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3월 28일 (월) 09:16 판
노동자 연대
Workers' Solidarity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창립일
창립일
1989년
기관지
기관지
역사
역사


개요

대한민국마르크스주의 단체.

흔히 트로츠키주의 운동 단체로 알려져 있지만 본인들은 전혀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는다. 트로츠키는 여러 혁명가들 중 한 사람일 뿐이며 그의 입장에는 맞는 점도 있고 틀린 점도 있다는 입장이다. 트로츠키주의 운동단체에 더 가까운 쪽은 본인들이 그렇게 정체화하는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 투쟁위원회(노건투)나 아예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따르는 볼셰비키 그룹이다. 혁명정당 이론과 국가론 등에서 레닌의 사상을 따른다는 점에서 레닌주의로는 분류할 수 있으나, 본인들 스스로는 전혀 트로츠키주의로 정체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몇몇 쟁점에 대해서는 트로츠키의 입장을 반대한다. 굳이 무슨 주의냐고 따진다면 '클리프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전, 반자본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있다. 국제 사회주의 조직인 국제사회주의자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 IST)에 소속되어 있다.

집회장에서 신문 파는 것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신문 파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많은 인원을 투입해 열성적으로 진행한다. 웬만한 큰 집회에선 신문 판매대를 차리고 심지어 신문이나 책자를 들고 다니면서 판다. 광고가 없다면서 2000원에 판다. 노조 조끼를 입고 신문 파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문 파는 활동가들은 그냥 평범한 캐주얼 차림이다.

기관지로 '노동자 연대'와 '마르크스 21'을 발간하고 있고, 2001년부터 매년 여름 국내 최대의 진보포럼을 개최해오고 있다. 물론 이것은 본인들의 주장이고, 실제로는 국내외의 다양한 학술, 운동단체들이 참여하는 맑스코뮤날레가 규모도 크고 위상도 더 높다. 맑시즘은 노동자연대만의 행사일 뿐, 다른 좌파 및 맑스주의 단체들은 공식적으로 자기네 깃발을 내걸고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국내의 다른 단체가 아닌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활동가들을 초빙해 토론회를 열기도 하고, 각계의 노동운동 인사나 저명한 운동권 인사들을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초청해 강연을 연다.

상징

IST 특유의 주먹 쥔 왼손 로고를 사용한다. 깃발은 약간 밝은 빨간색 바탕에, 왼쪽에는 노란색으로 주먹 로고를 그려놓고 오른쪽에는 노란색 글씨로 크게 '노동자연대', 아래쪽에는 흰 글씨로 자기네 사이트 주소를 써 놓은 깃발을 사용한다. 학생그룹 깃발도 따로 있는데, 조금 작은 크기의 빨간색 바탕에 주먹 로고는 가운데 그려놓고 아래쪽에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이라고 크게, 자기네 사이트 주소를 작게 써 놓은 깃발을 사용한다.

역사

본부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으로, 1950년에 토니 클리프에 의해 창립되어, 1962년에 당 조직을 갖추었고, 1977년부터 현재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제4인터내셔널에 속한 기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소련 사회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면서 결별하여 제 4인터내셔널을 탈퇴한 사회주의자들이 창당한 당이 바로 SWP이며, 이후 SWP의 사상에 동의하는 국제 조직인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ST)으로 확대되었다.

창립자 최일붕은 원래 기독교 사회 운동가로서 1980년대 후반에 군포 구시가지의 공단 지역에서 공장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노동운동을 조직했으며, 이후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IST의 미국 지사인 ISO를 통해 이쪽의 사상을 접하면서 유물론적 사회주의자로 전향하였다. 그리고 귀국 후에 IST의 한국 지부를 설립하기 위하여 1990년에 스탈린주의를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 학습 모임을 조직하였다.

이렇게 소규모 학습 서클로 시작한 이 모임은, 90년대 초반 소련이 쇠퇴하면서 PD 계열 운동이 퇴조에 접어들었을 때 남한국제사회주의자들(International Socialist in South Korea, ISSK)라는 이름으로 대학가에 느슨한 연대를 형성했다. 이 사람들은 현실로는 큰 영향력이 없는 이념에 기초한 운동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들이나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 대학가나 집회 현장에서 팸플릿을 만들어 파는 정도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2년과 1994년 두 차례 안전기획부에 의해 조직원 수십여 명이 체포돼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적이 있다. 이후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1999년 비공개·비합법 노선을 청산하고 공개된 대중노선으로 전환하였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한동안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승인받지도 않고 "민주노동당학생그룹"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공식으로는 민주노동당학생위원회 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대학생이 아닌 활동가들까지 학생 그룹이란 간판을 달고 활동하였다.

학생 그룹 시절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잡지 <다함께>를 대학가나 시위 현장에서 판매하다가, 이것이 유명해지자 2000년 초반부터 조직명을 '다함께'로 변경하였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전쟁에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조직의 세를 키워 나아가기 시작한다.

국제주의를 추구하는 노선으로 민족주의가 노동자계급 혁명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현실 정치에선 민족주의 성향인 NL 그룹과 함께해 왔다.

특히 민주노동당에서 NL과 PD 등과 모두 함께 활동하던 시절, 당직자가 민주노동당원 300명의 신상 정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넘긴 일심회 사건으로 민주노동당이 종북 세력의 이미지를 덮어쓰고 종북주의 청산을 둘러싼 논쟁이 대두했을 때도 다함께는 NL을 일관되게 지지하였다. 당시 다함께는 "‘일심회’ 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실험을 한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 우익들은 이때를 틈타 사회의 급진화 분위기를 차단하려 했고 노무현은 ‘일심회’를 속죄양 삼았다"[1]며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을 방어했다. 당시 NL의 종북 노선을 비판하던 좌파들은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 등등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산하의 NL 지역 조직들에 빗대서 '런던연합'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결국 종북주의 청산을 담은 당혁신안이 당대회에서 부결되자 노회찬과 심상정을 위시한 강성 PD계열 좌파들이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창당하는데 다함께는 진보신당을 두고 배신자들이라면서 격렬히 비난하고[2] 자신들은 온건 PD계열과 NL계열만 남은 민주노동당에 잔류하였다. 이후 통합진보당까지 함께 따라갔으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이석기김재연 제명이 무산되자 2012년 7월 29일 공식으로 성명하고 집단으로 탈당하면서 마침내 NL 세력과 손을 끊었다.

2012년부터는 '노동자연대다함께'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3년 노동자 중심 진보당 건설을 내세운 노동정치연대에 합류했으나 이후 다시 빠지면서 정의당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기사를 보면 정의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공식화하고 있다.

2014년 3월 조직명을 '노동자연대'로 바꾸면서 기관지명도 '레프트 21'에서 '노동자 연대'로 바뀌었다. 조직 개편 이후 대중노선을 표방하던 다함께 시절과는 다르게 조직이 더욱 좌경화했고 노동계급 중심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