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이론(2):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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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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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이름 =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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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장 = 레닌주의의 기초/이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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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내용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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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테제: ‘세력권’과 식민지의 독점적 소유, 이미 영토를 강탈한 국가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국가 사이에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광적인 투쟁을 야기시키는 자본주의국가의 불균등 발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제국주의전쟁−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내부 전선인 제3의 전선에서 투쟁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해방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를 보라.)
세 번째 테제: ‘세력권’과 식민지의 독점적 소유, 이미 영토를 강탈한 국가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국가 사이에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광적인 투쟁을 야기시키는 자본주의국가의 불균등 발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제국주의전쟁−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내부 전선인 제3의 전선에서 투쟁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해방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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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이 독일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왜?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이 역시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 사이의 엄청난 발전 수준 차이는 독일에서 혁명의 진전과 결과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사슬이 독일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왜?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이 역시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 사이의 엄청난 발전 수준 차이는 독일에서 혁명의 진전과 결과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인용문|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발전을 완성할 것이다 ... 그 안에서 사회주의가 '성숙'함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의한 일부 국가의 착취, 제국주의 전쟁에서 정복될 국가 중 첫 번째 국가의 착취와 동양 전체에 대한 착취가 결합됨으로써 사회주의를 완성할 것이다. 반면에 첫 번째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동양은 확실히 혁명 운동에 들어갔고, 세계 혁명 운동의 일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 들어갔다.(제25권, 415~16쪽을 보라)}}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전선이라는 사슬은 일반적으로 고리가 더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좌우간 반드시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된 곳, 이런저런 비율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이런저런 비율의 농민이 존재하는 곳들에서만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해당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인구의 비율에 관한 통계학적 평가는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이 혁명을 전염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인터내셔널 교조주의자들이 그토록 중요시하고 싶어했던 그 예외적 중요성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
계속하자면, 제2인터내셔널의 주역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얼마간 오랜 걸리는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 상호 분리된 금이나 만리장성이 존재하며, 그동안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에 대한 ‘결정적 투쟁’을 위해 힘을 축적하고 대비한다고 주장했고 또한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 간격은 대개 짧아도 수십년은 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는 과학적 의미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으며, 단지 부르주아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위장하려는 수단이라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충돌과 전쟁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사멸하는’ 자본주의로 되고(레닌)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는 조건 아래서, 제국주의 자신이 차르주의와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모든 반동세력들과 예외 없이 동맹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부터 동방의 민족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세력의 연합이 절박한 것으로 되고 있는 시기, 봉건⋅농노제적 유제의 제거가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시기 − 이런 조건 아래서 다소 발달된 나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전자는 후자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레닌이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 전날, 그의 팸플릿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 러시아 혁명을 휩쓸고 간 하나의 통합된 그림으로 묘사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 정권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농민대중과 동맹하여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쁘띠부르주아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인구의 반프롤레타리아적 요소의 대중과 동맹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며, 새로운 이스크라주의자들은 혁명의 전면적 실시에 대한 모든 주장과 결의에서 매우 협소하게 제시하고 있다.(레닌, 8권, 96쪽을 보라)}}
레닌주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로서 부르주아지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두드러지는 레닌의 다른 후기 저작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일부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이 생각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러시아의 혁명이 부르주아적 틀 안에 머물 것이며, 결과적으로 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관의 손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부르주아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심지어 우리 공산주의 언론에도 침투했다고한다. 나는 이 주장이 완전히 틀렸고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고싶다.
이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이 아니라 "전쟁의 조직"으로 정의한 레닌의 잘 알려진 당 제3차 대회(1905년) 연설을 언급할 수 있다.(제7권, 264쪽을 보라).
더 나아가, 나는 레닌의 잘 알려진 글 "임시정부에 대하여"(1905)<ref>스탈린은 1905년 레닌이 작성한 다음 구절을 참조했다: "사회민주주의와 임시 혁명 정부"에서 구절을 인용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및 "임시혁명 정부에 관하여"(레닌, ''Works, 4th Russ. ed., Vol. 8'', pp. 247-63, 264-74, 427-47 참조).</ref>에서 전개되는 러시아 혁명의 전망을 설명하면서 "러시아 혁명이 몇 달의 운동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운동이 되도록, 열강의 약간의 양보가 아니라 그 열강의 완전한 전복으로 이어지도록 보장하는" 임무를 당에 부여하고, 이러한 전망을 더 확대하여 유럽의 혁명과 연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문|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 혁명적 불길은 유럽 전역으로 퍼질 것이고, 부르주아 반동 아래서 시들해진 유럽 노동자는 자신의 차례에 일어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의 혁명적 물결은 다시 러시아로 휩쓸고 들어와 몇 년의 혁명시대를 몇십년의 혁명 시대로 전환시킬 것이다 .... "(같은 책, 191쪽).}}
나는 1915 년 11 월에 출판 된 레닌의 잘 알려진 기사를 더 언급 할 수 있다: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토지를 몰수하기 위한 공화국을 위해, ... 부르주아 러시아를 군사 봉건적 '제국주의'(=스타리즘)에서 해방시키는 데 '비프롤레타리아 인민 대중'이 참여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고 있으며, 싸울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즉시<ref>강조추가 -- '''필자의 주'''</ref> 부르주아 러시아가 차르주의, 지주의 농업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이용하여 농촌 노동자에 대항하는 부농의 투쟁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제15권, 318쪽을 보라).}}
마지막으로 레닌의 팸플릿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잘 알려진 구절을 언급할 수 있는데, 러시아 혁명의 휩쓸기에 관한 두 가지 전술에서 위에서 인용한 구절을 언급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인용문|우리가 말한대로 일이 일어났다. 혁명이 취한 과정은 우리 추론의 정확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첫째, 군주제, 지주, 중세 체제에 반대하는 농민 '전체'와 함께 (그리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부르주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남아 있다.) 그런 다음 가난한 농민, 반半프롤레타리아, 모든 착취당한 사람들과 함께, 농촌 부자, 쿨라크, 수익자를 포함한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된다.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가난한 농민과의 단결 정도 이외의 다른 것으로 그들을 분리하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저속화하며 자유주의로 대체하려는 괴물을 의미한다.(제23권, 391면 참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hr>
{{문단 내 각주}}
}}
}}

2024년 6월 22일 (토) 16:01 판


레닌주의의 기초
III. 이론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레닌의 이론은 세 가지 기본명제로부터 생겨난다.


첫번째 테제: 발달한 자본주의국가에서의 금융자본의 지배, 금융자본의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로서 주식과 사채의 발행, 제국주의의 토대 가운데 하나인 원료산지로의 자본 수출, 금융자본의 지배의 결과인 금융과두제의 전지전능한 권력−이 모든 것은 독점자본주의의 엄청난 기생성을 폭로해주며 자본주의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멍에를 백배나 더 무겁게 만들며, 자본주의의 토대에 대한 노동계급의 분노를 격화시키며 나아가 대중들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인도하고 있다.(레닌, 제국주의[1]를 보라.)


이 사실로부터 첫 번째 결론이 나온다: 자본주의국가 내부에서는 혁명적 위기의 격화 그리고 ‘(식민지) 본국’에서는 국내의 프롤레타리아전선에서 폭발 요소의 성장.


두 번째 테제: 식민지와 종속국에 대한 자본수출의 증가, 그들이 전 지구를 장악하기까지 ‘세력권’과 식민지 소유의 팽창, 한줌의 ‘선진’ 국가에 의한 세계인구의 광범한 다수의 금융적 예속과 식민지적 억압이라는 세계체제로 자본주의의 전이−이 모든 것은 한편으로는 분리된 민족경제와 민족영토를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사슬 내의 고리로 변환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지구의 전주민을 두 개의 진영−광대한 식민지와 종속국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한줌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식민지와 종속국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다수−으로 분열시켰다.(제국주의를 보라.)


이 사실로부터 두 번째 결론이 나온다. 식민지국가에서 혁명적 위기의 격화와 국외의 식민지전선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란적 요소의 증대.


세 번째 테제: ‘세력권’과 식민지의 독점적 소유, 이미 영토를 강탈한 국가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국가 사이에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광적인 투쟁을 야기시키는 자본주의국가의 불균등 발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제국주의전쟁−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내부 전선인 제3의 전선에서 투쟁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해방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를 보라.)


이 사실로부터 세 번째 결론이 나온다. 제국주의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제국주의 세계전선에 대항하는 통일된 세계혁명전선에서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동방의 식민지혁명 사이의 결합은 필연적이다.


레닌은 이 모든 결론을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는 하나의 일반적인 결론으로 통합한다.[2](Vol. XIX, p. 71를 보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 혁명의 성격, 범위, 깊이, 일반적으로 혁명의 계획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그에 따라 달라진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조건에 대한 분석이 대개 개별 국가의 경제상태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었다. 이제 이러한 접근은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하다. 이제 문제는 모든, 혹은 대다수 국가가 갖는 경제상태라는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상태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서 세계 제국주의경제의 전체계 속에서 혁명의 객관적 조건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만약 하나의 전체 체제라면,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의 전체 체제가 이미 혁명을 위해 성숙되어 있기 때문에, 이 체제 내부에 산업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몇몇 국가의 존재가 혁명에 대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의 고립적인 일국전선은 제국주의의 세계전선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사슬 내의 고리로 되었으며,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의 공동전선은 이것에 대항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오직 해당 국가의 내적 발전의 결과로만 여겨졌다. 이제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하다. 이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일차적으로 제국주의 세계체제 내부에 있는 제모순의 발전의 결과로, 이런저런 국가에서 세계 제국주의전선의 사슬이 파괴되는 것의 결과로 여겨져야 한다.


혁명은 어디에서 시작될 것인가?


산업이 더 발달한 곳, 프롤레타리아가 다수를 차지하는 곳, 문화가 더 발전한 곳, 민주주의가 더 발달한 곳, 이것이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주어졌던 대답이었다.


레닌주의 혁명이론은 반드시 산업이 더욱 발달되어 있는 곳들만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의 가장 약한 곳에서 돌파될 것이다. 그리고 혁명을 시작하여 자본의 전선을 돌파할 나라는 다른, 더욱 발전되어 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의 체제 내에 남아 있는 나라들보다 자본주의적으로 덜 발전된 나라가 될 지도 모른다.


1917년 제국주의 세계 전선의 사슬은 러시아에서 다른 나라보다 약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사슬이 끊어지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출구가 마련되었다. 왜?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대중 혁명이 전개되고 있었고 그 선두에는 지주들에 의해 억압되고 착취당하는 방대한 농민 대중과 같은 중요한 동맹을 가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행진했기 때문이다. 그곳의 혁명은 모든 도덕적 명성이 부족하고 전체 인구가 당연히 미워하는 차르주의와 같은 끔찍한 제국주의의 대표자들에 의해 반대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러시아가 이를테면 프랑스나 독일, 영국과 미국보다 자본주의적으로 덜 발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슬은 러시아에서 한층 약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가까운 미래에 사슬은 어디에서 파괴될 것인가? 역시 가장 약한 곳에서. 사실이 이를테면 인도에서 끊어질지 모른다는 점이 배제될 수는 없다. 왜? 그 나라에는 젊고 전투적이며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있고,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강력하고 중요한 동맹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서 혁명은 도덕적 신용이 없고 인도의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대중에게 당연히 미움을 받는 외국 제국주의와 같은 잘 알려진 적과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슬이 독일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왜?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이 역시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 사이의 엄청난 발전 수준 차이는 독일에서 혁명의 진전과 결과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발전을 완성할 것이다 ... 그 안에서 사회주의가 '성숙'함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의한 일부 국가의 착취, 제국주의 전쟁에서 정복될 국가 중 첫 번째 국가의 착취와 동양 전체에 대한 착취가 결합됨으로써 사회주의를 완성할 것이다. 반면에 첫 번째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동양은 확실히 혁명 운동에 들어갔고, 세계 혁명 운동의 일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 들어갔다.(제25권, 415~16쪽을 보라)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전선이라는 사슬은 일반적으로 고리가 더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좌우간 반드시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된 곳, 이런저런 비율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이런저런 비율의 농민이 존재하는 곳들에서만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해당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인구의 비율에 관한 통계학적 평가는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이 혁명을 전염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인터내셔널 교조주의자들이 그토록 중요시하고 싶어했던 그 예외적 중요성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


계속하자면, 제2인터내셔널의 주역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얼마간 오랜 걸리는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 상호 분리된 금이나 만리장성이 존재하며, 그동안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에 대한 ‘결정적 투쟁’을 위해 힘을 축적하고 대비한다고 주장했고 또한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 간격은 대개 짧아도 수십년은 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는 과학적 의미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으며, 단지 부르주아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위장하려는 수단이라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충돌과 전쟁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사멸하는’ 자본주의로 되고(레닌)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는 조건 아래서, 제국주의 자신이 차르주의와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모든 반동세력들과 예외 없이 동맹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부터 동방의 민족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세력의 연합이 절박한 것으로 되고 있는 시기, 봉건⋅농노제적 유제의 제거가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시기 − 이런 조건 아래서 다소 발달된 나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전자는 후자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레닌이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 전날, 그의 팸플릿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 러시아 혁명을 휩쓸고 간 하나의 통합된 그림으로 묘사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 정권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농민대중과 동맹하여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쁘띠부르주아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인구의 반프롤레타리아적 요소의 대중과 동맹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며, 새로운 이스크라주의자들은 혁명의 전면적 실시에 대한 모든 주장과 결의에서 매우 협소하게 제시하고 있다.(레닌, 8권, 96쪽을 보라)


레닌주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로서 부르주아지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두드러지는 레닌의 다른 후기 저작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일부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이 생각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러시아의 혁명이 부르주아적 틀 안에 머물 것이며, 결과적으로 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관의 손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부르주아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심지어 우리 공산주의 언론에도 침투했다고한다. 나는 이 주장이 완전히 틀렸고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고싶다.


이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이 아니라 "전쟁의 조직"으로 정의한 레닌의 잘 알려진 당 제3차 대회(1905년) 연설을 언급할 수 있다.(제7권, 264쪽을 보라).


더 나아가, 나는 레닌의 잘 알려진 글 "임시정부에 대하여"(1905)[3]에서 전개되는 러시아 혁명의 전망을 설명하면서 "러시아 혁명이 몇 달의 운동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운동이 되도록, 열강의 약간의 양보가 아니라 그 열강의 완전한 전복으로 이어지도록 보장하는" 임무를 당에 부여하고, 이러한 전망을 더 확대하여 유럽의 혁명과 연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 혁명적 불길은 유럽 전역으로 퍼질 것이고, 부르주아 반동 아래서 시들해진 유럽 노동자는 자신의 차례에 일어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의 혁명적 물결은 다시 러시아로 휩쓸고 들어와 몇 년의 혁명시대를 몇십년의 혁명 시대로 전환시킬 것이다 .... "(같은 책, 191쪽).


나는 1915 년 11 월에 출판 된 레닌의 잘 알려진 기사를 더 언급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레닌의 팸플릿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잘 알려진 구절을 언급할 수 있는데, 러시아 혁명의 휩쓸기에 관한 두 가지 전술에서 위에서 인용한 구절을 언급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말한대로 일이 일어났다. 혁명이 취한 과정은 우리 추론의 정확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첫째, 군주제, 지주, 중세 체제에 반대하는 농민 '전체'와 함께 (그리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부르주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남아 있다.) 그런 다음 가난한 농민, 반半프롤레타리아, 모든 착취당한 사람들과 함께, 농촌 부자, 쿨라크, 수익자를 포함한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된다.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가난한 농민과의 단결 정도 이외의 다른 것으로 그들을 분리하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저속화하며 자유주의로 대체하려는 괴물을 의미한다.(제23권, 391면 참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 V.I. 레닌,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작품집, 제4판 러시아판, 22권, 173-290쪽 참조)
  2. 강조추가 -- 필자의 주
  3. 스탈린은 1905년 레닌이 작성한 다음 구절을 참조했다: "사회민주주의와 임시 혁명 정부"에서 구절을 인용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및 "임시혁명 정부에 관하여"(레닌, Works, 4th Russ. ed., Vol. 8, pp. 247-63, 264-74, 427-4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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