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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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혁노동자당 추진 경과
전 신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2012년 5월)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2013년 11월)

사회변혁노동자당
후 신
노동당(대한민국)(2022년 2월 5일)
단일한사회주의대중정당(2022년 중)
사회변혁노동자당
Socialist Revolutionary Workers' Party.svg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민중의 직접정치
정당정보
정당정보
약칭 변혁당, rp
청년조직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창당
창당
2016년 1월 31일

변혁모임으로부터 창당
해산
해산
2022년 2월 5일

노동당과 합당
이념


개요

사회변혁노동자당(한자 社會變革勞動者黨), 줄여서 변혁당대한민국사회주의 정당으로, 2016년 1월 31일 당 깃발을 올렸다. 이후 지도부는 2022년 열린 20대 대선에 참가하기 위해 노동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였고, 합당대회일인 2022년 2월 5일을 기해 사실상 해산되었다.

기관지로는 변혁정치가 있었으나, 20대 대선 대응을 위한다며 정간되었다. 이후 당이 사실상 해산되며 발행이 중지되었다. 학생조직으로는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과거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 사노위 학생위원회, 학생변혁모임 등의 이름로 활동)가 있으며, 이들은 노동당으로의 흡수 합당 이후에도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당원이 직접 참여하는 전위정당"을 표방하였으나, 분회 활동과 같은 당 내 활동이 침체되고, 당원의 '줄탈당'과 당비만 납부하는 유령 당원이 늘어나며 점차 유명무실해졌다. 같은 맥락에서 "당" 명칭을 사용했는데, 이를 선관위가 "정당법상 불법"이라 문제삼아 벌금 납부를 요구하기도 했다. [1]


강령

📃 이 문단의 본문은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강령입니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은 노동의 해방, 복지·의료·교육 등 각종 서비스의 사회화, 민주적 권리의 쟁취, 여성·소수자 해방, 생태사회로의 전환, 반제국주의·반전 투쟁, 남북 노동자가 해방되는 통일, 민주적 계획경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노동자 계급의 권력수립 등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으로 등장한 시작점으로서 한국 현대사에서 1987년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을 짚으며, 그 정신을 계승할 것을 주장한다.

역사

창당 전

2000년대 이후 '노동자의 힘(노힘)', '노동자해방 당건설 투쟁단(당건투)',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준비모임’(사노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사노련),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등의 이름으로 활동해오던 좌파 조직들은 2010년에 민주노총 현장파 좌파를 주축으로 결집하여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를 결성했다. 이를 통해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당' 창당을 예비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사노위 내에서 이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강령을 놓고 3인터안, 5인터안, 4인터안 이렇게 세 가지 강령안 사이에서 명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4인터안을 제안한 IBT계가 이탈하여 '볼셰비키-레닌주의자'라는 별개의 단체로 분립해 나온 가운데 사노위 자체도 표류하게 된다. 그 와중에 사노련은 아예 자기네 조직을 해산하고 사노위 활동에 집중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반발한 사노련 사수파는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라는 이름의 단체로 분립해 나온다.

이렇게 표류하던 사노위는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 복원을 목표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약칭 변혁모임, cwcp.)'[2]으로 개편된다. 이름 그대로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조직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당은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당을 의미한다. 공식 명칭은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이지만 너무 길어서 줄여부른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운동진영에서 반자본주의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공동 선출하자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는 기호 5번 김소연 후보로 수렴된다. 진보신당 등과 공동 선거운동을 벌여 16,687표로 0.05%의 득표를 얻어 5위로 낙선한다. 당시 주도적으로 참여한 남한 내 사회주의 써클들 및 민주노총 현장파 활동가들이 '변혁적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일명 변혁모임)이라는 단체로 모이게 된다. 이후 몇 번의 명칭변경 및 약칭논란이 있은 후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라는 길고 긴 약칭으로 정착하였다. 이마저도 길다고 느껴서인지 외부에서는 변혁모임, 변혁, 노계추, 추진위 등으로 또다시 줄여부른다. 2016년 2월 사회변혁노동자당 의 주요 세력이 되었다.

창당

2016년 1월 31일에 서울 흑석동 원불교회관에서 사회변혁노동자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창당하였다. 이 자리에서 당명과 강령, 당헌 채택을 비롯해 대표 선출, 사업방향 채택 등의 안건을 심의, 확정하였으며, 당명으로는 ‘평등사회당’, ‘노동계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의 후보 중, ‘사회변혁노동자당’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또한, 약칭은 변혁당 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당 대표로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당시의 대표였던 이종회 대표를 선출했다. 이들은 "분리된 자, 차별받는 자, 배제된 자, 그들이 우리이고 노동자 계급 정치의 주체”라며 “더 나은 세계,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사회로 나아가는 투쟁과 변혁의 정치를 실현할 것" 이라고 밝혔다.[3]

사회주의대중정당 추진과 노동당과 합당

2020년부터 다른 세력과의 통합을 통한 사회주의대중정당 창당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논의의 주체는 주로 노동당과 노해투, 노동전선 등이었으며, 변혁당 측은 정파로서의 흡수 혹은 제3지대를 통한 재창당을 고려 중이다.

다만, 노동당은 노동전선 측에 더 관심있는 모양이며, 노해투는 노동당과 합당이라면 반대하겠다는 입장 등 대내외 상황이 복잡하였다.

결국 변혁당이 노동당으로 정파로서 흡수통합을 결정했으며, 노해투는 이에 반발하여 협상테이블에서 빠지게 되었다.

경과

창당 이전

민주노총의 소위 '현장파' 활동가들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고, 민주노동당 등과 연계된 다른 세력들과 다르게 "대중정당"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수적 열세와 각종 한계들로 인해 "노동자의 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준비모임"(사노준),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등의 조직을 거쳐왔으나 유의미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노동자의 힘(노힘)" 시절에도 목표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이었으나, 당면한 투쟁과 "역량 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건설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2007년, 700명 정도가 모여 "노동전선"이라는 전국활동가조직을 결성한다.[4] 그러나 노동전선 역시 당 건설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결국 재차 분리되어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가 결성된다.

그러던 2012년, 현장 활동가 수십명이 모여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을 제안하며”라는 제안서를 발표하였고, 꾸준히 논의를 이어가던 같은 해 10월, 사노위를 주축으로 400여명이 참석한 "제1차 전국활동가대회"에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변혁모임)"의 출범을 결의하게 되었다.

한편 "제1차 전국활동가대회"에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18대 대선 참가도 결정되었는데, 이는 11월 11일 김소연 후보를 선출하여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를 창설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해 12월, 진보신당 등과 공동 선거운동을 벌이는 등 분전했으나 16,687표만을 얻고 낙선한다.

대선 이후 2013년 서너차례 이어진 '전국활동가대회'를 통해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노계추)"를 결성, 각지의 노동자 투쟁에 결합하는 한편,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집회, 사내유보금 환수 집회 등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나갔다.

창당 이후

오랜 숙원이었던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달성하기 위해, 노계추 결성 3년 뒤인 2016년 1월 31일, 원불교 서울회관에서 창당 대회가 열렸다. 당시 '평등사회당', '노동계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의 당명 후보안이 나왔고, 토론 및 표결을 통해 '사회변혁노동자당'으로 결정되었다. 이 자리에서 당헌과 강령, 지도부 또한 결정되었다.

우리는 진보정당운동 실패의 폐허를 딛고 노동자계급의 정치, 변혁의 정치를 선언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87년 노동자대투쟁과 97년 노동자총파업으로 떨쳐 일어선 노동자계급의 열망이었다. 그러나 진보정당운동은 오직 의석확보를 위해 당원을 들러리로 세운 채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존하는 야권연대로 파탄났다. 이에 투쟁하는 현장노동자가 정치의 주체임을 당당히 선언한다. 실천하는 당원들이 주체가 되어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노동자정치를 구현할 것이다. 당은 노동자, 빈민, 농민, 청년·학생, 인권운동, 문화예술계 등 투쟁하는 민중 제 세력과 굳건히 연대하여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반자본 사회화투쟁으로 나서는 전세계 노동자민중과 굳게 손잡고 노동자국제연대의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다.

사회변혁노동자당 창당선언문 中

노동당과의 합당 논쟁

노동당기본소득당의 분당 등의 내부 분쟁으로 인해 세력이 약화된 상황이었고, 현린을 비롯한 신임 노동당 지도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선명성 복원'을 내세운다. 이에 주로 수도권 지역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세력 단일화"의 공감대가 커져갔고, 물밑에서 합당 논의가 진행된다.

그러나 수도권 등을 제외한 지역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신임 노동당 지도부는 영향력이 강하지 못했다. 노동당을 "도저히 사회주의 세력이라 볼 수 없다"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한다. 여러차례 열린 논의 과정에서 입장차가 불어났으며, 20대 대선 참가 또한 재고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었으나 사실상 묵살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 당원들이 탈당하였다.


지도부

지도부 기수는 정기 총회마다 갱신된다. 예를 들어 '6기 지도부'라 하면 '5차 총회'에서 선출되는 식이다.

노계추

1기 (이종회)

선행조직인 노계추 위원장이던 이종회 대표가 창당과 동시에 선출되었다.

5기 (김태연)

6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