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10):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책자 |번호 = 19 |배경색 = #CD0000 |글씨색 = #FFFFFF |제목 =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장 이름 = 3.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10) |이전 장 =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9) |내용 = 무정부주의자들의 셋째 “비난”을 보자.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의 인민적 성격을 부인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관료주의자라고 부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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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독재는 혁명의 파멸을 가져온다고 하는 | 우리는 모든 독재는 혁명의 파멸을 가져온다고 하는 크로포트킨의 극히 그릇된 견해를 여기서 분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무정부주의자들의 전술을 검토할 때에 언급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으려는 것은 “비난” 그 자체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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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몇몇 개인들의 지배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 다시 말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몇몇 개인들의 지배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 ||
그 후 그들은 거의 모든 저서에서, 예를 들면 ≪루이 | 그 후 그들은 거의 모든 저서에서, 예를 들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계급투쟁≫, ≪프랑스 내전≫,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반뒤링론≫과 그 외의 자신들의 저서에서 이 사상을 반복하고 있다. | ||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또 그들이 이 독재를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겼는가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흥미 있는 것은 |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또 그들이 이 독재를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겼는가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흥미 있는 것은 파리 코뮌에 대한 그들의 태도이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무정부주의자들에게서 비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온갖 푸줏간 주인과 선술집 주인을 포함한 도시 소부르주아와 맑스와 엥겔스가 속물이라고 한 모든 사람들에게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이러한 속물들을 염두에 두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
{{인용문|최근 독일의 속물들<ref> [편집자 주] 엥겔스가 작성했던 원래의 표현은 “사회민주주의의 속물들”이다. 이 서문(≪프랑스 내전≫ 독일어 제3판 서문)은, 1891년 파리 코뮌 2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내전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이론지 ≪신시대(Die Neue Zeit)≫에 최초로 발표되었는데, 이때 편집자들이 이 부분을 “독일의 속물들”로 바꾸어 출판했고, | {{인용문|최근 독일의 속물들<ref> [편집자 주] 엥겔스가 작성했던 원래의 표현은 “사회민주주의의 속물들”이다. 이 서문(≪프랑스 내전≫ 독일어 제3판 서문)은, 1891년 파리 코뮌 2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내전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이론지 ≪신시대(Die Neue Zeit)≫에 최초로 발표되었는데, 이때 편집자들이 이 부분을 “독일의 속물들”로 바꾸어 출판했고, 스탈린도 이렇게 수정된 판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ref>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빠진다. 신사 여러분, 이 독재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파리 코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프랑스 내전≫, 엥겔스의 서문을 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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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주의자 제씨는 이 두 개의 상호 부정하는 독재를 혼동한 까닭에 맑스주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환상과 싸우며 맑스, 엥겔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의 돈키호테처럼 풍차와 싸우는 가소로운 처지에 빠진 것이다. … | 무정부주의자 제씨는 이 두 개의 상호 부정하는 독재를 혼동한 까닭에 맑스주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환상과 싸우며 맑스, 엥겔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의 돈키호테처럼 풍차와 싸우는 가소로운 처지에 빠진 것이다. … | ||
이것이 셋째 “비난”의 운명이다. (다음 호에 계속)<ref>[편집부] 출판물은 계속하여 발표되지 못했다. 그것은 1907년 중기에 쓰탈린 동지가 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의하여 당 사업을 하기 위해 바쿠로 갔는데 그곳에서 몇 달 후에 체포되었고,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란 저작의 마지막 몇 장의 원고가 경찰의 수색 시에 분실되었기 때문이다.</ref>}} | 이것이 셋째 “비난”의 운명이다. (다음 호에 계속)<ref>[편집부] 출판물은 계속하여 발표되지 못했다. 그것은 1907년 중기에 쓰탈린 동지가 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의하여 당 사업을 하기 위해 바쿠로 갔는데 그곳에서 몇 달 후에 체포되었고,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란 저작의 마지막 몇 장의 원고가 경찰의 수색 시에 분실되었기 때문이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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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8일 (화) 14:49 기준 최신판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 ||||||||||||||||||||||||||||||||||||||||||
◀ | 3.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10) | |||||||||||||||||||||||||||||||||||||||||
무정부주의자들의 셋째 “비난”을 보자.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의 인민적 성격을 부인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관료주의자라고 부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사회민주주의적 계획은 혁명의 파멸이라고 주장하며 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독재를 지지하고 있는 것만큼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그들 자신의 독재를 수립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그 후 그들은 거의 모든 저서에서, 예를 들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계급투쟁≫, ≪프랑스 내전≫,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반뒤링론≫과 그 외의 자신들의 저서에서 이 사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또 그들이 이 독재를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겼는가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흥미 있는 것은 파리 코뮌에 대한 그들의 태도이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무정부주의자들에게서 비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온갖 푸줏간 주인과 선술집 주인을 포함한 도시 소부르주아와 맑스와 엥겔스가 속물이라고 한 모든 사람들에게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이러한 속물들을 염두에 두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파리 코뮌은 그 창건 첫 시기에 이렇게 행동하였다.
이것이 셋째 “비난”의 운명이다. (다음 호에 계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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