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게드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장 쥘 게드 Jules Guesd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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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본명은 쥘 바질로 게드주의라는 집산(集産)주의 이론의 창시자이다. 마르크스의 협력을 얻어 노동당 기본강령을 작성하고 프랑스 노동당을 성립시켰다.
개요
1870년 6월 신문 《인권》을 창간하여 제2제정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으며, 제정이 무너진 후 파리코뮌을 지지한 논설을 썼다가 유죄가 되어 스위스로 망명하였다.
1876년 귀국하여 주간지 《평등 L’Egalité》(1877~1878)을 발행,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집산주의를 선전하였으며, 1880년 카를 마르크스와 그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와 함께 프랑스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강령에 대해 협의했다. 1880년 전국노동회의에서 채택된 이 강령은 노동자들에게 "의회에서 계급투쟁을 이끌어갈" 의지가 단호한 대표, 바꾸어 말하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굽히지 않고 싸울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압력집단의 경제적·정치적 행동을 통해 노동권익을 얻어내야 한다고 보던 현실적 개혁주의자들은 이런 게드의 입장을 반대했다. 이들은 적극성을 띤 단체협상과 파업을 옹호했고, 노동자들은 정당소속과는 관계없이 진보적인 후보 개인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3년 이래 여러 번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그를 중심으로 한 게드파(派)는 노동당의 주류를 이루어 개량주의와 대립하였다. 그러나, 세기말 이후 사상적으로 객관 정세의 흐름에 대한 경직성을 면할 수 없어 점차 내셔널리즘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다작(多作)에 박력있는 연설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게드는 1893년부터 하원에 진출했으며 1914~15년까지는 무임소장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