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은 지배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억압 밑에서 생겨났으며 그 지배에 대한 투쟁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이 문헌이 독일에 들어온 것은 독일의 부르주아지가 이제 막 봉건적 절대주의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독일의 철학자들, 얼치기 철학자들과 문필 애호가들은 이 문헌에 열렬히 매달렸지만, 이러한 저술들이 프롱사로부터 독일에 들어올 때 프랑스의 생활 조건도 함께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독일의 상황에서 프랑스의 문헌은 직접적인 실천적 의의를 모두 잃어버린 채 순전히 문헌으로서의 겉모습만을 띠게 되었다. 이 문헌들은 인간 본질의 실현에 관한[20] 한가한 사변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8세기의 독일 철학자들에게는 프랑스 대혁명의 요구가 '실천 이성'일반의 요구라는 것말고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고, 혁명적인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의지 표명이 그들의 눈에는 순수 의지, 즉 응당 그래야 할 의지, 참된 인간 의지의 법칙을 뜻하는 것처럼 보였다.
독일 문필가들의 저작은 오로지 새로운 프랑스 사상을 자신들의 낡은 철학적 양심과 조화시키거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들의 철학적 관점에서 프랑스 사상을 섭취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섭취는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인 자기들 편리한 대로 옮기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수도승들이 고대 다신교 시대의 고전 사본에다 카톨릭 성인들의 무미 건조한 전기를 적어 넣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 문필가들은 경건하지 못한 프랑스 문헌을 가지고 바로 그와 정반대의 일을 했다. 그들은 프랑스 원전에다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철학적 헛소리를 써 넣었다. 예를 들면, 화폐의 경제적 기능에 대한 프랑스 인들의 비판에다 '인간적 본질의 소외'라 썼고,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비판에는 '추상적 보편의 지배 폐지'등등을 써 넣었던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발전에다 자신들의 철학적 상투어를 끼워 넣는 데 대해 그들은 '행동의 철학'이니 '참된 사회주의'니 '독일의 사회주의 과학'이니 '사회주의의 철학적 논증'이니 하는 식으로 작위를 부여했다.
이리하여 프랑스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은 완전히 껍질만 남고 말았다. 그리고 독일인의 손안에서는 이 문헌이 계급에 대한 계급의 투쟁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인의 편파성'을 극복했다고, 즉 사진들은 참된 욕구 대신에 진리의 욕구를, 프롤레타리아의 이해 관계 대신에 인간 일반의 이해 관계를 대변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인간이란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철학적 환상의 안개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인 것이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습작을 그렇듯 대단하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소리 높여 광고하던 이 독일 사회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현학적 순진함을 잃어 갔다.
봉건 영주들과 절대 군주제에 대항하는 독일, 특히 프로이센 부르주아지의 투쟁, 한마디로 자유주의 운동이 차츰 본격적으로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참된' 사회주의는 마침내 이 정치적 운동에다 사회주의적 요구를 대립시키면서 자유주의, 대의제 국가, 부르주아적 경쟁, 부르주아적 출판의 자유, 부르주아적 법률, 부르주아적 자유와 평등에 대해 전통적인 저주를 퍼붓고,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부르주아 운동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반대로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설교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프랑스 인들의 비판을 단조롭게 되풀이한 것이었지만, 프랑스 인들의 비판이 현대 부르주아 사회와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 생활 조건과 정치 제도, 즉 독일에서는 이제 겨우 쟁취할 대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바로 그 모든 전제 조건들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침 잊고 있었다.
성직자, 학교 교원, 무지몽매한 융커, 관료들을 거느린 독일의 절대주의 정부들에게는 독일 사회주의가 위협적인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르주아지를 막아 줄 안성맞춤의 허수아비였던 것이다.
'참된' 사회주의는 절대주의 정부들이 독일 노동자들의 폭동을 진압할 때 사용한 채찍과 탄환이ㅡ 쓴 맛을 덜어 줄 달콤한 양념이었다.
이처럼 '참된' 사회주의는 독일 부르주아지를 막는 정부의 무기가 된 동시에 반동적 이익, 즉 독일의 속물 부르주아들[21]의 이해 관계를 직접 표현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16세기 이래 이어져 내려왔고 그때부터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다시 새롭게 나타나고는 했던 소부르주아지가 현존 질서에서 실제적인 사회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소부르주아지의 유지는 독일의 현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 소부르주아지는 공업과 정치에서 부르주아지가 지배하게 되었을 때 한편으로는 자본 집적에 따라서,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성장함에 따라 자신들이 틀림없이 파멸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소부르주아지에게 '참된' 사회주의는 이 두 마리 새를 잡을 하나의 돌로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참된' 사회주의는 전염병처럼 널리 퍼졌다.
사변의 거미줄로 엮고, 진기한 웅변의 꽃으로 수놓고, 달콤한 감동의 눈물로 적신 이 신비한 보자기,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한 두 가지 빈약한 '영원한 진리'를 싼 보자기는 이 군중 사이에서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상품 판로를 넓혀 주었을 뿐이다.
한편 독일 사회주의측에서도 소시민층의 떠벌이 대변인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점점 더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독일 민족을 모범 민족으로, 독일의 속물들을 모범 인간으로 선언했다. 독일 사회주의는 이 모범 인간의 비열함 하나하나마다 심오하고 고상한 사회주의적 의미를 부여하여, 비열함을 정반대된느 고상한 그 무엇으로 바꿔 놓고는 했다. 마침내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난폭하고 파괴적인' 공산주의 경향을 공공연하게 반대하여, 자신은 모든 계급 투쟁을 초월하여 숭고한 불편 부당(不偏不黨)을 지킨다고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렸다. 현재 독일에서 나돌고 있는 이른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저작들은 몇몇 개를 빼고는 모두 이 추악하고 퇴폐적인 문헌<3>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