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좌파도서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盧武鉉
스웨덴은 빈부격차 시정효과가 40%인데 우리 한국은 5.5%입니다. 그래서 시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부끄러운 것입니다. 출처
출생
출생
1946년 9월 1일

미군정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 30
(現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29)
사망
사망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금오로 20
국적
국적
미군정 → 대한민국
약력
약력


개요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민주화운동가, 인권 변호사.

노무현 정부를 '참여정부'(參與政府)라고 한다.

생애

정치 입문 이전

1946년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노판석(盧判石)과 어머니 이순례(李順禮)의 막내 아들 (3남 1녀)로 출생하였고, 1953년 진영대창국민학교에 들어간 뒤 1959년에 진영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66년에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망 제조업체에 잠시 다녔으며,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68년 군대에 입대하여 1971년 만기제대하였다.

1973년 1월 권양숙 여사와 결혼하였다.

1975년 네 번째 도전 끝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었다.

1978년 5월 사직하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6월 항쟁에 앞장섰다.

대우조선에 다니던 이석규가 거리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자 사인 규명에 나섰다가 노동법의 '제3자 개입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되어 변호사 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정치 입문

1988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5공화국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에 대해 부도덕한 야합이라 비난하며 김영삼과 결별하고 민주당 창당에 동참하였다.

1991년 통합민주당 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고 낙선하였다.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주당 청년특위 위원장과 물결유세단 단장을 거쳐 1993년 통합민주당의 최연소 최고위원이 되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및 수도권 특별유세단 단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를 포기한 채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고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새천년민주당 부산 북강서(을)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2000년 8월부터 2001년 4월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대통령 후보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제를 통하여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02년 11월 18일에는 국민통합21의 후보인 정몽준과 단일화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민주노동당권영길 후보 대신 당선되었으며, 2003년 2월 25일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에게 탄핵되었으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에 대하여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뒤 대통령직에 복귀하였다.

2007년 10월 4일 대통령으로서 분단 후 처음으로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하여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퇴임 이후

퇴임 이후 '사람사는세상', '민주주의 2.0' 등의 사이트를 운영하며 고향인 봉하마을에서 활동하였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의 측근 비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국가정보원을 이용하여[1] 압박을 가하였고 이것이 주요한 원인이 되어 2009년 5월 23일 사저 뒷산에서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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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유린과 노동자 탄압 강화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 경실련 칼럼

소득 격차와 양극화 심화

측근 비리와 자살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무현, 2003년 10월 진행한 국무회의에서.[2][3]

노건평 비리, 박연차 게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 시행

부적절한 기업인 및 측근 사면

출처1출처2출처3

각주

  1. http://m.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28 “‘논두렁 시계’…국정원, 더 치명적 프레임 위해 심리학자들 동원”
  2. http://nodong.org/statement/98371
  3. 대통령 '분신투쟁' 발언에 노동계 '발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