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노동과 자본/4월 8일 기사

좌파도서관
임금 노동과 자본
4월 8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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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커지면 임금 노동의 양도 그만큼 늘어나며, 노동자의 수도 그만큼 많아진다. 한마디로 말해, 자본이 더 많은 수의 개인들까지 지배하게 된다. 가장 좋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생산 자본이 성장하면, 노동에 대한 수요도 커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가격인 임금도 올라간다.


어떤 집이 아무리 작더라도 이 집을 둘러싸고 있는 집들이 한결같이 작다면, 그 집은 주택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채워 준다. 그러나 작은 집 옆에 궁전이 하나 있다면, 그 작은 집은 오두막집처럼 오그라들고 말 것이다. 이제 이 작은 집은 그 소유자가 요구하는 바가 전혀 없거나 아주 작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또 문염ㅇ이 진보함에 따라 집이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옆에 있는 궁전이 똑같은 정도로 또는 더 높이 치솟는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울 안에서 더욱더 불쾌하고 물만스러복 짓눌린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임금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게 오르려면 생산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생산 자본의 급속한 성장은 부, 사치, 사회적 욕구와 쾌락의 급속한 성장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노동자의 쾌락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는 사회적 만족은 노동자가 넘볼 수 없는 자본가의 늘어난 쾌락에 비하면, 사회의 발전 상태 일반에 비하면 줄어드는 셈이다. 우리의 욕구와 쾌락은 사회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를 기준으로 그것을 재는 것이지 그것을 채워 주는 대상을 기준으로 재는 것은 아니다. 욕구는 사회적 본성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본성이다.


임금은 일반적으로 그것과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의 양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관계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받는 것은 정해진 양의 화폐다. 임금은 단지 화폐 가격에 의해서만 결정되는가?


16세기에 아메리카에서 더 풍부하고 더 쉽게 가공할 수 있는 광산들이 발견된 결과, 유럽에서 유통되는 금과 은이 늘어났다. 그러므로 금과 은의 가치가 나머지 상품들에 비해 떨어졌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예전과 똑같은 양의 은화를 받았다. 그들의 노동의 화폐 가격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들의 임금은 떨어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똑같은 양의 은과 교환하여 더 적은 양의 다른 상품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6세기에 자본의 성장, 즉 부르주아지의 대두를 촉진한 사정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또 다른 경우를 들어 보자. 1847년 겨울에 흉작으로 말미암아 없어서는 안 될 생활 수단들, 이를테면 곡물·고기·버터·치즈 등의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예전과 같은 양의 화폐를 받았다고 해 보자. 그들의 임금은 떨어지지 않았는가? 물론 떨어졌다. 교환을 할 때 그들은 똑같은 돈을 주고도 더 적은 빵과 고기 등등을 얻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임금이 떨어진 것은 은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 수단의 가치가 커졌기 대문이다.


끝으로, 노동의 화폐 가격은 그대로인 반면에 모든 농산물과 공산품의 가격은 새로운 기계의 사용, 좋은 날씨 등으로 말미암아 떨어졌다고 해 보자. 이제 노동자들은 똑같은 돈을 주고 모든 종류의 상품을 더 많이 살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임금은 화폐 가치가 변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오른 셈이다.


따라서 노동의 화폐 가격인 명목 임금은 실질 임금, 즉 임금과 교환하여 실제로 받는 상품의 양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임금의 오르내림에 대해 논할 때 노동의 화폐 가격인 명목 임금만을 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명목 임금, 즉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자본가에게 파는 대가인 화폐 액수도, 또 실질 임금, 즉 이 화폐로 그가 살 수 있는 상품의 양도 임금 속에 포함된 관계들을 남김없이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임금은 무엇보다도 자본가의 이득인 이윤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도 한데, 이것이 비교·상대적 임금이다.


실질 임금이 노동의 가격을 나머지 상품들의 가격과의 관계로 표현하는 반면에, 상대적 임금은 노동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가치 가운데서 직접적인 노동이 받는 몫을 축적된 노동, 즉 자본이 차지하는 몫과의 관계로 표현한다.


우리는 위 14쪽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 속에 들어 있는 노동자의 몫이 아니다. 임금은 자본가가 얼마 만큼의 생산적 노동력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기존 상품의 일부다." 그러나 자본가는 노동자가 만든 생산물을 파는 가격에서 다시 이 임금을 보상해 주어야 한다. 그는 이것을 보상할 때 보통 자신이 지출한 생산비를 초과하는 잉여분, 즉 이윤이 남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노동자가 만든 상품의 판매 가격은 자본가 쪽에서 보면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로 그가 미리 지불한 원자재 가격에 대한 보상, 이어서 또한 그가 미리 지불한 도구·기계와 다른 노동 수단들의 마모분에 대한 보상, 둘째로 그가 미리 지불한 임금에 대한 보상, 셋째로 이것을 초과하는 잉여분, 즉 자본가의 이윤이 그것이다. 첫째 부분이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가치만을 보상하는 반면에, 임금에 대한 보상이나 자본가의 잉여분, 즉 이윤은 대체로 노동자의 노동으로 창조된 가치, 원자재에 덧붙은 새로운 가치에서 나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임금과 이윤을 서로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둘 모두를 노동자가 만든 생산물의 몫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실질 임금은 그대로인 채, 심지어 오르기까지 하면서도,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생활 수단의 가격이 2/3씩 내렸는데, 하루치 임금은 1/3만, 예를 들어 3마르크에서 2마르크로 내렸다고 하자. 비록 노동자가 2마르크를 가지고, 예전에 3마르크를 주고 살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그의 임금은 자본가의 이윤에 비해 줄어든 셈이다. 자본가(예를 들어 공장주)의 이윤은 1마르크 늘어났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는 이제 자본가에게서 적은 액수의 교환 가치를 받고 전보다 더 많은 액수의 교환 가치를 생산해야만 한다. 자본의 몫은 노동의 몫에 비해 늘어났다. 사회적 부가 자본과 노동 사이에 분배되는 비율이 더욱 불평등해졌다. 자본가는 똑같은 자몬으로 더 많은 양의 노동을 지배한다.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는 자본가 계급의 힘은 더 커진 반면에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나빠졌으며 자본가의 지위 아래로 한 단계 더 떨어진 것이다.


그러면 임금과 이윤의 관계에서 그 오르내림을 결정하는 일반 법칙은 무엇인가?

둘은 서로 반비례한다. 자본의 몫인 이윤은 임금의 몫인 하루치 임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올라가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윤은 임금이 떨어지는 만큼 올라가며, 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떨어진다.


아마 다음과 같이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자본가는 그의 생산물을 유리한 조건으로 다른 자본가들과 교환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예전 시장에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한 결과, 그의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이득을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가의 이윤은 임금, 즉 노동력의 교환 가치의 오르내림과는 상관없이 다른 자본가들을 속임으로써 늘어날 수도 있다. 또는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 도구의 개선, 자연력의 새로운 이용 등등을 통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먼저 우리는 비록 정반대의 과정을 거쳐 생겨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윤이 늘어난 것은 임금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니지만, 임금이 떨어진 것은 이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똑같은 양의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의 교환 가치를 사들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에게 더 높은 액수를 지불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노동이 자본가에게 가져다 준 순이익에 비해 노동은 더 낮은 액수를 지불받은 것이다.


게다가 상품의 가격은 변동하는데도 각 상품의 평균 가격, 즉 그것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은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자본가 계급 안에서 저희들끼리 속이고 속는 것은 반드시 상쇄될 수밖에 없다. 기계를 개량하거나 생산을 위해 자연력을 새롭게 이용하는 것은 같은 노동 시간에 같은 양의 노동과 자본을 가지고 더 많은 양의 생산물을 창조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많은 양의 교환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내가 방적기를 사용해 그 기계를 발명하기 전보다 시간당 2배의 실, 예를 들어 50파운드 대신에 100파운드의 실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길게 보면 나는 이 100파운드와 교환해 예전에 50파운드를 주고 얻었던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비가 절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며, 다시 말하면 같은 비용으로 2배의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나라 또는 전세계 시장의 자본가 계급, 즉 부르주아지가 생산의 순이익을 저희들끼리 어떤 비율로 나누든간에 이 순이익의 총액은 언제나 대체로 직접 노동에 의해 늘어난 축적된 노동의 총량일 뿐이다. 따라서 이 총액은 노동이 자본을 늘리는 것과 같은 비율로, 즉 이윤이 임금에 비해 높아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 안에서만 보더라도 자본의 이해 관계와 임금 노동의 이해 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은 이윤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과 똑같다. 이윤은 노동의 가격, 즉 상대적 임금이 그만큼 급속히 줄어들 때에만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 명목 임금, 즉 노동의 화폐 가치와 더불어 실질 임금까지 오르는 경우에도, 실질 임금이 이윤과 같은 비율로 오르지 않는 한에는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경기 때에 임금이 5% 오르고 이윤은 30% 오른다면, 비교·상대적 임금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다.


이처럼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노동자의 수입도 늘어나지만, 동시에 노동자와 자본가를 가르는 사회적 간격도 커지며, 또 노동에 대한 자본의 힘,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도 커지는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의 급속한 성장과 이해 관계를 같이 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다음과 같은 뜻일 뿐이다. 즉 노동자가 다른 사람의 부를 급속히 늘려 줄수록 그만큼 더 큰 빵 덩어리가 그에게 떨어진다는 것, 그만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고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본에 예속된 노예들의 수가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에게 가장 좋은 상황, 즉 자본이 될 수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조차도, 그것이 아무리 노동자의 물질적 삶을 개선해 준다하더라도 노동자의 이해 관계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 즉 부르주아지의 이해 관계 사이의 대립을 없애지는 못한다. 이윤과 임금은 예나 지금이나 반비례하는 것이다.


만일 자본이 급속히 성장한다면 임금이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윤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빨리 올라간다. 노동자의 물질적 상태는 좋아졌지만, 그것은 그의 사회적 처지를 희생한 대가일 뿐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를 떼어 놓는 사회적 간격은 더 넓어졌다.


결국 임금 노동에 가장 좋은 조건은 생산 자본이 될 수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뜻일 뿐이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적대 세력, 자기 위에 군림하는 다른 사람의 부를 급속히 늘리고 키워 줄수록, 그만큼 더 좋아진 조건에서 그들은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을 묶어서 끌고 가는 황금 사슬을 자기 손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면서, 또다시 부르주아의 부를 늘려 주고 자본의 힘을 키워 주러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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