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이론(2):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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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 |내용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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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테제: ‘세력권’과 식민지의 독점적 소유, 이미 영토를 강탈한 국가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국가 사이에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광적인 투쟁을 야기시키는 자본주의국가의 불균등 발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 세 번째 테제: ‘세력권’과 식민지의 독점적 소유, 이미 영토를 강탈한 국가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국가 사이에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광적인 투쟁을 야기시키는 자본주의국가의 불균등 발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제국주의전쟁−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내부 전선인 제3의 전선에서 투쟁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해방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를 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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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이 독일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왜?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이 역시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 사이의 엄청난 발전 수준 차이는 독일에서 혁명의 진전과 결과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 사슬이 독일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왜?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이 역시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 사이의 엄청난 발전 수준 차이는 독일에서 혁명의 진전과 결과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 ||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
{{인용문|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발전을 완성할 것이다 ... 그 안에서 사회주의가 '성숙'함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의한 일부 국가의 착취, 제국주의 전쟁에서 정복될 국가 중 첫 번째 국가의 착취와 동양 전체에 대한 착취가 결합됨으로써 사회주의를 완성할 것이다. 반면에 첫 번째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동양은 확실히 혁명 운동에 들어갔고, 세계 혁명 운동의 일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 들어갔다.(제25권, 415~16쪽을 보라)}} | |||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전선이라는 사슬은 일반적으로 고리가 더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좌우간 반드시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된 곳, 이런저런 비율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이런저런 비율의 농민이 존재하는 곳들에서만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 |||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해당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인구의 비율에 관한 통계학적 평가는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이 혁명을 전염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인터내셔널 교조주의자들이 그토록 중요시하고 싶어했던 그 예외적 중요성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 | |||
계속하자면, 제2인터내셔널의 주역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얼마간 오랜 걸리는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 상호 분리된 금이나 만리장성이 존재하며, 그동안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에 대한 ‘결정적 투쟁’을 위해 힘을 축적하고 대비한다고 주장했고 또한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 간격은 대개 짧아도 수십년은 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는 과학적 의미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으며, 단지 부르주아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위장하려는 수단이라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 |||
충돌과 전쟁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사멸하는’ 자본주의로 되고(레닌)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는 조건 아래서, 제국주의 자신이 차르주의와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모든 반동세력들과 예외 없이 동맹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부터 동방의 민족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세력의 연합이 절박한 것으로 되고 있는 시기, 봉건⋅농노제적 유제의 제거가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시기 − 이런 조건 아래서 다소 발달된 나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전자는 후자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 레닌이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 전날, 그의 팸플릿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 러시아 혁명을 휩쓸고 간 하나의 통합된 그림으로 묘사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 |||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 정권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농민대중과 동맹하여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쁘띠부르주아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인구의 반프롤레타리아적 요소의 대중과 동맹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며, 새로운 이스크라주의자들은 혁명의 전면적 실시에 대한 모든 주장과 결의에서 매우 협소하게 제시하고 있다.(레닌, 8권, 96쪽을 보라)}} | |||
레닌주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로서 부르주아지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두드러지는 레닌의 다른 후기 저작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 |||
일부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이 생각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러시아의 혁명이 부르주아적 틀 안에 머물 것이며, 결과적으로 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관의 손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부르주아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심지어 우리 공산주의 언론에도 침투했다고한다. 나는 이 주장이 완전히 틀렸고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고싶다. | |||
이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이 아니라 "전쟁의 조직"으로 정의한 레닌의 잘 알려진 당 제3차 대회(1905년) 연설을 언급할 수 있다.(제7권, 264쪽을 보라). | |||
더 나아가, 나는 레닌의 잘 알려진 글 "임시정부에 대하여"(1905)<ref>스탈린은 1905년 레닌이 작성한 다음 구절을 참조했다: "사회민주주의와 임시 혁명 정부"에서 구절을 인용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및 "임시혁명 정부에 관하여"(레닌, ''Works, 4th Russ. ed., Vol. 8'', pp. 247-63, 264-74, 427-47 참조).</ref>에서 전개되는 러시아 혁명의 전망을 설명하면서 "러시아 혁명이 몇 달의 운동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운동이 되도록, 열강의 약간의 양보가 아니라 그 열강의 완전한 전복으로 이어지도록 보장하는" 임무를 당에 부여하고, 이러한 전망을 더 확대하여 유럽의 혁명과 연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 |||
{{인용문|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 혁명적 불길은 유럽 전역으로 퍼질 것이고, 부르주아 반동 아래서 시들해진 유럽 노동자는 자신의 차례에 일어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의 혁명적 물결은 다시 러시아로 휩쓸고 들어와 몇 년의 혁명시대를 몇십년의 혁명 시대로 전환시킬 것이다 .... "(같은 책, 191쪽).}} | |||
나는 1915 년 11 월에 출판 된 레닌의 잘 알려진 기사를 더 언급 할 수 있다: | |||
{{인용문|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토지를 몰수하기 위한 공화국을 위해, ... 부르주아 러시아를 군사 봉건적 '제국주의'(=스타리즘)에서 해방시키는 데 '비프롤레타리아 인민 대중'이 참여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고 있으며, 싸울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즉시<ref>강조추가 -- '''필자의 주'''</ref> 부르주아 러시아가 차르주의, 지주의 농업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이용하여 농촌 노동자에 대항하는 부농의 투쟁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제15권, 318쪽을 보라).}} | |||
마지막으로 레닌의 팸플릿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잘 알려진 구절을 언급할 수 있는데, 러시아 혁명의 휩쓸기에 관한 두 가지 전술에서 위에서 인용한 구절을 언급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 |||
{{인용문|우리가 말한대로 일이 일어났다. 혁명이 취한 과정은 우리 추론의 정확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첫째, 군주제, 지주, 중세 체제에 반대하는 농민 '전체'와 함께 (그리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부르주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남아 있다.) 그런 다음 가난한 농민, 반半프롤레타리아, 모든 착취당한 사람들과 함께, 농촌 부자, 쿨라크, 수익자를 포함한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그 정도까지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된다.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가난한 농민과의 단결 정도 이외의 다른 것으로 그들을 분리하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저속화하며 자유주의로 대체하려는 괴물을 의미한다.(제23권, 391면 참조)}} | |||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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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내 각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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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2일 (토) 16:01 판
레닌주의의 기초 | ||||||||||||||||||||||
◀ | III. 이론 | ▶ | ||||||||||||||||||||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 ||||||||||||||||||||||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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