책, p. 296.
  6.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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