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포이어바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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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인물 |이름 =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 |다른 이름 = Ludwig Andreas von Feuerbach |사진 = 포이어바흐.jpg |명언 = "헤겔은 감각적 의식의 대상을 형성하는 "여기"를, 즉 우리에게 순수사유와는 구분되는 것인 대상을 논파하지 않는다." |출생일 = 1804년 7월 28일 |출생지 = 프로이센 왕국 란츠훈트 |사망일 = 1872년 9월 13일 |사망지 = 독일 제국 뉘른베르크 |국적 =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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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프로이센 왕국 란츠훈트
|출생지 = 프로이센 왕국 란츠훈트

2024년 1월 13일 (토) 18:24 기준 최신판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
Ludwig Andreas von Feuerbach
헤겔은 감각적 의식의 대상을 형성하는 "여기"를, 즉 우리에게 순수사유와는 구분되는 것인 대상을 논파하지 않는다.
출생
출생
1804년 7월 28일

프로이센 왕국 란츠훈트
사망
사망
1872년 9월 13일

독일 제국 뉘른베르크
국적
국적
프로이센 왕국 → 독일 제국
약력
약력
에를랑겐 대학교 박사


개요

독일의 철학자. 유물론자이자 종교철학자이며, 청년 헤겔학파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생애

사상

포이어바흐 특유의 인간학적 유물론은 한편으로는 종교 비판으로, 한편으로는 감각주의적 인식론으로 특징지어진다. 논증사적으로 보았을 때, 포이어바흐의 감각주의는 헤겔 사변철학의 인식론적 기틀이 되는 감각의 개념매개를 비판하였다는 점에서 유물론의 발전에 공헌하였으나, 자연의 무매개적 소여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소박실재론으로 귀착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한 한계로 인해 물질의 선차성과 인식의 매개성을 어떻게 접합할 것이냐는 문제는 — 이것은 버클리칸트에 의해 대두되었다 — 포이어바흐를 통해 마르크스엥겔스에게 넘겨졌다.

감각주의

포이어바흐의 감각주의는 그 토대를 헤겔 인식론의 비판에 둔다. 따라서 포이어바흐의 감각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전개한 감각적 확신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이해해야 한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의 「감각적 확신」장에서 전개한 논의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과 "여기"는 항상 특정한 시점에서의 "지금"이고, 특정한 지점에서의 "여기"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특정한 시점과 지점은 항상 변한다. 밤일 때의 "지금"은 한밤중일 수도 있고, 낮일 때의 "지금"은 정오일 수도 있다. 지시체가 변한다는 뜻이다. 감각적 확신 단계의 의식은 "지금"을 특정한 개별자를 지시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그 "지금"은 사실 여러 개별자를 지시하는 것으로, 즉 보편자이다. "여기"의 경우에도 사정은 똑같다.

헤겔의 이러한 논의가 가진 함의는 이견이 많지만, 포이어바흐의 헤겔 이해와 관련된 맥락에서는 개별자의 지시불능성이다. 우리의 인식은 항상 개념에 매개되어 있으므로, 비개념적인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관념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논리는 버클리가 가장 노골적으로 정식화한 것에서 보이듯이 관념론의 토대를 이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헤겔이 "여기"와 "지금"이 의미하는 바가 '이미' 보편자라고 논하는 점이다. 헤겔의 논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감각적 개별자를 지칭한다고 여기는 "여기"와 "지금"의 의미가 보편자임을 내재적으로 드러내는 식이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인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헤겔이 논하는 "여기"와 "지금"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여기"와 "지금"이 아니라면, 헤겔의 논의는 깨진다.

포이어바흐는 이 점에 주목하여, 헤겔이 다루는 "여기"와 "지금"은 논리적으로 파악된 "여기"와 "지금"이지, 실제 감각적 확신의 "여기"와 "지금"이 아니라고 논한다. 즉, 헤겔은 "여기"와 "지금"이 보편자임을 미리 전제하고서, 그 전제를 반복하는 일종의 동어반복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포이어바흐의 논의는 불명료하지만, 체계적으로 재구성해보자면 이렇다. 헤겔은 사변적으로 "여기"와 "지금"을 논한다. 그런데 헤겔은 사변적으로 파악된 "여기"와 "지금"이 일반적인 "여기"와 "지금"과 같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헤겔의 논의는 "여기"와 "지금"이 '이미' 보편자를 지시한다는 결론에서 사변적 방법을 정당화한다. 즉 헤겔은 사변적 방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변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순환논증이다.

포이어바흐의 이러한 논의가 옳은지는 역시 이견이 많지만, 여하튼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논리로 사변적으로는 감각적 대상을 다룰 수 없으니,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이어바흐에게는 감각이 곧 실재이다. 포이어바흐에게 감각적 존재자란 자연으로, 이것이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이룬다.

여기서 "왜 감각적 대상을 다루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각적 대상, 즉 자연은 헤겔의 삼분적 학문체계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헤겔의 체계에 자연이 부재한다면 그것은 무너진다. 그리고 포이어바흐는 그 무너짐을 보이고자 한 셈이다.

종교철학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자신의 본질대상화하여 — 이는 유적존재 특유의 능력이다 — 외화한 것이 이라고 논한다. 즉, 인간이 신에 본질을 투사하였으므로, 인간의 본질은 신에게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계

청년 헤겔학파의 해체기를 상징하는 인물인 막스 슈티르너는, 자신의 주저인 『유일자와 그 소유』에서 포이어바흐가 내세우는 "인간"이 추상적임을 논한다. 포이어바흐는 종교가 소외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그 자신이 내세우는 인간도 소외의 결과이고, 추상화된 본질이라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이에 반론을 제기했고, 슈티르너는 재반론을 제기했지만, 포이어바흐는 응답하지 않았다. 포이어바흐의 이러한 침묵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로 하여금 포이어바흐의 체계에 회의를 느끼게 한 단초라는 추측이 있다.

그에 이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자연은 산업에 의해 매개된 자연이고, 따라서 역사화해야하는 대상인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비판하였다.

주요 저작

  • 「헤겔철학 비판을 위하여」
  • 『기독교의 본질』
  • 「미래철학의 근본원리」
  • 「철학의 개혁을 위한 예비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