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유물론적 이론 (2)

좌파도서관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2. 유물론적 이론 (2)

그렇기 때문에 맑스는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하였다.


만일 물질적 측면, 외적 조건, 존재 및 기타 이와 유사한 현상들을 내용이라고 한다면 관념적 측면, 의식 및 기타 이와 유사한 현상들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발전 과정에서는 내용이 형식에 앞서며 형식은 내용보다 뒤떨어진다는 유명한 유물론적 명제가 나온 것이다.


맑스의 견해에 의하면 경제적 발전은 사회생활의 “물질적 기초”, 그의 내용으로 되며, 법률-정치적 발전과 종교-철학적 발전은 이 내용의 “사상적 형식”, 그의 “상부구조”로 되는 까닭에 맑스는 “경제적 기초의 변화에 따라 거대한 전체 상부구조가 혹은 급속히 혹은 서서히 변혁된다”고 결론하였다.


물론 이것은 Sh. G.가 생각한 것처럼 맑스가 형식 없는 내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호소≫ 제1호, “일원론의 비판”을 보라). 형식이 없는 내용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떠한 형식이든지 그 내용보다 뒤떨어지는 까닭에 결코 그 내용에 완전히는 적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새로운 내용은 일시적으로 낡은 형식을 걸치고 “있지 않을 수 없으며” 결국은 그것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실례로 오늘날 사적 성격을 띤 생산물 소유형식은 생산의 사회적 내용에 적응하지 않으며 바로 이러한 기초 위에서 현대의 사회적 “갈등”이 발생된다.


한편 의식이 존재의 형식이라는 사상은 의식이 본질상 물질과 같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속류 유물론자들(예컨대 뷔흐너와 몰레쇼트)만이다. 그들의 이론은 맑스의 유물론과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엥겔스는 자기의 저서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에서 그들을 정당하게 조소하였다. 맑스의 유물론에 의하면 의식과 존재, 관념과 물질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연 혹은 사회라고 하는 동일한 현상의 다른 두 형식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서로 부정하지 않는(이것은 형식과 내용 간에 갈등이 있다는 사상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문제는 갈등이 내용 일반과 형식 일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찾으며 그것을 지향하는 새로운 내용과 낡은 형식 사이에 있다는 데 있다) 동시에 동일한 현상도 아니다. 문제는 오직 자연과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우리의 의식 밖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변화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의식보다 앞선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이러저러한 물질적 변화에 뒤이어 상응하는 관념상의 변화가 조만간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데 있다.


그럴듯하다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연과 사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 우리의 두뇌 속에서 어떻게 각양각색의 표상(Vorstellungen)과 사상(Ideen)이 생기는가? 소위 외적 조건이란 실제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 외적 조건에 대한 우리의 표상만이 존재하는가? 만일 외적 조건이 존재한다면 어느 정도로 그것을 지각할 수 있으며 인식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유물론적 이론은 다음과 갈이 말한다. 우리의 표상, 우리의 “자아”는 이 “자아” 속에 인상을 일으키는 외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우리의 표상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솔하게 말하는 사람은 어떠한 외적 조건이건 다 부인하게 되며 따라서 그는 자기의 “자아”의 존재만을 시인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황당하며 과학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외적 조건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이 조건은 우리 이전에도 존재하였고 우리 이후에도 존재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식에 더욱 빈번히, 더욱 강력하게 작용할수록 그것은 더 쉽게 지각되며 더 쉽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현재 우리의 두뇌 속에서 어떻게 각양각색의 표상과 사상이 생기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한다면 여기에서도 자연과 사회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것과 꼭 같은 것이 간단히 반복된다는 것을 우리는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 밖에 있는 사물은 이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보다 먼저 있었으며 따라서 이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의 표상, 형식은 사물 즉 자기의 내용보다 뒤늦게 나타난다. 만일 나에게 나무가 보인다면 이것은 나의 두뇌 속에서 나무에 대한 표상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나에게 그러한 표상을 일으킨 나무 자체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


이상이 맑스의 유물론적 이론의 간단한 내용이다.


사람들의 실천 활동을 위하여 맑스의 유물론 이론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만일 처음에 경제적 조건이 변하고 다음에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이 변한다면 우리는 어떤 이상(理想)의 근거를 사람들의 두뇌나 그들의 환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 조건의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경제적 조건을 연구한 기초 위에서 수립된 이상만이 훌륭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경제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 발전에 의거하지 않은 그러한 이상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유물론적 이론의 첫 실천적 결론이다.


만일 사람의 의식, 그의 풍습과 습관이 외적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며 법률적 및 정치적 형식이 쓸모없게 되는 까닭이 경제적 내용에 있다면 우리는 인민의 풍습, 습관과 그의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변경하기 위하여 반드시 경제관계의 근본적 개조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에 대하여 칼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유물론의 학설과 … 사회주의와의 사이의 … 연관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그리 큰 통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일 인간이 그 모든 지식, 감각 등등을 감성적 세계 … 에서 흡취한다면 인간은 주위 세계에서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을 인식 습득하며 자기를 인간으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주위 세계를 꾸려야 한다. … 만일 인간이 유물론적인 의미에서 부자유하다면,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이러저러한 것을 회피하는 소극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진정한 개성을 발휘하는 적극적인 힘에 의해서 자유롭다면 개별적 인물들의 범죄를 처벌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범죄를 낳는 반사회적 근원을 소멸 …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만일 인간의 성격이 환경에 의하여 형성된다면 인간은 환경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 부록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에 관한 칼 맑스의 견해”


이것이 유물론의 두 번째 실천적 결론이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