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의 기초/당(1)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8일 (금) 02: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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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주의의 기초
VIII. 당
1절 당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이다

혁명 이전 시기, 다소간 평화로운 발전의 시기에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노동운동에서 지배적 세력이었고, 의회투쟁 형태가 투쟁의 기본형태로 인정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당이 이후에 공공연한 혁명투쟁이라는 조건하에서 가지게 되는 중대하고 결정적인 의의를 갖지 못하고 가질 수도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면서 카우츠키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은 평화의 도구이지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전쟁 시기,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혁명적으로 행동한 시기에 아무런 중대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무기력했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투쟁에 맞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적 정당이 아니며,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이끌지도 못하며, 단지 의회선거와 의회투쟁에 적합한 선거조직일 뿐임을 뜻한다.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한 정치조직이 당이 아니라 의회 의원단이었다는 사실도 바로 이것에 기인한다. 알다시피 이 시기에 당은 사실상 의회 의원단의 부속물이었고 심부름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당의 지도하에서는 혁명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준비시키는 문제는 제기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기가 닥쳐오면서 문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새로운 시기는 계급 간에 공공연히 충돌하는 시기이며,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으로 행동하는 시기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이며,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기 위한 역량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 프롤레타리아트는 새로운 임무에 직면했다. 새로운 혁명적 노선에 입각하여 당의 모든 작업을 재조직하는 임무, 노동자들을 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적 투쟁의 정신으로 교육시키는 임무, 예비군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임무, 이웃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하는 임무, 식민지 및 종속국의 해방운동과 튼튼한 연계를 맺는 임무 등등이다. 이러한 새로운 임무들이 의회주의라는 평화스러운 조건하에서 성장한 낡은 사회민주당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절망적인 자포자기와 필연적인 패배에 내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들을 짊어지고도 낡은 당의 지도하에 남아 있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완전히 무장해제 될 것이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상태를 참고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당, 전투적인 당, 혁명적인 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선두에 설 만큼 용감하고, 혁명적 상황의 복잡한 조건 가운데서 진로를 찾아낼 만큼 충분히 숙련되어 있으며, 목적에 이르는 길에 놓인 모든 암초를 피해 갈만큼 유연한 당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당이 없다면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전취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새로운 당은 레닌주의 당이다.


이 새로운 당의 구체적 특성은 무엇인가?


1) 당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이다.


당은 무엇보다 먼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여야 한다. 당은 노동계급의 우수한 분자들, 그들의 경험, 그들의 혁명성, 프롤레타리아트 대의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헌신성을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당이 진정으로 선진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혁명이론과 혁명법칙 및 운동법칙에 관한 지식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이것이 없다면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고 갈 수 없다. 만약 당이 노동계급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에 그 자신을 제한한다면, 만약 자연발생적인 운동의 뒤꽁무니를 따라 간다면, 만약 자연발생적인 운동이 지니는 정치적 무관심과 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만약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인 이해를 초월할 수 없다면, 만약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당은 진정한 당이 아니다. 당은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야 하며, 노동계급보다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며, 자연발생성의 뒤꽁무니를 따를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고 가야 한다. “추수주의”를 설교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지 수중에 있는 도구라고 선언하는 부르주아 정책의 전달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부대라는 관점을 취하며,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당만이, 오직 이러한 당만이 노동계급을 노동조합주의의 좁은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당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도자이다.


앞에서 노동계급 투쟁의 어려움, 투쟁의 복잡한 조건들, 전략과 전술, 예비군과 기동작전 그리고 공격과 후퇴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 조건들은 적어도 전쟁의 조건들 못지않게 복잡하다. 누가 이러한 조건들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으며, 누가 수백만 프롤레타리아트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가? 어떠한 군대든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노련한 참모부가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불구대천의 적에게 유린되지 않으려면 그러한 참모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디에 이러한 참모부가 있는가? 그러한 참모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당이다. 혁명적 당이 없는 노동계급은 참모부 없는 군대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참모부다.


그러나 당은 단지 선진부대일 수만은 없다. 동시에 계급부대, 계급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자기 존재가 계급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야 한다. 선진부대와 노동계급의 나머지 부분과의 차이, 당원과 비당원과의 차이는 계급이 소멸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차이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열이 다른 계급으로 보충되는 한, 전체 노동계급이 선진부대의 수준이 되지 않는 한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차이가 넓어지고, 비당원 대중들로부터 고립되어 분리된다면, 당은 하나의 당이기를 멈출 것이다. 만약 비당원 대중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만약 당과 비당원 대중들 간에 연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약 대중들이 당의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만약 대중들 사이에서 도덕적 정치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당은 계급을 지도할 수 없다.


최근에 당은 노동자중 20만 명을 새로운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지 스스로 입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머지 모든 비당원 대중에 의해 당에 파견되었다는 점이다. 즉 비당원 대중이 신입당원 입당에 적극적 역할을 했으며, 이들의 동의 없이는 신입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비당원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대중들이 우리 당을 자기 당, 자기에게 가깝고 친근한 당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당의 확대와 강화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자기의 운명을 당에 맡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당을 비당원들과 연결하는 이러한 무형의 정신적 줄이 없다면 당은 그 계급의 결정적인 힘이 될 수 없다.


당은 노동계급의 분리할 수 없는 한 부분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계급의 당이다. 따라서 거의 전 계급(전쟁기나 내전기에는 완전히 전체계급)이 우리 당의 지도하에 행동해야 하며, 우리당에 가능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한시라도 전체계급 대부분 혹은 계급 전체가 그 계급의 선진부대 즉 사회민주주의당의 의식성과 적극성의 수준으로 고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닐로프주의[1]이며 ‘추수주의’이다. 지각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라면 자본주의 하에서 심지어 (보다 초보적이며 의식수준이 낮은 계층에게 가장 알맞은)노동조합조직도 전체계급 대부분 혹은 계급 전체를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선진부대와 그들을 따라가는 전체 대중과의 차이를 망각하여 광범위한 계층을 이러한 선진적인 수준으로 고양시켜야 할 선진부대의 임무를 망각한다면 이것은 단지 자신을 기만하고, 우리 임무가 지니는 중대함에 눈을 감고, 이러한 임무를 협소화하는 것을 뜻한다.(제6권, p. 205-206을 보라)[2]

  1. 고골리의 ≪죽은 혼≫에 나오는 지주 마닐로프의 이틈에서 유래. 마닐로프는 속물적이고 달콤한 감사주의자의 전형이자 공허한 몽상가이다.
  2. 레닌, ≪일보전진 이보후퇴≫, 홍수천 옮김, 풀무질, 1995, p.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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