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좌파도서관

제4대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
洪世和
Hong Se-hwa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출생
출생
1947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사망
사망
2024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국적
국적
대한민국
약력
약력


개요

생애

생애 초기

한때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창경국민학교,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누 이듬해 10월 자퇴했으며 재수를 해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문리대에서 연극반 활동을 했으며, 1972년에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었다가, 다시 복학해, 8년만인 1977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한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 후 무역회사 '대붕실업'에 재직하던 중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파리 지사 근무 중 프랑스에 망명을 신청했다.

프랑스 망명생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종사하였다. 1995년 자서적 고백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하고, 1997년 《르 몽드》에 실린 기사 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펴냈다.

귀국 후 활동

그 후 1999년에 귀국했다.

2002년 1월에는 영구귀국 후 한겨레 기획위원을 맡았다.[1]

2002년 3월에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2년 12월 5일에는 MBC 100분토론에 민주노동당 찬조연설자로 출연하자 다음 날인 6일 한겨레 편집국은 홍세화가 사규를 위반했다며 직무정지 결정을 내린 일이 있었다.[2] 2008년 2월 5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3]

2011년 11월 25일, 진보신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지만, 당의 득표율이 3%를 넘지 못해 낙선했다. 10월 27일, 진보신당의 상임대표 직에서 사퇴했다.[4] 이후엔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8년에는 김길오 등이 연루된 '노동당 언더조직 폭로 사건'과 관련해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5]

문재인 정권기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2020년 2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경향신문을 고발했다가 비판여론에 밀려 고발을 취하한 것과 관련, "그들은 자유한국당보다 더 배타적, 불용인의 정치집단이 되었다"며, '민주당에는 민주주의자가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오늘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는 오로지 지지자에게만 해당된다"며 질타했다.[6]

2020년 11월 19일 한겨레 칼럼에서는 문재인을 임금님에 비유했다. 홍세화는 이 칼럼에서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 백성한테서 ‘상소문’을 받는다는 점도 그렇다. 임금님인데, 착한 임금님”이라고 비판했다.[7]

2021년 1월에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민주건달들이여 진보를 참칭하지 마라"라며, 한겨레 칼럼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을 쓴 뒤 "평생 먹을 욕 다 먹었다. 나이 칠십이 넘은 내게 '헛소리 그만두고 (파리로) 가서 택시 운전이나 하라'더라"라며 "지금 우리 사회는 합리적 사고가 진영 논리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논리의 힘'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8]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백윤 후원회장을 맡았으며, “이백윤 후보가 얻는 표만큼 사회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이번 사회주의 대선 후보의 출마는 사회주의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9]

2023년 2월 암이 발견되었으나 활동을 지속했다. 12월경 암이 몸 전체로 퍼지면서 항암치료를 시작했으나. 2024년 4월 18일 12시경, 녹색병원에서 별세했다. 장례는 한겨레 신문사 사우장으로 치러졌다.

논란 및 사건사고

어록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
-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나는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 스스로 묻자.
- 홍세화 마지막 인터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