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의 조직적 강령 서문

좌파도서관
제목: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의 조직적 강령
부제: 서문
저자: 파리 디엘로 트루다 그룹
발표시기: 1926년 6월 20일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의 조직적 강령
서문


자유의지주의적 사상의 힘과 대체 불가능한 긍정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회혁명을 마주함에 있어 아나키스트들이 진실하고 솔직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아나키스트들이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를 실현하고자 영웅적으로 희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스트 운동이 여전히 약하다는 것은, 아나키스트 운동이 노동계급의 투쟁사에서 단지 작은 사건으로, 일화로 취급될 뿐 중요한 요인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중대한 사실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사상의 긍정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과 아나키스트 운동이 식물화 되어있는 끔찍한 상태의 대조는 여러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나키스트 운동에는 조직적 원칙과 실천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에서 아나키스트 운동은 서로 모순된 이론으로, 서로 모순된 실천을 하는 몇몇 지역 조직들로 대변된다. 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투쟁적 사업의 지속성도 없고, 습관적으로 사라지며,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혁명적 아나키즘의 이러한 상태는 ‘총체적 만성 조직부전’으로만 묘사될 수 있다.


조직부전이라는 질병은 마치 황열병과 같아서, 아나키스트 운동에 내포된 이후 십 수 년 간 그 운동을 흔들어왔다.


이 조직부전이 이론의 부재로부터, 특히 아나키즘에서 개인성의 원칙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이론은 너무 자주 무책임함과 혼동된다. ‘자기’를 주장하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은 개인적 기쁨만의 관점에서, 아나키즘 운동의 혼란한 상태에 완강하게 매달린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아나키즘과 그 선생들의 불변의 원칙이라 말한다.


하지만 불변의 원칙과 선생들은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분산과 산발성은 파괴적이다. 단단히 묶인 동맹이 생명과 발전의 현현이다. 이처럼 느슨한 사회적 투쟁은 계급에 뿐만 아니라 조직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아나키즘은 아름다운 유토피아도, 추상적 철학의 이데아도 아니다. 아나키즘은 노동대중의 사회 운동이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은, 현실과 계급투쟁의 전략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그 힘을 하나의 조직에 모아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켜야 한다.


크로포트킨은 “우리는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결코 공통된 혁명적 과업에 해롭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오히려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유용할 것이다.”(바쿠닌의 『파리 코뮌』 1892년 판본 서문에서)


바쿠닌도 아나키스트의 총체적 조직이라는 개념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조직에 대한 열망과, 그가 1차 인터내셔널에서 행했던 활동들은 바쿠닌이 이러한 조직의 열정적 투사라 바라보는 것을 합당하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사실상 모든 적극적 아나키스트 투사들은 분열된 활동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과 수단에서 단결로 묶인 아나키스트 운동을 갈망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한복판에서, 총체적 조직은 가장 심오하고 긴급하게 요구되었다. 혁명의 복판에서 자유의지주의 운동의 분파주의와 혼란은 가장 크게 드러났다. 총체적 조직의 부재는 많은 적극적 아나키스트 투사들을 볼셰비키의 멍에 아래로 몰아넣었다. 총체적 조직의 부재가 또한 많은 현대의 투사들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그 힘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만 한다.


우리는 아나키스트 운동의 참가자 다수가 모여, 아나키즘을 일반적이고 전술적인 방침으로 하여 전체 운동을 선도할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제 아나키즘이 조직부전의 늪을 떠날 때가, 가장 중요한 전술적, 이론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망설이는 것을 벗어날 때가, 명확하게 인지된 목표를 향해 단호하게 움직일 때가, 조직된 집단 실천을 시행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의 필요성을 확립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건설의 방법론을 확립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우리는 아나키즘의 서로 다른 경향의 대표자들을 다시 모아놓는다는 ‘합명제synthesis’의 방식이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서투르기에 이를 거부한다. 다층위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요인들을 포함하는 이러한 형태의 조직은 단지 아나키스트 운동의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가진 개인들을 기계적으로 모아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임은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다시 분해될 뿐이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의 방법론은 아나키스트 조직의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 이 방법론은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문제에만 천착하여 그 영역에서 힘을 얻는 데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의 총체적 조직이 없다면, 이 영역에서는 많은 것을, 심지어 거의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총체적 조직의 문제의 해답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은 적극적 아나키스트 투사들을 정확한 위치에 기초하여, 이론적 · 전술적 · 조직적으로 단일한 계획에 근거하여 배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을 고민하는 것은 최근의 사회적 투쟁에 있어 아나키스트들에게 주어진 핵심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제가 추방당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그룹이 그 노력을 기울여 헌신하고자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조직적 강령은 이 계획의 윤곽을, 뼈대를 그려내고자 작성되었다. 강령은 자유의지주의 세력을 투쟁할 수 있는, 하나의, 적극적인 혁명적 집단, 아나키스트 총동맹으로 묶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강령에 비약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강령은 모든 새롭고 실질적이며 중요한 단계들이 그러하듯 비약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거나, 어떤 내용은 불충분하게 다루어지고, 어떤 내용은 너무 세밀하게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총체적 조직의 기반을 놓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강령으로써, 그 목적은 필요한 만큼 달성되었다.


조직을 확대하고, 깊이를 더하며, 전체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한 결정적 강령으로 만들어내는 과업은 전체 집단에, 아나키스트 총동맹에게 주어졌다.


다른 한편 우리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일부 자기식 개인주의와 혼돈의 아나키즘의 대변인들이 거품을 물고 우리를 공격할 것임을, 우리가 아나키스트의 원칙을 부수고 있다 고발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주의적이고 혼돈스러운 요소들은 ‘아나키스트의 원칙’을 정치적 무관심, 태만, 무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그로써 우리의 운동을 치유 불가능한 분열로, 우리의 투쟁에 반하는 영역으로 가져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들의 공격을 평온하게 무시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다른 투사들에게 희망을 둔다. 아나키스트 운동의 비극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고통 받았음에도 여전히 아나키즘에 신실하여 고통스럽게 해결책을 찾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나아가 우리는 러시아 혁명의 숨결로 태어나, 건설적 문제들의 태동기에 위치해있는 청년 아나키스트들은 반드시 아나키즘의 긍정적이고 조직적인 원칙들이 실현되는 것을 요구하리라는 것에 희망을 둔다.


우리는 모든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러시아 아나키스트 조직들 모두가, 고립된 투사들 모두가, 공통의 조직 강령에 근거하여 단결할 것을 촉구한다.


이 강령이 혁명의 중추가 되게 하자! 이 강령이 러시아 아나키스트 운동의 투사들의 집결지가 되게 하자! 이 강령이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근간을 구성하게 하자!


세계 노동자의 사회 혁명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