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유물론적 이론 (1)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3월 14일 (화) 09:34 판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1. 유물론적 이론 (1)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칼 맑스


우리는 앞에서 변증법적 방법을 다루었다.


그러면 유물론적 이론이란 무엇인가?


세계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생활의 모든 것은 발전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며 이 발전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가?


예컨대 우리는 지구가 한때 뜨겁게 타오르는 불덩어리였는데 다음에 그것이 차차 식어 갔고 그 다음에 식물과 동물이 생겼으며 동물계의 발전에 뒤이어 일정한 종류의 유인원이 나타났고 이 모든 것에 뒤이어 인간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체로 자연계의 발전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사회생활도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원시공산주의적 원칙에서 생활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에 사람들은 원시적인 사냥으로 생활을 유지하였으며 숲 속을 헤매면서 먹을 것을 구하였다. 때가 와서 원시공산주의는 모권 제도로 바뀌었다 ― 그때에는 사람들은 주로 원시적인 농업으로 자기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다음에는 모권 제도가 부권 제도로 바뀌었는데 그때에는 사람들이 주로 목축업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그 다음에 부권 제도는 노예 제도로 바뀌었는데 그때에는 사람들은 비교적 더 발전한 농업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노예제도 다음에는 농노 제도가 오고, 그 다음에는 부르주아 제도가 나타났다.


사회생활의 발전은 대체로 이렇게 진행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


그러나 이 발전은 어떻게 수행되었는가? 의식이 “자연”과 “사회”를 발전시켰는가?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자연”과 “사회”의 발전이 의식을 발전시켰는가?


유물론적 이론은 문제를 이렇게 제기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자연”과 “사회생활”보다 먼저 세계이념이 있었고 이 세계이념은 후에 “자연”과 “사회생활”이 발전하는 기초로 되었으며 따라서 “자연” 현상의 발전과 “사회생활”의 제 현상의 발전은 말하자면 세계이념의 발전의 외형, 그의 단순한 표현일 따름이라고 한다.


예컨대 관념론자들의 학설이 이러하였다. 그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몇 개의 유파로 갈라졌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세계에는 처음부터 서로 부정하는 두 개의 힘 즉 관념과 물질, 의식과 존재가 있었고 이에 따라 현상들도 역시 서로 부정하며 서로 투쟁하는 두 개의 계열 즉 관념적인 계열과 물질적인 계열로 나누어지며, 따라서 자연과 사회의 발전이란 관념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간의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한다.


예컨대 이원론자들의 학설이 이러하였는데 그들도 관념론자들처럼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몇 개의 유파로 갈라졌다.


유물론적 이론은 이원론이나 관념론을 다 같이 근본적으로 부인한다.


물론 세계에는 관념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서로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관념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은 동일한 자연이나 사회의 다른 두 형태이다. 그것들을 서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함께 존재하며 함께 발전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것들이 서로를 부정한다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와 같이 소위 이원론이란 부당한 것이다.


물질적 형태와 관념적 형태라는 다른 두 형태로 표현되는 하나의, 나눌 수 없는 자연, 물질적 형태와 관념적 형태라는 다른 두 형태로 표현되는 하나의, 나눌 수 없는 사회생활 ― 우리는 이렇게 자연과 사회생활의 발전을 보아야 할 것이다.


유물론적 이론의 일원론은 이러하다.


이와 동시에 유물론적 이론은 관념론도 부인한다.


관념적 측면, 일반적으로 의식이 자기발전에서 물질적 측면의 발전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직 생물이 없었을 때에도 이른바 “생명 없는” 외부 자연은 벌써 존재하였다. 최초의 생물은 아무런 의식도 가지지 못하였고 다만 자극 감응성감각의 첫 맹아를 가졌을 뿐이었다. 그 후 동물계에는 유기체의 구조와 신경계통의 발달에 따라 점차 감각능력이 발전하여 서서히 의식으로 넘어갔다. 만일 유인원이 항상 네 발로 걸어 다니고 허리를 펴지 못하였더라면 그의 후손인 사람은 자기의 폐와 성대를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말을 하게 되지 못하였을 것이며 사람의 의식의 발전은 근본적인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또 만일 유인원이 뒷다리로 일어서지 못하였더라면 그 후손인 사람은 항상 네 발로 걸었을 것이며 아래만 보고 거기서 자기의 인상(impressions)을 얻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거나 자기 주위를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네 발 가진 동물이 얻는 인상보다 더 많은 인상을 자기의 뇌수에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의식의 발전에 지장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의식이 발전하자면 유기체의 특유한 구조가 필요하며 그의 신경계통의 발달이 필요하다.


결국 물질적 측면의 발전, 외적 조건의 발전이 관념적 측면의 발전, 의식의 발전에 앞서게 된다. 다시 말하면 먼저 외적 조건이 변하고 먼저 물질적 측면이 변하며 그러고 나서 이에 따라 의식, 관념적 측면이 변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연의 발전사는 소위 관념론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엎고 있다.


인류 사회의 발전사에 대해서도 역시 동일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역사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만일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사상과 욕망이 달랐다면 그 원인은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자기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연과 투쟁하는 방법이 달랐으며 또 이에 따라 그들의 경제적 관계가 달랐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원시공산주의적 원칙에서 공동으로 자연과 투쟁하는 때가 있었다. 그때에는 그들의 소유도 공산주의적이었고 따라서 당시 그들은 “내 것”과 “네 것”을 거의 구별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의식은 공산주의적이었다. 그러나 생산에서 “내 것”과 “네 것”의 구별이 나타난 그러한 시기가 닥쳐왔다. ― 그때에는 소유도 사적, 개인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에는 개인 소유욕이 나타나게 되었다. 생산이 다시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되고 따라서 소유도 멀지 않아 사회적 성격을 띠며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도 차차 사회주의로 물들게 될 시대, 즉 현대가 닥쳐왔다.

간단한 실례를 들어보자. 조그마한 구둣방을 가진 제화공이 있다고 하자. 그는 큰 기업주들과의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여 구둣방을 닫고 찌플리스의 아젤하노브 제화공장에 고용되었다고 하자. 그가 아젤하노브 공장으로 들어간 것은 영영 임금노동자로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돈을 모아 밑천을 만들어 가지고 자기의 구둣방을 다시 꾸려 보자고 한 것이었다. 보다시피 이 제화공의 처지는 이미 프롤레타리아적이지만 그의 의식은 아직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부르주아적이다. 달리 말하면 이 제화공의 소부르주아적 처지는 이미 사라지고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소부르주아적 의식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실제 처지보다 뒤떨어져 있다.


이 사회생활 분야에서도 처음에는 외부 조건 즉 사람들의 처지가 변한 다음에야 그에 따라 그들의 의식이 변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면 우리의 제화공을 다시 보기로 하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돈을 모아 가지고 자기의 구둣방을 다시 꾸릴 작정이었다. 노동자가 된 제화공은 일을 계속하면서 임금을 가지고는 먹고살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개인 구둣방을 여는 것이 그처럼 마음을 끄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는 가게 임대료요, 손님들의 변덕스러움이요, 자금 부족이요, 큰 기업주들과의 경쟁이요 하는 각가지 걱정거리가 개인 제화공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런데 노동자는 이런 걱정을 비교적 덜하게 된다. 손님이나 가게 임대료 때문에 불안해 할 것도 없다. 그는 아침이면 공장에 가고 저녁이면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며 토요일이면 역시 조용히 호주머니에 “봉급”을 받아 넣는다. 여기서 처음으로 우리 제화공의 소부르주아적 공상의 날개가 떨어져 나가며 여기서 처음으로 그의 심중에 프롤레타리아적 지향이 싹트기 시작한다.


날이 감에 따라 우리 제화공은 그가 받은 돈으로는 최저 생활도 할 수 없으며 임금을 높이는 것이 그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기 동료들이 노조니 파업이니 하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 제화공은 자기의 처지를 개선하려면 자기의 구둣방을 꾸릴 것이 아니라 주인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노조에 가입하여 파업운동에 참가하며 또 얼마 후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하게 된다. …


이와 같이 제화공의 물질적 처지가 변한 후에 결국 그의 의식도 변하였다. 즉 처음에는 그의 물질적 처지가 변하였고 그 후 얼마간 지나서 그것에 상응하게 그의 의식이 변화하였다.


계급이나 사회 전체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게 말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도 역시 처음에는 외적 조건 즉 물질적 조건이 변하고 그 후 이에 상응하게 사람들의 사유, 그들의 풍습, 그들의 습관, 그들의 세계관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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