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에서는 노동자가 공장을 관리한다

좌파도서관
제목: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노동자가 공장을 관리한다
저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
주제: 마르크스주의, 티토주의
발표시기: 1950년 6월 26일
출처: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노동자가 공장을 관리한다 - 요시프 브로즈 티토(JBT)
개요: 유고슬라비아 연방 의회가 <노동조직의 국가 경제 산업체 및 상위 경제 연합 경영에 관한 기본법>을 표결, 통과시킨 회의에서 법안의 특징과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티토의 연설문이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노동자가 공장을 관리한다

편집자의 주
이 글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대통령이 1950년 6월 26일 유고슬라비아 연방 의회가 <노동조직의 국가 경제 산업체 및 상위 경제 연합 경영에 관한 기본법>을 표결, 통과시킨 회의에서 법안의 특징과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 건설에 대해 한 연설문 전문이다. 이 법의 통과로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노동자 자주관리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연설문은 소련식 현실사회주의와 유고슬라비아식 노동자 자주관리 사회주의의 차이점, 그리고 이들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와의 관계, 그리고 자주관리의 형태를 다루고 있으며, 이른바 '티토주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베오그라드에서 1950년에 출판된 글을 Mike B. 동지가 2006년에 영어로 번역, Marxist Internet Archive에 올린 것을 한국어로 중역하여 게시한다.

연방의회는 오늘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법안 초안 중 하나, 바로 노동자가 국영기업과 상위 경제기관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법안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이 법안의 통과는 생산수단 국유화법 이후 연방 의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을 것입니다. 국가가 생산수단을 점유했지만, 그것이 노동계급의 실천 구호인 '노동자에게 공장을'을 쟁취했다는 것을 말하진 않습니다. '노동자에게 공장을', '농민에게 토지를'이란 문구는 추상적이거나 선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대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사회적 소유와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와 관련하여 사회주의 생산관계 하의 모든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이 원칙을 실현해야 하며, 우리는 실현할 수 있습니다.

공장과 기업의 노동 집단에게 그들을 관리할 권리를 주는 이 법안은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 전개의 논리적 귀결입니다. 이는 우리 인민 정부가 사회주의를 향한 확고한 여정에서 계속 시행해온 여러 조치의 일관된 연속선 위에 있습니다. 이를 위한 조건은 이미 부분적으로 성숙하였습니다. 매일 우리의 노동 집단은 그들의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높은 의식도를 그들의 계획된 임무를 이루기 위한 영웅적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노동자들은 계획된 임무를 일정보다 빠르게 이끌어내는 경쟁에서 이러한 열정과 자기 희생을 보일 수 있었습니까? 이는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에게 달려있으며, 그들의 노동의 산물이 그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노동 인민은 인민 정부가 그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갖고 있으며, 그들의 복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단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 노동 인민은 그들이 그들의 일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이를 극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생산량을 가능한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노력과 자기희생을 투입하고, 엄청난 정력으로 새로운 공장을 짓고, 새로운 사업을 세우고, 새로운 철도를 깔았으며, 그들의 업무에서 온 힘을 다해 새롭고 더 나은 방식을 개발해 생산 수단을 개선하여 위대한 헌신을 보인 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공장을 관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은 마땅히 그럴 능력이 있으며, 공장과 광산, 그리고 다른 기업에 들어오는 새로운 노동자들도 동료들로부터 이를 배울 것입니다.

이 법안이 아직은 이르다거나, 노동자가 공장과 기업을 운영하기 위한 복잡한 경영 기법을 숙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일부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이들은 우리 노동자에 대한 불신과 그들의 대단한 창의력에 대한 무지를 뜻하는 관점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법안은 우리 노동 인민의 미래와 우리 공동체 전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때문에 이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 늦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는 우리 당이 불명예스러운 코민포름 결의 이전까지 소련에서 했던 모든 것에 대해, 그것이 우리의 특수한 조건이나 맑스-레닌주의 과학의 정신과 조화되지 않는 것에조차도, 너무 많은 환상을 가지고, 이를 따르고 적용하는데에 너무 무비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했으며, 강요되거나 추구했던 진부한 비법이었습니다. 가장 편한 방법을 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에 우리 스스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고정관념에도 매이지 않고 맑스주의 과학에 따라 운영할 것이며,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특수한 조건을 명심하며 우리의 길을 갈 것입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가져온 고정관념은 우리에게 많은 해를 깨쳤으며, 그들이 미친 심각한 영향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들 고정관념은 싫든 좋든 확립되어 우리가 원하더라도 이를 탈피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의 끝에서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행동을 멈추기 위한 대책에 착수했습니다. 이것이 경제개발 성과가 날로 증가하는 이유입니다. 성공적인 맑스주의 과학의 현실 적용은 우리로 하여금 수정주의에 맞서 싸우고 우리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진실의 승리를 가능케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 이들 과학이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밝히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이해하길 원하고 그 정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 누구에게도 다른 권위도, 지도자도, 올바른 사회주의의 길에서 수정주의로 빠지게 만들 뿐인 짝퉁 맑스주의 과학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맑스, 엥겔스, 레닌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모든 문제의 답 대부분을 원리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자기 나라에서 자라 그 나라의 문제, 역사, 관습, 강약점을 알고, 뭣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맑스주의 과학을 이해하는 자만이 각국에서 독자적으로 이 원리를 심화하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말인 즉슨 이를 하고자 하는 자는 맑스주의 과학의 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실제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정치경제적 무질서가 정점에 다다른, 사회주의가 발달할 조건을 가졌으나 외부의 압력으로 방해받는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적 및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는 시기에, 맑스주의 과학의 기본 원리와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들 국가의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있어 그들의 머리로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갖는 것과 현실에서 맑스주의 과학을 해당 조건이 존재하는 국가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특히 사회주의에 반하는 목적에 복무하는 것보다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소련의 지도자들과 그 영향 아래 있는 정부들이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비사회주의적 태도를 갖는 것에 관한 사례입니다.

오늘 연설의 목적은 단순히 여러 비난에 대해 반론하거나 소련과 다른 동구권 국가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략적인 개요와 법안과의 연결점 측면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우리의 길이 맑스주의 과학과 일치함을 설명하고, 우리가 닰성한 성과들이 그 가르침에 기초하고 미래 발전에 대한 전망에 바탕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코민포름의 우리에 대한 중상을 언급한다면, 그것은 오직 그들이 그들 국가 내에서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맑스주의 과학을 왜곡하고 수정주의를 현실에 적용한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소련에서 한 일이 최고이며 유일한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면 될거라 생각하여 이를 현실에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비맑스주의적 개념을 제때 알아차리고 우리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의 성과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를 소련의 성과와 비교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련은 분명 초기 15-20년 동안 경제면에서 엄청난 성과를 냈습니다(비록 그게 전부 사회주의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세계를 속이는 불충하고, 부정직하며, 아주 유해한 비난과 선동을 논박하고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기초에 바탕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통과시켜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 자체로 이해 가능했기에 이에 대해 그다지 언급하거나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우리에 관한 진실을 모조리 부정하려는 코민포름 산하의 언론에 의해 눈과 귀가 막혔기에 우리가 이에 대해 충분히 해외에 알리는 것은 우리에게 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소련의 지도층과 노예근성에 찌든 다른 공산당의 지도층은 우리 혁명과 우리의 고된 투쟁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맑스주의자이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단 사실을 부정하려 할 뿐 아니라, 우리가 파시스트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이름에 먹칠했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이는 괴벨스 등과 같은 파시스트 나팔수에 비견할만한 전형적인 부도덕한 선동입니다. 이 선동이 전해지고 우리나라에 대한 사실을 잘 모르는 국가들에서 어느정도 혼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저 선동은 우리를 그 선동에 맞출 수 없기에 우리의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들의 선동은 결코 우리가 우리에게 거짓되게도, 맑스, 엥겔스, 레닌 등 위대한 사상가의 가르침을 배신하게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만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가 지금 어떻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해왔는지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 몇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우선, 해방전쟁 동안, 우리는 침략자들의 도구로 기능했던 낡은 국가 기구를 폐지했습니다. 여기에는 행정부, 부르주아 지배층을 유지하던 경찰과 헌병, 드라자 미하일로비치의 체트닉이나 파벨리치의 우스타샤, 루르퓍의 백군 등 망명정부의 군사조직 잔당을 포괄합니다. 우리는 이 혁명 과업을 맑스주의 고전이 말한 원칙을 모든 제도에 적용함으로서 그 정신에 따라 일관되게 수행해왔습니다. 우리 군대는 병사에서 사관까지 전부 새로워졌습니다. 이는 해방전쟁 과정과 인민혁명에서 무장한 노동자와 농민의 성과입니다. 부사관에서 장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휘관은 해방전쟁과 인민혁명에서 역할을 맡았던 노동자, 농민, 전문가입니다. 민병대와 치안대 역시 같은 이들이 맡고 있습니다. 국가 행정부는 노동자, 농민, 전문가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지도부 역시 그렇습니다. 경제 분야의 지도부는 노동자, 농민, 전문가 출신의 시련을 견뎌낸 진정한 인간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국가 권력이 우리나라의 노동인민의 손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코민포름의 옹호자들은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적군이 이 나라를 해방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다릅니다. 진실은 전쟁 중 우리가 해방전쟁의 성과를 실현하는 혁명과업에 있어 코민포름에 방해받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진실은 우리 인민 정부의 기반이, 적군이 후퇴 중이어서 우리와 수천 km 떨어져 있던, 1941년에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진실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친파시스트 반동, 유고슬라비아의 부르주아 계급과 같은 지배계급의 군대를, 비판자들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분쇄했다고 여실히 말해줍니다. 진실은 또한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적군이 1944년 가을 우리 국경에 다다르기 전에 낡은 국가 조직을 폐지했다고 말합니다. 진실은 또한 우리나라의 인민들이 스스로 무장하여 70만 노동자와 농민 군대를 건설했다고 말합니다. 수십만 시민 중 수백명이 생사가 걸린 싸움에서 점령군과 국내의 배신자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번째로, 전쟁이 끝난 직후, 우리는 유고슬라비아를 민주, 연방, 인민 공화국으로 선언했습니다. 전쟁 중에, 우리는 민족 문제를 해결했으며 이는 우리나라 안의 민족 억압을 제거했습니다. 이는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 건국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여년간 싸워왔던 공산당의 노고로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국가들 뿐 아니라 소련에게도 좋은 예시가 될 정도로 이를 상당히 해결했습니다. 여기서, 각 민족은 이른바 패권 민족도 강요하는 상위 정부도 없이 그들의 문제를 잘 다스렸습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형태의 패권의 존재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한 쪽에서 패권 민족이 존재한다고 인정해버리면, 이 사실은 필연적으로 권력을 독점한 강대 민족의 민족 탄압과 경제적 착취를 야기합니다. 이는 더 길게 말할 것도 없는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의 소련에서 패권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수천년동안 살아왔온 땅을 떠나 그들에게 가혹한 기후와 환경으로 갈성르 강요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 중 민족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한 유일한 국가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즉 우리가 이를 맑스주의 과학의 정신에 따라 해결했음을 말합니다. 소련의 다양한 인간에 대한 비사회주의적 행동과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의 소수민족에 대한 옳지 않은 자세가 이를 입증합니다. 원하는 자라면 누구든 와서 우리나라든 앞서 말한 어느 나라든 (파시즘은 차치하더라도)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의 세가지 요소가 있다고 우리 탓을 하는 곳을 보게 하십시오.

세번째로, 공화국을 선포하고 헌법을 제정한 직후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것을 없애기 위한 기초를 놓는 역사적 행동을 해냈습니다. 국가가 생산수단을 자본가들로부터 가져왔고, 공장, 광산, 기업, 육상 및 수상 교통수단, 대규모 부동산 및 (도매 뿐 아니라 모든) 유통업체, 호텔, 요양원 등을 국유화했습니다. 이를 이뤄내어 지금 이 땅에는 기업이나 광ㅅ산, 그외 어떤 공적 성격을 띤 기관도 국내외 자본가들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코민포름 옹호자들의 외국 자본가들이 우리나라에 재침투할 것이란 아우성은 그저 뻔뻔한 거짓말이요 악의적인 중상일 뿐입니다. 우리 의회가 노동 집단이 공장, 광산, 철도 등의 경영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모든 중상자들에게 가장 명확하고 설득력있는 답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인민은 그러한 중상에 대해 그들이 경영하는 공장과 기업을 발전시킬 위대한 창의력으로 미래에 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누가 공장과 광산의 주인인지 말할 것입니다.

네번째로, 우리는 부농에게 토지 소유를 25헥타르로 재한하는 철저한 농업 개혁을 수행했습니다. 국유화하여 얻은, 또는 부농과 교회에서 접수한 70만 헥타르에 달하는 토지를 가난하고 땅을 가지지 못한 농민들에게 분배했습니다.

다섯번째로, 사회주의는 우리와 같은 산업 후진국에서는 물질적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우리는 국가 권력과 생산수단을 우리 손에 넣고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토의 산업화와 전력화를 위한 5개년 계획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가정 어려운 임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그 증거는 수백개의 새 공장과 기업, 철도, 현대화된 도로, 새로 지어진 학교, 과학 연구소 등입니다.

이것들이 무엇을 뜻합니까? 파시즘입니까, 사회주의입니까? 그리고 민족, 인종, 종교에 대한 혐오 및 분쟁 조장 금지법과 같은 우리의 다른 법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어떤 파시스트 국가가 그런 법을 갖고 있습니까?

그리고 점령기 전쟁 이윤 몰수법, 사기업 국유화법, 적산 국고이전법 - 파쇼 부역자 뿐 아니라 계급의 적을 포함한,적산 몰수 및 그 이행에 관한 법, 강제수용법, 협동조합기본법, 촌락 사회주의 경제 이행법, 농업개혁 및 토지정리법, 농민부채 청산법, 보험 국유화 후에 통과된 노동자 및 가족 보험법, 인민 권력의 기초가 되는 인민위원회법,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발달의 사전 조건으로서의 5개년 계획법을 보십시오.

거의 모든 우리 법은 맑스주의 정신에 따라 제정되고 실현되었습니다. 법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들 법이 우리나라에 사회주의 특색을 입힌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고, 또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모든 공격과 음해를 반박합니다. 이들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들은 우리 혁명과 사회 제도의 성격을 정확히 밝힙니다. 이들은 우리의 길이 맑스주의 과학을 따르며, 따라서 성공적이고 승리로 인도할 것임을 보입니다. 우리의 길이 맑스주의 과학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길이 사회주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며 다른 국가들도 우리와 똑같은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이 길이 유고슬라비아의 우리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국가의 다양한 경제, 문화 등 조건은 다양한 형식을 요구합니다.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만능 처방전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맑스주의 과학을 기초로 이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여 그 정신과 의미를 삶에 담을지만 알면 됩니다. 물론, 이 경험은 다른 이들에게 쓰일 수 있겠지만, 자세한 모든 것까지 그대로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달성한 긍정적 결과물을 살펴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같은 식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부정적인 면을 살피고 이를 피하고자 노력하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약점과 문제점을 비판할 때, 자신들이 아닌 그 나라에 존재하는 특수한 조건에 바탕하여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 문제점의 근원을 파악하고, 개별적 단점과 객관적 단점을 구분한 후, 그 나라의 지도자들 스스로가 보지 않고 고치지 않는 것에 한하여 개별적 문제와 오류를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리가 동구권 뿐 아니라 전세계 여러 국가의 선진 공산주의자들이 범한 오류를 반복하지 말자는 뜻에서 하는 것입니다.

당, 즉 소련 공산당의 지도자들이 다른 공산당 지도자들의 생각에 족쇄를 채우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노동계급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진보적 운동에 있어 대체로 엄청난 비극입니다. 그들은 위대한 레닌 동지의 성과인 10월 대혁명의 권위를 이용하여 이를 저질렀습니다. 물론, 이것의 타당한 이유 중 하나는 전쟁 이전 수년간 세계 여러 국가의 노동운동을 지배했던 사태입니다. 그러나 그 사태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동 운동의 빈약함 때문에, 지도자들은 소련 지도자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점점 커져가는 존경과 경외로 바라보게 되고, 그 결과 원시시대에 그랬듯 닿지 못할 권위와 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원시인들은 자연의 법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나 선한 쪽으로나 악한 쪽으로나 신성함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원시인들이 보이지 않은 것을 신성시한 것과 달리 현대에는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신성시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권위자가 다른 부대를 데리고 와주길 기대합니다. 이러한 약점에 대해 용기있는 조사가 필요하며, 분명 이들 혼란의 원인 대부분을 찾아 올라가면 무오류성을 운운하는 이들로 향할 것입니다. 과거와 지금의 지령과 고정관념이 세계 진보 운동의 약점의 핵심 문제라는 사실이 분명히 입증될 것입니다. 이들 "무오류한" 권위자가 진보적 세계의 올바른 발전에 대체로 걸림돌이 되어,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수정주의의 길로 빠지게 하여 세계 노동 운동을 약화시켰음이 명확합니다.

우리의 경험을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 당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외국에서 명령을 받을 때, 우리는 약하고 수적으로 적었으며, 내부 분파 갈등으로 갈라졌고, 인민 대중으로부터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다수로부터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1936년, 우리가 해외의 지도를 덜 받을 때부터, 우리 당은 점점 빠르게 성장하고 노동 대중 전반의 지도세력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봉기를 준비할 때, 우리는 외부에서 어떠한 명령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내린 판단에 기초하여, 우리 스스로 행동했고, 속아넘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파시스트에 맞서 싸울지를 어느 누구에도 묻지 않고, 우리 스스로 예측한 상황에 기초해서, 때가 왔다고 본 즉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1941년, 우지체에서, 우리가 인민 정부를 세우기 시작할 때, 다행히 모스크바와 아무런 연결이 없었기에, 우리는 첫번째 초석을, 즉 우리가 지금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기반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1941년 세르비아에서 철수할 때, 우리는 어느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고(물론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없었지만) 프롤레타리아 여단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모스크바의 지도자들에게 이를 알리는 입장이 되자, 그들은 즉시 우리가 해왔던 일을 공격하고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가장 중요한 지역에서 봉기가 위협받을 때 프롤레타리아 여단을 건설했다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 때문에 오히려 더 노동계급의 참여와 봉기 중 공산당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노동계급의 대중 참여와 그들의 자기희생적인 헌신 없이는 봉기의 성공이 있을 수 없단 것을 입증합니다. 공산주의자 및 청년노동자는 이 프롤레타리아 여단을 가장 대표했습니다. 노동계급은, 농민들과 함께, 이들을 노동계급의 미래를 결정할 충격적인 분대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외부에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우리 인민들을 두렵게 하는게 아니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이는 인민들로 하여금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 어느때보다 충성스럽게 만들었으며, 당을 고통받던 인민 전반과 가깝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고, 이는 후에 호재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유고슬라비아 반파시즘 민족해방 평의회의 2번째 회의를 자체에서 준비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될 것이라 보았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허가를 요구하지 않았고, 그것은 옳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달성한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 등 뒤에 칼을 꽂았다고 답했습니다. 우리 인민은 점령군과 그에 협조한 국내의 반역적 지배층, 즉 반동 부르주아의 군대에 맞서, 초인적 노력의 결과인 역사적 공적을 세웠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인민의 승리와 해방전쟁의 성과 실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자기들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상황과 시기의 적합성을 우리 스스로 평가하여 세운 기초에서 중요한 단계를 거치던 전후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우리가 오직 우리나라만의 이해관계를 생각하고 강해지는 국제 노동운동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전적으로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 인민의 용감한 투쟁을 그들 식으로 왜곡해서 해석하거나 부정하려는 자들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가끔찍 그들의 조언을, 어느정도 옳은 것들만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조언은 우리 사회주의 국가의 이해관계를 따르지 않기에 해만 될 뿐이었습니다.

우선, 사회주의를 향한 우리 길의 핵심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이론적 설명을 요하거나, 조금이라도 현재 맑스주의 과학의 정확성을 부정하는가? 물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를 향한 우리 길의 핵심을 몇 단어로 요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주의를 향한 우리 길은 주어진 단계에서 맑스주의 과학을, 우리나라의 주어진 조건 하에서 가능한 가장 조화롭게 실현하는 것을 내포합니다. 우리에게, 이 과학은, 비록 그것이 복잡할지라도, 독단이 아닌 지도이자, 모든 확고한 상황의 방향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것이 옳다고 깊이 확신하기에, 맑스주의 과학의 정신을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도입하려 노력합니다. 실제로 맑스주의 과학의 원리는, 위대한 스승들의 과학적 예측에 감사하게도, 맞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현재 국제 발전 단계에 있어서도, 이들은 온전히 옳았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이 원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노동계급 뿐 아니라 모든 진보적 인류에 대한 수정주의요 배신을 뜻합니다.

우리와 소련 사이의 이론적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부분적으로라도 답하기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 과학에 비추어 우리와 그들이 무엇을 해왔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이행기 국가의 역할과 국가의 소멸 과정, 당과 국가의 관계,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또는 오늘날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의 문제, 그리고 국가 또는 사회주의 소유 문제를 다룹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사례를 살펴봅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나라의 노동계급이 그들 손에 권력을 쥐고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등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여러 혁명적 행동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낡은 국가 기구를 해체하고 새로운 인민의 국가 기관을 세웠습니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착취자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서도, 그리고 사회주의적 경제를 '운영하기' 위해 농민, 프티부르주아, 반(半)프롤레타리아 등을 지도하기 위해서도, 국가권력, 집중화된 권력조직, 폭력조직이 필요하다"[1]. 그러나 동시에 맑스를 인용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사멸하는...(중략)....국가만을....(중략)...필요로 한다"[2]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레닌의 국가 문제에 대한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는 무엇을 원합니까? 부르주아, 착취계급은 피착취계급, 즉 인민 대다수를 계속해서 종속시키기 위한 영원한 강제력으로서의 국가를 원합니다. 부르주아는 그들의 체제, 즉 착취 체제가 완벽하고 영원할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 기구의 약화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소멸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얼마나 민주주의의 탈을 쓰든지, 부르주아 국가와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예를 들면, 부르주아 국가, 즉 착취 계급인 소수의 손에 놓인 폭력 기구가 다수를 탄압하며 그 힘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국가가 소수의 착취자와 새 유고슬라비아의 적들을 압박하는 책무를 맡았음에도, 이곳에서 국가는, 특히 경제면에서, 그 역할을 노동 인민에게 넘기면서 점차 소멸하고 있습니다.

맑스주의 과학에 의하면, 국가는 "계급 투쟁"의 산물이며, 이는 계급이 소멸하여 탄압할 자나 탄압할 이유가 없어질 때 소멸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소멸 과정의 시작은 어디입니까? 아마 몇가지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 권력의 탈중앙화를 들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공장과 기업 전발을 노동자 조직에 넘겨 스스로 관리하도록 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경제 및 정치, 문화 그리고 여러 생활 분야의 탈중앙화는 상당히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중앙집권제 외에도 폭력기구로서의 국가 전반의 소멸의 맹아를 내포합니다. 이 땅에서 그 사실을 누구든 와서 볼 수 있습니다.

10월 혁명으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소련은 어떻습니까? 10월 혁명은 국가가 생산수단을 손에 넣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생산수단은 3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가의 손에 있습니다. "공장을 노동자에게"라는 구호가 실현되었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노동자는 여전히 공장 경영에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그들은 국가, 즉 관료가 임명한 경영자의 명령을 따릅니다. 노동자는 오직 일할 기회와 권리만을 갖지만 이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련에는 실업자가 없다는 차이점만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특별한 제도 중 하나인 공장과 기업을 노동자에게 이전하고 그들 스스로 관리하게 하는 것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의 지도자들이 국가 소유를 사회적 소유의 최고 단계로 보았기에, 생산수단을 노동자에게 넘겨 관리하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가 소유에 대한 개념에서 나왔습니다. 한편, 이는 전적으로 그들의 국가 기구의 강화에 의한 것입니다. 그들이 진실을 알길 원한다면, 그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사실입니다.

혁명 이후의 31년에 대해 말하자면, 소련을 비판하는데 있어 느린 경제 개발 및 사회주의의 물질적 조건 건설 속도를 주로 하진 않겠습니다. 개발 동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이를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며 옳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는 맑스주의 고전이 사회 변혁, 즉 사회주의가 산업, 전력화 등이 상당히 발달하여 사회적 소유로의 전환이 필요할 정도로 생산력이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을 때 필연적으로 온다고 보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소련 정부가 가장 후진적인 산업을 가진 나라를 물려받았으며, 따라서 매우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의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내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당장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높은 수준의 산업화를 달성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인 것을 보함한 여러 요소를 만들어낼 때까지 산업 경제를 포함한 모든 기능을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소멸에 대한 이 가르침을 수정하려 하는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비약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를 쉽게 구분지을 수 있다고 새각합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소련의 급속한 경제 개발을 가로막는, 더 나은 것을 채택했다면 소련의 경제 개발 성과를 더 위대하게 만들었을, 경영 방식을 비판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소련의 교육 방식을, 세번째로 대국의 역할에 대한 그들의 견해 등을 비판할 것입니다.

소련의 국가 소멸은 어떻습니까? (정부와는 다른 지리학적 또는 민족적 개념으로서의 국가는 생각하지 맙시다.) 소련에서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 기능을 더 낮은 기관으로 이양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탈중앙화의 모습이 보입니까? 지금까지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반대로, 가장 솔직한 부르주아적, 관료제적, 중앙집권적 국가의 특징인 점차 증가하는 학고한 중앙집권제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러한 중앙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신호는 한 점으로 집중하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기능, 비대한 관료제 기구, 군부, 내무부, NKVD 등 감소하는게 아니라 증가하는 국가기구 내부의 무력입니다. 여기서 군대는 소멸 대상으로 언급하지 않는데, 이는 그 증감이 외부 환경, 사회주의를 위협하는 외부의 위협, 사회주의의 평화적 건설과 그에 대한 위협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능은 오직 사회주의 국가를 방어하는 수단으로서만 고려해야지 어느 누구에 대한 공격에도 쓰여선 안됩니다. 이들이 다른 영톨를 공격하고 다른 이를 탄압하려 한다면 그 사회주의적 성격을 잃고 제국주의의 성격을 띄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중앙집권제는 중앙집권주의적 부르주아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르주아 사회 특유의 중앙집권화된 국가권력은 절대주의의 몰락기에 출현했다."[3]

이 중앙집권주의와 사회주의를 향한 소련 발전의 침체는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이는 소련 지도자들의 국가에 관한 맑스와 레닌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스탈린은 국가의 소멸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졌습니다. 맑스, 엥겔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쥘 때부터 국가가 소멸되기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이는 프롤레타리아가 '모든 측면에서 실제로 권력을 쥐었을 때'를 말합니다. 국가의 소멸은 우선 경제적 기능에서부터, 생산자가 생산을 통제하고, 경제 기능을 국가에서 노동자 조직으로 이전하는 것에서, 무정부 상태를 피하기 위해 단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시작합니다.

종속된 계급이 사회에서 사라질 때, 계급 지배와 기존의 무정부적 생산에 기초한 개인 생존을 위한 투쟁과 함께 이로부터 발생한 충돌과 방종이 사라질 때, 특수 탄압 세력, 즉 국가가 억압해야 할 대상도 사라집니다. 국가가 실제로 사회를 대변하고자 나서기 위한 행동인 모든 생산수단을 사회의 이름으로 점유하는 것은 동시에 국가가 국가로서 하는 마지막 독립적 행동이기도 합니다. 국가 권력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간섭은 점점 불필요해지며, 그렇게 스스로 멈추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통치는 사물에 대한, 그리고 생산 과정의 방향에 대한 통치로 대체됩니다.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멸해 가는 것이다."[4]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1939년 제13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우선, 그는 엥겔스의 국가 소멸에 관한 엥겔스의 공식에 두가지 조건을 덧붙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엥겔스의 명제가 옳았는가?"

"그렇다, 그러나 두가지 조건 중 하나가 성립할 때에만 옳다. 사회주의 국가를 내부 발전의 관점에서 보아 우리 스스로를 국제적 요소로부터 추상화하고 분석의 편의를 위해 국가를 국제 상황으로부터 분리해서 보거나, 사회주의가 모든 또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승리하여 사회주의 연합이 자본주의 연합 밖에서 존재할 수 있게 되어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없고 국가와 군을 강화할 필요가 없을때 그러하다." 바로 이어 그는 "경제 조직가"로서 국가의 기능이 유지되고 소비에트 국가는 내부 기능 없이 외부 기능만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기(소련 발전의 제2기)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모든 국가에 수립하고 남아있는 자본주의 요소를 일소하며, 문화에 혁명을 일으키고, 국가를 방어하기 위한 상당히 현대화된 군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주의 국가의 기능은 그에 알맞게 변했다. 국내의 군사 탄압 기능은 사라졌으며, 착취 기능은 착취자가 사라져 착취할 사람이 없어 폐지되었다," 이어, "우리 군대, 형무시설, 정보기관에서, 그들의 칼날은 국내가 아닌 국외를, 외부의 적을 향해 있다."..."국가 조직의 경제 조직과 문화 교육 기능은 남아서 완전히 발달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스탈린이 국가 소멸 문제를 다루고 1939년 소련의 상황을 말하는 방식입니다. 1939년, 소련은 완전히 자본주의 국가에 포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주변에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가 연달아 생겨나, 소련이 자본주의로부터 포위되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군대말고도 소위 형무시설을 포함한 무력으로서의 국가 기능이 외부만을 향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과 아무 상관없이, 소련의 현재 상황과 이것이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대한 관료적, 중앙집권적 기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들의 기능이 외부로 향하고 있습니까? NKVD와 예비군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들의 기능이 외부로 향하고 있습니까? 누가 수백만 다양한 민족 출신의 시민들을 시베리아와 북극으로 추방했습니까? 누가 이를 계급의 적에 맞선 수단으로이라고, 누가 전 민족이 파괴되어야 할 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누가 소련의 노선 투쟁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을 가장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소멸하가는 국가기구와는 전혀 닮지 않은 국가 기구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겁니까? 스탈린이 여기서 지금 이 시기에 적용한다면 맞는 말을 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이 국가 기구는 실제로 외부 세계를 향한 기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야 할 점이 있는데, 이 기능은 필요한 곳 말고도 그렇지 않은 곳을 향하고 있단 것입니다. 이들은 타국의 인민의 뜻에 맞서 그 나라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려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소멸해가는 사회주의 국가의 기능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세력권을 확장하고 다른 인민들을 복속시키기 위해 싸우는 제국주의 국가 기구의 기능과 비슷합니다.

더 나가서, 스탈린은 국가에 대한 당의 역할 문제에 어떻게 말했습니까? 그의 저작에서 그는 공산주의의 제1기, 즉 사회주의에서 당의 역할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의 역할을 아직 계급사회의 영향을 지닌 국가 기구의 운영으로 놓습니다. 그렇기에, 소련 공산당이 점점 더 관료화되고 관료적 국가 기구의 핵심으로 성정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 일부가 되어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인민과 그들이 점거한 것의 모든 관계를 잃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모든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활동을 조직하며 가장 활발하게 참여하고, 모든 사회 활동에서 적극적 역할을 맡아 이를 주시하고, 대중의 창의적 열정을 그들 스스로가 본보기가 되어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다양한 강제 조치를 도입하여 당의 역할을 관료적 조직의 일부, 강압적 국가 기구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은 전부 제1기, 이행기에 당의 역할이 지도자이자 교육자여야지, 박해자가 돼서는 안된다는 레닌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 틀에 박힌 인식은 이곳에서도 정착하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필요한 조치를 취했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철저히 감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소련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로의 발전 문제를 어떻게 다룹니까? 맑스주의 어디에도 두 단계, 즉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가져오는 지점을 나타내는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언급하지만, 공산주의를 단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국가 권력을 잡은 후 더 높은 단계, 즉 공산주의를 향한 점진적 발전에 대해서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 지도자들은 그들이 더 높은 단계, 즉 공산주의에 도달한 시기를 정할 수 있을 것처럼 일을 처리합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슬픈 사실인데, 1948년 몰로토프는 그들이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에 진입했다고 밝혔습니다.

맑스는 높은 단계로의 전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게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차적인 생활 욕구로 된 후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 넘치고 난 후에 - 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5]

이것이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가능케 하는 조건입니다. 소련은 이로부터 무척,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론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생산수단 관리 문제를 가장 훌륭한 노동자를 관리인이나 경영인으로 지명하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 그리고 노동인민의 국가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힐 수 있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노동인민들 가운데에서 나타난 이들 노동자 관리인을 통해, 인민의 국가는 사업 운영을 보다 잘 감독할 수 있습니다. 이들 관리인 역시 노동자들의 요구를 더 잘 이해하고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꼐할 것입니다. 이들은 또한 국가의, 즉 인민의 재산을 잘 관리할 것입니다. 이는 국가의 생산수단 몰수와 관련된 가장 시급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물론, 오랜 기간에 걸쳐 자라날 많은 불편을 피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두번째는 "공장을 노동자에게"라는 구호가 실현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것만으로는 국가의 경제 기능 소멸이라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지적했듯이, 우리가 검토할 이 법안의 초안은 우리 사회주의 국가의 장차 올바른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이는 그저 공산주의를 향한 한 걸음에 불과합니다. 국가의 경제 통제 기능은 아직 완전히 멈추지 않았지만, 절대적 요소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노동인민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이는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생산자로서 생산을 관리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 이것이 일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일어납니까? 이 점진적 과정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정확한 시간에 대해서는 많은 환경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문화 발달 추세, 즉 공장, 광산, 교통수단 등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광범위한 노동자 훈련에 달려있습니다. 이것 없이는 노동자들은 생산을 감시할 능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문화 발전이 없다면, 노동자는 경영을 위한 기술적 지식을 충분히 얻지 못할 것입니다. 생산력 발달의 속도 등이 이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노동인민의 문화적 성장은 생산력 발달 수준에 있어 유럽에서 가장 뒤떨어진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더욱 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보여줍니다. 우리 산업은 이제 막 한창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모든 경제 관리 기능을 노동인민에게 이전하는 속도는 생산력 발달 속도에 달려있습니다. 이는 차례로 노동자 스스로에게, 그들의 소비품 생산에, 낭비가 아닌 효율적 이용 등에 달려있습니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산주의는 노동생산성을 고민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그들 개인이나 멀고 가까운 친척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회를 위해, 모든 밀, 석탄, 철 등 생산품 한 포대 한 포대를 소중히 지키는, 자기희생적인 숙달된 노고에서 출발한다."[6]

왜 문화적 성장의 중요성을 제일 우선시하는 것입니까? 옛날과 지금, 그리고 미래의 유고슬라비아의 산업 노동자 수를 본다면, 이 문제의 핵심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각종 기업에 누가 진입하고 있습니까? 농민들입니다. 즉, 엄청난 수의 농민, 준농민, 준노동자가 지금 기업에 진입하고 있고, 그들은 우선 노동자로써 단련되어야 하며 그 후에 노동자 관리인으로써 단련되어야 합니다. 이는 금방 끝나지도 쉽지도 않은 임무이며 가능한 한 모든 진정성, 함을성, 역량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이들 신규 노동자를 교육하기 위해,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임무, 국가의, 즉 인민의 재산과의 관계에 관해 많은 노동자들이 가진 부적합한 개념을 충분히 일소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스니아, 산자크[7], 마케도니아, 코소보 및 메토히야[8], 리카[9], 몬테네그로 등 이 나라의 가장 낙후된 시역에서 많은 거대한, 어쩌면 가장 큰 계획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입시다. 지금까지, 그곳에는 전부 산업이랄 것이 거의 또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곳의 공장, 광산, 기업에서는 누가 일해야 합니까? 그 낙후 지역의 농민들입니다! 이들 낙후 지역의 가장 가난한 농민들이 그 지역의 공장과 광산에서 일해야 하며, 일할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낮은 문화 및 생활 수준에서 수세기동안 무기력하게 지내와야 했던 빈농에서, 그들 스스로와 사회주의 공동체 전체의 더 나은 삶을 건설하는 의식있는 노동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쉽지도 빠르지도 않은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상당한 경험을 했기에 준농민 또는 준노동자를 의식있고 규율이 잡힌 산업 노동자로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며, 우리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들이 산업체와 광산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공장, 광산 등 사업체에 들어서는 즉시 그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약간의 황무지보다 공장, 광산 등이 그들과 그들 선조가 살아왔던 것보다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준농민과 준노동자가 의식 있는 산업 노동자가 되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이는 우선, 많은 공장과 사업체, 그리고 훨씬 많은 광산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우리 사회주의 국가를 더 부유하게, 착취당하지 않은 부를 이 나라의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게, 그리하여 인민들이 이 부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국가를 산업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들 공장, 광산 등을 가동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현대 기술에 능숙한 노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최신 기술은 더이상 사유 재산도 자본주의적이지도 않은, 공동체 전체의 사회적 재산인 현대적 생산수단보다 그들의 얼마 안되는 황무지를 더 생각하는 준농민이 숙달할 수 없습니다. 이 생산수단은 자본가들이나 그들에게 돈을 많이 받고 충성하는 고용인과 자본가의 이익과 노동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이윤을 짜내어 이를 자본가의 주머니에 채워주고 개평을 챙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관료들이 관리할 수 없습니다. 그들 노동자 스스로가 어떻게, 얼마나 일할지 결정할 것이며, 그들은 왜 일해야 하며 그들이 일하여 만든 것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것입니다. 이르한 체제를 이 나라 방방곡곡에 도입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준농민을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이로서 그 의무와 권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의식 있는 산업 노동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후진국에서, 예컨대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길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과 마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모든 노동자들이 고루 똑똑해져서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물론, 이때까지 기다리려면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당연히 그래선 안됩니다. 경영 과정에서, 끊임없는 노동과 기업 운영 과정에서, 모든 노동자들은 경험을 쌓습니다. 그들은 작업 과정 뿐만 아니라 그들 기업의 모든 문제에 통달하게 됩니다. 이는 오직 노동자들이 기록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원자재를 얼마나 쓰고 절약할 수 있는지 배우고, 그들의 노동이 만들어낸 잉여가 어디로 가서 어디로 쓰이는지 보는 실무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기업이 축적한 몫이 계획한 총 축적의 일부로서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그들의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빨리 노동생산성 등을 높일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노동인민들이 경제 운영 참여에 책임을 지는 순간부터, 노동 규율 문제가 첫번째 임무가 될 것이기에, 그들은 반드시 노동 규율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 평의회에게 특히 중요한 일은 노동력을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인력이 공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하릴없이 있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이는 즉 그냥 두면 그들 조직 전체의 지출로 생산비용을 높이고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트리는 관료제와 운영진을 정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문가에 대한 요구와 행정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불필요한 조직에 대한 요구를 어떻게 구분하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장과 광산 등을 노동자들이 관리하도록 넘김으로서, 우리는 관료제라는 이름의, 일터에 뿌리박힌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질병은 부르주아 사회에서부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이어지며, 이행기에 위험하게 작용합니다. 수천개의 촉수를 가진 말미잘과 같이 이는 올바르고 빠른 개발 과정을 방해하고 훼방놓습니다. 관료제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모든 사회 활동의 틈새로 파고들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를 의식하지 못하기에 사회주의의 분명히 가장 큰 적 중 하나입니다. 관료제가 우리나라에는 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잘못입니다. 이는 다양한 기관, 국가 조직, 경제에 자기 나름대로 꿈틀대고 있으나 우리는 이를 의식하고 이미 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단순히 정기적으로 공세를 가하는 것은 충분치 않으며 끊임없는 투쟁에 나서고 사람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레닌은 기술적, 문화적 후진성이 관료제가 가장 잘 자라는 토양이지만, 관료제에 성공적으로 맞설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료제에 끝까지 맞서 싸우고, 이를 이기는 것은, 모든 인민이 여기에 참여할 때 가능하다. 부르주아 공화국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법이 이를 가로막는다. 최선의 부르주아 공화국에서는, 아무리 이들이 민주적이라 할지라도, 노동인민이 통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수천가지의 법적 제약이 존재한다. 법 뿐만 아니라, 어떠한 법에도 종속되지 않은 문화 수준이란 것도 존재한다. 이 낮은 문화 수준은, 강령에 기초했을 때 노동인민에 의한 통치 기관이 되어야 하는 소련을, 실제로 노동자 대중이 아닌 프롤레타리아의 선진 부위에 의한 통치 기관이 되게 한다."[10] 이는 레닌이 언급한 낙후된 문화와 그 안에 숨어있는 행정부 관료화의 위험성 때문입니다.

레닌으로부터, 관료제가 특히 후진성이 만연한 곳에서 만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우리가 관료제의 뿌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사람들이 관료제가 사회주의에 유해하며, 이들이 위에서 내리는 법령이 아니라 모든 의식있는 이들이 매일 나선 투쟁을 통해 뿌리뽑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이를 감시하고 모든 관료주의적 절차와 단호하게 맞서싸울 권리를 자각하지 못한 곳에서 관료제가 자라난다는 것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관료제가 오직 상층 기관에서만 발생하며, 하부 기관에 파고드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관료제는 맞서 싸우지 않으면 가장 낮은 국가 및 경제 통제 기관까지 침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관료제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모든 기관에 뿌리내리고, 상위 관리자가 이것이 끼치는 해를 보지 않고 보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비극입니다. 관료제를 성공적으로 억누르기 위해서는, 상부에서 상위 기관에 조치를 취하고, 하위 기관은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우리에게 말해주듯이, 이는 하층부에서도 매우 위험합니다. 이렇듯, 관료제는 공화국, 도, 시군의 행정 조직에 있어, 다양한 상업 기관 등 경제 조직 운영에 있어 위험합니다. 대중의 지원과 함께, 이에 맞서 싸워야 하며, 사회주의에 해가 되는 이러한 현상이 퍼지는 것을 허락해선 안됩니다.

오늘날, 국가 기관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이 인민의 손에 들어온 때에, 인민은 관직에 지명된 이들이 사회주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의무를 다하는지 그들이 하는 일에 경계를 늦춰선 안됩니다. 공장, 광산 등을 운영할 노동 조직과 평의회는 경영에 있어 관료주의적 수단이 쓰이지 않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역할

노동인민이 경영에 참여하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노동조합의 역할도 조금씩 바뀝니다. 이들의 기능은 이제 노동조합 업무의 가장 중요한 과제, 노동인민의 훈련과 전반적 문화 선진화로 향합니다. 노동조합의 일은 농민이었던 새로운 노동자들로 하여금, 당의 지도와 노동조합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그들이 가진 "영세 소유자"적 구습을 가능한 한 빨리 일소하고, 생산수단에 대한, 공장, 광산, 사회적 소유에 대한, 일에 대한 새로운 사회주의적 관계에 대해 가장 의식있는 노동자로 빠르게 나아가게 하는 데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들 신규 노동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교육으 받아 지치지 않는 자기희생적인 공산주의 사회, 즉 모든 노동인민의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의 건설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업 경영과 생산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영향을 미치는 한, 노동조합의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는 다소 약해집니다. 이제는, 노동자가 스스로 평의회, 즉 생산 관리 위왼회를 통해 이 문제를 결정합니다. 이는 또한 노동조합의 노동자 권익 보호와 공동체 전체, 인민의 나라의 이해관계 보장이라는 노동조합의 두 역할을 수월하게 만듭니다. 노동자들이 생산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축적, 생산비용은 어떠한지 등 이전에는 관리자, 경영진과 노동조합이 홀로 직면해야 했던 문제들을 잘 알게 된다는 사실은 노동조합의 업무를 용이하게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 사실은 공장, 광산 등 기업에서 노동 규율을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법안은 노동자들이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경영을 맡는다고 명시합니다. 공장, 광산, 기업의 노동자들은 직접 비밀 투표로 노동자 평의회를 선출합니다. 노동자 평의회와 이들이 선출한 경영위원회는 노동조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입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경영 위원회에는 해당 기업의 노동조합 대의원을 반드시 지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아무런 권한이나 책임있는 임무를 맡지 않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경영에 책임을 지며 참여합니다.

이 법안은 이 의회에 제안한 가장 민주적인 법안 중 하나입니다. 이 법안의 본질은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노동자 평의회의 의무와 권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안 23조에는 "기업의 노동자 평의회는 기업의 경영계획과 결산회계를 승인하며, 기업의 경영과 경제계획 수행을 결정하며, 기업의 경영위원회와 그 구성원을 선출하고 소환하고 교체하며, 상위 경제기관 또는 관할 국가기구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기업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고, 경영위원회의 업무 보고서를 검토하여 이를 승인하며, 경영위원회가 취한 여러 조치를 검토 후 이를 승인하며, 축적물을 기업에 유보하거나 노동 조직에 분배할지를 결정한다."

법안 27조는 기업 경영위원회의 임무에 대해 다룹니다. "기업의 경영위원회는 기업의 기본 계획 초안을 발의하고, 월간 생산계획을 작성하며, 기업이 올바르게 운영되는지 감시하고, 기업 내부 조직과 업무 분류에 관한 초안을 작성하며, 사내 업무 통제를 위한 규칙을 제안하고 노동 규율을 향상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노동자를 기업 임원직에 지명할지를 결정하며, 노동자가 업무와 내부 작업 분배에 관해 제기한 불만을 처리하며, 특히 생산의 합리화, 노동생산성 증대, 생산비용 절감, 품질 향상, 효율적 조치, 낭비분 절감 등 기업의 생산 증대를 위한 조칠를 취하고, 기업의 업무 규범을 결정하며, 특별 작업 선언과 노동자 발명가의 특허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기업 내 노동자의 기술 지식 향상과 그들의 올바른 업무 할당을 위한 조치를 취하며, 기업 내 노동관계, 임금, 승진, 안전, 사회보험, 노동자의 사내 삶의 수준 향상에 대한 올바른 규제 적용을 검토하고, 기업 내 노동자의 휴가 계획을 논의하고 결정하며, 기업의 관리 하에 있는 국가 자산의 보호와 올바른 사용 그리고 국가 자산에 대한 무의식적인 손상이나 낭비 등을 발견하고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기업의 경영위원회는 계획 이행과 기업의 올바른 운영에 대해 책임을 진다."

법안의 두 조항은 생산 기능의 어떤 부분이 노동 조직으로 이전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들은 형식적으로 국가의 권한이었지만 노동조합의 어느정도의 참여로 그 대의원들을 통해 실행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국가의 공장, 광산, 철도 등 생산수단 소유는 점차 더 높은 형태의 사회주의적 소유로 바뀝니다. 국가 소유는 사회적 소유의 가장 낮은 단계이며, 소련의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 사회주의의 길이 있으며, 이것이 경제 영역에서 국가 기능을 소멸시키는 유일한 올바른 길입니다. 코민포름의 옹호자들이 그들의 음해투성이 외침과 울부짖음이 우리 사회주의 건설의 올바름을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듭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 경제 운영에 대한 노동 조직과 우리 노동인민의 참여에 관한 이 법안은 이곳 우리나라와, 그렇게 찬양받고 칭송받는 서구 민주주의 중 어느 곳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있는지에 대한 가장 좋은 답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는 가장 폭넓은 노동인민 대중의 물질적 기반 위에 서있습니다. 대중은 그들이 민주주의를 우리나라 모든 노동인민의 더 낫고 행복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이용한다고 느낍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없다느니 우리가 경찰국가라느니 하는 소리를 해대는, 우리나라에 부족한 것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하는 서구에 대한 대답입니다. 우리가 아직 생산수단을 제작하고, 소비품과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모든 것들을 충분히 생산할 여건이 안되어 많은 것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해내기 위한 길에 서있고, 그렇게 할 것이며, 이는 서구처럼 소수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방의 상점에 그득하게 쌓여있지만 사람들이 쳐다보기만 하는 그 물건들은 무엇이며, 누가 지금 이들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습니까?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렇습니다. 노동인민의 절대 다수가 아닌 지배계급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이렇듯, 간신히 먹고 살 만큼만 버는 노동인민이나 실업자들에게는 그들이 일하여 얻은 과실을 빼앗아가고 간신히 버틸만큼만 주어 다른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떠받치고 풍요롭게 살게하는 민주주의랄 것도 없는 것만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는 소수만을 위한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하는 자가 노동의 과실을 향유하기 위해 일하며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물질적 실체입니다.

우리는 우리 노동자들이 우리의 후진성으로 인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적지 않은 곤란을 겪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건설이 그들의 손에 달렸고, 오직 그들의 끊임없는, 자기희생적인, 창의적 노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단 것을 알기에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뚫고 나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시작부터, 우리 인민정부는 노동인민과 우리나라의 인민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았다면, 더이상 인민의 정부가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오고 건설한 것들은 오직 한가지 목적을 갖습니다. 바로 우리 노동자들이 더 행복해지고, 그들에게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시골과 도시의 노동자들은 지금 그리고 그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의 장인입니다. 더이상 인민들이 그렇게 땀흘리지 않아도 되는 더 나은 미래가 얼마나 빨리 올지는, 시골과 도시의 노동자 자신에게, 그리고 그들의 끈기와 자기희생 그리고 인내에 달려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얼마나 덜 방관하는지, 모두가 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한,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우리 사회주의 국가 시민을 위한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소비품을 생산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투쟁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스스로 운영하는 농민들, 이제 그들 스스로 공장을 운영할 노동자들은 이제 진정으로 그들의 운명을 그들의 손에 넣었습니다.

각주

  1. 국가와 혁명 2장 "국가와 혁명:1848~51년의 경험", 1부 "혁명의 전야" 중, 한국어 번역본 인용
  2. 위와 같은 원문
  3. 국가와 혁명 2장 "국가와 혁명:1848~51년의 경험", 2부 "혁명의 총괄" 중, 한국어 번역본 인용
  4. 엥겔스, 반듀링론 제3부 "사회주의", 2장 "이론적 고찰" 중, 새길신서 김민석 번역본 인용
  5.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중, 박종철 출판사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 번역본 인용
  6. 레닌, 전집 24권, 142페이지, 러시아판 영어 번역본을 중역
  7.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접경지대 - 역자 주
  8. 지금의 코소보 공화국 지역을 세르비아에서 가리키는 말 - 역자 주
  9. 크로아티아 북서부 산악지대 - 역자 주
  10. 레닌, 전집 24권, 142페이지, 러시아판 영어 번역본을 중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